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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광장의 공원화
벌써 6년이 지났다. 그해 가을은 광장의 계절이었다. 가을을 넘겨 이듬해 봄이 움틀 때까지, 광화문광장을 촛불로 타오르게 한 집회에 연인원 1,500만 명이 참가했다. 차디찬 계절의 뜨거운 광장을 통과하며 『환경과조경』은 특집 ‘광장의 재발견’을 기획했다(2017년 3월호). 특집 서문 일부를 다시 옮긴다. “……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래 최대의 인파, 광장의 역사를 새로 쓴 날 …… 우리는 광장을 뒤덮은 인파를 보며 주체적 시민의 힘에 압도되기도 하고, 그 축제적 가능성에 전율하기도 한다. 한국의 도시민에게 광장은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긴 침묵 후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를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된 광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는 광장을 매개로 집단적 정치 참여를 축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폭발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광장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의 광화문광장 현상은 광장과 광장 문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 여러 공공 공간 가운데 광장만큼 일상적 이용과 비일상적 이용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공간이 있을까. 광장만큼 도시와 장소의 맥락, 정치와 역사적 상징과 관련된 공간이 있을까.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광장이 녹음을 드리운 공원과 유사한 오픈스페이스로 변신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김정은, 당시 편집팀장).
4년 전 여름, 만든 지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천억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잃어버린 역사성 회복’과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라는 석연치 않은 명분을 앞세운 서울시는 많은 전문가와 시민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강행했다.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는지 소통과 토론을 생략한 채 정치 일정에 맞춰 완공 시점을 못박고 과속으로 질주한 사업. 누가 봐도 전시성 포퓰리즘의 산물이었다. 급기야 2019년 초,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 결과가 발표됐다. 『환경과조경』 2019년 3월호는 당시 에디토리얼의 제목처럼 “새 광화문광장, 토론은 이제 시작”이기를 바라며 당선작 ‘깊은 표면’과 수상작들을 무려 다섯 편의 비평문과 함께 게재했다.
2020년 여름, 토건 시대에 버금가는 속도로 사업을 주도하던 서울시장이 광장에서 사라졌다. 공사는 이미 시작됐지만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새 시장은 10년 전 자신이 만든 광장에 새 옷을 입혔다. 숙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직진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결국 올해 8월 초, 공원의 옷을 입고 일단락된다.
서울시 보도자료의 머리글은 “녹지 면적 3.3배로 늘어난 ‘공원 품은 광장’”이다. 광장의 1/4을 녹지로 채웠고, 녹음이 풍부한 편안한 쉼터에서 일상의 멋과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5천 그루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역사성 회복과 접근성 향상을 명분 삼아 시작된 공간 정치 프로젝트가 자연 브랜드와 휴식 아이템이 한가득 연출된 공원으로 귀결된 셈이다. 8월의 광장은 나무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 바닥분수에서 첨벙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10월의 광장 위에선 다시 누군가를 퇴진시켜야 하고 또 누군가를 구속해야 한다는 외침이 맞붙어 충돌하고 있다. 봉건 왕조의 흔적과 근현대사의 파편이 흩어져 쌓인 혼돈의 장소를 낭만의 광화문‘공원’으로 교정할 수 있을까. 선한 공간의 대명사인 공원으로 모순의 광장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번 호에는 지난한 굴절과 수정 과정을 겪으며 마무리된 새 광화문광장 당선작 ‘깊은 표면’의 최종안을 싣는다. 설계자 조용준의 디자인 노트와 이명준, 정평진 두 비평가의 글을 함께 싣는 것은 광화문광장이 여전히 우리의 토론을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광장의 필요충분조건이 좋은 설계인 것은 아니다. 광장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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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틈
평소보다 짙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학교 화장실에는 그리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얀 전등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고, 평범한 회색 가벽이 화장실 두 칸을 나누고 있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가벽과, 가벽에 붙은 화장지,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보였다. 그날 밤 가벽과 바닥 사이의 한 뼘 채 되지 않는 틈에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모여 만든 검고 선명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휴대폰을 쥔 손이 불쑥 튀어나와 찰칵 셔터 소리를 냈다.
설계 스튜디오로 돌아와 숨을 골랐다. 다음날까지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고, 늦은 시간이지만 환하게 불이 켜진 설계실에는 과제를 하는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가벽 아래로 손을 뻗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모른다. 혹시라도 해코지를 할까 무서워 따지기는커녕 누구인지 확인조차 못했고, 옆 칸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간 뒤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낯선 화장실에 갈 때면 바닥과 가벽 사이의 틈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길게 늘어져 흐늘거리는 휴지 그림자 위로, 금방이라도 카메라를 쥔 낯선 손이 불쑥 솟아오를 것 같아서다. 10cm도 되지 않을 그 틈을 막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손이 닿을 듯한 높이의 낮은 가벽도, 벽면의 크고 작은 구멍도 전부 신경 쓰인다. 오래 전 짙은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야 할 화살을 작은 틈에 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막아주는 매끈하고도 완전한 벽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글·그림 조현진 | 연필 드로잉에 디지털 채색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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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농원
교외의 농원
그렇게 높지 않고 적당히 안쪽이 들여다보이는, 꽃나무가 새겨진 하얀색 철제 대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주에는 ‘미래농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에도 이런 대문을 만들까. 녹이 약간 슬었지만 여전히 우아한 아치형태를 가지고 있는 농원의 대문은 정원 안의 높고 굵게 자란 나무들보다 이곳에 새겨진 시간을 더 잘 드러내고 있었다. 이 오래된 대문을 남기고 다시 활용하는 것에서부터 설계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의 북쪽은 좀 낯설었다. 기차역에서 차로 불과 20분 정도면 다다르는 가까운 거리지만, 시내를 벗어난 느낌은 확연했다. 금호강을 경계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서변동이라고 하면 대체로 대로 서쪽의 복잡한 아파트 단지를 말하므로, 농원이 서변동에 있다고 말하면 택시 기사들이 늘 의아해한다. 동네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큰 길이 뚫리고 아파트 단지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객지 사람의 눈으로도 쉽게 감지가 된다. 길들의 방향이 서로 어긋나 있고, 옛 길과 새 길의 위계에 두서가 없었다. 바로 옆으로 간선도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변은 온통 비닐하우스 단지인데 대체로 화훼류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새로 뚫린 도로변 농장은 사람 키보다 큰 간판을 내걸었고, 8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트럭들의 소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소나무 밭
미래농원(mrnw) 부지는 좁고 오래된 옛길과 새로 뚫린 큰 도로 사이에 남겨진 땅이다. 옛길은 낮고 새 길은 높다. 두 개의 필지는 붙어 있고, 나머지 필지는 타인 소유의 토지 너머에 동떨어져 있다. 농장을 관리하기 위한 주택이 한 채, 그 옆으로 창고 같은 슬래브 건물이 또 한 채, 소나무 밭 안에 낡은 헛간이 두 채. 초라한 건물들에 비해 나무들은 달랐다. 앞밭, 뒷밭으로 불리는 소나무 밭의 상태가 깔끔했다. 높이가 대체로 6~7m에 이르는 소나무들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많은 땅이 도로 개설 시 편입되었고, 이제 여기 두 곳이 마지막 남은 소나무 밭이라고 들었다. 주택 주변은 정원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키 큰 감나무들이 정원의 시선을 끌고, 아담하고 잘생긴 분재형 소나무들이 집을 장식하고 있었다. 석류나무, 배롱나무, 동백, 모과나무, 단풍나무가 마당을 채우고 있었고, 집 한편에는 무성하게 자란 사철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었다. 나무를 심은 원칙과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관리 상태는 좋았으므로, 이 나무들을 다시 활용하는 것은 오롯이 조경건축가의 일이 되었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반들반들한 강돌로 사방을 쌓아 올린 둥근 모양의 연못이다. 깊이는 그렇게 깊지 않았으나 언제나 물이 마르지 않고 주변 나무 그늘로 인해 어둡고 깊게 보였다.
동떨어진 뒷밭의 나무들은 좀 더 다양했다. 소나무 말고도 제법 오래된 향나무들이 두 줄로 나란히 심겨 있었다. 담장 경계를 따라 둥근 소나무, 입구 쪽의 대형 팽나무, 반대쪽의 큰 배롱나무 외에도 건축주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복합문화공간과 견고한 경계
건축 설계를 맡은 SoA와는 통의동 브릭웰에 이어 두번째 작업이다. 오래된 농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건축주의 생각으로, SoA와 함께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공간의 성격상 건축과 조경이 설계 초기 단계부터 협업하면서 여러 논의가 이뤄졌다. 개발제한구역에 들어서는 건축물에는 많은 제한이 따랐다. 기존 건물 중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철거할지, 규제가 많은 대지에서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두 개의 위계가 다른 도로 중 어떤 쪽을 입구부로 계획할지, 주변의 어수선한 경관과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 인근 대구 비행장에서 시시때때로 출격하는 전투기의 소음은 또 어떻게 극복할지, 모든 것이 ‘복합문화’를 달성하기에 유리하지 않았다.
기존 대지에 허용되는 건축 면적이 작다는 것은 옥외 공간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농원으로 쓰였고 나무들도 많이 있으니 유리한 점이 많았다. 건물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분절되는 행태로 계획하면 그 사이사이에 자연을 개입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본관이 놓이게 될 대지와 그 옆의 ‘앞밭’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으면, 비좁은 건물에 한정하지 않고 고객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이 경우 대지 경계를 따라 어느 정도 높이를 가지는 견고한 담장이 필요한데, 도로의 소음을 차단하고 어수선한 주변 풍경을 제어할 수 있어서 공간을 내밀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공사비에 부담을 줄 수 있었다. 복합문화공간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식음과 전시를 즐기는 공간이므로 옥외 공간, 즉 정원 공간의 분위기가 중요했다. 비록 비용의 부담이 있더라도 내부 공간과 정원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영역으로 묶이려면 견고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당초의 생각으로 의견을 모았다.
중정 안의 숲
건물은 크게 두 개 동으로 나뉜다. A동은 1층부터 2층 및 옥상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건물이 가운데 놓이고 그 양쪽에 타원형을 반으로 잘라놓은 중정 두 개가 같은 크기와 형태로 위치한다. 관람자들은 가운데 서서 유리 너머로 보이는 똑같은 정원을 바라보게 된다. 크기와 형태뿐 아니라 모든 식재수종이 동일하게 구성된 이 쌍둥이 중정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함으로써 건물 내부가 거친 숲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는 장치로 계획되었다. 다듬어진 정원이 아니라 거친 숲의 느낌이 들려면 키 큰 나무부터 중간 층위, 낮은 층위, 바닥 층위에 이르기까지 중첩되는 식재 층위가 필요하다. 키 큰 모감주나무, 중간 키의 히어리와 진달래, 낮은 키의 산수국, 더 낮은 키의 여러 종류의 양치류와 이끼를 심었으나, 주변에서 간간이 날아드는 종자들에서 발아되는 식물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B동은 3개 층이다. 1층은 카페와 레스토랑, 2층과 3층은 전시 공간과 숍으로 운영된다. 가운데 타원형 중정은 미래농원의 상징 공간이다. 솔리드한 구조로 둘러진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광창의 역할을 한다. 설계 당시에는 이 공간에 꽤 규모가 큰 나무를 식재하는 계획이 검토되었으나, 디자인 감리 과정에서 다간형 히어리 몇 주를 심는 것으로 변경했다. 비워진 공간만의 장점을 살리고자 한 조치였다. 다간형 수목의 경우 눈높이에서 녹음 효과가 크므로 하늘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지상층의 시선 차폐, 동선 유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옛 정원과 소나무 숲
옛 정원은 B동과 넓은 앞밭 소나무 숲 경계부에 남겨진 정원이다. 주로 소나무와 향나무가 심긴 옛 정원은 당시의 정원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다. 원형 연못, 연못가 작은 대나무 숲, 배롱나무, 동백나무가 남겨졌다.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건축주와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비록 건물은 새것으로 대체됐어도 정원의 흔적은 한 곳에 오래도록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설계 초기의 생각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일부 수목의 위치를 조정하고 하부의 묵은 관목들을 지피식물로 대체했으나, 정원의 원형은 유지되었다.
앞밭 소나무 숲은 긴 회랑을 경계로 B동과 마주하고있다. 키 큰 나무로는 오로지 소나무만 가득하다. 당초 미래농원의 주력이 소나무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솔숲 사이에 남겨진 낡은 헛간 두 채는 규모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붕만 거친 목재로 변경되었다. 목재위에 얹힌 투명한 아크릴판은 빛을 통과시키면서 빗소리는 튕겨내 묘한 운치를 더한다. 거의 공예에 가까운 작업으로 SoA가 많은 수고를 했다. 처음 농장을 방문했을 때 이 공간의 가능성에 모두가 흥미를 보였는데, 그 의도가 끝까지 반영된 곳이다.
솔숲 사이를 지나는 떠 있는 메탈 브리지 역시 초기의 생각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B동의 레벨이 솔숲보다 높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단차 없이 이동하기에 이 방식이 유리했다. 때로는 동선을 통제하고 유도하는 것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일 때가 있다. 소나무들 사이사이에는 히어리, 물철쭉, 생강나무를 심었다. 키가 비교적 큰 편이라 소나무 하부층을 적절히 구성하면서 브리지 위를 이동하는 관람객들을 살짝 감춰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지 경계를 따라 둘러친 담장 안쪽에 SoA가 미러 효과를 가지는 스테인리스 판을 설치해 솔숲이 확장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었다.
괄호의 정원
괄호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뒷밭 영역은 본관 영역(A동, B동, 앞밭)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다. 별도의 전시 프로그램 공간으로 운영된다. 두 줄로 나란히 심긴 오래된 향나무가 설계의 실마리였다. 바닥에서 살짝 띄운 데크길이 이 향나무 식재열을 기준으로 뻗어간다. 오래된 농장의 바닥면은 단단하지만 약간의 굴곡이 있어서 보드워크board walk 형식의 동선이 유리하다. 본관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늑한 장소인데, 도로의 소음과 시선 차폐를 위해 비교적 높은 목재 담장을 두르고 대나무를 심었다. 소규모 모임이 가능하고 어수선함을 피해 한적하게 차를 마시며 호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정원 한편에는 요철 문양의 철판으로 둘러친 또 하나의 작은 정원이 있다. 정원 속의 정원이다. 좁고 긴 장방형 수조 주변으로 여러 종류의 야생초화가 피고 진다. 서로 다른 스케일의 공간을 하나의 영역에 중첩시켜 정원의 체험을 입체적으로 하게 하자는 생각이 반영된 곳이다.
미래농원은 기후위기 시대에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젊은 MZ세대의 취향과 관심이 어떻게 변화하고 표출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mrnw’라는 브랜드명은 오래전 이곳의 이름 ‘미래농원’을 의미한다. ‘여기가 옛날에 농원이었어?’라는 흥미로운 스토리, 도시에서 나무와 식물이 주는 위로와 편안함, 여유로움에 많은 방문객이 공감하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묻게 된다. 누군가는 ‘오래된’, ‘미래’농원에서 어쩌면 그 해답에 근접하는 하나의 단초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도심 속
자연의 숲을 구현하다
박승진 인터뷰
숲으로 만든 미로 같은 느낌이 든다. 대상지의 어떤 맥락에 접근해 디자인을 풀어냈나?
설계를 할 때 늘 장소 지향적으로 접근한다. 조경은 결국 땅에 구현되는 것이며, 땅은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그 장소는 우주에 붕 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어떤 맥락이 존재한다. 클라이언트가 이 공간을 왜 의뢰했는지, 원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이고, 활용할 수 있는 대상지의 요소와 도시적인 맥락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상이 다르겠지만 미로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옥외공간이 넓고 관리가 잘된 수목이 많은 농원이 있었다는 장소적 특징에 주목했고, 궁극적으로 제대로 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조경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디자인했다.
기존의 농원과 사택이 있는 상태였는데, 무엇을 철거하고 남길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일단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장소의 쓰임새가 달라졌지만, 농원이라는 기존의 조건을 지금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봤다. 워낙 오래된 탓에 대부분 건축물을 철거했지만, 헛간 두 채와 소나무 밭 등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슬레이트 지붕의 헛간은 근처의 소나무 밭과 잘 어울려서 고쳐 쓰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목재 위에 아크릴판을 올려서 빛이 오묘하게 들어오는 휴게 공간으로 만들었다. 고쳐 쓰는 임무를 맡은 SoA가 고생이 많았다. 건축주는 그동안 애써서 키우고 관리했던 나무들이 옮겨지더라도 재활용되기를 원했다. 물론 이전과 공간의 성격이 굉장히 바뀌었지만, 수목의 상태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가급적 활용하기로 했다. 실제로 키 큰 소나무는 몇 주를 제외하고 그대로 두었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모여 있던 군락을 산개시키기 위해 중간 키 수목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농원에 있는 나무를 식재로 활용할 때 취사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전체적으로 숲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대상지에는 소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등 잘생긴 교목들이 많았지만 낮은 키의 관목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 큰 나무들은 그대로 활용하고, 낮은 키의 관목들을 새로 심어 숲에 온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쌍둥이 중정 안의 정원에는 모감주나무를 심었다. 여름에 꽃이 피는 나무들이 드문데, 모감주나무는 여름에 꽃이 피는 나무 중 하나다. 손님이 많이 오는 공간인 만큼 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을 것 같았다. 아울러 키 큰 나무, 중간 키 나무, 작은 나무 등 다양한 높이의 나무들을 심어 공간에 오는 순간 순수한 야생의 자연을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소음 등 주변 여건이 공간 조성에 어려운 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대상지 주변이 좀 복잡하다. 공간의 앞뒤로 큰 도로와 옛날 도로가 지나가고, 인근 공군 비행장에서 하는 훈련으로 인해 소음이 많이 생기는 공간이었다. 전투기 소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SoA와 협의하면서 최대한 소음을 못 느끼고 이 공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공간의 바깥에 꽤 견고한 테두리를 만들어 외부의 어수선한 경관을 가리고, 공간 안에 집중할 수 있는 내부 지향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외곽에 두꺼운 담장을 쌓고 담장 안에 건축물이 있고 건축물 안에 다시 중정이 나오게 했다. 안으로 계속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서 공간의 내부에 집중하게 만들고 싶었다. 중정 안에는 마치 숲 한 덩어리를 꽂아놓는 형태로 만들어서 건물 내부에서 숲의 가운데 있다고 느끼도록 했다. 공간의 경험이나 모든 것들이 바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옥외 공간이 넓은 공간인 만큼 조경의 역할이 중요해보인다. 특히 복합문화공간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유인하는 요소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요즘은 워낙 인스타그램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어떤 풍경을 좋아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주위의 MZ세대를 보면서 그런 선입관을 가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자라보지 않은 MZ세대가 많지만, 자연에 대한 친밀감이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등산 동호회도 만들고 식물도 키우는 등 아버님, 어머님이 할 것 같은 취미를 고스란히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자연은 전 세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조경은 결국 자연의 일부를 장소에 구현하는 일이기에 특정 세대를 겨냥하는 대신 전 세대가 자연을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환경과조경』 2014년 3월호)에서 “설계자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방법으로 물성을 조작하고 배열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한 구절을 읽었다. 미래농원에서 이용자들에게 공간의 어떠한 물성과 감각적 체험을 보여주고자 했나?
각 공간마다 접근법이 달랐다. 전시 공간의 쌍둥이 중정에는 동일한 형태의 쌍둥이 정원을 만들었는데, 동일한 규모와 수종의 식재를 통해 이용자들이 마치 같은 공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자 했다. 건물의 전체적인 외형을 느낄 수 없는 중정 안에 똑같은 정원을 만들어 마치 숲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체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B동 앞 소나무 정원에는 지면으로부터 60cm 가량 띄운 금속망을 연결해 본관과 소나무 정원을 잇는 동선으로 만들었다. 단차가 있는 메탈 브리지는 이용자들에게 지면으로부터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식물이 주는 물성과는 다른 금속 재료의 느낌이 미적 쾌감을 제공한다. 또한 건축이 설치한 소나무 정원의 거울은 공간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괄호의 정원에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굴곡진 스테인리스 판을 설치했다. 미러 마감을 하면 아주 선명한 상이 거울처럼 드러나겠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이 비치는 입면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쭈그려서 비치는 상의 형체가 사라지게 했다. 대신 색깔이 분해된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사되는 미러 마감 철판에서 느낀 경험을 철저히 배반할 수 있도록 한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균질적인 공간의 체험이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이질적 공간이 보여주는 생소함이나 흥미로움이 즐거운 미적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의동 브릭웰 프로젝트와 구조가 비슷해 보이는데, 동일한 디자인 언어를 사용했나?
타원형으로 개방된 하늘이 들어오는 중정의 구조는 건축적으로 봤을 때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맥락적으로 다른 점이 많다. 일단 브릭웰은 미래농원보다 작은 면적이었고 기존 수목이 전혀 없는 상태에 새롭게 수공간을 만들고 새롭게 나무를 심은 프로젝트다. 미래농원은 그에 비해 수목이란 재료가 풍부한 상태로 출발할 수 있었다. 물론 자연의 숲을 공간 안에 들여온다는 점은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브릭웰은 전시 공간이었고 이곳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공간이기에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되도록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고, 화려한 원예종으로 이목을 끄는 정교한 정원은 지양했다. 대신 숲이나 자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식물을 식재하면서 도심에서 보기 힘든 거친 자연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듬어지지 않는 정원, 즉 주변에서 날아드는 종자가 자리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정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물을 자주 활용했다. 수공간은 설계자와 건축주에게 까다로운 요소다. 그동안 수공간을 조성하는 노하우가 생겼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수공간 만드는 걸 좋아한다. 다만 유지와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늘 건축주에게 미리 물어보고 양해를 구한다. 물이 공간에 선사하는 효과와 더불어 관리의 힘든 점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면 억지로 넣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수공간의 좋은 사례들이 생겨나면서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건축주가 많아졌다.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조경에서 흔히 식물은 소프트한 소재로, 돌과 철 등은 하드한 소재로 분류된다. 물은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말하자면 울트라 소프트 소재인 것 같다. 물성 자체도 변화무쌍하다. 반사의 효과를 일으키는 잔잔한 수면, 물결이 일 때 생기는 리듬감, 힘차게 뿜어져 나올 때의 역동적 에너지, 청각을 자극하는 물소리 등 여러 가지 감각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재료가 물이다. 그래서 가급적 공간에 물을 두려고 노력한다. 미래농원에는 아주 많이 쓴 편은 아니다. 농원에서 사용하던 옛 정원의 오래된 연못은 그대로 활용했다.
세상과의 소통,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이 두 가지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19세기 중반 도시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탄생한 것이 현대 조경이다. 물론 고대부터 등장한 정원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며 삶의 위로를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사회적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 바로 공원이다.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고 도심 속의 쾌적한 삶과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조경 작업에 임할 때 늘 두 가지를 생각한다. 나의 작업이 사회적 기능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자문한다. 일종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19세기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경이 탄생했던 것처럼, 앞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공공 조경 프로젝트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브릭웰이나 미래농원처럼 도시의 공공 정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형태의 공공 정원이 도시에 필요할까?
예전에는 다소 건축적인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면, 지금은 가급적 식물을 많이 쓰려고 한다. 지금의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굉장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기후위기로 초래된 생태계 파괴 등이 팬데믹이란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식물을 번성케 하는 것이다. 그게 조경이든 조경이 아니든 상관없이 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분별하게 훼손된 산림을 다시 복구하고, 식물의 자리를 밀어내고 콘크리트로 채운 도시에 식물의 공간을 더 확장시키는 것이 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설계자로서 가급적 식물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앞으로 도심에서 식물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스스로를 조경건축가로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조경건축가로 기억되고 싶나?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조경건축가로 소개하고 있다. 조경가라는 단어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생태 전문가도 조경가가 될 수 있고, 조경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이도 조경가가 될 수 있다. 조경가란 단어가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우리의 업을 정확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건축의 설계를 도맡아 하는 사람을 건축가라고 부르듯이, 공간에서 조경의 설계를 도맡아 하는 이를 조경건축가로 부르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소개했을 때 이전보다 더 쉽게 이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조경건축가로서 보다 좋은 조경 공간을 만들고 싶다. 메타버스 등 IT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며 무엇이든 구현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하지만 디지털로 구현하는 자연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풍경화 한 장이 자연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조경 공간을 통해 생생한 자연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체험을 많은 이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회사명인 엘오씨아이(loci)는 라틴어로 장소를 의미하는데, 궁극적으로 좋은 장소를 많이 만드는 조경건축가로 기억되고 싶다.
글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
사진 유청오
조경 설계 총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조경 설계 진행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최상민, 오지훈, 고희선)
조경 디자인 감리 디자인 스튜디오 loci
건축 설계 SoA
식재 공사 태극조경
시설물 공사 미래로
발주 노타이틀(Notitle)
위치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 300-22 일대
면적 6,300m2
완공 2022. 7.
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작은 설계 회사다.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사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 정원,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등 사람과 자연을 잇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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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Gwanghwamun Square
열린 광장과 도시 숲
계획안에 세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당선된 뒤, 8개월간 설계공모안의 지하 광장과 선큰 광장의 규모를 현실적으로 정리했다. 2019년 말 시민 토론회를 거쳐 지상 중심의 ‘공원 같은 광장’으로 계획안을 변경했다.
2021년 공사 중 문화재가 발견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했다. 역사적 의미를 강화하고 다양한 수경 시설을 보완해 현재 모습으로 광화문광장을 개장했다. 광화문광장의 골격은 중앙의 열린 광장과 서측의 도시숲으로 나뉜다. 그리고 내자동 지하차도를 기점으로 북측의 역사광장과 남측의 시민광장으로 구분된다. 중앙의 열린 광장은 2009년에 조성된 광장의 구조를 유지하며 부분적으로 개선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는 역사적 의미를 보완해 승전비와 미디어 게이트를 설치했다. 해치마당스탠드 구간은 18m 폭원의 좁은 기존 구조를 26m로 확장해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녹지대를 조성하고 직립형 느티나무를 식재했다. 램프로 인해 생기는 거대한 삼각형 벽에는 LED 패널을 설치해 다양한 영상을 담았다. 잔디마당은 광화문에 가깝게 북측으로 옮겼다.
광장 서측은 도시에 면한 토지 이용에 따라 수목으로 채워진 5개의 숲과 비워진 3개의 마당으로 계획했다. 세종대로 사거리 입구에 있는 광장숲에는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를 5.4m 간격으로 촘촘히 식재해 풍성한 녹음을 만들었다. 이 숲은 소규모 상점들을 지나 현대해상 건물까지 이어진다. 서측 도심에서 이어지는 세종대로23길과 지하철 5호선으로 이어지는 해치마당스탠드가 만나는 지점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다. 지하고가 최소 5m를 넘는 정자목들을 심고 바닥에는 조각보를 콘셉트 삼아 여러 지역의 돌을 깔았다.
수형이 좋은 현장 내 은행나무 가로수 2주를 이식하고 11주의 신규 수목을 식재했다. 팽나무 7주 수형의 편차가 커 식재 위치와 수목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앞에는 문화 쉼터를 계획했다. 설계공모 때부터 제시했던 참나무 숲은 도심에서 수목이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 다행히 시공 과정에서 어느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적응 기간을 거친 훈련목들을 발견해 갈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로 숲을 만들 수 있었다. 세종로공원 전면부에는 사계정원을 조성했다. 수십 여 종을 심는 식재 계획으로 인해 적합한 수목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찾은 수목의 수형이 예상과 달라 배식 도면이 여러 번 변경됐다. 시민광장 끝자락에 위치한 시간의정원에는 강릉에서 찾은 소나무 14주를 식재했다. 숲 아래 진달래를 심었는데, 어렸을 적 매일 뛰어놀던 뒷산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타벅스 앞 한글바닥분수와 세종문화회관 2곳의 계단 앞을 비워 두었다.
깊이와 표면
깊은 표면(deep surface)을 연상시키는 지층의 흔적을 담은 거대한 선큰 광장은 사라졌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유구의 흔적을 노출한 시간의정원은 설계공모안의 개념인 ‘깊은 표면’을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광장보다 2.5m 아래에서 발견된 유구와 1.4m 단차로 조성된 벽천과 선큰 광장, 광장 레벨에 조성된 소나무정원은 물과 숲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모두 담고 있다. 유구의 흔적을 발아래 두고 벽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화문과 백악산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의미 있는 장소다. 촛불 문양처럼 보여 말이 많았던 돌 포장은 설계공모안대로 구현됐다. 신기하게도 남측 방향에서 볼 때 버너로 마감된 돌이 빛을 반사시켜 중앙의 물방울 패턴이 주변보다 밝아 보인다. 반대로 북측 방향에서 보면 중앙의 물방울 패턴이 더 짙게 보인다. 비가 오면 돌 입자에 따라 문양이 더 짙어지는 것이 있고 옅어지는 것도 있다. 빛과 날씨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는 ‘반응하는 표면’이다.
물길과 수공간
2021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 광장 내 물의 요소가 많아졌다. 2009년에 조성된 물길과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육조거리 배수로를 모티브 삼아 광장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물길을 조성했다. 조선 건국 1392년부터 2022년 개장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물길 바닥에 새겼고, 이 물길을 따라 여러 수공간을 배치했다. 주변을 비추는 수반과 단차를 활용한 벽천, 사헌부 터에서 발견된 우물에서 영감을 받은 바닥우물, 검은색 돌 표면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샘물탁자, 광복 이후 개장까지 77년의 성장을 상징하는 터널분수, 세계적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로고를 닮은 한글분수, 이순신 장군 동상 분수를 북측 광장에서부터 순서대로 배치했다. 물은 열린 광장과 도시숲 사이에 위치하며 두 개의 공간을 매개하는 요소로 활용됐다. 또한 한여름 복사열로 데워진 광장의 표면을 어느 정도 식혀주는 기능을 한다. 물로 인해 광장의 풍경이 풍요로워졌고 시민들의 이용 방식은 다채로워졌다.
숨겨진 한글
역사적 의미를 광장에 담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며 즐길거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때론 흥미롭고 재치 있는 방식이 즐거움과 더 많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설치미술가 허산의 작품과 동화책 ‘월리를 찾아라’에서 영감을 받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 28자를 광장 곳곳에 숨겨두었다. 어릴 적 즐겼던 보물찾기처럼, 광장에서 숨겨진 글자를 찾는 재미와 그 속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숨긴 한글 낱자는 지금은 쓰지 않는 글자―ㅿ(반시옷), ㆆ(여린히읏), ㆁ(옛이응), ㆍ(아래아)―를 포함한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다. 모음과 자음의 배치 방식을 달리했다. 모음의 경우, ㅏ와 ㅓ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이처럼 헷갈릴 수 있는 모음은 쌍으로 붙여 시설물에 배치했다. ㅕ와 ㅑ는 문화쉼터의 모두의 식탁 양끝에 배치했다. 여야 테이블이라고도 불리는데, 여와 야의 대표가 이 공간에서 화합하며 간단한 식사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이 글자들을 놓았다. 자음의 경우, 대부분의 모양이 특색 있다. 또한 낱말을 쉽게 유추할 수 있어 의미를 담은 배치가 많다. 해치마당스탠드에 새긴 ㄱ, ㅎ, ㅁ은 광화문을 의미하고, 소셜스텝 앞에 새긴 ㅈ, ㅇ, ㅅ은 세종대왕 시대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 인물을 의미한다. 밤에만 찾을 수 있게 조명으로 만든 글자도 있다.
다양한 의자
완성된 광장에서 시민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가며 휴게 시설을 디자인했다. 공간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시설을 계획했다.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 위에 목재 패널을 얹은 와이드벤치는 평상과 각도가 다른 등받이를 결합해 디자인했다.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거나 누워서 수목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보며 ‘하늘멍’을 즐길 수 있다. 해치마당스탠드 상단에 위치한 바 테이블은 84cm 높이의 철제 구조물 위에 폭원 20cm, 두께 2cm의 기다란 마천석돌을 얹어 완성했다. 음료 한 잔을 올려놓고 기대어 미디어월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물길을 따라 놓은 ㄱ자 모양의 통석 벤치에서 더운 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광장을 즐길 수 있다. 이동식 테이블과 의자는 많은 걱정과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설득해 지켜냈다. 개장 초기에는 최소 수량만 배치했는데, 우려와 달리 유실과 훼손이 없어 수량을 늘렸다. 많은 시민이 자유롭게 위치를 옮겨가며 사용하고 있다.
글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사업 책임 CA조경기술사사무소(진양교)
설계 총괄 및 감리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설계 CA조경기술사사무소(강인화, 김재환, 김수린, 엄성현, 이상민, 이지현, 신원재, 김병철, 오혜지)+유신+선인터라인건축사사무소+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현상 참여)
시공 신성종합조경+대정골프엔지니어링+보훈종합건설+스마일그룹
관목, 지피 식재 공사 제이제이 가든(JJ garden)+하승호
발주 서울시 도시재생실 광화문광장추진단
위치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67, 1-68 광화문광장 일대
면적 약 40,300m2(당초 약 18,840m2)
완공 2022. 8.
사진 서울시 제공, 이성우, 조용준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www.cadesig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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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디자인 노트: 세 마디 말
정치와 공공 프로젝트 사이의 역학 관계
3년 반 동안 광화문광장(이하 광장)의 설계 내용이 수차례 수정됐고,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순탄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보고 자료와 회의록을 참고해야만 그 과정을 명확하게 되짚을 수 있다. 그런데 광장 준공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몇몇 말들은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상을 중심으로 한 광장이 필요한 거야, 진양교
공모전 제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리뷰 시간을 가졌다. 설계 전략 중 하나로 지상 광장 아래 거대한 지하 광장을 계획했다. 레벨이 다른 이두 개의 광장을 매개하기 위한 네 개의 선큰 광장을 제시했다. 깊은 표면(deep surface)이라는 개념을 형상화하고,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에도 일상적인 광장의 활용을 위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진양교 대표(CA조경기술사사무소, 이하 CA조경)는 이 전략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지하 광장이 과도하게 넓고 선큰 광장 또한 너무 크다는 지적이었다. 어바니즘 관점으로 볼 때, 도시의 활력을 위해 지상 광장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선 이후 광화문광장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제기됐다. 2019년 초반 실시설계를 진행하며 지하 광장은 해치마당과 세종이야기 지하 공간을 연결하는 정도의 규모로 축소했다. 선큰 광장은 서측 세종대로23길과 만나는 지점과 북측 세종로공원 앞의 두 개 구역으로 축소했다. 당선안의 1/3 정도 규모다. 당선안의 개념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도시에 면한 지상 광장의 크기와 공간의 활용도도 높였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와의 마찰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설계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시민 토론회가 열렸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한 끝에 비용을 줄인 지상 위주의 ‘공원 같은 광장’으로 방향이 변경되었다. 진양교 대표의 통찰력과 합리적인 선택들이 계획안에 스며들며 새로운 골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와 팀원들은 설계공모 때 제시한 몇 가지 개념과 아이디어를 새로운 틀 속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했다.
계획안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 기간을 거쳐 오세훈 서울시장 때 정리되었는데, 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다양한 수경 시설과 한글 테마 관련 시설, 문화재 발굴에 따른 재현과 노출 시설이 새로 추가된 내용이다. 두 개 안 모두 열린 광장과 숲으로 이루어진 비슷한 골격을 가지고 있지만, 박원순 시장 때 계획안은 수많은 절차와 서로 다른 의견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에 논쟁이 될 만한 내용들이 사라지면서 단조롭게 정리되었다. 그에 반해 오세훈 시장 때 계획안은 설계사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시설이 담기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상 광장의 설계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번에는 조경가가 당선 되었습니다, 김영준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언론 발표 작업을 위해 김재환 소장(CA조경)과 서울시로 향했다. 김영준 총괄건축가를 먼저 만나 덕담을 나눈 뒤 시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박원순 시장이 들어오며 김영준에게 “이번에도 저 힘들게 하시지 않을 거죠?”라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하자, 김영준이 “이번에는 조경가가 당선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마 서울로 7017로 많이 힘들어서 그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내 추측이 맞든 틀리든 김영준의 답변은 매우 의외였다. 마치 박원순 시장에게 이번에는 조경가가 당선되었으니 저번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을 주고 싶은 모양새였다.
문득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하이라인의 성공이 조경가가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 JCFO라는 회사 이름 대신 조경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에 놀랐었다.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하고 실력을 쌓아온 전문가의 영역은 꽤나 견고하다. 광장은 도시계획가, 건축가, 조경가 등 공간을 다루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설계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 자연을 들여와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 조경가가 오픈스페이스를 다뤄야 하는지, 현대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자연이 더 이상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필수 요소인지, 3년 반의 설계 과정 속에서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설계가의 콘셉트 그게 문제예요, 오세훈
광장 개장을 앞둔 7월 말, 오세훈 시장이 현장 점검을 위해 광장을 방문했다. 도시기반시설본부, 광화문광장추진단, 감리단, 현장 소장 등 30여명의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오세훈 시장을 뒤따라 공사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현장 감리를 하고 있던 나와 강인화 팀장(CA조경)은 인근 카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합류했다. 개장을 일주일 앞두고도 여전히 공사할 곳이 많아 오세훈 시장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긴장감이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의정원에 도달하자 오세훈 시장은 꽤 만족한 표정으로 소나무가 식재된 풍경을 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광장의 빈 공간에 이러한 소나무가 왜 식재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도시 숲 콘셉트를 설명하며 식재된 수목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답이 끝나기 무섭게 오세훈 시장이 “설계가의 콘셉트 그게 문제”라며 내 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그의 반응에 나는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의 좌뇌는 다시 한번 설계 과정을 되새기고 있었고, 우뇌는 소나무로 더욱 채워진 광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광장 내 숲은 설계공모 때부터 유지해온 전략이었다.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제안한 동궐도의 풍경은 숲을 계획하는 데 큰 영감이 되었다. 그래서 백악산과 경복궁에 심긴 수종을 비롯해 다양한 수목을 심으려 노력했다. 단일 수종, 몇 개의 수종으로 숲을 만드는 전략은 설계 초기부터 배제했었다. 실시설계가 여러 번 바뀌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유지했다. 단지 수종이 자문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변경됐을 뿐이다.
소나무 숲은 설계 초기 내자동 지하차도 북측으로 명명된 역사광장 주변으로 조성했다. 너른 잔디마당에 꽤 많은 소나무를 군식하고 사이사이에 화강석으로 휴식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위원회의 역사전문위원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조선시대의 육조거리와 관아 터에는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소나무 숲을 만들면 과거 풍경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따라 역사광장에는 키 큰 나무를 심지 않았다. 결국 역사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시간의정원에 소나무 11주를 군식했다.
좁은 지면으로 인해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박원순 시장 체제와 오세훈 시장 체제에서 이루어진 계획안의 변경 과정 비교는 정치와 공공 프로젝트 사이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또한 국제 설계공모의 당선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절차와 무분별한 의견 수용, 행정 안일 위주의 결정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워커힐 더글라스 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이스탄불 하천 회복 프로젝트’, ‘종로구 통합청사 설계공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개인 자격으로 즉흥적인 기획,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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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비평: 설계가의 역사학
지난 『환경과조경』 지면(2019년 3월호)에서 광장의 정치성에 관해서는 충분히 논의했다. 여러 논객이 말했듯이 광화문광장 디자인을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논의하는 것은 우리 조경가에게는 소모적이다. 광장의 탄생이, 그리고 그간 광화문광장의 쓰임새와 그에 따라 만들어진 상징이 결코 무정치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광장의 정치성에 관한 논조가 민주주의의 본질과 광장의 기능의 관계와 같은 생산적인 내용이 아니라 특정 정파의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 논리에 봉헌하는 메타포로 사용되는 현실이 아쉽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진단하듯,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표한다고 여겨진 대의제 시스템의 위기다. 그러므로 광장은 그러한 특정 정치 집단이나 권력의 소유물로서가 아니라 그간 소외되어온 수많은 주체의 목소리가 울릴 수 있는 무대로 기능하면 된다.
설계가의 역사학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막 50년을 지나고 있는 한국 조경의 궤적에서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의 공간화 방식으로 중요하게 논의할 만한 작품이다. 역사가가 유물, 유적, 문화재를 사료로 간주하고 원형의 보존에 관심을 가진다면, 설계가는 그 사료의 가치를 고려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안을 탐구한다. 설계가는 제도의 한계에 봉착하더라도 잔존하는 유적, 이제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했던 장소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에 불러들인다. 어느 부지에나 역사는 누적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역사가 중심 문제로 제기되는 공모전의 출품작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설계가가 역사를 공간화하는 여러 방식 중에는 현실 제도 아래에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는 우리가 역사를 새롭게 경험하고 대면하는 대안적 방법을 제공한다. 경직된 현실 제도에 균열을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오히려 설계가의 상상적 역사학에 있다고 믿으며,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 즐겁다.
설계가가 역사학을 풀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부지에 잔존하는 구조물이나 지층을 비롯해 역사를 간직한 물질을 이용해 방문객이 과거를 체험하게 한다. 잔존하는 물질이 역사적 가치가 높으면 원상태로 남기고,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하면 창의적으로 변형한다. 적당한 물질이 없을 경우 새로운 구조물과 시설을 만들어 장소가 지닌 상징성이나 대중이 지닌 집합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역사를 공간에 물질화할 때 과거의 형상을 그대로 빌려오기도 하며, 단순한 형태로 추상화하거나 재해석하기도 한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역사적 상징, 옛 조경과 건축 설계의 원리나 구조를 빌려 부지의 얼개를 짜고 생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한국의 정체성 공간화하기
조경가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정체성을 공간에 구현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한국성을 늘 과거형으로만 다뤘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조경가는 그것을 역사에서 끄집어내고자 했다.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어떤 본질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변화한다.1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선 한국 조경에서 한국성의 내용과 이를 공간에 구축하는 방법도 부단히 달라졌다.
파리공원(1987)은 예술 작품으로 평가되는 한국 조경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한국성을 공간에 투영한 대표적인 작업이다. 대부분의 조경가는 태극무늬를 변형해 얻는 조형적 공간 구성과 패턴이 인상적이라고 상찬했지만, 전통 문양과 전통 정원 요소의 직설적 모방에 대해서는 못마땅하다는 시선이 제기되기도 했다.2
여의도공원(1999)은 조경 설계에서 전통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1996) 출품작들은 대체로 전통 사상을 구조와 기능으로 변역하지 않고 그 어휘를 공간을 단순히 분할하는 도구로 차용했다. 장소의 성격을 고려한 재해석 없이 전통 조경 시설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3 이후 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실험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물론 희원(1997)처럼 전통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좋은 작품은 만들어졌다). 전통 시설물의 외피를 두른 시설이 양산되어 전국 곳곳에 심겨졌지만 정작 우리의 옛 역사를 현대적 어휘로 번역하는 실험은 부족했다. 도리어 전통 요소를 뒤처진 것으로 치부하고터부시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경가는 전통에 대해 우상파괴자(iconoclast)가 되는 대신 반-전통주의(anti-traditionalism)를 자처한 것 같다.
밀레니엄을 전후로 조경가들은 부지의 먼 역사가 아닌 근대 이후의 역사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학계는 지역성과 장소성,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탐구했고, 실무에서는 가동을 멈춘 산업 경관을 오픈스페이스로 전환하는 설계가 많아졌다. 폐허의 거친 물성은 조경가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러한 근현대 산업 역사의 영웅화에 눌려 부지의 오랜 역사는 묻혔다. 현대 조경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선유도공원(2002)에서 조선시대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선유정이 공원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전통을 직설적으로 흉내 낸 전통 시설물이라는 이유로 비평 대상이 되기도 했다.4
시간은 흘러 전통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진화했다. 대중의 취향이 변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스스럼없이 한복을 입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경 설계에서 전통을 다루는 새로운 감수성이 출현했다. 역설적이게도 외부인의 시선을 경유하여 전통의 디자인 요소로서의 가능성이 실험됐다. 외국인의 관점을 오리엔탈리스트의 약탈적 시선으로 낙인찍는 대신 그들에게 없는 한국만의 특성을 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일 자신감이 우리에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 당선작 ‘치유의 공원(Healing: The Future Park)’은 한국의 전통 사상을 관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유로운 형태 생성의 디자인 모티브로 이용했다. 일견 클리셰처럼 다룰 가능성이 농후한 오작교를 새 모양의 장식이 달린 아름다운 교각 구조물로 디자인했고, 다목적 오픈스페이스 역할을 했던 전통 요소인 마당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적재적소에 배치했다.5 삼천리금수강산 모티브는 지형을 만드는 틀이자, 도시 주변에 산재한 계곡을 비롯해 수려한 경승지를 즐겼던 옛 산수 문화의 현대적 복원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그간의 문제는 전통이라는 소재가 뒤쳐진 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를 디자인하는 감각이 새롭지 못했던 것에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2019) 당선작 ‘깊은 표면(Deep Surface)’은 조경가의 역사학이라는 타임라인에서 이 다음에 위치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깊은 표면의 분위기
깊은 표면은 형용 모순적 어휘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지하 도시와 지상을 연결하는 실체적 행위를 연상시키면서도 다소 형이상학적으로도 들리는 오묘한 언어였다. 깊은 표면이 제안한 광장의 분위기는 ‘역사’와 ‘일상’으로 대표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슬며시 밀어내 친근한 조각품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동상이 지배하던 광장의 위엄을 누그러뜨리고, 대신 그곳에 조선시대의 상징적 경관을 복원했다. 깊은 표면의 조감도는 북악산-광화문-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는 축을 강조해 조선시대의 역사성을 강화했다. 북악산을 살짝 비켜 앉힌 광화문의 아름다운 경관, 산세와 추녀선이 그려내는 유려한 하늘선이 막힘없이 드러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장 양측에 도열한 재질과 형태가 불균질한 거대한 건물군의 파사드를 캔버스 삼아 한양의 내사산을 투영해 한국적 경관을 재구성했다. 동궐도와 경기감영도를 비롯한 옛 산수화와 현재 서울의 색감을 제대로 파악해 묘사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이 조감도는 West 8이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 이후 선보인 산수화풍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치유의 공원의 이미지는 공모전 이후 그린 관념적 그림이다. 깊은 표면의 이미지는 더 나아가 도면으로 구현됐다. 북악산과 광화문이라는 실재하는 경관, 내사산이 투영된 미디어 파사드라는 경관에 둘러싸인 나를 상상했다. 근래 유행하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경관 디자인에 활용한 흥미로운 시도로 보였다.6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최정민, “현대 조경에서의 한국성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각주 2. 박준서, “기념성과 실용성의 조화”, 『환경과조경』 2005년 1월호, pp.124~125; 배정한, “한국 조경의 변화와 주요 작품”,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 환경조경발전재단, 2008, pp.246~247.
각주 3. 조경진, “패러노이아: 의미과잉 속의 한국현대조경”, 『Locus 2: 조경과 비평』, 조경문화, 2000, pp.131~147.
각주 4. 배정한, “시간의 정원, 발견의 디자인”,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배정한 조경비평집 1』, 도서출판 조경, 2007, p.62
각주 5. Myeong-Jun Lee, “Transforming Post-industrial Landscapes into Urban Parks: Design Strategies and Theory in Seoul, 1998–present”, Habitat International 91. 2019, pp.1~13.
각주 6. Myeong-Jun Lee, “Ecological Design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2020년, 안성으로 이사와 한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이때다 싶어 원고를 썼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격리 생활에서 벗어나 저 문만 박차고 나가면 바로 광장이겠지 상상하면서 원고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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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비평: 교차하는 표면들의 좌표
광장에 온 사람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영원히 만나지 않을 평행한 선들로 구획된 도로였던 곳에 주어진 선택지는 앞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돌아서 가는 것,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역사적인 변화에 대한 평가는 대개 진보나 퇴행으로 수렴되나, 그것은 상대적인 판단이다. 변화의 방향이 아닌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흔한 정치적 수사도 누군가에게는 그와 반대로 여겨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그 이전에 비해 어떤 종류의 진전 혹은 퇴행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자신이 어느 방향을 보고 서 있는지를 묻는 것일 수 있으나, 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은 광장의 바라보는 시선이 앞과 뒤, 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가 제시한 교차성 이론은 이 같은 다면적 대상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눈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앞서 그는 한 사람에 대한 차별 혹은 우위를 야기하는 사회적 위치가 단일한 범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바 있다. 크렌쇼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인종과 젠더, 계급, 종교, 지역 등 다양한 차원에서 발생하는 소수성과 다수성의 상호 교차 및 중첩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장소에 대해서도 그것을 긍정 또는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위에는 진보 또는 퇴행을 가름하는 복수의 표면들이 서로 맞물리며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 회복과 파괴
월대 복원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이루는 하나의 축을 암시한다. 그것은 경복궁 남측과 접한 역사광장의 조성, 그리고 궁궐의 축에 따라 편측으로 만들어진 시민광장의 배경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1990년대 시작되어 총독부 철거와 광화문 복원을 거쳐 앞으로도 20년 이상 이어질 문화재청의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의 한 단계이자 반세기에 걸친 거대한 흐름의 일환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적어도 당선안을 기준으로 볼 때 그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심사평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당선안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적 축을 강렬히 형성’한 것이었다. 또한 당선안은 북악산으로부터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광장과 주변 건물 옥상으로 연장했으며, 미디어파사드라는 현대 기술을 통해 주변의 도시 경관들을 대신하여 내사산이라는 과거의 풍경을 불러들였다. 여러 계획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투시도는 설계안이 이 장소에 과거의 어떤 시점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모 전반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심사위원장 승효상은 지속적으로 서울이 가진 역사적, 자연적 축의 회복을 강조해왔다. 최근의 사례는 West 8의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당선안일 것이다. 승효상은 여기에서 ‘남산과 세운상가, 종묘와 북악산을 거쳐 백두산으로 흐르는 축의 연결’을 강조했다. 용산공원 당선안의 조감도와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투시도는 주변의 현대적 경관을 의도적으로 희석한 반면 저 멀리 뒤편에 그려진 산수화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그림처럼 보인다.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에 승효상이 민현식과 공동 응모한 작품은 그러한 관점이 드러난 가장 앞선 시기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건축가 정기용은 해당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남산과 관악산을 선으로 이음으로써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을 보여주었다. …… 결과가 발표됐을 때 그래도 조그만 기쁨이 있었는데, 그건 이들의 안이 유일하게 ‘서울’이라는 땅을 커다랗게 가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1
정기용의 말처럼 기울어진 계획안의 삼각형 마당에서 바라본 남측과 북측 투시도는 주변의 풍광을 가리는 양 옆의 건물군 사이로 각각 관악산과 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 광화문역 연결 통로에서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진입하는 경사면, 해치마당에서 바라본 풍경은 승효상과 민현식의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안의 ‘상승하는 삼각형 마당’과 일정 부분 닮아있다. 좌우의 광화문 계단과 미디어월은 광장에 진입하기 전, 주변의 건물군을 시야로부터 은폐하고 오직 광장의 수평면 위로 북악산의 모습만을 남겨둠으로써 잠시나마 과거의 경관을 체험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특정 시점을 도시에 투사하는 경향은 비단 서울뿐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통일 뒤 15년간 통독 베를린의 총괄계획가였던 한스 슈팀만(Hans Stimmann)은 장벽이 가르고 있던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을 나치 이전의 도시 구조로 되살리는 ‘비판적 재건’ 기조 아래 만들고자 했다. 당시 ‘포츠담 광장 국제설계경기 심사’에 참여했던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사퇴 후 일간지에 다음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포츠담 광장) 공모 심사는 나의 건축 활동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이 같은 자멸적 행위가 국제 설계공모라는 구실을 필요로 함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함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광장이 현대 건축의 경연장이 되는 것을 막아낸 한스 슈팀만은 퇴임 후 베를린을 최악과 최고, 모두로부터 구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복원이라 부르는 것은 파괴의 가장 나쁜 수단”이라고 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말이 건물뿐 아니라 도시와 경관에도 해당될 수 있다면, 용산공원과 광화문광장처럼 역사적 아픔을 가진 ‘한 많은 땅’을 치유하는 방법들 가운데 ‘그 사건들 이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재로서 가장 파괴적인 선택 중 하나일 수 있다.
동상: 탈식민과 근대화
해치마당을 등지고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의 존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바라보고 있는 축의 방향과는 전혀 달랐던 동상 건립 당시의 지향점을 증언하고 있다. 당선안은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동상을 그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는 역사마당으로 이전하고 광장 전체를 비워둘 것을 제안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기존의 자리를 고수하길 원했다.
그 동상이 언제부터, 왜 거기에 있어야 했는가를 묻는 것은 과거의 광장, 즉 세종로가 무엇을 표상하는 장소였는가를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반일 정서가 가장 격화됐던 한일협정 이듬해 1966년 광복절이었다. 같은 해 4월과 12월에는 각각 아산 이순신 사당의 성역화 사업과 광화문 복원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되었다. 협정 체결 후 격화됐던 한일협정반대운동은 종료되었으나, 해방 이후 20여 년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반일 감정의 분출은 일본의 문화와 일상생활에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3공화국의 연속된 행적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탈식민국가의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동상의 건립은 근대화를 표상하는 상징거리 경관을 만든 하나의 요소이기도 했다. 당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앞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의 변경된 건립 위치와 공법, 전면의 현대적인 마천루 양식으로 계획된 두 개의 정부종합청사, 세종로의 차도 확폭은 이순신 장군 동상과 기단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동상 제막식 연설에서 박정희는 위대한 조상 충무공의 정신을 본받는 것은 곧 “조국 근대화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앞선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에서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와 열등의식은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라며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극일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반동적인 성격의 정치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때의 이순신장군 동상과 콘크리트 광화문은 민족 정체성과 더불어 극일과 근대화를 표상하는 모뉴먼트로서 과거로 회귀하려는 현재의 광장과 달리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인 서정주는 “콘크리트라면 굳이 광화문을 복원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건 웃음거리 아닌가?”라며 조롱했던 반면, 중건추진위원 중 한 사람인 건축가 정인국은 이를 복원이 아닌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표상하는 최신의 재료와 기술력을 발휘한 하나의 모뉴먼트로 볼 것을 주문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광장과 동상은 서로 뒤집힌 채 등을 맞대고 있는 상태로, 그 간극은 목조로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과 철거된 콘크리트 광화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깊다. 때문에 동상이 공공 미술로서 지니는 의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발전주의 국가의 경제 성장 모델은 시효를 다해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도시를 부강하게 만들어줄 혈관이라 믿었던 도로들은 이제 공원과 보행로에 자리를 내주어 도시의 숨길이 되었다. 중앙청과 그 정문 역할을 했던 콘크리트 광화문은 철거되어 서로 다른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었고, 정부종합청사는 과천, 대전, 세종 등 지방으로 그 부처와 기능들이 분산되었으며, 맞은편 제2정부종합청사가 계획됐던 의정부지는 복원을 앞두고 있다. 민족이라는 정체성 역시 저출생과 인구 절벽이 추동하는 다문화 공동체에서 점차 구심으로서의 힘을 잃어 갈 것이다. GDP와 임금, 구매력에서 한일의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지금 동상이 그렸던 극일과 근대화라는 미래상은 점차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으나, 그럼에도 오늘날 탈식민의 과제는 경복궁 복원이라는 회귀적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동대문과 남대문이 일제의 도시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임진왜란 당시의 왜군 장수의 입성을 기념하려는 목적 때문임을 생각하면, 궁궐의 복원이 곧바로 과거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극일의 표상으로서의 동상과 더불어 탈식민에 대한 강한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중세 도시의 모뉴먼트와 광장, 건축물의 유기적 관계를 예찬한 카밀로 지테(Camillo Sitte)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이전을 비판적 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 동상의 크기와 색채에 적합한 스케일과 배경, 그리고 주변의 다른 모뉴먼트와의 관계에 따라 조각가가 선택했던 기존 위치에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옮겨진 동상은 환경과 고립된 요소로서 동떨어져 총체적 의미를 발현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다비드 상과 반대로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환경이 달라져 오직 홀로 과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서 그는 광장 중앙에 모뉴먼트를 세우지 않고 비워야 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통행에 장애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같은 축선 상의 건물 혹은 그 입구를 시야에서 감추게 되고,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이 가능해짐에 따라 복수의 배경을 갖게 되는 것 또한 모뉴먼트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뿐 아니라 전면에서 광화문을 가로막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배경을 달리하는 세종대왕 동상의 위치는 지테가 지적한 것과 동일한 문제를 지닌다. 이는 공공 미술로서 두 동상의 성패를 결정짓는 지점이자 당선안의 제안대로 동상을 이전해야 했던 이유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정기용, “‘비움’에 대한 근원적 성찰”, 『월간미술』 1999년 9월호.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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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건축, ‘우리의 사적인 광장’, 2019. www.jegong.com/blan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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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진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러 매체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20 ‘사회적 건축: 포스트코로나 젊은건축가 공모’에서 대상을, 2022년 『환경과조경』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도시는 공통재(commons)”라는 믿음으로, 공공 공간의 좀 더 사적인 점유 형식과 공개공지 및 공공 미술 등 사적 영역의 좀 더 공적인 활용 방식을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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캇하레이너 운하
Catharijne Singel
반세기만에 위트레흐트(Utrecht)의 역사적 중심지는 다시 한번 물과 초목으로 완전히 둘러싸이게 됐다. 위트레흐트 구시가지 주변의 운하 복원은 기차역 지역 마스터플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50년 전 10차선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메웠던 운하를 다시 파내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수변을 복원하였다. 대상지는 생태, (수상)레크리에이션, 교통이 정교하게 통합된 녹지와 경사면이다. 자연 친화적인 수변 공간 덕분에 동식물을 위한 더 넓은 장소가 마련되었고, 도시의 녹지가 되살아났다.
역사적 배경
위트레흐트는 로마시대에 세워진 도시다. 수세기 동안 도시는 방어용 성벽과 캇하레이너 운하(Catharijne Singel)로 둘러싸여 있었다. 방어벽은 점차 허물어졌고, 황폐한 상태가 됐다. 조허르J. D. Zocher(1791~1870)가 설계한 공원은 과거의 방어 시설 지역에 대부분 자리를 잡았다.
1958년 캇하레이너 운하는 새로운 순환 도로의 건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 수년 간의 논의 끝에 1969년 주요 간선 교통망을 만들기 위해 운하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이었지만, 현대적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70년대의 다른 도시 개발과 마찬가지로 이 결정은 위트레흐트 도심의 공공 공간에 재앙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자동차 교통이 활발해지면서 차량을 통한 접근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지역 주민들은 방문객과 자동차 교통에만 일방적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보며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운하 복원을 위한 많은 캠페인이 생겨나는 등 친수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계속됐다.
1980년대 후반 위트레흐트의 기차역 인근 지역 개선을 위한 첫 번째 계획이 수립되었다. 2002년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위트레흐트 주민들은 캇하레이너 운하 복원에 대한 찬성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시정부, 주민과 함께 운하 복원을 위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공동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개입의 목표
위트레흐트 중앙역(Utrecht Central Station) 지역 재개발은 네덜란드에서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역사적인 도시와 기차역을 더 강력하게 연결하여 도심의 차량 통행을 현저히 감소시키고,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를 위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 공공 공간의 거주성과 보행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캇하레이너 운하의 마지막 구역 복원이 이뤄졌는데, 이 프로젝트 대상지의 1,100m 정도가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약 40,000m3의 물이 운하로 되돌아왔고, 그 전체 길이는 약 6km에 이른다.
디자인 원칙
캇하레이너 운하의 위치와 인근 조허르(Zocher) 공원의 확장을 고려해 교통의 흐름과 관련된 선택지들을 신중하게 마련했다.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 보행자 동선을 최우선순위에 두었다. 운하를 따라 펼쳐진 광범위한 산책로는 여가와 스포츠 활동에 적합하다. 이용자들은 산책로를 거닐며 장소의 역사, 예술 작품 등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수많은 좌석 공간에 앉아서 쉴 수 있고, 각기 다른 종류의 초목으로 이루어진 녹지, 그리고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도시의 다양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기존 조허르 공원의 평면도와 조망을 기반으로 조허르의 디자인 요소 중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핵심 요소인 수경 시설이 공간에 개방감을 더하고 수면에 비친 경관을 제공한다는 점, 높낮이를 달리하는 여러 식물 군락이 존재한다는 점, 공원에 대칭적 형태의 보행 경로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상록수부터 연중 개화가 풍성하게 이뤄지는 수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종을 식재에 활용했다. 탁 트인 수공간과 거친 초원, 그리고 식물 군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조허르의 스타일에서 수변의 선은 공원의 형체가 의도적으로 반사되어 드러나는 세련된 선이다. 기존에 있던 키 큰 식물과 나무가 물에 반사된 모습은 운하와 공원 사이의 시각적 통일성을 만들어 낸다.
포플러, 플라타너스, 자두나무, 느릅나무 등 다양한 수목은 새로운 공원과 기존의 조허르 공원을 연결한다. 나무를 선택할 때 생물학적 다양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꿀벌과 땅벌을 유인할 수 있도록 단일 수종의 꽃나무를 선정했다.
구운 클링커(옛 라인강 벽돌)와 자갈 같은 재료를 사용해 위트레흐트의 역사적인 도심 내부와의 시각적 연결을 도모했다. 둑 주변에 목재 데크를 설치해 좌석, 무대 등으로 활용하게 했다. 기존의 목재 데크에 하부 구조를 추가하여 레저용 보트뿐 아니라 카누와 노 젓는 배 이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글 OKRA
Landscape Architect OKRA
Engineering Witteveen+Bos
Contractor D. Van Der Steen BV
Client City of Utrecht
Location Catharijne Singel, Utrecht, The Netherlands
Area 4.2ha
Design 2017
Completion 2021
Photograph OKRA, Stijn Poelstra
OKRA는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설계사무소로 조경과 도시, 지역 계획을 주로 하고 있다. 긴장감 있는 디테일과 예술적 감흥이 짙은 콘셉트를 통해, 역사와 문화의 결이 두텁고 인구 밀도가 높은 유럽 도시에서 강렬한 어바니즘을 제시해왔다. 도시에 현존하는 맥락과 미학을 존중하며, 다양한 시간적 리듬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도시의 장소를 디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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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르엘
Banpo LE|EL
대상지는 서울에서도 번잡하기로 유명한 센트럴시티(서울고속버스터미널)와 신반포로를 경계로 두고 있다. 주변은 신축 아파트 단지와 재건축 예정인 낡은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주거 지역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반포 한강공원으로 접근이 용이한 북측은 중심 상업지면서 한강이라는 극적인 자연 녹지와 인접한 아이러니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반포르엘은 모든 주거동이 필로티로 되어 있어 건물로 인해 외부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야외 공간과 반 실내가 반복해서 이어지는 구조다. 비가 오는 날에도 실내에서 바깥의 공기를 느끼고 바라볼 수 있어 단지 전체가 테라스 카페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러한 구조적 측면으로 작은 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고, 평지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공간과 공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각 콘셉트가 있는 공간들이 필로티를 통해 연결되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갤러리, 활동(액티브), 감성(센서리)이라는 세 가지 콘셉트로 길을 나누어 공간을 배치했다.
갤러리 웨이
남측 주출입구에서부터 북측 단지 보행 출입구까지 이어지는 갤러리 웨이는 다채로운 수 경관을 보여준다. 물과 조경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갤러리에서 천천히 소유(溯游)하듯 즐길 수 있다.
주출입구에 설치한 라이트닝폰드는 지하주차장 진출입램프 지붕을 활용한 공간으로, 역보(reversed beam) 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정원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지붕면에 적용한 물줄기를 형상화한 디자인 패턴은 커다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풍경의 진가는 밤에 더욱 드러나는데, 낮 동안 빛을 받아 밤에 은은한 빛을 뿜는 축광석으로 마감되어 진짜 물결이 흐르는 듯한 빛나는 풍경을 선사한다.
단지 중앙의 아쿠아가든은 원형 패턴의 반복과 물줄기는 내뿜는 연못, 분수를 이용해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곡선형의 녹지와 잘 어우러지는 원형의 티하우스는 휴게 공간뿐 아니라 연못 위 폭포의 역할까지 하는 하나의 조형물과 같다. 연못 중앙에는 미술 작품이 있는데, 이는 붓놀림을 형상화한 것으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티하우스의 폭포와 같이 경쾌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작품과 어우러진 휴게 시설물과 녹지를 보면 야외 갤러리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웅장하고 푸른 소나무로 외곽을 둘러싸고 내부 연못 주변으로 붉은색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어 선명하고 밝은 단지 중심 공간의 역할을 하게 했다.
커뮤니티 시설과 연결되는 선큰갤러리는 갤러리의 휴게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 옹벽을 자연스럽게 감싸는 미러폰드의 잔잔한 수면은 선큰 공간의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욱 드러낸다. 폰드 한쪽엔 미술 작품을 두고, 반대편은 키 작은 수목으로 장식해 편안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었다.
단지 북측의 생태연못에는 자연미와 조형미가 어우러지는 루미에가든을 조성했다. 자연의 풍광을 따온 석가산은 다양한 식재와 다층의 수경 시설로 자연 속에 그대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곁에 설치한 티하우스에 앉아 작은 계곡의 풍경과 물소리를 감상하면 생생한 작품을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환경과조경415호(2022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글 곽가나 윤디자인스케이프 부장,
이한결 롯데건설 조경담당 사원
사진 유청오
조경설계 윤디자인스케이프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정한조경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휴게 시설 스페이스톡
위치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74-1
규모 596세대
대지 면적 23,726.56m2
조경 면적 10,404.25m2
완공 20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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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정원박람회
지난 9월 30일부터 7일간 북서울꿈의숲에서 2022 서울정원박람회(이하 서울정원박람회)가 개최됐다. 2015년부터 개최된 서울정원박람회는 올해 7회를 맞았다. 과거 드림랜드가 자리했던 곳에 만들어진 북서울꿈의숲은 강북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이다. 칠폭지, 월영지, 청운답원(잔디광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꿈의숲아트센터와 상상톡톡미술관이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꿈의 숲 그리고 예술의 정원’을 주제로 작가정원, 학생정원, 시민정원, 팝업가든, 시민정원사 원형화단, 푸른수목원 참여정원을 선보였다. 6월 10일부터 7월 7일까지 진행된 작가정원 공모에는 총 47팀이 참가했으며, 1차 심사를 통해 4개 작품이 선정됐다. 작가정원은 상상톡톡미술관 전면에 조성됐다. 9월 26일 현장에서 최종 심사가 이루어졌으며 9월 30일에 열린 개막식에서 순위가 발표됐다. 구영미·박지연의 ‘내 마음의 산책길’이 금상작으로 선정됐다. 내 마음의 산책길은 햇살과 바람, 식물이 만든 고유한 장면에 몰두해 자연과 밀도 있게 만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는 정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9년 애정을 갖고 만든 북서울꿈의숲 곳곳에 조성된 정원을 보니 처음 공원이 생겼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도심 속 녹지 공간을 늘리기 위해 도시계획 차원의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심 속 녹색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서울로 바뀌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정원박람회를 통해 조성된 작가정원, 학생정원, 시민정원은 행사 종료 후에도 존치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사진 유청오 디자인 팽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