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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3인 3색 정원 단상
    현 시대 한국의 일상에서 정원이 차지하는 의미나 형식을 쉽게 떠올리기란 힘들다. 자연의 일부를 떼어 주거 공간 속에 조형적 모양새로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게 정원일 것이다. 정원은, 현실적으로 자연에서 격리된 동시대인에게 자연과 통하는 해방구를 제공했다. 하지만 필자가 동시대 한국의 시공간과 정원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건, 우리의 주거 문화를 지배하는 일반론이 정원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주거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아파트는 물론 이거니와 오피스텔과 원룸까지 무수한 거주 공간이 정원의 자리를 배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기에, 몰개성한 복층 구조의 건축물이 일반적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인근에 보라매공원이 있다. 정원이 개인 거주지 안에 작은 녹지를 조성하는 것인데 반해, 공원은 정원이라는 개인 사유지를 공공 영역으로 확대한 버전일 것이다. 연못, 잔디 광장, 다목적 운동장 따위를 패키지로 묶어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보장하는 보라매공원의 원래 목적은 군사 교육 기관이었다. 과거 공군사관학교 터를 보수하면서 용도를 공원으로 변경시키고,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인 보라매를 공원 이름으로 따온 것이 현재 보라매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의 유수한 공원들 역시 처음부터 공공을 위한 놀이터로 설계된 건 아니었다. 왕족과 귀족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사냥터가 공화정이 들어서면 서 시민에게 공간을 내주게 된 것이 동서양 공원들의 일반적인 과거사인 점을 감안할 때, 공원은 소수 최고위급 인사들이 보유한 커다란 정원이었던 셈이다. 정원의 먼 선조로 흔히 예시되는 네바문 무덤 벽화도 마찬가지이다. 당대에 사회적 신분을 보장받은 이집트서기 출신 네바문의 무덤 안 벽화에는 정원이 묘사되어 있다. 이 벽화를 통해 기원전 정원의 윤곽을 추적할 수 있다. 직사각형 호수와 그 주변으로 가지런히 심은 수목들이 기원전 정원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적 정원과 큰 틀에서 차이가 적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이 서구의 정원과 변별되는 바위 정원rock garden의 전통을 갖는데 반해, 한국 정원 문화에 관해 검색하면 복층 구조의 동시대 주거 문화 때문인지 윤보선 고택, 성락원, 운보의 집, 대원군의 별장이었으나 고급 한정식당으로 변형된 석파랑 정도만 간신히 잡힌다. 모두 동시대 현존 인물의 정원으로 규정하기 힘든 사적지이거나, 혹은 준 공공을 위한 장소들이다. 사유지 정원의 확대 버전인 공원이 동서 공히 왕족과 귀족의 놀이터를 위해서 녹지를 조성했다는 사실로부터, 현대적 미술관의 기원인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면서 루브르 궁전을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용도 변경해서 썼다. 반이정은 미술평론가(원래 꿈은 배우)로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등에 미술 평론을 연재했고, 『한겨레』, 『경향신문』에 시사 칼럼을 연재했다.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세종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취미 이상의 애착을 지닌 자전거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쓴 책으로 『새빨간 미술의 고백』 외에 『아뿔싸, 난 성공하고 말았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2.0』,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 『웃기는 레볼루션―‘무한도전’에 대한 몇 가지 진지한 이야기들』, 『나는 어떻게 쓰는가』, 『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네이버 파워블로거에 선정된 그의 거처는 dogstylist.com.
  • 2.정원, 천천히 준비하고 기다려야 찾아올 문화 3인 3색 정원 단상
    중세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1375)의 소설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돌던 중세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배경이다. 이야기는 열 명의 젊은 남녀가 흑사병이 퍼진 도시, 피렌체를 떠나 가까운 시골 마을인 피에솔레의 한 저택에서 보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매일 밤 저택의 정원에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열 사람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날의 최고의 이야기꾼을 선정하는 놀이를 했다. 보름이긴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는 합창의 시간으로, 또 다른 하루는 신의 날로 정해 쉬었기 때문에 딱 열흘간, 열 사람의 총 백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책의 제목이 ‘열흘’이라는 뜻의 데카메론이다. 여기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언급하는 이유는 물론 소설 자체를 분석하기 위함은 아니다. 정원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카치오는 이 소설을 실제로 흑사병이 돌던 1348년부터 구상했고 병이 잠잠해진 1353년에서야 원고를 탈고했다. 그러니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주택으로 피난을 떠났다는 소설의 설정은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어찌해볼 수 없는 재앙 속 에서 보카치오가 상상해낸 혹은 실제로 해보았을 현장상황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싶다.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사실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검은 쥐가 옮기는 전염병인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인구의 30~60%를 잃게 된다. 통계상으로만 짐작해도 두 사람 중 하나, 4인가족이라면 그중 반이 병으로 죽은 상황이다. 나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사람들은 병에 걸린가족을 돌보는 대신 이들을 피해 도망을 쳤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보카치오가 이런 상황 속에서 시골 저택의 정원을 떠올렸다는 것이 놀랍고 신선하고 그리고 참 당연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때의 내가 보카치오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도 전염병이 들끓는 도시를 떠나 시골집에서 큰 안식과 위로를 받지 않을까 충분히 상상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 예를 들 수도 있다. 나의 어머니는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1년간 투병을 하시다 결국 생을 마감하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더 이상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고 어머니께서 가족에게 한 부탁은 자신을 병원에서 꺼내 어머니의 친정인 충남논산의 시골집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담긴 마지막 소망이었다. 오경아는 방송작가 출신의 가든 디자이너로 다양한 영역과의 협업을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상호 조화로운 정원의 세계를 꿈꾸는 중이다. 16년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떠나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을 공부했고, 이후 2012년 귀국해 정원 전문회사 오가든스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네이버캐스트에서 연재한 정원 콘텐츠를 엮은 『정원의 발견』을 비롯해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등 다수의 정원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
  • 1. 나는 살구나무 아저씨였다 3인 3색 정원 단상
    창이 없는 집은 무덤이다. 그래서 죽음은 미니멀한 풍경이다. 종묘가 그렇다. 왕의 죽음들이 늘어 서 있는 풍경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집과 달리 극단적이다. 처음 지하철을 설계한 사람들은 지하에 풍경이 있을 리 없으므로 창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지하철이 풍경이 없는 땅 밑을 다니는 교통수단이라는 것만 생각했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걸 놓쳤다. 아무 볼 것도 없는 밖이지만 사람들은 창을 원했다. 지하철에 창이 생기자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창은 바깥을 보기 위한 통로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내면이 가 닿는 깊이가 있다. 그 깊이는 바로 자기의 깊이다. 창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 볼 용기가 없거나, 여유가 없는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시계는 우리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창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가 닿는 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창을 통해서 바깥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본다. 창을 보고 있는 시선은 그래서 깊다. 창이 건물의 높이에서 안과 바깥의 드나듦과 넘나듦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과 연결한다면, 정원은 건물의 바깥에서 우리를 자신의 내면에 있게 한다. 자신의 정원에 서 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들어 와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조선 정원이 다른 정원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조선 정원은 조성자의 안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일본 정원처럼 자연을 모사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정원처럼 대상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는다. 조선 정원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그래서 조선 정원은 건축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원 자체로 독립적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땐 건축이 정원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니, 많은 경우 조선 건축은 정원의 한 대상이다. 조선의 건축은 정원에 포함되고, 정원은 원림에 포함되고, 원림은 산수에 포함된다. 그래서 이루어지는 큰 그림이 산수지리山水地理다.1 조선의 건축은 산수지리-원림-정원-집의 순으로 접근해 간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려서 집의 자리를 잡고, 거기에서 다시 집안에서 바깥으로의 시선을 창을 통해 구현하고, 그 바깥에 내면을 표현한다. 그것이 조선의 정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조성자의 삶의 통찰, 철학적 배경이 없을 수 없다. 또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상징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조선의 정원은 간단하다. 연못,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상징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산수와 만나면 더 큰 이야기가 된다. 그 옛날 한양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산수지리의 원리가 지켜졌기 때문이다. 정원이 없어도 도시 자체가 산수지리의 맥락에 있었고, 그 큰 흐름 속에서 집들이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 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을 썼다. 현재 건축실험집단 EON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다시, 되새겨야 할 정원의 정체성 다시, 정원을 말하다
    정체성 혼돈의 시대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이 풀어야 할 가장 근본적 질문중 하나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유사 이래 수많은 종교와 철학 또는 예술 분야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이 질문은 우리 앞에 정답 없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어쩌면 수학 공식 풀이와 달리, 명쾌하게 답을 찾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사회를 정의하고, 그 사회에 속해있는 인간을 정의해왔다. 18세기 이전에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사회적 콘텐츠 또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가치관에 대한 정의 역시 다양성보다는 깊이 있는 사고를 토대로 내려졌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사회를 둘러싼 모든 속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고,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우리 사회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물리적·정신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정체성의 혼란(때로는 이러한 혼란을 미적인 가치로 표현하기도 하지만)을 야기하기도 했다. 덕분에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깊이 있는 가치를 상당 부분 놓쳐버리는, 그래서 이제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 가벼운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21세기 들어 발생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이러한 정체성의 부재, 또는 혼란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빠른 성장’이 만들어 놓은 성과물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그 성장에 따르는 혼란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이후, 정원garden은 시민 사회의 성장과 함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으며 빠르게 발전하는 듯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져 서로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정원의 정체성, 통제의 그늘 지금의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정원 열풍’을 바라보면, 바람은 불고 있으나 방향성을 잃은 채 지독한 편가르기 양상마저 보이고 있어, 시대적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혼란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마치 엄마와 아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정원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원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정원은 가장 순수한 인간의 즐거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순수한 즐거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자연과의 공존 또는 소통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이러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울타리를 두르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을 통제하며 정원을 만들어 왔다. 과거 자연의 어마어마한 위력 앞에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울타리 안에서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자연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정원을 만들었지만 그 안에는 통제라는 권력의 단편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사회적·경제적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원은 자연스럽게 힘 있는 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18세기 영국에 불기시작한 풍경화식 정원 열풍은 프랑스의 인위적인 정원이 자연과의 공존을 방해한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자연을 닮은 정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은 노예들의 노동력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연과의 공존은 이루었을지 몰라도 사람들 간의 공존은 오히려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되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힘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준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친 후, 삼성에버랜드에서 10년간 조경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11년 좀 더 깊이 있는 정원 공부에 뜻을 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University of Essex, Writtle School of Design에서 정원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Intangible Garden Heritage’를 주제로 박사 과정 중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 정원을 영국에 소개하고 있으며, 푸르네정원문화센터 이사와 월간 『가드닝』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정원의 귀환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다시, 정원을 말하다
    정원을 공부하겠다고 십여 년 전 정원사의 한 부분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겠다고 나섰을 때, 지도 교수님과 연구실 선배들은 다소 의아해했다(그게 미술사학과 논문이 될 수 있을까?). 회화와 조각, 사진과 건축, 양식사 연구와 작가론이 주를 이루던 학과의 교과 과정 상, 아무리 풍경화를 토대로 한다 하더라도 정원은 생경했기 때문이리라.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하고 공부를 계속하려 하자 이번에는 학부부터 조경학과에서 공부한 분이 말문을 흐렸다(재미는 있겠는데… 그게 요새 조경학과에서 다룰영역인가?).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격언이 정원의 역사 공부에서도 반복되었다. 이게 소위 ‘한국적 현실’인가 싶어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나 찾아보아도 정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사를 연구한다고 한 뒤 가장 많이 듣게 된,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은밀한 걱정은 ‘너무 마이너하지 않아’였다. 가뜩이나 공부해서 먹고 사는 장래도 불확실한데, 기왕이면 좀 잘 팔릴 것 같은 게 낫지 않나. 미술사학에서도 조경학에서도 지극히 마이너한 분과로 보이는 정원, 게다가 서양의 정원을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염려는 당연했다. 그런데 요 근래에 들어서 이런 걱정이 기우였나 싶을 정도로 정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정원을 만들고, 이야기한다. 공원을 만들자고 외치던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이제 정원을 조성하자고 하고, 시민가드너 양성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정원박람회가 큰 구경거리가 되고, 2013년 조경대전의 공모 주제도 ‘열린 정원’이었으며, 정원문화협회도 발족되었다. 정원잡지만 한 해에 세 개가 창간되었고, 영향력이 큰 포털사이트에도 정원을 주제로 삼은 글이 연재된다. 여기저기 기업에서도 가드닝이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논의된다. 해외 가든 쇼에서 수상한 작가가 중앙 매체에서 국가 대표 대접을 받는다. 서점에 가서 ‘정원’으로 키워드 검색을 하면 수십여 권의 책이 화려하게 쏟아져 나와 훑어보기도 버겁다. 그야말로 정원이 ‘핫’한시기이다. 정원 예술과 가드닝 사이에서 이렇게 정원이 ‘핫’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만들고 이야기하고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열기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 이는 정원 열풍이라기보다는 가드닝, 즉 원예적인 정원 가꾸기의 세련된 형태의 유행에 더 가깝게 보인다. 휴식과 힐링을 위한 정원 가꾸기, 안전하고 경제적인 먹거리 마련을 위한 텃밭 정원, 미니 가든, 학교 정원…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것들을 모두 정원이라고 부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서의 정원으로 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좀 더 오래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정원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 채원, 즉 키친 가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차적으로는 식량의 자급자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무엇인가를 심고 키우며 가꾼다는 것에 더 큰 가치가 부여된다. 이는 커뮤니티 정원 운동에서 더욱 부각된다. 실질적인 목적이 있으면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고, 머무는 시간을 연장하고, 나아가 가꾸는 기쁨도 알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도시 내 공지나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자원이 순환되면 금상첨화이다), 여기에서 수확한 먹거리를 나누는 ‘착한’ 정원은 도시경관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조성하니 한 평 공원보다 더 착하고 발전된 형태로 보인다. 여기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정원이라는 대상보다는 가드닝이라는 행위와 그 과정이다. 정원이 있다는 점, 도시 속에서 몸소 정원을 가꾼다는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럽다. 하지만 도시 농업적 가드닝의 유행과 조경의 중심 영역으로의 정원의 귀환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원 문화의 확대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숙으로의 이행을 반증하고, 정원이 조경의 기본 영역임을 강조한다”1고 하지만, 현상에서 담론을 찾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행위 혹은 현상으로서의 가드닝과, 이론적 체계를 갖춘 하나의 예술 장르로서의 정원이 혼용되고 있다. 물론 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칫 무의미한 공론으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토대 위에 뿌리 내리지 못한 정원 실천은 지속되지 못하고, 또 다른 공허한 외침에 그칠 것이다. 게다가 정원열풍이 표방하는 정원의 대중화를 통한 저변 확대라는 것이 정원 문화의 확산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정원 산업의 팽창인지, 그 목적을 짚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무엇이 추구하는 본질이고, 무엇이 부수된 것인가는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더 나아가 최근의 정원 열기, 조경의 토대로서의 정원을 부각하는 것 또한 인접 분야에서의 산업·제도적 측면에서의 침습에 대한 방어적 반응이 아닐지도 반추해보아야 한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 다시, 정원을 말하다
    가히 정원 열풍이다. 심지어 정부와 여러 지자체까지 나서서 시민을 위한 다양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과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있다. 특히 지난 해 개최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대중적 호응을 얻으며 이러한 열풍을 거세게 증폭시켰다. 여러 매체에서 정원 관련 콘텐츠를 앞다투어 쏟아냈고, 2013년도에만 3개의 정원 잡지가 연달아 창간되기도 했다. 새롭게 조성되는 공간에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늘어나, 이제 정원은 사적인 공간을 넘어 공공의 환경을 가꾸는 새로운 키워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들썩임은 정원 문화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에게 서양에서 태동한 ‘정원’ 문화라는 것이 있기는 했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버전의 ‘자연’ 상품화일까? 지금 정원이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해도, 에덴을 원형으로 하는 정원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정원은 조경이라는 전문 분야를 탄생시킨 모태이자, 공공적 도시 공간의 상징인 공원의 전신이다. 긴 시간 동안 정원에는 다양한 가치가 누적되어 왔다. 정원은 가장 근본적으로는 자연과 문화의 중간지대였고, 탄생과 죽음의 공간이었으며, 일상적인 생산과 노동의 장이었다. 또 정원은 감각적 경험과 미학적 쾌락이 충만한 환경이자 여러 예술이 연합하는 극장이기도 했다.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별다른 반성 없이 소비되기 시작하고 있는 동시대의 정원과 그 문화를 다시 독해할 필요가 있다. 정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가 정원을 요청하고 있는 현상의 이면은 무엇인가? 4월호 특집은 ‘다시, 정원을 말함으로써’ 정원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자리다. 그것은 잃어버린 정원을 다시 찾는 일에 다름 아니다. 1. 정원의 귀환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_황주영 2. 다시, 되새겨야 할 정원의 정체성 _이준규 3. 3인 3색 정원 단상 1 나는 살구나무 아저씨였다 _함성호 2 정원, 천천히 준비하고 기다려야 찾아올 문화 _오경아 3 불가능한 정원의 꿈, 콘크리트 공원과 텃밭 _반이정 4. 정원, 책으로 말하다 _남기준 5. 어느 정원의 8경 _정욱주
    • 편집부
  • [공간 공감] 세 번째 공간 탐색, 성곡미술관
    대로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성곡미술관은 주변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만 아니라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한때 신정아와 함께 사회면을 요란하게 장식했던 미술관이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 예전의 여유와 정취를 되찾은 듯하다. 미술관처럼 보이지 않는 미술관, 조각 전시 공간이라기보다는 뒷산자락에 가까운 풍모는 “공간 공감”의 의도에 걸맞은 대상지라는 확신을 첫눈에 주지는 않았다. 넉넉히 천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완만한 사면에는 산책로, 조각작품, 오래된 나무, 그리고 두 동의 카페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썰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잠깐의 검색과 조사를 통해, 이곳이 쌍용그룹 창업자인 성곡 김성곤 선생의 자택이 있던 자리였고, 외국인전용 임대 빌라로 신축되어 사용되다가 1995년 성곡 미술문화재단에 의해 미술관으로 개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이 사실을 통해 과거의 주택 후원이 조각 정원으로 변모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느린 산보를 마친 후, 세 가지 관점에서 성곡미술관 외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는 조각 정원으로서의 가치다. 외부 공간의 크기와 조각의 밀도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조각의 배치와 구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스케일 측면에서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는 조각이 아니거나, 개별 조각이 각각의 전시 영역을 구축하지 못하고 다른 조각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보이는 서투름이 쉽게 감지되었다. 심지어는 관람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조각품이 엉뚱하게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지피류와 관목류가 다소 산만하게 식재되어 있어서 조각으로 집중되어야 할 시선이 방해 받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정교하게 조각 정원을 기획한 것이 아닌 듯하였고, 조각 정원으로서의 공간 디자인적 가치도 높지 않아 보였다. 두 번째 관점은 오래된 정원으로서의 가치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지만, 전술한 대로 이곳은 성곡 선생 자택의 후원이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하였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스튜디오 knl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 그 정원(가)은 젊다
    가보지 않은 정원에 대해 말하기 “개인 소유여서 현장에 가서 직접 보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한 젊은 조경가의 정원에 대해 글을 써야 했지만 정작 정원에 가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보지 않은 정원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입이 있으니 물론 말할 수는 있다. 이어지는 질문이자 답하기 힘든 문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이다. 변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학자의 입을 핑계 삼아, 소위 ‘극장의 우상’에 기대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졌고 다행히 적합한 우상 하나를 발견했다. 정원 산책을 인생 여정의 작은 한 지점이라 한다면,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의 몇 구절을 빌려와 먼저 변명하는 것도 좋겠다. “사실 작가는 장소―지리학적 담론의 지시 대상으로서의―가 아니라 어떤 다른 차원의 것, ‘장소의 영혼’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그것은 오직 문학적 글쓰기만이 언어를 통해 펼치는 점진적인 변화들을 통해 포착하여 그 정확한 형상화를 희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소의 영혼은 이상화 작업을 전제한다. … 장소의 주된 특징들이 단순화되고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이상화 작업이다. 그래야 그 장소는 글쓰기의 창조력에 의해, 현재에는 물론 미래에도 모든 사람들의 상상적 소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이상화는 마치 장소의 진실이 장소 속에 있지 않기라도 하듯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빚는다.” - 피에르 바야르, 김병욱 역,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여름언덕, 2012, p.215.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라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그 장소의 영혼마저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바야르의 생각이다. 이러한 문학적 창조력은 이상화 작업이 전제되어 있고 그러므로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결과를 낳을 위험성도 도사린다. 변명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이 글은 그가 보내온 정원 사진들, 한 시간 동안의 대화 기록, 대화 중 끼적인 메모, 그가 작성한 원고로부터 시작하여 가보지 못한 어떤 정원과 그 정원을 만든 한 청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젊은 조경가를 만나다 그를 만나는 날, 이른 봄비가 내렸다. 남기준 편집장, 이형주 기자, 그리고 나(이하 우리)는 먼저 도착해 식당 입구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십 분 후에 그가 도착했다. 인상착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베이지색의 두터운 오리털 점퍼와 유사한 색상의 편한 면바지 차림에 등산화를 신고 한 손에는 기다란 검정 우산을 쥐고 있다. 아직 비에 젖지 않은 흙먼지가 등산화 윗등을 덮고 있다. 나중에 확인했지만 우리와의 만남은 이날 그의 두 번째 일정이었다. 새로 시작한 정원 일로 고객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보고 오는 중이었다. 희끗희끗 흰 머리가 섞여있고 웃음에서는 선비 같은 인상이 배어난다. 검고 동그란 안경테가 깊은 눈동자를 도드라지게 한다. “얼마 안 된 회사고 실력도 아직 부족해서 잡지에 실린다는 게 부담스러워요.” 겸손하게 말문을 연다. 하나의 나무를 뜻하는 에이트리는 설계 회사를 다니던 김상윤(이하 그)과 시공 회사를 다니던 그의 학창시절 지인 박지호가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로, 말하자면 젊은 시절 꿈의 실현체다. “젊으면 어떠냐 부딪혀 보자고 했어요.” 젊은이의 패기를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지만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해냈다. 유년 시절을 경남 산청의 ‘산골짜기’에서 지낸 진귀한 기억을 간직한 그는 전부터 정원 공부를 틈틈이 해오고 농장을 다니면서 식물 보는 일을 즐겨온 준비된 조경가이자 정원 설계가다. “정원 일은 바로바로 피드백 받으면서 설계를 진행하게 돼요. 설계보다 시공이 중요하고, 둘 사이 구분이 없죠. 도면으로 표현 안되는 게 많아요. 도면으로는 큰 얼개만 잡습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이 중요해서 최초의 설계안과 변경될 때가 많은데, 저는 이런 과정이 재미있어요.” 고객의 취향을 신뢰한다 정원은 여느 조경 설계보다 사적이다. 사적인 공간을 다뤄야 하고 그 공간의 주인인 개인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 설계 회사를 꾸려가는 이에게 가장 궁금한 건 설계 일을 어떻게 맡게 되는가이다. 일이 과연 들어올까. 그도 가장 우려한 점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건축주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건축가 문훈이 설계한 롤리팝 하우스 정원을 맡게 된 경위에 대해 물으니 그렇게 답한다. 예전에 그와 함께 작업한 적 있던 시공사가 롤리팝 하우스 시공사였고 건축주는 시공사를 통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건축 시공이 끝난 후 설계가 시작되었다. 건축물이 먼저 들어선 뒤 지정된 자리에 정원을 만들면 되었다. 건축가와의 협의는 없었다. “우연찮게도 지금까지 제가 일한 건축주들은 대부분 젊은 분들이었어요.” 그도 젊지만 그의 고객도 젊다. 정원 설계에서 진정한 설계가는 사실 전문 설계가가 아닌 고객이고, 또 그래야 한다. “고객에게 최대한 맞춰주는 편이예요. 요구 사항을 엄청나게 늘어놓으세요. 가족 모두. 장모님도 가세하실 때가 있죠. 하하하.” 그는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고 고객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고객은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이다. 한 시간 동안 이를 세 번 강조하여 말했다. “제 고객은 재정적으로 그리 여유가 있는 분들은 아닌데 인테리어와 조경 비용에서 인테리어 비용에 많이 투자하는 편이세요.” 보통 개인 주택을 지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스스로 인테리어도 하고 정원도 꾸미고 싶어하지만 조경보다는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는 정원 설계 시 재정의 열악함을 아쉬워한다. 돌파구는 있다. 목공이나 용접은 전문업체에 따로 맡기지만 젊은 그들은 인부를 자청한다. 불필요하게 값비싼 재료는 지양하고 가격대비 미적 효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소나무나 배롱나무는 너무 비싸요. 대신 청단풍이나 다른 낙엽수를 추천해요.” 낙엽수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이 궁금해진다. 이명준은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거쳐 어느새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의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의 재현 양상을 탐구하고 있다. 『환경과조경』에서 주최한 ‘2011 대한민국 조경비평대상’에 “지금 여기, 아름답고 신비하고 신묘하다 -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희망적 시간”을 출품하여 가작을 수상했으며,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이명준[email protected] /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 박사과정 수료
  • 파주 주택 정원 Paju House Garden
    꽃과 나무를 둘러보는 정원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흰색 건물의 주택. 푸드스타일리스트 부부의 집이다. 직업 때문인지 젊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집의 외관과 인테리어까지 흠 잡을 데 없다.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지을 시공사를 선정하며 집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건축주가 직접 많은 일에 참여하였고, 건축 시공사와 함께 설계를 진행하였다고 한다.건축주의 감각은 정원이 들어서게 될 배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단지 내 도로에서 진입하는 집의 전면부는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을 남겨두었고, 한쪽에 주차 공간이 있을 뿐이다. 주차 공간을 지나 집의 후면부로 들어가면 적당한 면적의 외부 공간이 나타난다. ‘ㄴ’자 형태의 배치로 후원을 확보하고 택지 뒤로는 완충 녹지대가 있어 진입 공간 외에는 막혀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정원의 배치를 생각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자유로운 정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후원의 확보가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이 집의 경우 확실한 해법으로 이미 정원의 틀을 잘 갖추고 있다. 전정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서울 근교의 일반적인 개인 주택 단지에서 전정과 후정을 완벽하게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경기도권의 아주 일반적인 개인 주택 단지를 보면, 주거와 생활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당연한 해법이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 주택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단지 내 법규를 지키고 적당한 위치에 집을 올려놓으며 나머지 외부 공간은 정원이라기에는 옹색한 형태로 들어서 있다. 이처럼 집을 만들 때부터 정원의 배치를 고민하는 경우는 드문데, 건축 설계 시 정원에 대한 컨설팅을 같이 진행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다. 무엇보다 정원에 대한 건축주의 의지가 중요하다. 조경 설계 및 시공 에이트리 위치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면적 260m2 완공 2012
    • 김상윤 / 에이트리
  • 롤리팝 하우스 정원 Lollipop House Garden
    경기도 용인의 한 마을, 개인 주택이 즐비한 이곳에 유난히 눈에 띄는 집이 있다. 특유의 강렬한 색상과 패턴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롤리팝 하우스다. 개인 주택 정원을 만드는 일은 건축주와의 만남과 인터뷰를 통해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와 달리 롤리팝 하우스는 건축주가 의뢰 메일과 함께 보내온 집에 대한 몇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특한 건물의 형태와 색상은 정원을 계획하고 만들기에 앞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하였다. 집과 정원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설정부터 새롭게 접근해야 될 듯 했다. 그리고 진행된 건축주와의 만남. 젊은 부부와 어린 딸아이가 살고 있는 가족은 롤리팝 하우스와 잘 어울렸다. 아직 외부 공간은 길 하나 없는 흙바닥이었다. 집과 함께 가족에게 잘 어울리는 정원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정원에 대한 건축주의 바람은 간단하다. 길이 중심이며, 정원에서 잠깐 쉬고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간단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집과 정원의 만남 개성이 강한 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원과의 만남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줘야 할 지부터 방향을 잡아 나갔다. 건축 입면 특유의 스트라이프 패턴을 정원으로 받아들이되, 대지와 분리된 듯한 집의 느낌을 상쇄시킬 수 있는 요소를 만들기로 했다. 정원은 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형태의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야 했다. 정원이 집을 땅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 자체가 주는 강렬한 색상과 매스의 무게를 반감시켜줄 정원이 필요했다. 택지 지구의 특성상 정원 면적이 그렇게 크지 않으며, 마을 전체의 외부 공간의 활동이 개방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었다. 집의 반복적인 색상과 패턴은 정원에서 다양한 식재수종의 패턴으로 변환된다. 정원의 프레임은 단순하되 식재의 질감과 색상으로 집을 둘러싼다. 건축주는 잔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과 화단의 경계, 활동을 위한 포장 등 요소들 간에 상충되는 경계를 설정하고 색상과 질감을 조정하는데 집중했다. 조경 설계 및 시공 에이트리 건축 설계 문훈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면적 150m2 완공 2012
    • 김상윤 / 에이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