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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과 예술의 섬,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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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기 <환경과조경> 통신원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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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환경과 공공미술의 경계에서 - [3] 미술의 영원한 오브제 ; 自然
    재현이 지나치면 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표현이 지나치면 공허함이 남는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로부터 2004년, 현대미술의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과 ...ism에도 불구하고 미술의 역사를 일축 하자면 결국 미적 행위의 대상인 自然에 대한 ‘재현(emersion)’과 ‘표현(expression)’이라는, 실천적 태도에서 벗어나 않는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모더니즘 초기는‘감상자’란 요소가, 후기 모더니즘 이후로는 ‘시간’이란 요소가 개입하게 된다. 조형의 요소로서 감상자는 작가와 작품 사이에 중요한 매개체로서 작품은 감상자에 의해서 더욱 완성의 밀도를 갖게 된다. 작가는 감상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유도 하거나, 관객들 자체가 작품 제작의 중요한 오브제로서 끝없이 작품과 feedback하는 경우이다. 모더니즘 후기에서 보여 지는 시간성이란 전기모더니즘의 시간성(작품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단순한 동적 작업들)이 아니라, 자라거나 늙거나 죽는, 좀 과장하자면 심지어는 작품 스스로 생각하는, 마치 자연의 시간과 같이 작품에 대하여 물리적 생명력을 부여 하는 것이다. 물론 한 작가의 창작에 대한 욕구와, 천부적 재능과, 세상에 단절된 듯 소외된 고뇌 끝에 탄생한 작품은 그 자체로서도 무한한 생명력을 갖는다. 시간을 초월한 감동을 주며, 공간을 뛰어넘고 소통 될 수 있는 그림문자가 된다. 작가가 세상을 떠날 지라도, 세기가 바뀔지라도 작품은 [폐기] 될지언정 스스로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품이란 물성이 갖는 생명력은 불사신 같아서 오히려 생물의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최근 현대미술에 있어 말하는 생명력은 물리적인 그것에 가깝다. 즉 자연처럼 발생해서 자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류의 작업들은 계속적으로, 사람을 포함한 자연과 교감하면서 변형되고 소멸된다. 또한 이 계류의 대부분의 작가들은 대지예술가들처럼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인공에 대해, 작위적 행위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가장 최소한으로 제한하며, 자신의 작품을 대대손손 남기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술시장의 유통도 사뭇 다르며, collector들도 작품의 영구적 소장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Rear Living Sculpture & Plant Art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 하기위한 한 방법으로 그들은 화학염료대신 곰팡이와 이끼를 사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은 먹이가 공급될 때 까지 계속적으로 작품에 기생하고, 이에 작품의 표면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다양한 자연의 색깔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과거 조소작업을 위하여 점소성이 뛰어난 재료로서의 점토를 사용 하는 것 대신에 토양이란 표현에 가까운 유기체로서의 흙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작품들은 전시장을 마치 깊은 숲 속의 축축한 음지에서 나는 냄새로 가득 채운다. 이 자연이 내뿜는 냄새들은 결코 자연의 일부인 사람에게 역겨움과 유해함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자연의 기운이 온몸에 전이되는 착각마저 들게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새로운 미술운동이 아니다. 1960년대의 대지예술작가들이 가졌던 자연에 대한 태도와 유사한 맥락으로서, 대지미술이 비교적 대규모 프로젝트성의 장대한 스케일로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유도하였다면, 19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된 이 살아있는 예술작품들은 식물의 성장 또는 소멸 등의 변형과정을 통해 자연과의 교류를 시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성과들은 간혹 그들의 의지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자연의 과정을 드러내는 방법에 다소 억지스러움을 드러낸다. 무위자연이란 동양적 사상의 견지에서 본다면 자연의 과정을 표현 혹은 재현 하고자 하는 그들의 제스처조차 작위적이고 부질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들 또한 동료예술가들을 신나게 하는, 다른 예술적 시도들을 가능케 하는 동기이기에 이 살아있는 조각들은 틀림없이 가치롭다. 영국의 조각가 David Nash 또한 그의 일련의 설치작업을 통해 작품에 햇빛, 토양, 물, 기후..그리고 먹이사슬 구조와 같은 요소들을 사용하여, [자연다운 삶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한남동 금호리첸시아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2-13 외 3필지· 면적 : 6,386㎡(조경면적 : )· 세대수 : 총 393세대(아파트 371, 오피스텔 22)· 발주 : 금호건설(대표 신훈, 현장소장 박영균)· 조경설계 :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부(이사 최은경)· 조경식재 : 대경조경(대표 박종본, 현장소장 안재우) 흐르고 머무는 이야기가 있는한남대교에서 단국대 방면의 좁고 어수선했던 거리는 리첸시아가 들어선 후 가장 크게 변화한 곳이다. 반듯한 건물의 첫인상을 가늠하는 건물 전면부가 되면서 분위기 있는 걷고싶은 거리가 되었다.좁았던 거리는 한층 넓게 개방감을 주어 점토블럭으로 포장했고, 대형 벚나무와 느티나무를 심어 풍부한 녹지를 조성했다. 대형가로수 하단에 하부식재로 심긴 푸르른 양잔디와 수호초는 점토블럭의 붉은 빛과 대비되는 짙은 녹색으로 시선을 끌면서 가로수의 수직적 상승감을 한층 부가시키고 있다.이 공간은 봄에는 벚나무가 한껏 꽃을 피워 화사한 매력을 뽐내며 지역주민들과 단국대 학생들을 끌어 모으더니 어느새 보기만 해도 시원스러운 녹음으로 옷을 바꿔 입고 느티나무와 함께 수목터널을 만들어 보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도 이용자들은 그간 건설과정에서 먼지나 소음 등으로 조금이나마 불쾌했던 어떤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넓고 깨끗하게 변한 거리를 보며 잊게 될 것이다. 공개공지가 정말 제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한편 꽤 충분한 면적의 공개공지에는 수묵화에서 봤음직한 그림같은 수형의 소나무 화단이 가로수 터널과는 또다른 휴식처를 제공하는데, 소나무 하부에는 철쭉을 식재해 벚꽃이 진 후에도 한동안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여느 걷고싶은 거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 공간은 단지 지날 수 밖에 없었던 길을 ‘흐르고 머무는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행복이 메아리치는정형적이고 정리된 건물 외형과 색채, 전면부와는 달리 철저히 입주민들을 위한 공간인 중정은 평이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리첸시아의 입주민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상단에서 내려다 볼 때도 공간내부에 있을 때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치된 이 공간에는 휴게공간인 퍼골라와 1층의 미술장식품을 위해 설치된 천창이 대칭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위요된 공간내에 존재하는 천문대를 연상케 하는 퍼골라와 천창, 그 사이를 흐르는 물길포장패턴 덕분에 마치 우주와 은하수를 품에 안을 듯 하다. 건물의 중앙에 위치해 그늘이 많이 진다는 점을 감안해 굳이 퍼골라의 차폐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철골구조로 개방시켰는데, 위요된 건물군 사이에서 돔형태의 철골구조를 통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 외곽의 화단은 물길의 곡선과 대비되면서 흥미를 줄 수 있도록 강한 직선형태로 조성했으며, 인공지반인 관계로 대형 수목들은 지양하고 대나무와 반송, 자작나무 등을 식재하고 화목류를 이용해 화사하게 장식했다.중정은 삼각형이 모인 기하학적 도형 안에 파란 하늘이 보이는 시간에도, 간혹 맺혀진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에도 입주민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며 머물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중정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선큰에 조성된 목재데크 쉼터는 로비의 미술장식품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 특이한 벽체 마감과 조명으로 해진 후 그 진가를 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공원의 영역확대를 위한 조경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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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상수시(Sansoucci) 정원
    상수시 정원과 프리드리히 대왕 상수시 궁전은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진 포츠담에 있다.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수도이기도 하고, 1945년 ‘포츠담 선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포츠담에 가려면 베를린에서 S-bahn 3번이나 7번을 타고 포츠담 슈타트에서 내려 91번이나 96번 트램을 타고 가다 루이젠프라츠에서 내려 약간 걸으면 된다. 총면적 287k㎡에 이르는 큰 규모의 상수시 정원은 워낙 넓어 상수시 공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곳에 최초로 세워진 건물이 상수시 궁전이고, 이후 확장을 거듭하면서 다른 궁전과 정원 건축물 그리고 부속 정원들이 추가되었다. 흔히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2세는 1744년 상수시에 여름별궁을 세운다. 그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베를린을 수도로 정하고 1709년 정식으로 프러시아왕국을 선포한 왕이다. 그는 엄격한 전형적인 군인스타일의 왕이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이러한 부친과는 성향이 사뭇 달랐다. 그는 문예에 큰 관심이 있었고, 여성처럼 파마를 했으며 프랑스어를 즐겨 썼다. 남성우월적인 부친의 눈에는 너무 나약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시를 읽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때리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친구와 영국으로 도주하려다 발각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왕이 된 후 선정을 베풀었다. 고문제도를 금지시켰고, 베를린의 학사원을 부흥시켰다. 학자와 문인을 상수시 궁전에 초청하여 학문과 예술을 토론하게 하였다. 볼테르가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상수시의 철학자 제왕으로 불렸다. 그는 이러한 문화취향에도 불구하고 냉철한 정치가였다. 당시 프러시아는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사는 프리드리히 2세를 냉혈한이라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의 걱정은 한낮 기우였다. 프랑스 문화에 심취해 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상수시궁전을 만들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삼았다. 로코로식 궁전과 기하학적 정원공간의 구성은 베르사이유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수시 궁전은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소박하다. 포도덩굴의 정원은 다른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상수시 정원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왕위를 물려받은 직후인 32세 때에 건축가 크노벨스도르프를 시켜 거친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궁전을 만들게 한다. 포도나무 덩굴로 덮인 테라스 정원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스케치한 구상을 실현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정원 애호가였고, 그의 이러한 취향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왕비는 베를린에 있는 몽비쥬라는 여름별장에 정원을 만들어 가꾸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장식을 싫어하여 베를린과 포츠담 성의 정원을 과일과 채소들을 가꾸는 정원으로 개조하였다. 실용적인 목적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런 부모의 상반된 취향을 받아들여 포도나무 테라스라는 새로운 정원을 창조하였다. 포도나무들이 햇볕이 잘 받을 수 있도록 언덕의 지형을 이용하여 테라스를 만들었고, 테라스의 형태도 포물선 모양으로 만들었다. 미학적 아름다움이 실용적 목적과 교묘히 결합된 것이다. 그의 명성을 유럽에 드높인 7년 전쟁 이후 프리드리히 대왕은 상수시 정원을 새롭게 확장한다. 상수시 궁전보다 보다 큰 신궁전을 건축하고 벨베데레라 불리는 건축물과 폐허의 산이라 불리는 조형물과 중국식 찻집을 만든다. 신궁전은 보다 강력해진 왕권을 표현하기 위해 상수시 궁전보다 웅대한 스케일로 지어 왕족들과 손님들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폐허의 산은 상수시 궁전에서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 따 만든 인공의 폐허로서 신전의 흔적과 건축물의 기둥들이 서있다. 당시에서 상수시 궁전의 대리석 홀에서 손님들과 만찬을 하면서 로마식 폐허를 바라보며 고대 철학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담소를 나누었다 한다. 중국식 찻집 정원은 가장 기이하고 매력적인 건축물로서 숲 속에 숨겨져 있다. 중국예술은 로코코 시대에 매우 인기가 높았다. 중국 비단으로 몸을 두르고, 중국식 문양의 벽지로 실내를 꾸미고 중국 도자기로 차를 마시곤 했다. 상수시의 중국식 티 하우스는 당시의 귀족 취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다른 어느 정원건축물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덤불들이 가려진 숲 속에서 중국식 정자를 보게 되면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착각이 든다.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상수시 정원은 하나의 소우주였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비밀의 정원이었다. 그는 이 곳에 그가 좋아하던 개들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는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 곳에는 10마리의 애견들이 묻혀있을 정도니까. 아마도 불행했던 결혼생활 때문이었기에 애견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애정 없는 정략결혼을 한 후 그는 왕비와 별거한다. 왕비는 다른 곳에서 생활하였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평생 자식이 없었다.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과 손님들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세상을 얻었지만, 사랑을 얻지는 못했나보다. 그는“나는 철학자로서 살았다. 화려하지 않게 아무런 의식 없이 상수시에 잠들게 해다오”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당대에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후손들은 그러한 초라한 장례식을 원치 않았고, 그를 부친의 묘소 옆에 묻었다. 다행히 한참이 지난 독일이 통일된 후 1991년,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시 이 곳 상수시에 돌아와 묻히게 되었다. 이제 그는 ‘근심 걱정 없는’ 상수시(san soucci는 불어로 without worry라는 뜻이다)에서 편안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조 경 진 Zoh, Kyung 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 도시환경과 공공미술의 경계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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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구디자인, 소박하고 간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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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
    영전사지(令傳寺趾)의 영천사(靈泉寺) 한동안 사지(寺趾)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고, 집도 절도 없는 텅 빈 벌판에 서 있는 석탑이나 부도를 만나는 것이 또한 낭만적이지 않는가. 영전사지는 어떨까? 부도는 경복궁에 이미 옮겨와 있으니 그 절터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오랜만에 절터를 찾아 나서는 길을 떠나 보았다. 영전사지는 원주에 있다. 영전사지에는 영천사란 이름으로 새로 건립된 절이 있다. 영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몇 백 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930년대인가 어느 유지가 자그맣게 새로 건립한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아담한 새 절이 들어서 있다. 영천사 대웅전은 바로 앞에 아담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를 바라보며 서향으로 앉아있다. 약간 북서쪽의 살짝 열린 방향으로 원경이 들어온다. 대웅전 좌우로 요사(寮舍)와 유아원이 있고 마당 앞쪽으로 작은 연못과 잔디밭으로 조성된 녹지가 있다. 경내를 찬찬히 살펴보면 곳곳에 상당히 많은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역사물을 복원하는 경우, 건축은 그럭저럭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관계하고 있던 경관을 다루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어쩌면 문화재복원 내지 그 계통의 장인(匠人)들이 경관을 함께 살필 여유가 없었을 터이며, 총감독이나 건축주도 거기까지는 아직 무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영천사에서도 그 점은 피해갈 수 없었다. 연못은 유아원의 원아들을 비롯하여 이 절의 신도들과 잠시 들렀을 손님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애써 마련한 것이었겠지만, 기왕이면 이 사지에 원래 있었다던 영지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하였다면, 옛 절의 명맥을 잇는 전통사찰의 계승으로도 이야기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연못과 녹지가 조성된 바로 앞 쪽으로 대규모의 토공이 마무리되어 있는 큰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어떤 용도로 개발이 되려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사찰의 다른 부속건축물의 신축예정지이든, 대규모의 주차장이든, 너무 무심하게 (별 생각 없이)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큰 길에서 완만하게 오르막이 된 길을 따라 300미터 정도 들어온 곳에 사찰이 있다. 따라서 사찰과 큰 도로와의 표고 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새로 토공 해 놓은 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표고 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큰 길에서 바라보이는 토공 법면은 사면녹화처리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해 둘 수 있다고 보더라도, 사찰로 들어오는 경로에서 마주하게 될 이 법면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해도 좋을 규모다. 대웅전 뒤 봉우리는 물론이고 좌우로 환포하고 있는 아담한 능선마저 모두 삼켜버린다. 경내의 연못 언저리에서 내다볼 때는 더욱 심각해진다. 최소한 여기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는 않고, 그냥 주차장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이 새로 조성된 대지로 인하여 이 절이 자리 잡고 있던 입지적 여건에는 대단한 변모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정 기 호 Jung, Ki Ho · 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인천국제공항 1단계지역 리뉴얼 계획
    리뉴얼 1. 환영홀 내 수경시설 설치공사 · 발주처 담당 : 인천국제공항공사 조경팀· 설계사 : (주)씨엔케이 대표이사 최경환 (디자인 : 박상인 작가, 이용덕 작가)· 시공사 : (주)유일워터플랜 대표이사 김성윤 - 위치 : 인천국제공항 환영홀 내 실내조경 플랜트- 규모 : 9mx11m, 사각플랜트 10개소 중 2-3개소 내- 특징 : 대기, 휴게공간 주변 실내 녹지공간, 휴게를 위한 플랜트 지역 공간진단하기(현황느낌)- 실내 조경공간은 거대한 공간에 묻힌 사람들에게는 편안함과 흥미요소로 기억될 것이나 반복적이고 정형적 형태의 플랜터와 식물위주의 구성이다 보니 매우 단조롭게 느껴진다.- 식물위주의 플랜트로 외곽으로 앉는 곳이 있고, 내부는 관엽과 지피초화류로 구성되어 있다.- 환영홀이라는 공간적 컨셉의 화려함 보다는 녹색공간이 매우 차분한 느낌이다. 계획의 방향- 수경시설물 설치를 통해 이용객에게 흥미요소 제공- 수분공급을 통한 식물의 생육환경 향상- 국제공항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시설물- 식물요소와 어우러진 시설물리뉴얼 2. 도착복도 한국적 이미지 시설 설치계획(제안) · 발주처 담당 : 인천국제공항공사 건축처· 설계사 : (주)씨엔케이 대표이사 최경환 (디자인 : 설주경 실장, 천혜아 실장) -위치 : 인천국제공항 도착층 이동공간-규모 : 연장 약 320m중 150m, 폭 약12m, 높이 약 3.3m 정도의 측창 가 일부구간, 동측과 서측으로 대칭되는 두 지역-특징 : 도착승객이 출구로 이동하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빠른 이동이 특징 공간진단하기(현황느낌)- 공간의 인테리어 소재와 색, 천청과 기둥의 색이 주는 Gray Tone은 공간을 매우 차분하게 한다. 어떤 것의 배경이 되는 공간느낌이며 그 주인공은 사람들 인것 같다.- 공간은 매우 건조하고, 단조로우며 긴 통로로, 이동하는 중간에 변화의 요소나 흥미요소가 없어 매우 지루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Moving Side Walk를 통해 이동하며 이동승객이 많은 경우 복도로도 이동한다.- 공간의 폭에 비해 천정고가 낮아 투시효과가 매우 두드러진다.- Moving Side Walk 의 벽면은 광고들이 있고 측면 창으로는 자연광이 매우 환하게 투과되는데 이 빛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의 그림자를 연출시킨다.-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시설이나 요소는 없고 창가에 플랜터가 일정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매우 단조롭다. 계획의 전제- 한국적 이미지가 표현된 시설의 도입- 시각적 초점역할이 될 수 있는 상징적 시설- 동선 상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 시설- 주변과 어우러진 시설- 설명적이지 않은 시설 계획의 방향- 한국적 이미지의 현대적 이미지화- 긴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보여지는 시설로 반복적인 흐름의 선상에 측면 VIEW 고려- 방향성의 유도와 그림자효과를 통한 흥미로운 연출- 여행으로 지친 승객에게 식물요소 등으로 청량감과 편안함 제공 천 혜 아 Chon, Hye Ah (주)씨엔케이 실장(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