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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작은 디테일부터
    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경이 항로를 잃은 배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건설 경기의 침체로 건축과 조경 분야가 위축되었고, 자구책을 마련하며 이겨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조경가가 내뱉는 말은 “그저 버텨야죠” 일색이다. 설상가상으로 업역 다툼도 한층 치열해졌고, 우후죽순처럼 발전을 거듭하는 중국 조경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조경이 외적으로 풍성함을 누렸던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아파트 분양 자율화에 있었다. 거주보다는 부동산 투자의 방편이었던 아파트 건설열풍에 편승해서 한국 조경은 디자인의 질적 향상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조야한 화려함에만 치중해 왔다. 조경의 가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눈에 보이는 큰 그림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은 디자인 디테일부터 고민하고 노력했어야 한다. 아주 작은 눈짓이나 입가의 미소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듯, 공간의 섬세한 디테일이 공간의 이미지를 높여준다. 갑자기 폭증한 일감, 적은 설계비, 까다로운 발주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디테일 개발을 소홀히 하고 기성품으로 조경 설계의 내용을 채웠다. 새로운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디테일을 고민하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디테일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편하게 넘어가곤 했다. 건축, 도시, 토목 분야와 차별화된다고 우리 스스로 자부하는 식재 설계 디테일 도면도 누구나 쉽게 베껴서 할 수 있는 수준의 디자인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조경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무기를 녹이 슬 때까지 방치한 것이다. 새로운 재료, 공법, 가공 기술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기는커녕 설계 물량의 양적 풍성함에 취해서 전문적인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조경의 회복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시점이다. 조경만이 해낼 수 있는 디자인 디테일을 발굴하고, 결과물을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점을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후속 프로젝트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디자인 디테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토론과 논의 또한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조경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과 정체성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할 때 조경가는 도시의 일부분만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를 넘어서 도시의 가치를 높이고 정체성을 바꾸는 전문가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전문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되 우리가 간과하며 지나쳤던 작은 디테일부터새롭게 주목한다면 조경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1983년부터 조경 디자인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기반에서 시작했지만 그 덕분에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세부 시공까지 하나하나 경험하며 일할 수 있었다. 기성품이 없어서 의자, 퍼골라, 휴지통, 안내판, 지주목, 미끄럼틀, 그네, 조합놀이대, 수경시설 등 모든 것을 직접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섬세한 디테일을 고려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경험을 내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한국 조경의 다음 세대에게 다양한 디자인과 새로운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젊은 조경가들이 한국 조경의 희망이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교육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과 디테일을 경험하며 고민해 온 신진 조경가 그룹이 이제 한국 조경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고 조경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리라 믿는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그들이 한국 조경의 다음 패러다임을 열어줄 것을 기대한다. 작은 디테일 디자인부터 도시의 비전을 계획하는 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그들이 감당할 것이다. 건축과 대화하며 도시를 다시 살리고 바꾸어 나갈 것이다. 단순히 보기만 좋은 도시가 아니라 활력 있고 생기 있는 도시를 만드는 그런 조경가가 되어야 한다. 환경의 질뿐만 아니라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살리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그런 디자인을 선도해야 한다. 새로운 장을 열어갈 젊은 조경가들에게 한 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조경가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웬 뜬금없는 사랑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다른 이름은 관심과 애착이기도 하다. 조경가는 땅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그 지역을 사랑하며 디자인한다면, 그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도시는 아름답게 될 것이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덮는다.” 사랑 가득한 도시를 만들어갈 그들의 미래를 기대한다. 최신현은 우대기술단 조경사업부를 거쳐 2003년 씨토포스를 설립했다. 북서울꿈의숲, 대구 두류공원, 고령 대가야 역사테마파크, 진주 만경지구 남가람 문화거리, 아양교 조형물, 대구 동구청앞 광장, 무안 회산 백련지 등 다양한 층위의 작품을 설계하였으며, 서서울호수공원으로 미국조경가협회상(ASLA ProfessionalAwards)을 수상했다. 동탄2신도시 워터프론트, 신월정수장 부지공원화, 의정부 역전근린공원(캠프 홀링워터), 충북 음성 혁신도시 등 다수의 설계공모에서 당선되었고,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조경사회 수석부회장, 서울시 공공조경가그룹 위원,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 [에디토리얼] 가출하자, 조경 3세대
    30대 조경가 30인의 성장사와 비전을 다룬 이번 호의 특집 ‘조경가로 자라기’를 준비하며, 그리고 그들이 보내온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20년 전 영화를 떠올렸다. 그들이 대학 생활을 시작하거나 10대였던 1994년의 영화다. 스테판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탈출’자가 들어가는 제목, 자유를 강조하는 진부한 모토,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비를 맞는 포스터는 ‘빠삐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감옥 영화의 아류일 거라는 첫인상을 준다. ‘감옥 안의 혹독한 환경과 비인간적 실태를 과장해서 스케치할 테고, 결국엔 아주 극적으로 탈출하겠지, 뭔가의 정치적 냄새가 약간은 배어 있을 거고….’ 하지만 쇼생크 탈출은 빠삐용의 재탕이 결코 아니다. 감옥 쇼생크는 장기수로 가득하다. 화면의 쇼생크는 몇 가지 위협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안하다. 그 극한의 위협이라는 것도 반사적으로 몸 사리고 조심만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정도다. 이 감옥에서 삶의 목적은 감옥 외부로부터의 격리다. 감옥외부를 향한 자유를 저당 잡힌 채 감옥 안에서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쇼생크의 생활에는 내일에 대한 긴장이나 경쟁이 가져오는 불안이 없다. 그곳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단조롭기때문에 불확실성이 불러오는 공포도 없고 책임 때문에 갖게 되는 삶의 무거움 역시 없다. 이런 감옥에 인간은 길들여진다. 쇼생크는 그러한 길들여짐이 초래하는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길들여진 인간에게 탈출은 무의미하고 자유는 무용지물이다. 운이 좋아 형기를 덜 채우고 석방된 노인 죄수들이 감옥 밖에서 겪는 부적응은 불안에서 공포로, 공포에서 자살로 이어진다. 이런 길들여짐은 이데올로기이거나 심리적 변화이기에 앞서 습성의 일상적 조작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셸 푸코는 근대의 미시적 권력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감옥을 실례로 든다.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늪과 같은 감옥을 뛰쳐나가기 어렵게 된다. 게으르고 안일하며 권태로운 감옥의 습성에 의해 그 외부의 세계는 지워진다.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은 그 안의 존재로 제한되고 그 밖을 향해서는 모든 것이 차단된다. 그래야 감옥에 머물 수 있다. 감옥의 의미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군대로, 학교로, 전문 분야나 집단으로. 우리의 ‘조경’과 ‘조경학’도 쇼생크와 다름없는 감옥이다. 조경 1세대는 제 발로 쇼생크로 걸어들어 왔다(물론 다른 감옥의 1세대도 다 그러하겠지만). 그들은 좋은 안전울타리 속에 좋은 감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틀 속에서 길들여져 갔다.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편안한 감옥이 있었던 것이다. 조경 2세대는 아마 1세대의 감옥에 불만을 느꼈을 것이다. 저 철망만 통과하면 좀 더 나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 거라는 낭만적인 낙관에 들떴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불확실한 자유보다는, 새로운 내일의 책임보다는 길들여짐을 선택하는 게 백배 낫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군의 2세대는 앞 세대가 가꾸어 온 감옥을 벗어나고자 여러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 다양한 갈래의 길들을 여기서 나열하는 건 그들이 맞이한 또 다른 길들여짐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그들 역시 길들여짐의 평화를 체득하게 되는 길 위를 걸었다. 감옥을 뛰쳐나오기보다는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다고 혼동한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는 위험을 감수하고 ‘피가로의 결혼’을 감옥 안에 바람처럼 울려 퍼지게 한다. 마치 키에르케고르의 ‘영원한 순간’처럼, 그 순간에 도취된 모든 수인囚人들은 자신이 감옥 밖에 서 있다고 느낀다. 이 조경 2세대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혼동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자유라면, 그것은 자유의 길들여짐에 대한 궁색하고 초라한 인정에 불과하다. 쇼생크에서 앤디의 존재는 메시아와 다를 바 없다. 그는 감옥의 습성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 내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브룩스 도서관’은 감옥 안에 존재하는 감옥의 외부였다. 쇼생크에 단순히 매몰되어가던 수인들은 이 도서관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이 세계는 격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유일한 세계였다. 그렇지만 그 세계에 누구보다도 만족한 인간은 앤디 자신이었을 것이다. 20년을 버텼다. 탈옥을 결단한다. 하지만 탈옥 ‘이후’의 준비를 결코 간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영화적’ 실험이 앤디를 반긴다. 조경 3세대, 어디서부터 누구부터 시작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조경 3세대, 그들은 앞선 두 세대의 감옥을 극복해야 한다. 감옥과 탈출의 상징성이 너무 과격하다면 이렇게 말해 보자. 지키느라 불안하고 넓히느라 피로한 집안―조경―을 ‘가출’해 제대로 된 가문을 한번 일으켜 보자고. 우선은 앤디가 되어야 한다. 찬찬히 치밀하게 준비하고 감옥 안부터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앤디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앤디의 탈출이 다다른 곳은 막막하고 막연한 공간이었다. 온통 비어있는 바다와 모래사장에는 허무한 호흡만 가득했다. 영화는 애써 기적적인 자유를 서사적으로, 낭만적으로 극화했지만, 앤디의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세상과의 완전한 절연이었다. 비존재의 확인이었다. ‘부자유의 부재’와 ‘자유의 존재’를 명증하게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어떤 가출이 참다운 가출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 어떻게 가출해야 할지, 우리는 안다. “생각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조경 3세대가 길들여짐을 뛰어넘어 자유를 품는 ‘가출’의 첫 걸음이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다르게 생산하고 공유하기
    잡지사의 편집부에는 매달 새 책이 쌓인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전문지이니 대개 조경, 원예, 건축, 도시 관련 신간이 보도자료와 함께 도착한다. 그 가운데 새 책 담당기자의 안목 그리고 선배 기자들의 간섭(!)과 추천으로 서너 권의 책이 선정되어 이 달의 ‘새 책’ 꼭지가 꾸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루는 색다르게도 인터넷 관련 신간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텔레코뮤니스트 선언The Telekommunist Manifesto』.1 사실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의 오마주인 듯한 제목보다는 그 밑의 부제목에 눈이 갔다. “정보시대 공유지 구축을 위한 제안, 카피파레프트와 벤처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공유지’ 그리고 ‘카피파레프트’란 단어에 눈길이 닿은 것이다. 사실 요즘 ‘공유’란 용어가 흔하게 쓰이는 만큼(비슷하게는 ‘공동성’, ‘공유 도시’, ‘공유 경제’ 그리고 ‘공공 공간’에서 ‘셰어하우스’까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카피파레프트’는 낯선 단어이기는 해도 카피라이트 혹은 카피레프트와 같이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이야기이리라 짐작되었다. 이 문제 역시 설계 분야와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설계공모에서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상금을 걸고 안을 공모한 발주처에 저작권이 돌아가야 하는 가, 아니면 창작자인 설계자에게 있는가 등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둘다 ‘올바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함께 놓기 어려운 두 개념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는 지 궁금했다. 그런 연유로 새 책 담당 기자에게 압력을 넣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은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공유’에 관한 통상적 이해를 뒤집는다. 흔히 웹2.0으로 통칭되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유튜브 같은 커뮤니티 공유 사이트의 등장은 과거 콘텐츠의 일방적 수용자를 직접적인 생산자이자 유통자로 참여하게 하면서 수평적 소통과 자유로운 협력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이너Dmytri Kleiner는 과연 웹2.0이 새로운 소통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는 혁명적인 모델인가 질문한다. “웹2.0은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적으로 포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례로 “유튜브의 진정한 가치는 사이트 개발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비디오를 올리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유튜브가 10억 달러가 넘는 주식으로 구글에 매각될 때 이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이 받은 주식은 얼마나 되는가? 아무것도. 전혀. 없다.” 웹2.0 기업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발행하기 위한 수단이 없는 사용자들의 ‘집단 지성’을 중앙 집중화시켜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유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실제 물리적 세계인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지리학자인 하비David Harvey는 『반란의 도시Rebel Cities』2에서 도시를 “온갖 유형,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고 적대하면서도, 하나로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공유재common를 생산하는 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가 활기찬 거리, 다채로운 다문화 생활양식 등 그 지역의 ‘개성’을 부유층에 매각”하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를 거론한다. “지역 원주민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유재를 약탈당할 뿐만 아니라 종종 지대와 부동산세가 치솟는 바람에 쫓겨나기까지 한다.” 때로는 재활성화 정책으로 지역에 근근이 남아 있던 활력이 사라져 공유재 자체가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뉴욕 소호 지구의 활력은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가면서 망가져갔다. 그리고 이 활력을 만들어냈던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빠져나가게 된다. 우리 도시에서도 가회동이나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러한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유지·공유재를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 가? 클라이너는 ‘또래생산peer production’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용어는 하버드 대학교 법대 교수인 요카이 벤클러가 자유소프트웨어와 위키피디아 그리고 유사 작업들이 생산되는 방식을 기술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래생산은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 ‘비경쟁적인 자산’으로서 공유지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재생산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산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꿀 수 있을 까? 바꾸어 말하면 또래생산자들이 자신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물질적 필요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클라이너는 독립적인 또래peer들 간에 필요한 물질 자산을 배분하는 시스템인 ‘벤처 코뮤니즘’을 제시한다. 벤처 코뮤니즘이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모델이라면, 카피파레프트 copyfarleft는 비물질 재화를 공유지로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배타적 권리인 카피라이트는 ‘창작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클라이너는 사실 이것이 보호하는 것은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물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기업의 수익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카피라이트를 비판하며 나온 것이 안티카피라이트anti-copyright나 카피레프트copyleft다. 둘 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비-소유의 공유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은 해당 라이선스를 어기지 않으면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클라이너는 카피라이트의 대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크리에 이티브 커먼즈(CC)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CC에서 저자는 다른 이용자들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저자 자신이 상업적 이용의 권리를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저작물은 전혀 공유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카피파레프트를 주장하며 상업적 이용에 대한 계급적 제한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다. 노동자 소유 기업은 카피파레프트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적 소유 기업의 사용은 제한된다. 카피파레프트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 공유지에 기반하지 않은 사용을 제한하고자 한다. 클라이너가 주장하는 공유의 방식을 실제 물리적 공간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과 가치를 공유하려는 창작자들에게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이번 호에 실린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에서 그런 실마리를 찾게 된다. 필자인 유영수 소장의 말을 다시 옮겨본다. “이 같은 공모과정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보다 각 팀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각자가 수행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 전체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려는 공통의 목적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공모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지적 결과물은 어느 팀에 제한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 보행자를 위한 도시 정책 2014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보행도시포럼
    지난 7월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보행자를 위한 도시, 정책 현안과 과제’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2013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의 10대 사업의 일환으로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과 ‘아마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가 보행자 관련 법제 개선 방안, 각 사업의 기획 취지와 의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 등을 공유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점검해 보고자 자리를 만든 것이다. ‘아마존’ 프로젝트 첫 번째 주제 발표에서 다뤄진 ‘아마존amazone’은 그 아마존amazon이 아니다. 현재 시범 사업이 시행 중인‘아이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존zone’의 약자로, 그 성격은 어린이보호구역과 유사하다. ‘아동 교통사고 및 범죄 예방 그리고 쾌적한 보행 환경의 조성’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학교 근처의 도로에 국한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주변 공원은 물론이고 학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행동반경 전체를 포괄한다. 발표자 심한별 연구원(서울대학교 공학연구소)은 “보행자 우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적극적 시도였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이 보행 환경이라는 쉽지 않은 대상을 다루었다는 점과, 그동안의 접근법과는 다른 시도였기에 학부모의 반발로 인해 사업 진행이 어려웠다는 점도 토로했다. 덧붙여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인식이 널리 확산된다면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 취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판 ‘보차공존도로’ 도입 두 번째 주제 발표는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 추진현황과 과제’였다. ‘보차공존도로shared street’란 현재 시행 중인 ‘보행자우선도로’의 도입 배경이 된 시스템으로서 물리적인 공간 분리나 특정 시설물, 교통 규제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도로 이용 주체간의 자율적인 배려와 상호 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도로 운영 체제를 말한다. 남궁지희 연구원(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은 보차분리 방식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보행자우선도로의 설계 목표와 전략을 설명했다. 남궁 연구원은 “물리적 시설과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보행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국내 도로 상황에 적합한 설계 기법 개발과 보행자의 우선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현실성 없는 ‘도로교통법’ 김지엽 교수(아주대학교 건축학과)는 ‘보행자 관련 법제 현황과 개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도로교통법’ 제8조와 제10조를 예로 들며 “현행 도로교통법과 관련 판례는 보행자의 안전이나 권리보다는 차량의 통행 및 운전자 보호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렇게 자동차 위주로 구성된 법 체계는 국민 대다수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며 현실성 없는 법률의 개정을 촉구했다. 아울러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보행자와 자동차가 공존할 수 있는 법 제도를 갖춰야 하며,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은 박소현 교수(서울대학교 건축학과)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병민 사무관(국토교통부 도시정책과), 이원목 과장(서울시 보행자전거과), 김종식 팀장(성북구 교통행정과), 김중효 선임연구원(도로교통공단 교통공학연구실), 오성훈 본부장(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이 참여하여, 보행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현재까지의 성과에 대한 진단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행 상의 어려움도 주목을 끌었지만, 그보다는 김종식 팀장의 한 마디가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김 팀장은 “이 자리에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경찰 관계자가 같이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분들이 오지 않았다”며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발주처와 전문가만의 토론회는 반쪽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좌장을 맡았던박소현 교수의 말처럼 1년 후에 이런 자리가 다시 만들어 진다면, 양쪽 모두의 토론다운 토론을 듣게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번 토론에서는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누구보다 ‘보행권’을 보장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직접 들을 수 없었다.
    • 양다빈
  • 남산 공원 연구로 본 근대 공원의 민낯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이 세워진 지 올해로 11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공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근대 공원의 일면을 조명한 연구가 발표됐다. 지난 6월 26일,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빨간벽돌갤러리에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이 열렸다. 세션1에서는 ‘남산의 근대화로 본 서울의 수도성’을 주제로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의 “이토 츄타와 조선신궁”,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근대기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한국 도시공원의 일면”, 염복규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의 “일제하 조선의 전원도시론 수용과 남산 남록 개발 논의의 의미”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세션2에서는 ‘동아시아 수도의 근대화’를 주제로 박삼헌 교수(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의 “도쿄 투어리즘과 ‘제도帝都’, 도쿄의 탄생”, 신규환 교수(연세대학교 의사학과)의 “20세기 전반 북경의 도시공간과 위생”, 이길훈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철도로 본 도쿄의 근대화”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 심포지엄에서 박희성 교수의 발표는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였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일본인’을 위한 공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공원은 오늘날 서울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인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연인들이 남기고간 수천 개의 자물쇠가 달린 조망대, ‘남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남산 왕돈까스’까지 남산공원과 남산을 둘러싼 일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남산에 생긴 첫 공원인 왜성대공원의 개원 당시(1898년 11월, 대신궁 봉안식 기준) 남산 일대는 일본인을 위한 행락지로 개발됐다. 왜성대공원이 자리했던 남산의 북사면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주둔했던 곳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본정통과 인접하며 이후 조선신궁이 세워져 종교적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다. 박희성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근대 공원의 일면을 포착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시민 사회의 성숙과 함께 자생적으로 ‘공원park’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한, 일본식 공원’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초기 근대공원의 한계를 조명했다. 공원park과 정원garden, 공공정원public garden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었던 당시 일본의 조원학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엄밀한 의미의 공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공공 정원에 머물게 되었다는 요지다. 또한 박희성 교수는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공원과 행락 문화가 결합한 일본 특유의 양식이 남산에 조선신궁이 세워지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발표에 관해 토론의 패널로 참석한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남산 공원은 우리와 친숙한 곳이지만 그 족보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는 데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공공 정원과 공원의 개념 정의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시민에게 건강과 휴식, 레크리에이션 기능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공 정원에 적합하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 정원의 개념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식물’이라며 초창기의 근대 공원이 식물원과 과수원을 포함한 식물과 관련된 시설을 어떻게 갖추고 있었는가가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 지난해 한 인터넷 신문에 “남산 케이블카 ‘오 마이 갓’, 볼거리 부족 ‘오, 노’”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고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며 실망감을 안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은 케이블카, 서 울타워, 야경 등의 파편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만 기억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남산이 축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지층이 깊고 두터움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기에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은 의의가 있다.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어원과 개념,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뿌리를 더듬으며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은 당시의 근대성을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근대 도시 공원의 일면을 추적한 박희성 교수뿐만 아니라 조선신궁의 건립 이유와 양식과 유형을 연구한 우동선 교수, 남산주회도로 부설과 고급 주택지 개발 등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전원도시론을 연구한 염복규 교수는 남산 일대의 근대화 과정을 재구성하며 남산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심포지엄은 ‘근대이행기남산’을 조경적, 건축적, 도시학적 시각을 통해 봄으로써 서울에 근대적 요소가 유입됨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변화·재편되었는지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도시가 한 가지 얼굴로만 보인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로만 인식되던 서울의 민낯을 본 듯한 느낌이다.
    • 조한결
  • 도시, 캔버스가 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아름답게 세상을 입히는 삶, 관심 있게 잘 감상했습니다. 정말 감동이네요.” “숨 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군요.” “이면지 도시에 젊음이 색을 입혔네요. 그들의 열린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앱솔루트Absolut의 2분 40초짜리 광고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www.citycanvas.kr). 지난 6월 13일에 업로드 된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City Canvas 광고는 현재 35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앱솔루트 페이스북 페이지의 시티 캔버스 게시물에는 2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고 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한 골목길은 블로거 사이에서 새로운 출사出寫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브랜드 정신인 ‘트랜스폼투데이Transform Today’를 모토로 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티 캔버스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서울 도심을 캔버스삼아 젊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거리를 예술적으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40명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가회동, 문래동, 성수동, 이태원, 홍대 등 서울 시내 주요 장소 5곳을 선정해 5월 2일부터 18일에 걸쳐 완성했으며 완성작은 6월 16일에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공사장 가벽, 철공단지의 골목길, 주택가의 외벽, 지하철 교각 등 도시의 미관을 해치거나 무심코 지나칠만한 평범한 공간이 예술가의 손에서 생동감 넘치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특히 공공을 위한 예술 사업을 정부나 사회단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앱솔루트의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호응을 샀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한 누리꾼은 “마케팅의 이름으로 도시에 마구잡이 그림을 그리는 이런 마케팅 행위는 매우 폭력적이라 생각한다. 골목은 마케팅 시험장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남겼고, 다른 누리꾼은 “공공 영역에서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아름답지만 적어도 지역 마을의 담장은 그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존과 관리가 중요하다. 상업적이라 아쉽다” 등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를 비롯한 이른바 ‘벽화 마을’ 사업은 2006년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철거가 계획되었던 낡은 마을 골목길과 담벼락이 벽화로 꾸며지면서 동피랑 마을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고 철거 계획도 철회되었다. 동피랑 마을이 ‘도시재생’과 ‘공공 미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자 서울 삼청동 벽화골목, 부산 감천동 벽화마을 등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 마을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골목환경 개선’을 기치로 조성됐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의 소통 부재, 지역성에 대한 고려 부족,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예술이 아닌 ‘흉물’로 전락한 곳도 적지 않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 될까?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에 의해 새롭게 바뀐 모습을 기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하면서 직접 프로젝트 대상지를 방문했다. 과도하게 알록달록한 페인팅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세련된 색채와 디자인이 눈을 사로잡았다. 주변의 상가나 주택과의 분위기를 고려한 설치 작품과 벽화는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시티캔버스는 대상지에 대한 이해와 고려를 바탕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수제화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 성수동에는 위트 있는 신발 그림이, 문래동의 노쇠한 철공단지에는 기계 부품을 소재로 한 컬러풀한 벽화가 그려졌으며, 주점과 바가 많이 들어선 홍대의 한 빌딩은 보드카 모양의 설치 작품으로 장식했다. “언제 이런 것이 생겼어”하면서 신기해하는 젊은 커플들, “큐트cute!”를 외치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등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앱솔루트의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는 ‘트랜스폼 투데이’라는 브랜드 정신처럼 일단 ‘오늘’을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단어는 어렵다. ‘오늘’이 과거형으로 지나가버리지 않고 지속적인 현재 진행형이 되기 위해서는 이 프로젝트가 일회성의 환경 미화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 관계자에게 작품의 관리는 어떻게 할 예정인지, 작품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있는지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칠이 벗겨진 벽화 작품을 보수하는 계획이 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답변은 이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트랜스폼 투데이’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작품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거리의 흉물로 전락하거나 변화하는 거리의 모습에 뒤쳐져 이질적인 공간이 되지 않도록 공공 미술의 새로운 ‘내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시티 캔버스 프로젝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 조한결
  • 삼성전자 TV ROAD 캠페인 폐 브라운관 활용한 승리 기원의 길
    친환경 캠페인을 담은 조경 공간 삼성전자는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승리 기원의 길-TV ROAD’ 캠페인을 진행했다. TV ROAD는 삼성전자의 폐 브라운관 TV로 친환경 길을 조성하는 ‘TV 굿 스위칭good switching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태극 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시민들이 기증한 폐 브라운관 TV 1만여 대를 에코 블록으로 재생산해 길을 조성했는데, 캠페인은 폐 브라운관으로 인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버려진 폐 가전제품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존 시설의 노후화를 개선해 지속가능한 길을 제안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디자인 전략 TV ROAD가 설치된 수원월드컵경기장 조각 공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진입 광장으로 이용되었고, 이후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는 조각 작품을 설치해 문화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TV ROAD 조성 시 고려한 사항은 외부 도로와 광장의 전이적 공간이라는 점과 매표소가 잘 인지되게 하여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각 작품과 잔디식재 구간은 보전하기로 했으나, 인조 잔디 포장은 노후화로 훼손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잔디와 조각으로 구성된 공간에 상징성을 부여해 월드컵경기장과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조성하고 폐 브라운관을 이용해 만든 시설을 통해 시각 효과, 휴식, 재미, 편리성이 더해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CRT 재활용 블록의 홍보 효과를 높이고, 일시적인 포장이 아닌 지속성을 갖춘 상징적인 길이 되도록 했다. 승리 기원의 길 노력, 열정, 역동성을 테마로 1,315m2 공간에 슈퍼그래픽을 패턴화 하여 걷고 싶은 길을 조성했다. 승리 기원의 길에 사용된 재료는 다성기업에서 연구 개발한 199×99×T60 규격의 CRT 재활용 콘크리트 블록을 사용했고, 주위 구조물 및 천연 잔디 등과 어우러지도록패턴의 주조색을 녹색 계열로 선정했다. 그래픽의 인위적인 느낌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캠페인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비슷한 색이 어우러져 표현되는 임의 포장패턴을 반영했다. 또한 슈퍼그래픽 패턴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gradation 되는 느낌을 주도록 계획하여슈퍼그래픽과 공간의 조화로운 연결과 확장을 도모했다. 산책로의 진출입 부분에는 TV ROAD 글씨를 패턴으로 반복하여 공간의 의미와 장소성을 나타내었다.
    • 안세헌
  • 2014 IFLA 학생 공모전 29개 국가에서 408개 팀 참여
    지난 6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51회 세계조경가협회(이하 IFLA) 국제 회의에서는 ‘2014 IFLA 학생 공모전’의 심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Urban Landscapes in Emergency’를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에는 29개 국가에서 총 408개 팀이 출품했고, 최종 심사 결과 탄광지대의 재생 방안을 제시한 ‘Prospect of Rebirth’가 영예의 1등작에 선정되었다. 본지는 IFLA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로부터 자료를 협조 받아, 1등작과 2등작을 소개한다. 공모전의 목적 IFLA 학생 공모전은 세계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조경에 대한 사고와 실천’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리학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공간을 다시 연결하고,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의 정수를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공모전의 또 다른 역할은 교육을 통해 조경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학생들은 이 공모전을 통해 조경을 배우는 전 세계 학생들의 작품과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또 IFLA로서는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조경가의 역할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모전의 주제: Urban Landscapes in Emergency –Creating a Landscape of Places 이번 공모전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도시 경관을 되돌아 볼 것을 요구했다. 자연과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인간의 공격적인 행동 이후에 버려지고 폐허가 되어 땅의 가치를 잃어버린 경관, 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변화를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 환경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린 부지 등이 이번 공모전에서 다루려 한 도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불안전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담아야 했다. 이‘반성적 사유’는 가장 적절한 제안을 통해 지속가능한 새로운 도시 경관의 건설 및 관리를 가능하게 할 대응법을 제시해야 했다. 1등작: ‘Prospect of Rebirth’ Qi Li, Huishu Sun, Shuang Zheng, Chen Li _ College of Arts, Xi’n University ofArchitecture and Technology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산시Shaanxi성 퉁촨Tongchuan시에 위치한 유화Yuhua 탄광의 생태적 재생 방법을 제안한다. 탄광 산업이 지역 경제를 책임졌던 곳이었기에 지속적인 석탄 채굴은 불가피했지만, 그 결과 환경은 파괴되고 오염되었다. 이곳은 관광 산업으로도 유명한 지역이었지만, 최근에는 이 역시 좋지 못한 상황을 겪고 있다. 1등작은 오염된 땅과 물을 정화시켜 다시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땅의 표면 조직에 대한 작은 수정만으로 대상지의 생태적 재생이 가능함을 보이고 있으며, 대상지와 유사한 형상을 보인 잎사귀의 ‘잎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라 할 수있다. 2등작: ‘The Great Wall’ Yuan Xu, Hui Lyu, Simin Bian _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Tsinghua University 2등작은 티벳의 고원지대 북동쪽에 위치한 기아나 Gyana 마을의 방재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 계획은 2012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파괴된 보행로를 재건축함과 동시에 마을로 흐르는 일종의 진흙 산사태mud-rock flow(이류(泥流) 혹은 토석류라고도 한다)에 대한 방어책을 보여준다. 이 대범한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에 있어, 지역내에 버려진 건물을 건설 자재로 이용한다는 점과 이 벽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계획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벽을 건설할 때 습득된 기술은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 내의 다른 곳에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활적인 재생이 가능함도 역설하고 있다. 심사평 우리는 매우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했으며, 자연 재해의 규모 역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술적 접근이 중요해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조경가 역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해법 제안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 문제가 단지 새로운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위급 상황’이 주제로 주어진 탓일까? 이번 학생 공모전에는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 색다른 기술적 접근에만 집중한 출품작이 많았다. 다음과 같은 심사평은 그래서 더욱 기억할만하다. “학생들과 대학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경은 매우 광범위한 학문이고, 조경에서는 기술적인 측면만큼이나 사람과 그들의 인식, 자연 환경, 문화 등의 중요성 또한 담아야 한다.” 2015년 IFLA 국제회의는 러시아에서 얼마 전부터 IFLA 학생 공모전은 중국 학생들의 잔치가 되고 있다. 올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7개의 수상작 중 6개를 중국 학생들이 차지했다. 29개 국가에서 408개 팀이 출품했지만, 중국에서만 전체 출품작의 70%가 넘는 292팀이 참가하여 마치 중국 학생 공모전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미국 21개 팀, (개최국인) 아르헨티나 15개 팀을 제외하면, 10팀 이상 참여한 나라가 전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팀’ 만이 출품했다. 참여가 저조한 국가의 학생들에게 탓을 돌리기보다, 주최 측에서도 심각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불균형 현상이 아닐 수 없다. 1등상의 공식 명칭은 ‘Group Han Prize for Landscape Architecture’(상금 3,500달러)로 2007년부터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후원하고 있으며, 2등상은 ‘IFLA Zvi Miller Prize’(상금 2,500달러), 3등상은 올해부터 독일 브룬스 너서리Bruns Nursery에서 후원하는 ‘Special Prize Bruns Nursery’(상금 1,300달러)가 수여된다. 2015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6월 10~12일에 제52회 국제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 양다빈
  • ‘신선놀음’하는 젊은 건축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0월 8일까지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나비같이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 모자 벗겨오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된 ‘문지방(최장원, 박천강, 권경민)’의 작품 ‘신선놀음’에 올라 인왕산 자락을 바라보니 산울림의 ‘산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둥실둥실 흔들리는 공기 풍선 구름 사이에 설치된 트램펄린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보면 산 할아버지의 구름 모자도 벗길 수 있을 것만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New York, 이하 MoMA),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하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전시가 7월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공식 오픈했다. 프로젝트 팀 ‘문지방’의 ‘신선놀음’은 이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도심의 미술관 마당에 신선 세계를 옮겨 온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펼쳐졌다. YAP, 건축의 트렌드를 보여주다 1998년, MoMA에서 처음 시작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이하 YAP)은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고자 기획된 공모 프로그램으로 매년 재기 발랄한 신진 건축가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YAP은 2010년부터 칠레, 이탈리아, 터키 등의 미술관에서도 개최되어 YAP International로 확장됐으며 올해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현재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거듭난 YAP이지만, 맨 처음 MoMA에서 시작된 계기는 단순했다. ‘여름에 해변에 온 느낌이 들게 하는 설치 작품을 도심 속 미술관에서 선보이자’는 의도였다. 미술관에서 관람객이 피서를 즐기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한 YAP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YAP은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이자 신선하고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때때로 아주 실험적이고 기이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는 YAP은 변화하는 건축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YAP은 건축의 환경적인 책임에 관심을 갖고 ‘지속가능성’을 작품의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 예로, 미디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던 MoMA YAP 2014에 선정된 우승팀 The Living의 ‘HY-Fi’는 작품에 사용된 모든 재료가 옥수숫대, 버섯 등의 유기물질로 되어 있어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MoMA,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YAP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페드로 가다뇨Pedro Gadanho(뉴욕 MoMA 현대건축 큐레이터)는 7월 8일 ‘신선놀음’ 공개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에 방문하고 완성작을 관람했다. 그는 이날 현대카드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강연에서 “YAP이 올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되면서 진정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며 “건축에 대한 전 세계적 담론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우승작 ‘신선놀음’은 국내뿐 아니라 뉴욕(MoMA PS1), 산티아고(CONSTRUCTO), 로마(MAXXI), 이스탄불(ISTANBUL MODERN)의 미술관에서도 전시되어 전 세계 우승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경계 위에서 ‘신선놀음’하다 ‘문지방’이라는 팀명에는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문지방의 ‘신선놀음’은 이번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로 제시되었던 그늘, 쉼터, 물을 활용해 도가 사상에서 그려지는 신선 세계를 형상화했다. 직경 2m, 높이 3~5m의 거대한 공기 풍선 기둥 60개를 마당에 세워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이 마치 구름 속에 들어간 느낌을 받도록디자인했으며 구름다리를 설치해 전체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구름 모양의 공기 풍선 기둥 사이에 2개의 트램펄린을 설치해 그 위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 작품 안쪽에 설치된 안개 분사기는 작품 전체를 감싸는 안개를 만들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름 모양의 기둥, 구름다리, 안개 등의 요소가 만들어낸 ‘신선놀음’의 아이디어는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화단이 조성된 바닥과 휴게 공간을 보면 조경적 요소가 담겨 있고, 구름다리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인 틀에서는 건축적 특징이 나타난다. 공기 풍선과 안개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미감과 트램펄린을 이용한 유희적 요소는 설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신선놀음’은 건축, 설치 미술, 조경 등 그 어느 분야에 한정할 수 없는 새로운 경계에 도전한 작품이다. ‘신선놀음’은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다. 우선 YAP은 건축의 환경적인 책임을 강조하며 ‘지속가능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신선놀음’의 신비로운 미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 뿜어져 나오는 안개는 순환적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모적인 느낌이었다. 또한 도심 속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YAP의 취지에 맞게 ‘신선놀음’에는 공기 풍선 기둥 안쪽으로 벤치를 설치해 휴게 공간이 마련됐다. 그런데 벤치와 안개 분사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벤치는 습기로 젖어 있었다. 실제적인 쓰임을 고려했을 때 이용객의 불편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구름 모양의 공기 풍선기둥 너머로 도약하는 느낌을 주도록 설치한 트램펄린은 실제로 뛰어보았을 때 높이가 낮아 ‘구름 위로 튀어오를 것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공기 풍선 기둥의 높이와 트램펄린 위에서 도약했을 때의 높이를 고려해 디테일을 살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안개로 인해 트램펄린에 물방울이 많이 맺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섬세한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보였지만, 상상 속으로만 그려왔던 공간을 현실에 마음껏 구현했다는 점에서 ‘신선놀음’을 기획한 젊은 건축가들의 ‘패기’는 유쾌하고 재기 발랄하게 다가왔다. 건축은 ‘건축=건물’이라는 사고를 깨부수며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서 그 실험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 조한결
  • ‘바다의 변화: 보스턴’ 전시회 기후 변화 인식에 경종을 울리다
    해수면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금세기 중반이 되면 2피트, 2100년에는 6피트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새롭게 형성될 해안선은 보스턴 지역의 해안 경관을 크게 바꿀 것이며, 도심지를 초토화시킬 만한 거대 폭풍의 발생 가능성 역시 한층 높아질 것이다. 지난4월 7일부터 6월 15일까지 보스턴에 위치한 디스트릭트 홀District Hall에서 개최된 ‘바다의 변화: 보스턴’ 전시회를 통해 보스턴이 해수면 상승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 도시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전략들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의 기획 의도는 해수면 상승이 초래할 여러 문제들과 지역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보다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의 다양한 해안 지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사키 어소시에이츠Sasaki Associates의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해수면 상승 그리고 생태적 복원력 등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 또한 허리케인 샌디Sandy가 보스턴을 살짝 비껴가는 사건이 있은 후, 사사키 어소시에이츠는 자연 재해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못해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보스턴의 회복탄력성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일 년여의 기간 동안 각기 다른 분야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디자인 팀은 향후 나타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보스턴 지역이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디자인 팀의 구성원들은 사사키의 연례 인턴십 프로그램은 물론 보스턴 건축대학Boston Architectural College(이하 BAC)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BAC의 경우 보스턴의 남부 및 동부 지역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환경 변화에 취약한 이들 지역을 위한 맞춤형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사키 어소시에이츠는 BAC, 보스턴 시 정부, 그리고 보스턴항만 협회Boston Harbor Association 등과의 협력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 사사키 어소시에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