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회장에게 듣는다
(사)한국조경학회 차기회장(제20대) 양홍모전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0년 3월 26일 (사)한국조경학회 이사회에서 차기 학회장에 당선된 전남대학교 교수 양홍모입니다. 차기 학회장으로 선출해 주신 학회 고문, 임원, 회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경학회 회원 여러분들과 한국조경의 비전을 공유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조경의 큰 꿈을 나누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의 임기 중에 회원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하는 중요한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한국조경사회 차기회장(제16대) 이민우(주)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이사(사)한국조경사회(이하 조경사회)의 고문, 임원들을 비롯한 회원들의 격려와 성원 속에 차기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조경에 대한 식견이 아직 미흡한 저를 믿고, 열심히 일하란 뜻으로 밀어주신 여러분께 송구스럽지만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해 봉사와 희생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동안 전임 회장들의 활동을 보면 조경사회의 회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마치고 현재 감사직을 수행하면서 조경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회장단의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장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조경계 선후배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 속에서만이 조경사회의 발전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취임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30년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발전전략을 세워 나가겠습니다.
-
그랜트 존스, Jones & Jones Architects and Landscape Architects
Grant Jones이번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은 북촌마을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호텔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한옥은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자 한다면 좋은 장소가 되겠지만 일반인들이 사용해도 불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막다른 한옥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마당에는 Jones & Jones사의 대표이자 조경가인 그랜트 존스Grant Jones 씨와 그의 아내가 있었다. 존스 씨는 마당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부부가 시애틀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인터뷰는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마당에는 시애틀로 가져갈 여행용 가방들이 있었고 그의 아내도 분주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와의 동행을 서둘렀다. 차 안에서는 인터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먼저 이번 한국에서의 일정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존스 씨는 우선 한국에 많이 왔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다른 때보다 이번 방문은 더욱 좋았다고 하였다. 그의 대답을 듣고 미리 준비했던 내용은 아니지만 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 물어보기로 하였다. 또 그의 한국인 아내를 보고 나서 더욱 궁금해졌다.존스 씨는 한국에서의 스케줄을 마친 후이긴 했지만 인터뷰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웃음을 주었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의 전통성을 되찾는 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이야기 하였다. 본지에도 한국의 전통 명원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이 코너를 대할 때면 생소한 단어들로 우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서원과 경관을 이해하는 게 그리 쉽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존스 씨의 이야기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그는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에“I love earth”란 말을 꺼내었는데, 단순히 디자인을 하는 조경가의 모습 뿐 아니라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
숭례문 가설물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
숭례문, 복원까지 시민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 듯국보 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고 2년이 지난 현재는 문화재청이 복원을 위한 기초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복원공사에 착수한 상태이다. 이 복구기간동안 세워지게 될 가설물은 단순 가림막 기능이 아니라 시민들과 숭례문의 의미를 다시 이해시키고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됨을 알리게 된다. 이에 문화재청은 숭례문 가설물을 통해 숭례문 복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애호의식을 확대하고자 숭례문 가설물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였다.심사는 디자인 형태 및 색상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중심으로 숭례문 복구기간동안 국민들에게 숭례문의 복구현장임을 알릴 수 있으면서도 도심경관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중점으로 하였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최우수작 없이 우수 2점, 장려 3점, 입선 5점이 선정되었다. 숭례문은 이제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복원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기 보다는 숭례문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향후 새롭게 복원될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우수 2점과 장려 3점을 자세히 소개한다. 편집자주우수상 부재하나, 존재한다김동근, 최용기, 옥민진(동아대 건축학과)
우수상 숭례문을 기억하다김정훈, 정성구(한양대 건축과)
장려상들어열개문조성권, 강영구, 박준상(배재대 건축학과)
장려상숭례문을 품다최조훈(국민대 건축학과), 박용석(서경대 디자인학부)
장려상남대문은 ‘성문’이다정상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박찬미(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과)자료제공_문화재청
-
한강공원 디자인 벤치 설계공모전
The Competition for Design Bench of Hangang Park한강공원 이용특성 및 조형미와 실용성을 겸비한 복합기능적 벤치 디자인 선보여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는 지난 3월 25일 ‘한강공원의 장소성과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주제로 실시한 ‘한강공원 디자인 벤치 설계공모전’의 수상작을 선정·발표하였다.이번 공모전에는 총 159점(학생 59점, 일반인 100점)의 작품이 응모하였으며, 응모작을 대상으로 ‘한강공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창의성’, ‘실용가능성’ 및 ‘주변 경관과의 조화’, ‘한강공원 특성 반영정도’ 등을 중심으로 심사한 결과 천병우, 전일한 씨가 제출한 대상작 ‘틈’을 포함해 총 21점(대상 1점, 금상 2점, 은상 6점, 동상 12점)을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대상작 ‘틈’은 담 벽의 틈 사이에 자라나는 싹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벤치가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디자인 구조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_ 편집자주대상틈 _ 천병우, 전일한(원광대)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틈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바라보며 우리는 역경 속에 자리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담 끝자락 한구석 틈을 뚫고 조그마한 새싹이 머리를 치켜든다. 역경을 뚫은 작은 새싹의 속삭임은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틈은 우리에게 있어 한 가닥 희망과도 같다. 변화되어야 하는 것, 변화해야만 하는 것, 그 한 가닥의 희망을 만들고자 한다.
금상한강의 날개 _ 장선양(홍익대)· 강줄기를 닮아 굽어지는 벤치의 선 _ 한강의 강둑 물줄기가 떨어져 흐르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물이 떨어지는 시원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길게 꺾어진 선이 연결된 형태로 디자인했다. 7개의 물줄기가 모여 하나의 한강을 이루듯 가늘고 긴 나무 7조각이 모여 하나의 벤치를 만든다.· 작은 홈이 만들어 낸 두 가지 가능성 _ 벤치와 자전거 거치대를 결합시켜 경제적이며 쉴 곳이 필요한 자전거 이용자와 자전거를 위한 충분한 공간이 된다.· 자전거 통행 방향을 향해 뻗어있는 벤치 _ 자전거 통행 방향을 따라 디자인된 벤치 겸 자전거 거치대는 자연스럽고 손쉽게 자전거를 고정시킬 수 있다.
금상Bicycle Bench _ 김석훈(컬럼비아대)한강변 광역망 자전거도로가 구축되고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자전거 거치대와 벤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디자인벤치를 고안했다. ‘Bicycle Bench’는 정형화된 일반 벤치와 달리 자연지형의 유선형 디자인으로 시각적 편안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로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설치가 가능하다. 또 자전거 거치대로 활용함으로써 편리한 자전거 고정과 자전거도로 주변의 위험요소를 줄여 2차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특히 벤치와 자전거 거치대 설치 사업의 통합을 꾀해 예산절감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2009 푸르네 치유(치료)정원 설계 공모전
Purune Healing Garden Design Competition어린이들의 신체특성 및 심리상태를 고려한 창의적인 정원디자인 제시치료정원 전문회사 푸르네가 주최하고 월간<환경과조경>과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가 후원한“2009 푸르네 치유(치료)정원 설계 공모전”의 당선작이 지난 3월 31일 푸르네 홈페이지(www.ipurune.com)를 통해 발표되었다. “건강, 행복, 꿈의 정원”을 주제로 열린 이번 공모전은 “정원은 단순한 미적 공간이 아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갖게 하고, 행복을 만들어 내는 발전소이자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공간”이라는 배경 하에 사람의 일상을 담아내는 문화공간이자 치유공간으로서의 다양한 정원 아이디어를 모아보고 정보를 널리 공유하여 정원문화의 발전 및 확산을 취지로 개최되었다. 심사결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 전공의 이지현 씨가 제출한 “Garden CanCreate”가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최우수상, 우수상, 입선 각 2점 등 총 7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_ 편집자주대상Garden Can Create _ 이지현(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 전공)치료정원의 목표는 땅, 바람, 물, 식물의 요소를 통하여 초현실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양한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체험과 창조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시킨다.상상력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해당되며, 정원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끌어낼 수 있다. 진흙연못에서 땅을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낙서지형놀이터에서 땅을 밟고 구르고 뛰어논다. 정원가꾸기와 찰흙 조형, 낙서행위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오감을 깨우는 체험 학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형의 사면을 활용한 건축물은 문화센터, 도서관, 소극장 등의 프로그램을 수용가능하며, 이는 선형으로 외곽을 둘러싼 유리온실과 함께 연계하여 실내 치료 프로그램을 용이하게 한다. 선형의 프로그램은 캐스케이드로 연결되며 일반인의 휴게공간으로의 전이공간으로 활용된다.대나무 숲, 오솔길, 갈대 초지로 연결되는 선형의 프롬나드를 통해, 치유정원의 공간은 점차 확장하여 인능산 사면으로 확대될 수 있다.
-
고정희의 식물이야기(2): 도시의 계절
봄으로 오는 길올해는 유난히 봄소식이 더뎠다.봄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길고 험했던가. 눈도 많이 내렸고 많이도 추웠었다. 3월에도 일주일 간격으로 눈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다 영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도 되었다. 기다림에 지친 마음에 마침내 사방에서 피어나는 개나리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평소에 흔하디흔하고 지천으로 널린 데다가 도로변 경사면마다 늘어져 있는 늙은 개나리들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정원에도 절대 심지 않았던 구박덩이들이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분당에서 서울 강남으로의 출퇴근길에 이어지는 개나리 행렬들이 비록 햇병아리 색을 입고 있기는 해도 가만히 살펴보면 늙고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최소한 십 년 이상 새 개나리를 심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슬슬 세대교체를 해주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식물도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은퇴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특히 빼곡하게 밀식한 관목일수록 더 빨리 노쇠현상을 보이는 것 같다. 옆으로 퍼지지 못하니 길이 생장만 거듭하여 밑둥 부분이 서늘하게 비게 되는데 그 모습이 추래해 보인다.
도시 속에서 마치 길을 잃은 듯이 늘 엉거주춤해 보이던 진달래는 동병상련이랄까 늘 정감이 갔었다. 그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 올 따라 더욱 다정하 게 다가온다.조팝도 하얗게 피어나고 쥐똥나무의 잎들이 연두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운 좋게 양지에 자리 잡은 목련들도 만개하였고, 산수유, 생강나무 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마다 도로변마다 많이도 심어 준 벚나무 들이 기지개를 켜며 이제 그들의 시절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이미 서둘러 활짝 핀 벚꽃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그동안 벚나무를 많이 심어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그럼에도 벚나무 아래 개나리를 심은 것은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분홍과 진노랑의 얼핏 조화롭지 못한 배합만이 문제가 아니라 벚꽃의 아주 섬세한 핑크와 제대로 어울리는 색상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벚꽃이 만개하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사방에 가득해지므로 주변에 다른 색은 될수록 피해 주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벚꽃과 거의 동시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될수록 가까이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무슨 벚나무를 저리도 많이 심었나 하고 불평하던 지난 일이 떠오르고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간사하다 싶다. 그래서 혹독한 겨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이제 머지않아 철쭉이 온 세상을 진한 분홍으로 물들일 것이다. 철쭉과 영산홍이 지고 나면 우리의 도시들은 서서히 녹색만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며 가을에 단풍이 물들기까지 도시를 지배할 것이다. 계절을 색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우리 도시의 색은 벚나무와 철쭉으로 이루어진 봄과 단풍이 그려내는 가을 두 계절로 단순 압축되는 경향이 있다.물론 여름의 배롱나무가 있고, 원추리, 붓꽃, 옥잠화, 비비추와 맥문동이 있지만 녹색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한다면 큰 호수에 약간의 물감을 흘리듯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된다.도시 나무들꽃을 피우는 수많은 식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시조경에 개입시킨다면 도시가 좀 더 아름답고 명랑해 지지 않을까 싶다.우리가 만약 소나무를 향한 집착만 버릴 수 있다면 소나무 값으로 꽃을 피우는 수목들을 얼마나 더 많이 심을 수 있을까 하는 쓸 데 없는 계산도 해 본 적이 있다. 장송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하자 보수하다가 도산한 업체들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장송과 조형소나무를 향한 편애가 식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아예 식재에서 손을 떼고 시설물만 다루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분명 우리 조경계의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겠는데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막상 개선방법은 찾아지지 않는 것 같다.개인주택의 경우 건축주들과 대화를 통해 소나무를 피할 수 있기도 하지만 아파트, 주상복합 등 분양율과 낙락장송의 숫자가 함께 가는 프로젝트에서는 이들을 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어 보인다.소나무는, 특히 낙락장송은 멋진 나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들을 도시보다는 강원도 산속에서 보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한 그루의 장송이 되기까지 무수한 세월이 흘러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럼에도 극구 도시로 이식해 와 한 해가 지나지 않아 죽이 장송을 보호수종으로 지정하여 이식을 금지하는 법이 책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더 나아가서 장송뿐 아니라 산에서 수목을 채취해 와 도시에 식재하는 관례 자체가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 되새겨 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난 회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 조경에 적용되는 모든 식물은 묘목부터 별도로 재배되어야 한다. 이는 한편 산과 들의 식물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것이며 다른 한편 건강한 식물을 생산하여 건강하게 심자는 것이다.뿌리돌림도 제대로 되지 않고 수형도 변변치 않은 것을 수목이라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건전한 상도가 아닐 것이며 하자의 위험이 뻔히 보이는 식물을 구매하여 정원에 심는 것 또한 옳은 조경이라 할 수 없다. 높은 공사비가 책정된 고급 아파트 단지의 경우 PM들과 현장소장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나무, 소위“명품 수목”을 구해다 심기 때문에 준공 당시에 이미 숲을 방불할 경관이 연출되지만, 지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거리의 가로수로부터 아파트며, 공원에 심은 나무들까지 제대로 나무다운 것을 보기 힘든데 수목에서조차 사회의 양분화가 이루어지는가 싶어 심사가 어지럽다.도시의 얼굴이 되어 주는 가로수며 공원의 수목은 결국 우리가 우리의 도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의 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공공공간에 더욱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부지런히 꽃을 가꾸어 문화시민의 자격과 자존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명품 수목이라니,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에 명품 아닌 것이 어디 있던가. 작은 나무라도 소중히 여기고 작고 알차게 심어 크게 기르는 전통을 만들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무가 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를 소비하는 속도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야기 따라 밟아본 삼국지 유적과 경관(2)
천재 예형이 묻힌 앵무주를 조망하는 무한 황학루공융은 조조에게 글 잘하는 문사로서 예형을 추천한다. 황제에게 올린 표문에“눈에 한번 스친 것은 입으로 외우고, 귀로 한번 들은 것은 마음에 잊지 않으며, 성품과 도가 합치되고 생각은 신에 가까우니…”라고 칭찬했다. 조조 앞에 불려온 예형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천지가 비록 광활하나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라고 탄식한다. 조조는 불손하기 짝이 없는 그를 죽이지 않고 북치는 자로 명해서 욕을 보이고자 한다. 그는 헌 옷을 입은 채 북채를 들고 어양삼과漁陽三過를 치는데 그 음절이 지극히 묘하고 은은히 여운을 남겨 마치 금석의 소리 같았다.드디어는 부모님이 물려 준 정백한 몸을 들어낸다고 하며 알몸으로 나서서 조조에게 모욕을 준다. 장요와 허저 등이 죽이려하자 세상인심이 두려운 조조는 형주 유표에게 사신으로 보내고 유표는 다시 강하로 보내 황조를 만나게 한다. 예형이 황조를 “사당 안의 귀신같다”고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칼을 빼들어 목을 베었다.유표는 그의 재주가 아까워 탄식하면서 앵무주가에다 후히 장사를 지내주었다.조조는 예형이 황조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에 껄껄 웃으며“썩은 선비의 혓바닥이 칼날이 되어 제 몸을 스스로 찌른 격이로다.”라고 말한다.- 황석영『삼국지』2권에서 요약
예형이 죽은 앵무주라는 섬은 무한 황학루에 인접한 장강 위의 한 모래톱이다. 무한武漢은 호북성의 성도로서 한구, 무창, 한양의 세 도시가 1949년 병합해서 세운 도시이다. 삼국지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손권이 무창 남쪽 교외에 단을 쌓고 황제의 위에 올랐던 오나라의 수도였다. 황학루는 무한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강서의 등왕각, 호남의 악양루와 함께 중국 3대 명소이다. 황학루는 애초에 손권이 제위에 올라 세웠다고 하나 당 송 원 명 청시대에 계속 모양이 바뀌어 현재의 모습은 청나라 때 모습을 본떠 무한 장강대교를 놓은 후 만든 것이다. 각 시대별 황학루의 모습이 3층에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
옥산서원
Oksan Seowon옥산서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58에 위치하며, 면적은 26,075㎡로 선조 5년(1572) 경주 부윤 이재민李齋閔(1528~1608)과 유림의 공의로 문원공 회재晦齋이언적李彦(1491~1553)을 배향하기 위해 서원의 입지가 정해지고, 선조 6년(1573) 경주의 서악西岳향현사鄕賢祠에 있던 위패를 모셔와 창건하였다. 이후 선조 7년(1574“) 옥산玉山”이름으로 사액된 이후, 주향자인 이언적이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되는 등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2대 서원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경내에는 체인묘, 구인당, 민구재, 암수재, 무변루, 역락문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 조선조 선조 5년(1572) 경주 부윤인 서간 이재민과 유림의 공의로 회재1 이언적2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선조 7년(1574)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게 되었다. 이후 조선왕조의 서원 진흥책에 힘입어 발전을 보게 되었으며, 특히 주향자인 이언적이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되자, 그 영향력은 크게 증대되었다. 동서·남북 분당 이후 이언적이 이황과 함께 남인의 정신적 지주로 부상하자, 옥산서원은 도산서원과 더불어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 잡았고, 남인의 세력이 약화된 인조반정, 갑술환국 이후에는 집권 서인 또는 노론계에 비해 세력이 많이 위축되었다. 옥산서원이 중앙정계로부터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영·정조 때이다. 이후 서원의 남설濫設과 부패로 고종 5년(1868)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하게 된 서원이 47개가 있는데 그중에 옥산서원도 포함이 된다.3 현재 서원 내에는 정문인 역락문亦樂門,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체인묘體仁廟, 화합·토론 등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제기를 보관하는 제기실祭器室,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敏求齋·암수재闇修齋,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無邊樓, 이언적의 신도비神道碑를 모신 신도비각神道碑閣, 내사전적內賜典籍과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경각經閣·판각板閣4 등이 있다.立地_ 옥산서원은 동북쪽의 화개산華蓋山이 주산, 서쪽의 무학산舞鶴山, 북쪽의 자옥산紫玉山으로 둘러싸인 지형적인 조건과 전망 때문에 서향을 하고 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자계5 내 징심대와 세심대 일원에 입지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양동마을, 독락당6 등이 있다.
空間構成_ 1)配置形式서원의 배치는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일직선을 이루며, 중심축선상의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감을 가지며, 각각의 고유의 영역을 구성하면서,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전체적인 배치의 구심점이 되는 무변루, 구인당, 체인묘 일대의 공간을 핵으로 하며, 경각, 문집판각, 신도비각, 고직사 등이 지반의 차이를 두며 개별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7 특히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은 사람 키보다 높지 않게 조성되어 아늑한 위요감을 주며, 한편으로는 건축물과 자연 사이의 완충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를 공간 전이적인 면에서 보면, 서원의 진입로에서 먼저 측면의 담장과 함께 고직사로 통하는 문이 보이고, 우측에는 1972년 새로 건축된 청분각이 보이며, 좌측의 자계계곡과 함께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 앞의 넓은 공간이 사야에 들어온다. 역락문을 통해 들어서면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이곳을 건너면 무변루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펼쳐진다.8 정면에는 구인당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 암수재가 강당의 기단보다 낮은 단 위에 있으며, 동·서 재실은 서로 마주보며 대청과 온돌방의 위치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강당 앞마당에는 야간조명을 위하여 관솔불이나 기름을 올려놓고 태우던 정료대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전사청·신도비 등이 있다.
주석1.“회재(晦齋)”라고 한 것은 주희의 호인 회암(晦菴)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회재의 성리학은 퇴계에게 이어져 영남학파의 선구가 되었다. 한편 회재의 시호인“문원(文元)”은 조선조 도학의 선구자임을 나타낸다.2. 이언적은 중종 때의 성리학자이며, 문신으로 본래 이름은 적(적)이었는데, 후에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덧붙여 언적으로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언적은 주희의 주리론(主理論)적 입장을 성리학의 정통으로 밝힘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설서(說書), 이조 정랑, 홍문관 교리, 직제학, 전주 부윤, 이조, 예조,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명종 2년(1547) 이른 바“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江界)에 유배된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3. 일반적으로 서원에는 연혁을 간단하게 기록한 고왕록(考往錄)이 있는데, 옥산서원의 경우 19세기「고왕록 1집(1816-1873)」만이 전하고 있는 바, 최초 창건 당시 전사청 및 고직사 부분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최초 40여 칸이었다는 것과 1816년 고청에 대한 중수기록이, 1835년에는 판각(板閣)에 대한 개축이, 1839년에는 강당에 불이 나 이듬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4. 옥산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두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사저에 있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은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삼국사기》《해동명적》《이언적수필고본일괄》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5. 서원은 앞으로 흐르는 자계(紫溪)의 너럭바위 위에 위치하며, 너럭바위는“세심대(洗心臺)”라고 불리는데, 계곡물이 이루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6. 독락당(獨樂堂)은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이다.조선 중종 11년(1516년)에 건립된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1칸×2칸)과 대청(3칸×2칸)으로 되어 있다. 특이사항으로는 독락당 옆쪽 담장에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살창을 통하여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특출한 공간구성과, 독락당 뒤쪽의 계정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보여준 것이다.7. 역락문에서 체인묘까지는 크게 4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에 강학공간인 구인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낮은 단부터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1개의 축에 놓여있어, 상, 중, 하의 위계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정신적으로도 제일 높은 곳에 사묘를 두어 성현에 대한 존엄과 외경심을 높이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이는 성리학의 근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경(敬)”의 공간이 위계적 질서체계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8. 역락문과 마당과의 1.6m의 단 차로 인해 루 하부의 문을 통해서도 마당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며, 누하(樓下) 진입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무변루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강당인 구인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
도시기반시설, 그 새로운 가능성: WPA 2.0 공모전
The New Possibilities of Urban Infrastructure: WPA 2.0레비아탄(Leviathan)콜린 로우(Colin Rowe)는 그의 저서『선한 의도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Good Intentions)』에서 모더니즘은 스스로를 “선한 과업(the Good Works)”이 종국에는 지상의 낙원을 이루리라 믿었던 종교로 여겼다고 지적한다. 모더니스트들은 계획의 가치를 믿었으며 도시를 혼란에서 질서의 세계로 이끌어줄 명확한 이념의 가능성을 신봉했다. 계획을 적용하는데 있어 모더니즘은 그 무엇보다도 기반시설에 중점을 두었다. 우리가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선 계획,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의 산업 도시, 그리고 안토니오 산엘리아(Antonio Sant’Elia)의 신도시 계획이 그려낸 전기 문명에 대한 환상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의 근대성은 기반시설에 달려있었다. 그 이상을 실현시키는 기반시설이 없었더라면 모더니즘 건축은 낡은 본체에 새로운 옷만 입힌 모조품에 불과했다. 르 꼬르뷔제는 “기술자들은 우리를 자연의 법칙과 조화시킨다”라고 말한다. 건축가들이 아직 환영에 불과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자들이 기반시설을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모더니스트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기반시설이 지배하는 새로운 도시 문명에 대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오늘날 도시의 물리적 실체는 기반시설에 의해 규정된다. 전기송전시설, 상하수도 체계, 고속도로, 그리고 쓰레기 처리시설까지, 그 어느 하나라도 작동을 멈추어 버린다면 오늘날의 도시는 단 하루라도 존재할 수 없다. 모더니즘의 묵시적 예언이 예견했듯이 현대 도시 문명은 과학과 기술이 이룩한 기반시설 위에 다시 건설되었다. 하지만 기반시설은 도시의 생산적 활동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조적 장치였을 뿐 그 자체로는 의미를 지니지 못했으며 그래야 할 필요도 없었다. 기반시설은 항상 다양한 변수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도시적 흐름의 일부가 아니라 항시 예측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학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기반시설의 목적은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기를 공급하며, 지역 간의 이동 시간을 단축시키고, 치명적인 오류를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속도와 효율성, 그리고 예측 가능성, 이것이 기반시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덕목들이었으며 이는 20세기의 근대성이라는 이념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확히 일치했다.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신(巨神)들은 인간의 거주 영역을 극한까지 확장시켰다. 인간이 살 수 없었던 사막이 거대한 도시로 바뀌었으며, 도시의 영역은 수백 킬로미터로 확장되었다. 기반시설이 거대해지고 효율적이 될수록 인간의 탐욕을 제어하던 물리적, 인식적 경계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모더니즘이 그리던 유토피아의 풍경은 점점 디스토피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효율과 속도의 신화는 어느 한 변곡점에서 붕괴된다. 고속도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정체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으며, 속도의 환상이 가져다주리라 예상했던 쾌적함 대신 치명적인 오염이 도시를 습격했다. 효율적인 수해 조절을 위해 건설된 수백 킬로미터의 콘크리트의 수로들은 악취가 풍기는 하수구가 되어버렸다. 항시 가치중립적인 기술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반시설은 이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님비(Not in my backyard)’. 이 정당한 집단적 이기주의는 다름이 아닌 기반시설에 대한 단적인 혐오의 표현이었다. 이제 도시의 거대 기반시설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도시의 조직을 단절시키며, 지가를 떨어뜨리고 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흉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의 도시는 기반시설이 만들어 놓은 체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생수의 촉수가 이미 숙주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고들어간 두 유기체처럼, 도시는 복잡하게 얽힌 기반시설이 공급해주는 영양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그 혐오가 증가될수록 기반시설은 그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아 거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혐오의 극단은 또 다른 유토피아적 환상을 제시한다. 보스턴 시내를 관통하던 I-93 고속도로는 20년에 걸친 공사를 통해 지하화되고 그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섰다.보스턴 빅딕(Big dig)의 세배 규모에 달하는 마드리드 M-30 고속화도로도 지상부를 강과 도시에 내어주고 지하로 감춰줬다. 서울시의 흉물이었던 청계고가도로는 철거되어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는 새로운 청계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기반시설을 지상에서 추방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의 녹지 공간으로 만드는 이 혁신적인 발상은 성공적인 도시 재개발의 사례로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6.5km의 고속도로를 공원으로 바꾸는데 2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 빅딕이 수천 킬로미터의 고속도로가 얽혀 있는 기반시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자유롭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반시설과 도시가 함께 공존해야할 수밖에 없다면, 그 공존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WPA 2.0 공모전은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WPA 2.0UCLA 건축학과 소속의 연구실인 시티랩(cityLAB)은 기반시설을 주제로 한 공모전을 개최한다. 오늘날의 도시적 상황 속에서 기반시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열린 WPA 2.0 공모전은 특정한 대상지도, 제약 사항도 주지 않은 자유로운 형식의 아이디어 공모전이었다. 공모전이 제시한 기반시설이라는 주제의 범위 역시 도시적 활동을 지원하는 모든 물리적, 비물리적 장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공모전의 대상은 공원, 학교, 수변 공간 등의 공간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었으며, 도로, 매립지, 상하수도와 같은 고전적인 기반시설도 가능했고, 법·제도, 자금 지원책, 인터넷 시스템과 같은 무형의 제도적 장치여도 상관이 없었다. 때문에 두 단계로 이루어지는 이 공모전의 첫번째 과제는 기반시설과 관련된 의미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했다. 참가자들이 선택한 주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당위성을 지녀야 하지만, 아이디어 공모전이라는 특성상 그 해답이 자명한 문제는 피해가야 했다. 혹은 문제 자체는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이 아직까지 제시되고 있지 못하거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제시되어야 했다.신선한 공모전 주제 못지않게 이 공모전의 진행 방식 역시 일반적인 공모전과는 전혀 달랐다. 첫 단계를 통과한 팀들은 구체적으로 안을 더욱 발전시켜 최종적인 안을 만들게 된다. 최종 경쟁팀으로 선정된 팀들은 워크숍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했다.기반시설이 이룩한 상징적인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첫째 단계에 제시한 안들을 정책, 에너지, 공학, 농업, 계획, 시장 분석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발표하고 조언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뒤 각 팀들은 얼마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워싱턴 D.C.에서 심포지엄에 참여한 뒤, 심사위원단, 기반시설 전문가들,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기반시설 지원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정부 관료들 앞에서 최종안을 발표하게 된다. 이 때 발표 양식은 반드시 동영상이어야 했다. WPA 2.0은 공모전이라기보다는 마치 학교의 스튜디오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모전은 참여한 팀들에게 상금을 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답사, 토론, 워크숍, 심포지엄 등 혁신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안을 발전시킬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분명 이 공모전은 단순히 몇 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이 공모전의 목적은 도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지만 도시적 담론에는 속하지 못했던 기반시설을 다시 생각하고 도시기반시설과 오늘날의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있었다.
-
성호엔지니어링 최기호 부사장
“최기호 부사장은 여전히 손으로 작업하고 트레싱지를 애용한다. 조경계에서 가장 많은 트레싱지를 소비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특히 계획안의 틀을 잡을 때면 상당한 트레싱지가 필요하다. CG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랜더링 작업을 하던 시절 그는 섬세하게 마커와 색연필을 사용해냈었다. 또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서 어떤 때는 식사도 거른 채 담배만 피워가며 계획안을 잡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 속도는 빠르다.” 위의 문장은 여러 사람들이 최기호 부사장에 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종합하여 표준화시켜본 것이다.
손, 트레싱지, 마커, 색연필, 담배최기호 부사장에 대한 언급에서 뽑아낸 사물들. 아날로그적 사물들이다. 실제 그의 작업도 아날로그적이다. 아날로그적 작업은 물질의 작업이고 몸의 작업이다. 같은 색연필이라도 깎인 상태, 잡는 각도, 힘의 정도에 따라 선의 굵기와 톤은 달라진다. 또 손목의 놀림에 따라 곡선은 다른 모습을 갖는다. 미묘한 색연필의 변화가 갖는 효과와 곡선의 서로 다른 맛에 대한 터득은 매뉴얼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경험치를 통해서고, 머리보다 몸이 더 잘 안다. 또 그래야 그 미묘함을 행할 수 있다. 경험치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물론‘훈련’일 게다. 손이 내 의도를 거스르지 않고, 어떤 때는 내 의도를 손이 먼저 아는, 손과 생각이 포개져 그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에 이르러야 작업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 자신의 부족한 경험은 선배의 경험으로 메워야한다. 사수라는 존재가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이다. ‘UNDO’라는 명령어가 없으니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