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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중앙공원
    · 위치 : 남동구(간석1,4동, 구월3동), 남구(관교동) 일원· 전체면적 : 357,000㎡(국·공유지 309,000㎡, 사유지 48,000㎡)· 조성기간 : 1988 ∼ 2004(17년간) 인천중앙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간석동, 구월동이 지금과 같이 인천의 중심 시가지가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옛날에 간석동은 인천부(간석동, 구월동, 십정동을 관할) 주안면의 면 소재지였으며, 파발이 머물던 주안역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경인철도가 개설되면서, 역사가 간석동에서 충훈리(忠勳里)로 이전을 하였고, 이 주안역으로 인해 충훈리의 이름이 현재의 주안동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니 실제 주안이라는 이름은 간석동과 구월동을 두고 이르던 말이고, 현재는 옛 충훈리가 주안동이라 잘못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인천중앙공원은 직선 도로를 양쪽으로 끼고 약 4.5km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1988년부터 공원화가 추진되어 왔으나 아직 전체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총 9개 지구로 나뉘어 테마별로 공원화가 추진되어 왔으며, 현재는 7개 지구의 공원을 마무리 하였고, 나머지 1, 2지구는 기존의 무허가 건물들의 철거와 보상을 추진 중에 있다. 총 면적 357,000㎡ 가운데 271,000㎡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약 76% 정도의 조성율을 보이고 있다.도로와 함께 길게 뻗은 공원의 주변에는 인천시청,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각종 은행과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인천의 신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던 곳이 인천의 중심시가지로 발돋음 한 것이다. 허름한 건물들을 허물고 공원을 조성하는 장기적인 인천시의 노력으로 도시의 경관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으며, 시민들에게 녹색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연인들의 주요 데이트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요즘은 인라이너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소다. 또한 북측의 만월산과 남측의 문학산을 이어주는 녹지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녹지조성지역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인천중앙공원의 여러 지구 둥에서 비교적 최근인 2000년, 2002년에 준공을 마친 3, 4, 5 지구를 둘러보았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10돌 맞은 여름조경학교
    (사)한국조경학회(회장 임승빈)가 여름조경학교를 개최해 온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여름조경학교는 졸업을 앞둔 조경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10년 전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행사의 규모와 내용적인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상당히 확장된 영역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 예술, 환경, 설계이론, 미학, 조경비평 등의 다양해진 주제의 특강이 이루어지며, 스튜디오의 운영으로 참가 학생들 모두가 직접 설계 프로젝트도 수행하게 된다. 건축, 도시 등 타 분야의 전문가, 조경분야의 유명한 학자와 능력있는 설계사무소 소장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하여 질 높은 교육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조경업의 현실에 대해 서로 다른 학교, 다른 회사, 다른 직위의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나눌 수 있고, 각 설계사무소의 특징을 미리 탐색할 수 있어 취업을 결정하는데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같은 졸업 기수 간의 만남과 정보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회를 거듭할수록 조경계의 전국적인 정보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올해도 특강, 스튜디오 강좌, 투어 등 다채로운 교육이 진행되어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교장을 맡았던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는 "도시인프라와 도시경관이라는 주제를 통해 흔히 조경의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도시인프라를 도시경관의 관점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조경과 도시인프라의 접점을 찾아가고자 했다"며 "지금까지 다른 분야의 영역으로 알았던 것을 조경의 시각으로 다시 보고, 조경의 공간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것이 올해 여름조경학교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매년 참신한 주제설정과 알찬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이 행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다. 그러나 설계·계획분야로 한정된 교육 프로그램은 아쉬운 점이다. 물론 현재 조경학회의 인력과 재원으로는 시공분야의 교육을 진행하기가 매우 힘든 점이 있으나, 장기적으로 시공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이 제시되고, 점차 실천이 구체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름조경학교를 준비·운영하는 체제가 안정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조경학회 내에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서 이를 총괄하는 교장에게 역할과 책임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은 매년 기복이 심하지 않은 교육의 질을 확보하기 힘든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여름조경학교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좀더 많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조경인들의 창의성이 만발할 수 있는 조경인의 축제로서, 또한 새것에 민감할 줄 아는 조경학의 역동적인 수원지로서 도약해 나가길 바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몽골·극동러시아 기행 블라디보스톡(연해주)애서 쓴 편지(1)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하늘공원의 생태학습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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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경관계획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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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의 공간인지능력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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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을 날려버린 서초 IC 분수대
    · 공사발주처 : 서초구청 공원녹지과 · 공사기간 : 2002 12. 9 ∼ 2003. 7. 15 · 분수 설계 및 설비 : (주)신성건설 / 동서코퍼레이션(주) · 전기공사 : 경인전력공사 · 조명 : (주)샘라이팅 · 사업비 : 8억 7천만(분수 : 6억, 전기 2억 7천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그래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 그런 곳은 지저분하게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거나 공사자재들이 어지럽게 적재되어 있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지자체 이후 그런 장소들은 꾸준히 미화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대부분이 녹색의 옷을 입었다. 예전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관리도 매우 잘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민들의 눈은 단순한 녹색에 지치기 시작한 듯 하다. 낡은 곳을 단순히 한가지로만 색칠을 한다면 그곳은 오래지 않아 다시 낡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설계가가 마법을 부려 의미 충만한 장소성이 자리잡거나, 생태적으로 매우 건강한 자연이 꿈틀대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녹색만으로는 부족했던 몇%를 고민해 보자. 서울의 관문인 경부고속도로와 남부순환 도로가 교차하는 서초 I.C 녹지대에 7월말 경 분수대가 하나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지난 7월 24일 서초구청장, 초청시인, 그리고 지역의 주민들이 모여 준공 기념행사를 가졌다. 녹지대 위에 비교적 규모있는 분수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람들의 눈이 좀더 다른 무언가를 간절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위야 물러가라 이곳은 공사 전에는 단순 녹지대였으며,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 식재되어 있던 이팝나무 12주를 비롯하여 관목 등이 분수대의 주변으로 이식되었다. 공사 후에는 분수를 가동하기 위해 모터펌프 5대가 돌며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분수를 위해 지하수가 새로 개발되기도 했다. 최고 높이 30m나 되는 분사 노즐이 4개가 박혀있으며, 15m가 20개, 1.5m가 32개가 설치되어 있어 총 106개의 분사노즐이 하늘 높이 물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1개소당 7개씩 총 700개의 안개노즐도 분수의 환상적인 연출을 돕고 있다. 분수대 주변으로 동선은 있으나, 사방에 도로가 포위하고 있는 위치적 특성 때문에 사람의 접근성이 떨어져서인지 휴게시설물은 놓여있지 않다. 차를 타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분수를 향해 보내는 미소가 이번 공사의 목적이 가로 경관개선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저녁이 되면 129개의 수중등과 4개의 투광등의 도움을 받아 화려한 야경을 선사한다. 이곳을 지나쳐 서울을 방문하거나 떠나는 사람들은 야간 조명과 분수의 절묘한 조화를 감상하며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오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8시부터 9시까지 하루 세차례 물을 뿜어대고 있으며, 일년 중에는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가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온통 녹색만으로 바닥을 칠한 듯한 녹지대는 이제 재미가 없다. 우량한 나무들이 새들과 노래를 부르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간을 만들거나, 비록 좁은 공간이라도 가능한 한 다이내믹한 경관을 만들기 위해 몇%만 더 관심과 노력을 지속해 가길 바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인천광역시 연수구 주제공원조성 설계 현상공모 당선작
    송도공원 솔안공원
  • 성남시 은행 수목관찰원
    · 위치 : 중원구 은행동 1,932번지 일원· 면적 : 34,760㎡(10,515평)· 조경설계 : 1·2차 - 오렌지엔지니어링(주), 3차 - 동일기술공사(주)· 시공 : 1·2차 - (주)영진토건, 3차 - (주)우신건설· 기술자문 : 한택식물원 신용모 이사· 사업기간 : 2001년 3월∼2003년 7월 지난 2001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는 작은 수목관찰원이 들어섰다. 당초 양묘장 부지로 활용도가 떨어지던 땅에 다양한 수목을 식재하여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었다. 인근은 주택밀집지역이고, 당시 휴식공간이 부족했기에 이곳은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그리고 2002년. 바로 옆에 위치하던 1만톤 규모의 배수지가 용도 폐기되자 수목관찰원을 확장, 조성하게 되었다. 이 때 배수지 한곳은 벽체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못을 조성하였고 나머지 배수지 한곳은 콘크리트 벽체 일부와 상수도관 10여미터를 노출, 존치시겨 방문객들이 배수지의 상징물로 알 수 있도록 조성했다.계속된 수목원 확장으로 올해 초에는 무단 농작물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 시유지에 관내 공공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지장수목을 이식하여 중국 단풍, 칠엽수, 소사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을 조성하게 되었다. 출발은 작은 수목관찰원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춘 그럴듯한 수목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덩굴식물원에는 문주 형태의 시설물을 설치하여 등나무, 능소화, 인동덩굴, 으름, 다래, 등 10여종의 덩굴식물을 심었고, 연못 주변에 위치한 향기원에는 우리의 산책하며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산초나무, 정향나무, 생강나무, 구상나무 등과 향기가 백리까지 간다는 백리향, 인동, 꽃향유, 배초향 등 10여종의 식물을 심었다.연못 아래 길을 따라 조성된 관목원에는 4월에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피우는 팥꽃나무를 시작으로 노랑병아리꽃나무, 분꽃나무, 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참조팝나무, 댕강나무와 가을 의 붉고 탐스러운 열매를 자랑하는 백당나무, 가막살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수목원의 정상부에 위치한 수생식물원에는 정화능력이 강한 옥잠화, 노랑어리연꽃, 부들, 고랭이, 속새 등 다양한 수변, 수생 식물이 심겨져 소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이외에도 자그마한 주제원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약용식물원, 미나리아제비원, 철쭉원, 원추리원, 기린초원과 요즘의 어린이들은 자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는 무, 배추, 가지, 파, 매밀 등이 심겨진 채소원과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등이 심겨진 유실수원 등이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습니다
    "어렵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큰 조직에 있다가 다소 늦게 독립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겼다. 어떤 분은 "몇년 더 한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하고, 어떤 분은 "인생 내리막길에 웬 대형사고냐?"고 농을 던지기도 하셨지만, 나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일 뿐이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또 여성이라는 것도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내가 설계사무실을 시작한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일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꿈을 찾고 싶어서이다. 아직 꿈은 찾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동안 너무 안주하며 살아 온 내 삶에 대해 더 이상 늦기 전에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시작하였고, 아직은 초기라 어려운 일이 많지만 난 이 생활이 즐겁다. "인생은 운칠기삼" - 조경을 시작하게 된 계기근래 여성들은 많은 교육을 받아 자식들에게 조언을 넘어 자식의 전공선택, 직업, 결혼 등 인생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내 어머니께서는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셨고, 사회경험도 없는 전형적인 주부였다.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어떤 일을 조언할 만큼 식견은 없었고, 법대를 가면 법관이, 상대를 가면 대기업의 (지금으로 말하면) GEO, 공대를 가면 최소한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사고를 지닌 분이셨으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강요할 만큼 강한 성품을 지닌 분은 아니셨다.더욱이 딸인 나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안 했던 분이다. 그저 한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 그것도 장남이 잘되어야 한다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고를 가진 보통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나의 전공 선택 과정은 매우 자유로웠다.대학과 학과 선택은 나 혼자의 몫이었는데, 처음에 조경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 미술에 흥미가 있어서 였다. 조경학을 하면 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잘 모르고 선택하긴 했지만 비교적 내게 잘 맞는 것을 보면 시작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 설계가의 꿈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구조적인 문제, 예산의 문제로 인해 내 의지대로 일을 해 나갈 수 가 없었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없었던 시기에는 발주자도 조경에 대해 잘 모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어설프긴 했지만 내 의도대로 설계를 한다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는 경험과 철학이 부재하여 부끄러운 설계만 한 듯 하다.지금은 발주자, 관련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니, 어떤 경우에는 초기 의도와 달리 정체성도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마무리 지어지기도 하여 허탈감, 자괴감 등으로 마음이 얼룩지고 아쉬움만 남게된다. 설계자, 발주자, 시공업자 모두가 자그마한 일이라도 혼연일체가 되어 마치 자식을 키우듯 정성을 다하는 팀웍으로 일을 하였으면 한다. 일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의미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일을 했으면 하지만 아직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그러나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힘들었던 시간이 곧 즐거운 시간“-즐거웠던 시간일을 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이다. 그 때는 마스터플랜을 잡는데도 조경하는 사람들이 배제된 시기였다.현상공모가 늘 그러하듯 마지막 며칠 동안은 조막손도 아쉬운 때인데, 마침 내가 조막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밤새며 즐겁게 일을 하고 새벽 5시에 사무실을 나오는데,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정경 - 약간 청회색의 하늘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건물들, 신선한 공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환경미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 에 대한 기억은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요즘도 가끔 새벽녘에 귀가할 때면 20년전 하고는 많이 변한 환경이지만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잔잔한 내 가슴속에 퍼지는 듯 하다.힘들었던 시간은 곧 즐거운 시간과 연결된다. 마치 바람이 많이 들어간 공이 탄력을 받듯 어려움이 클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더 크다. "사람과의 관계" - 힘들었던 시간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람문제로 일을 겪으면 한 동안 의기소침하여 위축도 되고 가슴도 아프지만 난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조경설계는 시공결과가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설계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도면은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수단이다. 설계자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어야 한다.우리의 환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환경에 적합한 설계 및 시공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은 10만불도 안되는 사회에서 국민소득 2, 3만불 되는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공공공간을 대하는 의식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토, 우리 국민들의 정서, 우리들의 경제력, 공공공간이라는 특성상의 행정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국의 좋은 것이 우리에게도 좋다는 등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이런 모든 상황 - 예산, 시공성, 공간 이용자의 권리, 행정력 등 - 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만을 담는 단순함을 지향했고 그렇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설계자질 운운하며 매도할 때는 정말 맥이 빠지고 힘들었다. "긍지를 갖자. 그리고 심지 깊고 긴 안목으로..." - 조경인이 품었으면 하는 꿈들장안평 골동품상가에 가보면 같은 반다지도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반다지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이 좋은 자재로 제작해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어떤 것은 이름 없는 목수가 흔한 송판으로 제작해 불과 몇 십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당대의 장인만이 역사의 주인공인가? 난 송판으로 만든 반다지에서 따뜻한 삶의 숨결을 느낀다.모두 최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인데 우리 모두 긍지를 가지고 일하자. 같은 어린이놀이터라도 입지가 다르고, 이용자가 다르다.심지어 인접부지에 있는 같은 성격의 공간을 설계한다 해도 시점이 다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직업은 얼마나 신나는 직업인가?대학에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능력, 급여, 여타 이유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글이라도 쓰게 된 것은 우직하게 이 일을 오래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경업계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시장규모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면서 발생된 것이 인력문제이다. 특히 IMF때 기술자를 육성하지 않아 현재는 경력자가 부족한 것 같다. 나 역시 경력자 한 사람이 5개월만에 그만두면서 회사 설립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3∼5년 후면 인력문제는 지금보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현재의 자그마한 이익에 신경 쓰지 말고 좀 크게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인생에서도 설계에서도...... "여성이기 전에 직장인" - 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여성으로서 힘들었던 일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다.일을 시작한지 2년쯤 되었을 때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국민관광지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하루는 출근을 하니 P. M이 공무원과 예산검토를 위해 지방을 가야한다고 해서 급하게 출장을 갔다. 당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올 생각은 않고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관방 하나를 빌렸는데, 신입과 다름없었기에 말도 못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남자 십 여명에 여자는 혼자서 "혼숙"을 한 셈이다.여러가지로 불편하여 앉아서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아 일어나니 한 사람이 다리 한 쪽을 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상의는 벗고 팬티만 입고 자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밤새 일을 하다 엉켜서 자는 것을 보곤 웃음이 나왔다.아마도 그 분은 나를 여자로 보기 전에 같이 일을 하는 동료로 생각해 주었던 것 같고, 그런 경험도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인생은 혼자서 헤쳐 가는 것“-여성소장으로서의 어려움여성소장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라고 하면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양성평등이 대부분 보장되어 있으나 사회나 가정에서의 의식은 여성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육아문제는 육체적인 문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번민하게 할 때가 많다.설계업계에서 질 높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육아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여성들에게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조경을 하는 여성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무엇을 급하게 바꾸려하지 말자고.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고 10년 후면 또 변할 것이니까 조급하게도 느긋하게도 생각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자고.남자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마시고 헛소리도 해가면서 푼다고 하는데, 직장을 마치고 나면 나에겐 또 다른 책임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보니 직원들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인생은 혼자서 헤쳐가야 하는 것이고 술이라는 항생제가 아닌 스스로의 자기조절과 극복을 통해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강한 치료법이다.이제는 성에 의한 구분의 시대는 지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소장이라서 힘들지 소장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아니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안 영 애 Ahn, Young Ae안스디자인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