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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과 공간
    축구화, 슬리퍼, 쪼리, 스니커즈. 작은 신발에서 큰 신발까지 사이즈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당연히 색상도 다양했다. “조금 오래되고 낡고 더러웠지만”, 내가 신을 것은 아니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친구의 신발 상자는 보물 상자가 아니었을까. 그 지저분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언제 부터였을까? “장가가면 버려야 겠지”라며 민망한 듯 뚜껑을 덮는 친구를 보면서, ‘그럴거면 왜 그런 짓을 하니’라는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보내면서도, 그 이상의 궁금증을 가져 보지는 못한 듯 하다. 그 친구의 괴상한 취미 신발은 모두 버렸다고 했다. 사랑하는 그의 아내와 새집 냄새가 나는 아파트에서 알콩달콩 재밌게 살고 있다며 안부를 전했다. 하지만,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신창동 집에 가면, 일기장이며, 편지며, 영화 티켓이며, 버리지 않고 쌓아둔 시간의 흔적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버리겠다는 어머니와 가끔 실갱이를 벌이기도 한단다. 나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취미라고 강변했다. 어쨌든 그 괴상한 취미 덕택에 우리에게는 이야기거리가 남지 않았는가. 그 조경가의 괴상한 설계 선유도에 가면, 기존 정수장의 “오래되고 낡고 조금 더러운” 철제와 콘크리트 벽체 등의 황폐한 시설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정수장 시설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새로운 벽돌과 나무, 첨단 디자인의 시설물들을 도입하여 아주 발랄한 공원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선유도는 운이 조금 나빴다. 조금 괴상한 취미를 가진 조경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낡아 보이는 공원 안에는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밤이 되면 연인들이 찾아 들었다. 또한 조경분야는 공원을 주제로 하는 전례없는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얻게 되었다. 기억은 머릿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유도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 12월에 폐쇄된 뒤 서울시에서 공원으로 꾸민 것이다. 공원으로 조성되어 개장이 되기 전까지, 그곳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거의 버려진 공간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에겐 그곳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나, 선유도가 공원이 되어 돌아 왔을 때, 지난 시간의 흔적들은 신기하게도 공원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으며, 그 어떤 공간보다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설계가의 의도와 노력대로 “역사적 맥락”의 표현이 물리적으로 잘 나타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상도 받았고,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등공원으로 손꼽아 주는 호사도 누리고 있다. 울퉁불퉁한 생살처럼 드러난 콘크리트 벽과 기둥, 지워지지 않는 물의 얼룩과 녹슨 자국이 전해 주는 것은 쓸모 없어 폐기된 산업의 잔재가 아니라 재료 자체의 물성이다. 그 물성은 또한 시간의 흔적을 가감 없이 노출시킨다. 노출된 물성과 그것에 녹아있는 시간의 이야기는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산업 재료와 새로운 방식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꽃은 식물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문화와 함께 거주해 온 자연의 역동성을 물질적으로 전하고 있다. 직각 방향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며 선 한강전시관 앞의 녹색기둥의 정원은 물성의 노출을 통해 시간을 성찰하고 자연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반성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 정수지 위의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내고 기둥만을 남겨 조성한 녹색기둥의 정원. 위층에서 산책하며 조감하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콘크리트 기둥의 조합이 마치 의도된 조각 작품처럼 경험되지만, 램프를 따라 아래층에 내려가 부감의 형식으로 콘크리트 기둥을 대면하면 이곳에 남겨진 시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둥 하단부를 따라 감겨 올라가기 시작한 식물은 콘크리트와 식물은 지극히 이질적이라는 선입관을 비웃으며 자연의 문화성을 잔잔히 웅변한다.-배정한, 「시간의 정원, 발견의 디자인 : 선유도공원이 전하는 말」, 환경과 조경 2002년 7월호
  • 모리스 로즈 에어필드의 교훈
    Alter Flugplatz 프랑크푸르트는 현대 산업 자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깊은 역사와 문화 자본을 가진 도시이다. 이미 12세기에 도시를 이루었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태어나고 활동하여 “괴테의 도시”로도 불린다. 이 도시는 테오도르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사상가들의 활동 무대로도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불리는 이들의 주요 관심은 현대산업사회와 문명이었다. 이들의 사상은 유럽 사회 변화의 지적 배경이었다. 이런 사회ㆍ문화적 자본을 가진 도시도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화되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MauriceRose Airfield의 변화와 기억프랑크푸르트 북쪽 Nidda강변 Bonames 인근은 사람들에게 비행장과 소음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모리스 로즈 에어필드로 불리던 미군 헬리콥터 기지였다. 1992년 미군 기지가 독일에 반환되자 프랑크푸르트 시정부와 시민들은 활주로를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팅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반면에 환경 단체들은 오염을 제거하여 미군 기지로 사용되기 이전의 녹지대로 되돌리고자 했다.GTL(Gnuchtel and Triebswetter Landschaftsarchitekten, Kassel)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설계를 제안했다. 그들의 안은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수용하면서도 오염된 기지를 정화하고 자연 천이를 유도하여 생태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모리스 로즈 비행장에는 헬리콥터가 날고 있지는 않지만 군사 시설로서의 과거는 남아 있다. 아스팔트 활주로와 콘크리트 포장은 식물 모자이크로 다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의 녹색 공간으로 변모했다. 변모한 모리스 로즈 비행장은 2005년 독일 조경상, 2006년 국제 도시 조경상을 수상했다. 모리스 로즈 비행장이 변모한 Alter Flugplatz는 버려진 대지에 대한 아이디어다. GTL의 안은 기본적으로 남겨진 군사시설과 대상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건물과 활주로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온전히 새로운 것이라고는 Nidda강 위에 설치하여 보행과 자전거 동선을 연결한 보행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군사시설 이전지의 과거는 현존하는 기념품이 되고 있다. 기존 시설물들은 과거 용도와 연속성을 가지면서 현대적인 활동을 담아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대상지를 양피지(palimpsest)로 읽고 지역적 가치를 재해석하여 끊임없이 ‘차이’를 만드는 동시대 조경의 경향이기도 하다. 대상지의 남겨진 과거가 자연과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개스웍스 파크
    포스터가 더 유명했던 ‘클럽 싱글즈(Singles)(1992)’라는 영화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과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심각한 대화를 나누던 주인공들을 한켠에 두고 화면의 배경은 넓고 푸르른 잔디밭과 그 뒤로 보이는 아주 거대하고 기괴한 붉은 녹슨 공장과 파이프들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왠지 모를 그 아이러닉한 색감과 분위기에서 노스탤지어적인 낭만을 느꼈었다. 도대체 저 곳은 어떤 곳인 걸까? 공장 지대에 왜 공원이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들과 함께 필자의 기억 속에 그 장면은 오래도록 남아있게 되었고, 나중에서야 이 공원이 바로 시애틀을 대표하는 개스웍스 파크(Gas Works Park)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개스웍스 파크에 대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1860년대 후반 유니온 호수 주변에서 시작된 산업단지 개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 산업체와 공공산업의 형태를 거쳐 1930년대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가스정유공장으로 시애틀 외 여러 도시들에 가스Gas를 공급하게 되고, 1956년 그 모든 기능이 정지되었다. 그 후, 버려진 건물들과 공장 지대를 1962년 시애틀 시 정부에서 구입하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와 여러 시민 공청회와 시애틀 공원 부서의 의견에 힘입어 공원화하기로 결정하여 리차드 하그 어소시에이츠(Richard Hagg Associates)(RHA)를 가스정유공장부지에 대한 마스터 플래너로 지명하였다. RHA는 부지 분석과 조사를 위해 부지 내에 사무실을 열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오래된 타워들을 직접 올라가 보기도 하고 부지 내에서 캠핑을 하는 등, 리차드 하그는 현장의 버려진 공장들의 모습을 철골 구조를 가진 예술로서 받아들였고, 이 과정을 ‘의식을 넘어서는 조합(unselfconscious assemblages)’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지의 제한조건을 독특한 성격으로 재해석하여 ‘역사적, 심미적 그리고 실용적인 가치(마스터플랜, 1971)’를 주장하며 공장 일부분을 보존하자는 의견을 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71년 11월, 마리나(Marina)와 프로미나드(promenade), 그레이트 마운드(Great Mound)의 공간들을 포함하여 공장 구조물들을 놀이공간과 미술관, 음식점, 영화관으로 재사용하자는 하그의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다. 당시 그의 파격적인 제안은 시애틀 시와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하그의 ‘미생물과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방법(bio-phyto-remediation)’을 통한 흙과 물을 정화하는 등의 기술적 제안과 RHA에서 함께 일하던 로리 올린(Laurie Olin)의 해석적이고 표현적인 스케치 등의 디자인적 제안을 통해 그의 의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재정적인 문제와 실제 기술적인 문제(시애틀의 기후가 미생물들이 정화 활동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유로 여러 기술적 제한이 생기게 되었다)로 기존의 공장 건물들은 “Tower”(아이들의 체험과 놀이 장소로 허가되었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접근이 금지되었다), “Concrete Viaducts”(석탄 램프의 콘크리트 하부구조), “Play Barn”(놀이 공간 - 오래된 시설물들과 펌프 건물을 놀이 공간으로 바꾸었다)과 “Picnic Shelter”(피크닉 공간 - 보일러 공간을 편의시설로 바꾸었다)만 남게 되었다.
  • 뒤스부르크-노드 랜드스케이프 파크
    앞에서 소개된 개스웍스 파크와 함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파크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뒤스부르크-노드 랜드스케이프 파크(이하 뒤스부르크 파크)는 독일의 루르Ruhr강변 중공업단지에 위치해 있다. 독일 최대의 철강기업인 티센(Thyssen)의 주력 제철소가 자리하고 있던 이곳은 20세기 중반까지 철강산업을 선도하였으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루르 지역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쇠퇴의 길에 접어들어, 결국 1985년 철강공장이 다른 부지로 이전해가면서, 녹슨 철구조물만이 방치되었다. 과거 100여년 동안 각종 공해와 오염에 시달리던 대지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게 된 것은 1989년부터 시행된 IBA 엠셔 파크(Internationale Bauausstellung Emscher Park)프로젝트 덕이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옷은 이전의 새로움과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1989년 230ha에 달하는 공장지대를 대상으로 한 설계공모에서 프랑스 조경가 베르나르 라쉬스(Bernard Lassus)와 최종 경합을 벌인 끝에 최종 설계자로 선정된 피터 라츠(Peter Latz)는 최대한 기존 구조물을 존치하는 방식으로 설계안을 풀어나갔다. 심지어“디자인을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까지 한 피터 라츠의 안은 과거 제철소가 가동되던 곳에 공원을 덧씌우는 방식이었다. 그는 석탄을 나르고 철을 운반하던 동선도, 용광로가 쉼 없이 검붉은 쇳물을 토해내던 거대한 건물도 고스란히 남겼고, 크고 작은 벙커 건물 역시 천장만 하늘을 향해 열었을 뿐, 벽체는 원형 그대로 존치했다. 그 결과, 기존의 너른 잔디밭과 풍성한 수목으로 대표되던 목가적인 풍경이 지배적이었던 과거의 공원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경관이 탄생했다. 부지 내에서 가장 지배적인 경관을 형성하는 용광로 건물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과거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웅변한다. 이곳에 설치된 전망대는 공원 전체의 파노라마 뷰를 제공하고, 또한 이 건물을 중심으로 화려한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는 색다른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도중에는 기존의 공장 내부 시설을 엿볼 수 있고, 과거의 시설에 대한 안내판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가동되던 산업시설이 하나의 박물관과 같은 기능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용광로가 있는 중심 건물의 전망대가 360도 회전은 가능하지만 고정된 시점의 점적인 조망을 제공한다면, 캣워크catwalk라는 고가보행로는 이동중의 선적인 조망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 조망동선은 광석벙커 정원지역의 상부로 지나가, 다양한 관목과 세덤류가 자라나고 있는 소정원을 내려다보는 색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 사진으로 본 Memory & Space
    웨스트파크(Westpark Bochum) 독일 루르(Ruhr)지방의 중심도시인 보훔(Bochum)에 있는 Westpark Bochum은 80km에 걸쳐 있는 엠셔파크(Emscher landschaftspark) 중 하나이다. Jahrhunderthalle의 철강 공장 이전지로 이전에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공원의 중심부에는 뒤셀도르프(Dusseldorf)에서 1902년 Bochumer Verein의 철 제품 전시를 위해 지어진 백주년 홀(Hall of the century)이 자리하고 있다. 2003년 Ruhr Triennale를 개최하기 위해 전시 및 콘서트 홀로 재생되었는데, 이 홀은 살아있는 산업 기념비이자 문화와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 밀 루인스 파크(Mill Ruins Park) 미국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Mill Ruins Park는 19세기 제분소 유적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 10월 1일 개장한 공원이다. 미니애폴리스는 미시시피강에서 나온 전력을 바탕으로 10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제분산업이 있던 곳이다. Mill Ruins Park는 1800년대 밀가루공장이 무너진 폐허를 도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발굴하는 과정(urban archeology)을 통해 공원이 탄생하였으며, 무너진 폐허처럼 생긴 건물이 Mill city museum이다. 겉은 폐허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굉장히 현대적인 건물의 박물관이다. 랑겐 파운데이션(Langen Foundation) 독일 노이스(Neuss)라는 작은 고장에 위치한 랑겐 파운데이션. ‘라케텐 스타치온(Raketenstation)’으로 불리던 이곳은 1990년대 초반까지 50여년 동안 주둔했던 NATO의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던 곳이다. 미사일 기지가 이전한 후, 1994년 미술품 수집가이자 예술후원자인 칼 뮐러(Karl-Heinrich Muller)가 이곳을 구입해서 미술관과 작가 스튜디오로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하고, 냉전시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환경을 살려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는 폐쇄된 낡은 철로와 철로 상부를 녹색의 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으로 조경가 쟈크 베르절리(Jacques Vergely)와 건축가 필립 마티유(Philippe Mathieux)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이곳은 1859년부터 1969년까지 바스티유(Bastille)에서 뱅센(Vincennes)을 연결하는 길이 4.5km의 철길로 이용되었으나, 1969년 바스티유 역이 폐쇄된 이후 1986년 훼으이 개발중점권역(Z.A.C. Reuily)의 설정과 더불어 녹음이 흐르는 문화거리로 변신하였다.
  •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 - 현재와 미래
    뉴욕 하이라인(The High Line, New York, NY)은 프로젝트 자체가 가지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적인 정체성, 버려졌던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재이용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왔다. 2004년 뉴욕시에서 야심차게 주최한 설계 공모전에서 조경, 지역 설계 회사인 Field Operations, LLC의 주도하에 결성된 팀이 설계권을 부여 받은 이후로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디자인팀의 인고의 세월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현실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2008년 6월 클라이언트팀(Client team)의 일원인 프렌즈 오브 더 하이라인(Friends of the High Line)이 설계1공구의 70% 완성과 설계2공구의 설계도면 완성을 기념하기 위한 책인『Designing the High Line』을 출판함으로써 하이라인의 개장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2007년 6월부터 설계2공구 리드 디자이너(Lead Designer)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하이라인이 허드슨 야드 개발 부지(Hudson yard development site)로 연장되어 끝나는 부분—비공식적으로 잠정적 설계3공구라 일컬어진다—에 대한 설계 제안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본 원고에서는 하이라인이 현재 어떠한 진행 상태에 있으며, 2공구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또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설계2공구 설계2공구 부지의 특성은 1공구와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진다. 전체 하이라인 부지는 고가 철로였다는 역사를 반영하듯 좁은 선형이나, 1공구에서는 선로가 휘어지거나, 방향을 틀거나, 혹은 분지를 만들어 빠져나가는 등의 다양한 변이를 보여준 반면 2공구의 부지는 9블록에 거쳐 직선을 유지하는 단조로움을 보이며 더욱이 폭이 30feet를 넘지 않을 만큼 좁기도 하다. 설계가 시작될 무렵만 하더라도, 이 구간의 하이라인은 저층 건물로 위요되어 있거나 노출되어 있어서 개발이 상대적으로 늦은 맨해튼 서부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나, 이는 결코 오래가지 않을 무상한 풍경일 뿐이었다. 이미 하이라인 재설계의 특수를 타고 주변 지역 개발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2공구가 관통하고 있었던 저소득층 주택단지 블록의 일부는 고급 호텔이나 주거, 상업지역으로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특히나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듯, 새로이 입지할 건물들은 모두 세계적인, 혹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건축가들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하이라인은 건축물 전시장과 같은 복잡한 경관을 관통하게 될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디자인팀은 하이라인의 곧은 직선부지를 더욱 강조하여 강한 시선의 축을 형성하는데 전체적인 초점을 두었으며, 그 선상에서 다양한 경험의 에피소드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이유로 2공구 전 구간은 6개의 작은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각 구간은 식물 생태군 혹은 다른 형태적 특징에 따라 이름 지어졌는데, 이는 하이라인 설계 초기단계에서 행해진 식생 현황 조사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하이라인이 20여년간 방치되어 있는 동안 다양한 종류의 자생식물이 천이를 통해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형성하였다. 구조물이 긴 거리를 통해 연장되어 있었던 만큼 부분마다의 미기후가 달랐고,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식생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으며, 이를 적극 도입하고자 한 것은 클라이언트팀과 디자인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 문정지구 조경기본 및 실시설계 현상공모
    SH공사에서는 서울시의 ‘무장애 1등급 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문정도시개발지구의 상징성을 고려한 새로운 아이디어 경쟁을 통하여 창의성, 예술성, 공간성을 담은 미래지향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공원·녹지를 조성하기 위한 설계(안)을 공모하여 지난 2월 25일 (주)기술사사무소렛의 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_ 편집자주 당선작 _ 드러난 대지의 서정 ((주)기술사사무소렛) 설계참여자 _ (주)기술사사무소렛(대표 장종수, 박영준, 장종현, 이현정, 오선영, 김창한, 김혜희, 정동진, 우혜연, 조기영, 조유경, 이충연, 오현주, 곽보영, 김원준, 소현수, 강현경, 김지석, 최진우) 지구명 _ 문정도시개발구역|위치 _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350번지 일원|설계범위 _공원 및 녹지 119,266㎡ 프롤로그 대지에 펼쳐질 시간의 통섭(通涉) 탄천은 오랜 세월 흙을 쌓아 새로운 땅을 만든다. 물을 가득 머금은 이 땅은 연꽃이 많아 연화리라 불리우다 문씨의 우물 맛에 감탄한 인조가 ‘文井’이라 하여 문정리로 그 이름을 바꾼다. 제방이 생기고 탄천의 물길이 바뀌면서 대지는 논이 되었다가 현재, 덩그러니 움푹 파여진 땅에 비닐하우스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21세기형 법조타운으로 변모를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의 대지가 간직한 시간의 기록이다. 이전의 개발들은 과거와 현재 사이 확연한 시간의 경계를 생성했다. 우리가 만들어갈 도시는 생성되고 사라지는 기억의 모든 층을 기록하는 장소로서, 감춰진 대지의 서정이 회복되는 가치적 장소이다. 대지에 나타난 시간의 통섭은 온전한 장소적 정체성과 생태적 다양성이 회복되는 경관을 실현시킬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지 2009년 4월호(통권 252호) 144~151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황용득, 동인조경 마당
    시작하며 2009년 1월부터 달라진 네이버에서 “한국인”코너를 즐겨보고 있다. 미술가, 건축가, 의사, 스포츠인, 영화인 등 카테고리는 총 다섯으로, ‘가’가 둘에, ‘사’가 하나, ‘인‘이 둘이다. 의사 같은 경우에는 전공분야별로 100명의 의사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100개 의학분야의 해당 교수들에게 “가족이 귀하가 전공하는 분야의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의사에게 보내고 싶은지 5명씩 추천해 달라”고 묻고 이를 집계해서 1명씩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질문이 참 와닿기도 하고, 인기투표와 같은 이런 설문조사의 위험성이 편치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제한된 기회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해야 할 때, 설문조사만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면을 시작한 1월호에 선정의 어려움을 구구절절 소개한 바 있으니 상세한 부연은 생략하더라도, 매호 간단한 선정 이유를 밝히며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설문조사와 같은 방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정 원칙은 “최근 개최된 설계공모 당선자나 근래에 완공된 작품을 설계한 조경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뿐이다. 설문조사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이면 최근에 잡지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의 뒷이야기도 좀 들어보자는 취지로 그러지 않았다. 또 설계공모의 취지 중 하나가 신진 작가의 등용문이니, 자연스레 새로운 조경가들을 소개하는 기회도 될 수 있으려니 했다. 이달의 인터뷰이(interviewee)인 황용득 소장이 ‘조경가 인터뷰’같은 코너를 통해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원칙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황용득 소장의 말을 듣고 나서 되짚어보니 첫 회의 박윤진·김정윤 소장을 제외하곤, 2월부터 4월까지 모두 창립한 지 10년 이상 된 설계사무소 대표자들을 연달아 모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이다. 원칙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운영의 묘를 찾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번 달은 3월호에 이어, 1월의 광교 특화 컨셉과 2월의 광교 호수공원 이외에 규모가 컸던 설계공모전이었던 영종하늘도시 당선자이자, 의정부민락(2)지구 당선자인 동인조경 마당(이하 마당)의 황용득 소장을 모셨다. 둘 모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와 공동작업이었고, 황용득 소장은 광교 특화 컨셉 지명설계공모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오는 5월 5일 완공 예정인 상상어린이공원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황용득 _ 조경가로서 당신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설계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만의 고유한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제 3자가 인정을 해주고 안 해주고는 중요치 않다. 작업을 계속해나갈수록 자신만의 내러티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원칙은 무엇인지를 늘 자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점차 정리된 화두가 대략 네 가지 정도 있는데, 첫 번째는 “자립형 체계”에 대한 관심이다. “신 에너지의 창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공원과 같은 조경공간을 소비적 구조가 아닌 생산적 구조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땅을 공원으로 만들게 되었다 치자. 그런데 그 공원은 공원으로 조성되기 이전에 논이거나 밭이거나 숲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해내던 시기가 있던 대지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공원으로 그 땅이 바뀌게 되면, 그곳에서는 오로지 소비만 이루어질 뿐이다. 더구나 그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저탄소 녹색성장’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이미 소비를 줄이고 자족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에너지를 생산해내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공원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규모 공간이라면 몰라도,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그에 대한 고민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한다. 특히 대형 공원은 어떠한 제약도 없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태양 에너지의 생산이 가능하고, 그 에너지를 공원 내의 조명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자체적인 에너지 순환이 가능한 것이다. 또 시설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식재량을 늘려서 이산화탄소 저감에 기여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것을 비롯, 새로운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자립형 체계가 가능한지를 계속해서 찾고, 그런 고민을 디자인에 반영해보고자 한다. 그런 모색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면,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파주 Ubi Park에서 실제로 제안했던 것인데, 태양 전지판으로 둘러싸인 경관 구조물이 세워지게 되면,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로도 활용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색다른 경관요소가 되면서 동시에 에너지 발전소가 될 수 있다. 태양 전지판이 조경자재처럼 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다른 디자인이 결과로 나올 수 있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요즘에는 Auto Park의 구현을 모색중이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커나가는 공원을 우리가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4)
    형태: 보이지 않는 것도 디자인하는 형태적 상상력 리플 최근에 자하 하디드(Zaha Hadid ) “스타일”로 설계해달라는 암묵적인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클라이언트의 취향이니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검토해보겠다고 하고 흘려버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이번호의 주제인 형태와 지난호의 주제인 정체성에 관한 혼돈이 양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일이 일상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미장원에서 한번쯤 해봄직한 일, 잡지를 뒤적이며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과 같이 해달라고 주문하는 일 말이다. 원하는 스타일대로 척척 가공해주는 헤어스타일리스트가 유능한 걸까? 혹은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에게만 어울리는, 나만을 위한 마법을 부려주는 사람이 유능한 걸까? 우리는 고객이 주문하는 요구에 따라 어떤 형태(혹은 스타일)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설계가의 능력이 어떤 고객이 원하는 어떤 스타일로도 해줄 수 있는 다재다능함일까? 그렇게 된다면 설계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마치 “시그너쳐 룩”을 구사하는 패션디자이너처럼 설계적 정체성이 형태적으로도 존재해야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엉키면서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어렵고 무거우면서도 우리 주변 일상에서 늘 부딪칠 만큼 공기같이 가벼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정체성의 문제가 아주 쉽게 형태적 정체성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솔직담백한 얘기보따리를 풀어주신 정욱주 교수에 이어 이번 주제는 형태이다. 뒤져보니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설계를 하다가 끄적여놓은 단상의 흔적들이 형태에 관련된 것이 많다. 아마도 설계의 여러 단계 중에서도 합목적적이면서도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낯선“형태를 찾는 과정”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집착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이번호는 그렇기에 형태라는 큰 화두 아래 사라질 뻔했던 메모들을 정리하여 모자이크하는 식으로 구성해볼까 한다. 설계에 있어서 형태 케빈 린치(Kevin Lynch)와 개리 핵(Gary Hack)은『단지설계Site Design』라는 책에서 설계는 결국 특정 프로그램을 만족시키는 형태를 찾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설계의 범위와 정의, 그리고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는 해도 설계 혹은 디자인의 본질적인 측면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형태에 대한 논의는 설계에 대한 대화에 있어서 핵심적일 것이다. 모더니즘 건축의 모토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는 이전시대의 형태와 장식을 구별하여 가장 순수한 기능에 기초한 형태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에 기반한다. 역사적으로 건축물이나 정원 혹은 공원의 형태는 당대의 시대적 양식과 관련이 깊다. 쉬운 예로 유럽의 풍경식 정원과 정형식 정원의 뚜렷한 대비는 그 시대의 지배적인 미적 관점 혹은 문화적 양식이 어떠한 형태로 외부공간에 반영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다원화되고 단일한 양식이 지배하지 않는 현대에 있어서 건조환경의 형태 역시 다원화되고, 개별적인 설계가의 관점에 의해 부여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에 대한 준거는 매우 다양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조경설계에 있어서 형태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정의되고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소위“선빨”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우리는 형태에 대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왜 수많은 공원들은 지루한 형태적인 반복을 하고 있는가? 아마도 설계에 대한 고민 중 상당 부분은 형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형태에 대한 몇 가지 소주제를 통해“왜 이렇게 형태잡기가 힘든가”에 대한 냉정한 자기반성을 해보자.
  • 우연한 풍경은 없다(3)
    도시의 무지개, 우주가 보여준 찰나의 아름다움 찬란한 만남 위키백과에게 물어보니 무지개는 ‘공기 중에 떠 있는 수많은 물방울에 태양빛이 닿아 그 물방울 안에서 굴절과 반사가 일어날 때, 물방울이 프리즘과 같은 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그러니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수많은 물방울과 태양빛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를 보는 당신도 있어야 한다. 당신이 적당한 위치에 서 있어야만, 당신이 발견해주어야만 무지개는 존재한다. 이 삼자간의 대면이 있어야 무지개는 있다. 현상학적 표현으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우주, 무한을 바라보기 자연의 기본적 원소들인 공기, 물, 태양과의 만남. 궁극적으로 이러한 만남은 당신과 ‘우주’와의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도 있었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있을 근원적인 것들이 무시간적으로 순환하는 우주. 우주라는 커다란 단어 앞에서 ‘만남’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으니 우주의 현상을 잠깐 엿보는 순간이라고 바꿔 말해야겠다. 우리의 문명이 만든 세상이 전부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우주는 문득 문득 자신을 보여줘 도시 너머 ‘저기’가 있음을 암시한다. 누구는 계곡의 가파름을 가벼이 무시하고 즐기기도 하고, 또 누구는 분수라는 것을 발명하여 도시 속에 들여 놓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무지개는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다. 가끔은 우주를 만나자 이 도시에서, 우주를 만나자 혹은 무한을 바라보자. 시간을 쪼개어, 들로 바다로 산으로 달려갈 수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도시 안의 일상에서 ‘찬란하게 잠깐’이나마. 섬광같이 찬란히 빛나는 그 만남을 갖자.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상과 도시를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마음과 눈이 필요할 터이다. 누가 보건 말건, 우주는 자신의 순환을 지속하면서 무심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니, 찰나의 풍경을 엿보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 조경이라는 작업도, 공공미술이라는 작업도 우리를 순수한 자연의 한 요소로 되돌리는 그런 작업일 수 있으니, 우리부터 그런 감수성을 챙기자. 그리고 사람들이 가끔은 우주를 만나도록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