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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펜타인 파빌리온 & 서머 하우스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 2016
    매년 여름 서펜타인 갤러리는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청해 그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Serpentine Architecture Program을 진행한다. 지난 2000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파빌리온을 전시하면서 처음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16번째를 맞이했다. 건축가 초청부터 작품 완공까지 최대 6개월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신속한 작업 과정은 건축 커미셔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왔다. 특별히 올해 서펜타인 갤러리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4명의 건축가들이 각각 설계한 ‘서머 하우스Summer House’를 선보인다. 건축가들은 켄싱턴 가든스Kensington Gardens의 퀸 캐롤라인즈 템플Queen Caroline's Temple를 주제로 25m2 크기의 서머 하우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했다. 퀸 캐롤라인즈 템플은 서펜타인 갤러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지어진 고전적인 양식의 서머 하우스다. 1734년, 윌리엄 켄트가 디자인한 이 서머 하우스는 한 때 공원 관리인의 숙소로 이용되다가 1976년 복원되었다. 올해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에 초청된 36세부터 93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건축가 5인은 영국에서 파빌리온 형태의 임시 설치물을 작업한 경험은 있어도 영구적으로 남아 있는 건축물을 작업한 경험은 없다. 아키텍처 프로그램은 현대 미술과 건축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서펜타인의 핵심 철학을 반영한다. 따라서 영국에 완공된 작품이 없고 지속적으로 건축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를 초청해 스케치나 모델이 아닌 완공된 건축물을 전시한다. 올해의 파빌리온과 서머 하우스는 켄싱턴 가든스의 경관과 서펜타인 갤러리, 다섯 개 작품 간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정해진 예산은 없으며 파빌리온의 판매와 후원에 의해 진행된다. Director of Summer Programmes Julia Peyton-Jones Artistic Director Hans Ulrich Obrist Technical Advisor David Glover Engineering and Technical Services AKTⅡ, AECOM Hesdline Sponsor Goldman Sachs Location Kenshington Gardens, London, U.K. Installation 2016. 6. 10. ~ 2016. 10. 9. 언 지프드 월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jarke Ingels Group(이하 BIG)이 설계한 서펜타인 파빌리온 ‘언지프드 월Unzipped Wall’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양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BIG는 비정형 속에 엄격한 규칙이 있고, 모듈식 구조면서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투명한 동시에 불투명하고, 각진 사각형이 모여 굴곡진 형태를 이루는 다면적인 성격의 작품을 만들었다. BIG는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인 벽돌담을 재해석했다. 일반적인 진흙 벽돌이나 석재 벽돌 대신 일정한 단면을 가진 섬유유리 프레임을 층층이 쌓아올려 벽을 만들었다. 그 다음 벽을 잡아당겨 내부에 여러 가지 행사 프로그램을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즉, ‘언 지프드 월’은 선을 면으로, 벽을 공간으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파빌리온의 복잡한 3차원의 구조는 내부와 외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위에서 보면 파빌리온의 벽은 하나의 직선으로 보이지만, 밑에서 파빌리온의 입구를 보면 외부로부터 보호되는 계곡의 형태를 취하면서 공원 쪽을 향해 굽이친다. 역동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이 파빌리온은 낮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나 카페로 이용되고 밤에는 예술가, 작가, 음악가가 작업을 수행하는 서펜타인의 ‘공원의 밤Park Nights’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활용된다. 서펜타인 갤러리의관장 줄리아 페이튼 존스와 예술 감독을 맡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BIG의 파빌리온에 대해 “곡선의 벽과 날아오르는 듯한 나선형태로 파빌리온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우아하게 설계했다”며 “‘언 지프드 월’은 사람들을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가든스로 끌어들이는 일종의 등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Design Bjarke Ingels Group (Bjarke Ingels, Jenn Grossman, Daria Pahoto, Maria Sole Bravo) 비야르케 잉엘스(Bjarke Ingels)는 덴마크의 건축가로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BIG)의 수장이다. 그가 2005년 설립한 BIG는 코펜하겐과 뉴욕에 본사와 지사를 두고 있다. 현재 BIG에는 25개국이 넘는 다양한 출신의 직원 약 300명이 일하고 있다.
  • 위빙 더 코트야드 MoMA PS1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2016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MoMA)과 MoMA PS1(MoMA의 분관)에서 진행하는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이하 YAP)의 당선 팀인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Escobedo Soliz Studio의 ‘위빙 더 코트야드Weaving the Courtyard’가 지난 6월 10일 공개됐다. 단순하지만 연속적이고 강력한 구성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위빙 더 코트야드’는 8월 21일까지 MoMA PS1의 중정에서 전시된다.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올해 17회를 맞이한 YAP는 뉴욕현대미술관이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프로젝트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공모프로그램이다. 1998년 호주의 아티스트 집단인 젤리틴Gelitin의 작품을 MoMA PS1의 중정에 설치한 것을 계기로 2000년부터 매년 여름, 젊은 건축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 중정에 그늘과 쉼, 물을 제공하는 일시적인 야외 설치물의 설계안을 창의적이고 환경 친화적으로 제시하는 팀이 매해 우승팀으로 선정된다. YAP는 로마 국립21세기미술관Museo nazionale delle arti del XXI secolodi Roma(이하 MAXXI), 이스탄불 현대미술관Istanbul Modern, 산티아고 콘스트룩토Constructo 등의 미술관과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세계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4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작품 오픈일에 맞춰 3년째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MAXXI의 선임 큐레이터 피포 초라Pippo Ciorra는 “현대의 미술관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미래 건축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실험하고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기 위해 건축가들을 초대하고 임시 건축물을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YAP의 의의를 설명했다. Design Escobedo Soliz Studio (Andrés Soliz Paz, Lazbent Pavel Escobedo Amaral, Stefanie Verhoeyen,Rodrigo Mazari Armida, Hiroshi Ando Ponce de Leon, Brian RosendoCascarrabias Zambrano) Location MoMA PS1, New York, U.S.A. Installation 2016. 5. ~ 2016. 8.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Escobedo Soliz Studio)는 멕시코 시티에 기반을 둔 건축설계사무소로 공동 소장인 라즈벤트 파벨 에스코베도아마랄(Lazbent Pavel Escobedo Amaral)과 안드레스 솔리즈 파즈(Andres Soliz Paz)가 2011년 설립했다. 다양한 재료와 시공 기술을 실험하고 통계학적인 연구 결과와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하는 설계 과정을 통해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설계한다.
  • 템플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당선작
    건축을 향하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거대한 선박과 파리의 기념비적 건물의 크기를 비교하며 시대가 생산하는 아름다움을 보았고, 미술가 뒤샹은 기능이 없어진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이미 생산된 오브제ready-made를 통해 작가의 발상과 시각을 전달했다. 위대한 발명품도 시간이 흐르면 기능을 잃고 같은 물건도 시대에 따라 바라보는 가치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산업적으로 생산된 일반적인 물건들도 오래 쓰인 골동품이 되면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를 얻어 유일한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어떠한 문물도 변하는 시대안에서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시대에는 건축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묻고 있다.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는 ‘주거’를 뜻하는 단어이자 환경ecology과 경제economy의 접두사 ‘에코eco’의 어원이다. 이는 환경과 경제가 건축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오늘날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이나 건축은 존재할 수 없다. ‘템플’은 버려진 폐선박을 이용해 거대한 크기에서 느껴지는 스펙터클, 단면이 보여주는 절단의 힘, 비움과 열림의 해방감, 물건의 기능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보여 줌으로써 시대의 가치에 부응하는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일시적인 신전 미술관 마당에 놓여진 60톤의 쇳덩이는 그 거대함과 형태로 멀리서 작품을 보는 이에게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며 방문객을 유도한다. 입구에 위치한 배의 전면부의 곡선은 미술관 내부와 주 출입구로 향해 있기 때문에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외부에서 보이는 녹슬고 거친 표면과는 달리 하얗게 채색된 내부는 시원한 그늘아래 무성한 숲이 펼쳐진 듯한 아늑하고 평안한 공간을 형성한다. 주변의 건물과 같은 스케일을 가진 ‘템플’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작품을 둘러싼 옛 기무사 건물과 종친부 한옥과 함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건물로 느껴지게 한다. ‘일시적인temporary 신전temple’이라는 뜻의 ‘템플Temp’’은 재활용을 이용한 건축의 새로운 공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래된 물건이 가진 일종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공간이다. 설계 신스랩 건축 구조 터구조 조명 신스랩 건축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 면적 180m2(폭 13m, 길이 17m, 높이 8m) 설계 기간 2016. 2. ~ 2016. 7. 시공 기간 2016. 5. ~ 2016. 7. 준공 2016. 7. 4. 신스랩(shinslab)은 프랑스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건축설계사무소다. 설치 미술, 패션 디자인, 건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공간 속의 인체를 탐구하고 실험한다. 신형철(프랑스 건축사), 클레어 신(프랑스 건축사), 신혜리(패션 디자이너), 정이록(대표)이 공동 소장을 맡고 있다. 신형철은 1999년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베르사유 건축대학(ENSAV) 미술과 부교수,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ENSAPLV) 도시계획과 강사, 그레노블 건축대학(ENSAG) 디자인과 정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파빌리온, 도시의 실험실
    파빌리온은 최근 다양한 공모와 이벤트의 단골 주제다. 1998년 시작되어 신진 건축가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뉴욕 MoMA PS1의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이나 2000년부터 런던의 여름을 축제의 장으로 변신시키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이제 고전에 속한다. 맨해튼의 거버너스 아일랜드를 무대로 개최되는 시티 오브드림 파빌리온 공모전은 올해로 6회를 맞이했다. 국내에서도 파빌리온은 낯설지 않다. 2005년 안양파빌리온과 2011년부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있는 광주폴리, 2014년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등은 매번 화제를모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서울혁신파크의 파빌리온은 예술 작품으로 주목받던 파빌리온이 미술관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안적 공공시설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빌리온은 쉽게 만들고 또 쉽게 해체할 수 있으므로 현실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도시 속파빌리온은 도시에 있지만 마치 도시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유연함이 예술계가파빌리온에 주목하는 이유이자,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파빌리온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까닭이아닐까. 본지는 최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진화하고 있는 파빌리온을 살펴보고, 도시에서 파빌리온의 가능성과 그 실험적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템플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신스랩 건축 위빙 더 코트야드 MoMA PS1 영 아키텍츠 프로그램 2016 에스코베도 솔리즈 스튜디오 서펜타인 파빌리온 & 서머 하우스 서펜타인 아키텍처 프로그램 2016 비야르케 잉엘스 그룹 외 모바일 큐브 서울혁신파크를 누비는 이동형 파빌리온 안지용(매니페스토) 파빌리온의 도시적 역할 좌담 김영민, 송하엽, 정다영, 최춘웅
    • 김정은, 조한결, 김모아
  • [칼럼] 비장소, 헤테로토피아, 파빌리온 - 중中의 공간
    산업이 발전하고,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도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주변에는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공간들이 생겨났다는 것은 전에 없는 공간이라는 말이고, 당연히 그것은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뒷받침하거나 이끌기 위해 우리가 만든 공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른다. 비장소는 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장소가 근대 이전의 삶을 공간적으로 정의한다면, 비장소는 근대 이후의 삶을 공간적으로 규정한다. 물리학적으로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의 세 축을 가진 3차원 공간과 시간이라는 차원이 섞이면서 4차원 시공간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떨어뜨릴 수 없다. 우리의 기억이나 추억, 생각, 앞으로의 예측, 과거에 대한 설명 등은 모두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상태의 이야기다. 더군다나 공간과 달리 장소는 공간에 섞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 이전의 공간은 이러한 장소와 거주의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장소는 곧 거주로 인식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착민이든 유목민이든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집, 마당, 골목, 도시, 뒷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주막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것이 거주의 문제였다는 걸 증명한다. 그것이 이야기를 낳은 거주의 문제라는 것은 거기에 분명한 장소성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의 언어, 전설, 신화는 그들이 살았던 언덕, 고개, 초원 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은 물레방앗간이라는 장소와 메밀꽃밭으로 연상되는 계절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우연히 만난 동이와 허생원이 부자간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준다. 이 소설은 장돌뱅이들을 등장시킨 만큼 집이라는 거주의 장소보다는 계속 임시적인 공간, 즉 그 공간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이용자들은 그저거쳐 가는 공간들이 나온다. 주막, 물레방앗간, 그리고 계절을 알려주는 메밀꽃밭 등이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허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정분을 잊지 못해 그 처녀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계속 봉평장을 찾는다. 물레방앗간이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긴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근대 이전의 공간은 거기서 생긴 이야기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며 장소로 인식된다. 그러나 근대 이후 기계론적 합리주의와 시스템 속에 갇히면서 자아 상실과 의미 상실을 경험하며 우리는 장소를 상실한다. 우리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우리가 뭘 사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자본의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산다. 이미 밖에서는 자동차에게 길의 풍경을 내주었지만 쇼핑몰에서는 카트에게, 상품에게 우리의 길을 줘버린다. 그리고 계산대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뒤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다시 물건을 취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 다. 거기서 부딪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허생원이나 동이와 같이 서로를 간섭하면서 친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심지어 계산대 직원은 물건값도 모른다. 바코드 인식기가 모든 걸 해주고 거기에 맞춰 카드를 내면 된다. 공항 역시 마찬가지다. 검색대를 몇 차례 통과하면서 우리는 계속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네지만 나는 계속 익명으로 존재한다. 그 익명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익명성 덕택에 그곳은 늘 새롭다. 우리가 도시를 즐기는 이유는 거기에서는 우리가 어딜 가든, 영화관을 가든, 마트에 가든, 식당에 가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비장소라고 부른다. 집이라고 비장소의 예외일 수는 없다. 거기서는 모두 잠만 잔다. 집에서 익명성을 거두어주는 사람은 주부지만 그렇게 모두들 집을 나가고 나면 그 공간에 의해서 주부마저 소외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도시의 특징에 주목해서 개인적으로 한시적인 유토피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시적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비장소에 해당한다. 파빌리온pavilion 역시 이러한 비장소다. 파빌리온은 특별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지만 건축의 역할이 없는 건축이다. 연극에서 역할이 없는 배우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파빌리온은 건축에서, 혹은 조경에서 역할이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역할은 연극이 이루어지기 전의 무대와 같다. 무대에서 어떤 연극이 공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는 늘 어떤 연극을 기다린다. 파빌리온도 그렇다. 파빌리온은 어떤 성격도 가지지 않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헤테로토피아일 수도 있고, 비장소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이런 모호한 개념을 서양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차라리 동아시아 철학의 ‘중中’이라는 개념이 훨씬 유용하다. ‘중’은 유학에서는 ‘정확하다’는 의미다. 또한 불가에서는 ‘공空’의 의미를 ‘무자성無自性(non self-identity)’으로 해석한다. ‘무자성’이란 스스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즉, 아무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꽉 찬 상태고, 가능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상태다. 유가와 불가는 각각 다른 철학이지만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같이 ‘중’으로 표현하는데, 파빌리온 같은 모호한 공간을 규정하기에는 더 없이 정확하다. 파빌리온은 아무런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성의 공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역할도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금술에는 “모호는 모호한 것을 통해서, 미지는 미지의 것을 통해서”라는 격언이 있다. 모호한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그 모호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말로 모호를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정확하다.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1년 『공간』에서 건축평론신인상을 받으며 건축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가 있으며,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으로 읽는 옛집』, 『텃밭정원 도시미학』(공저), 『반하는 건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공저)를 썼다.
  • [에디토리얼] 마감에디토리얼을 쓰다가
    “비행기 의자 하나 사드릴게요!” 얼마 전 남기준 편집장이 던진 진심어린 농담이다. 사연은 이렇다. 봄과 여름이 때 이른 줄다리기를 하던 어느 날, 마감전쟁을 치르는 동료들을 나 몰라라 뒤로 한 채 학회 참석을 구실로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안한 마음에 에디토리얼이라도 빨리 넘겨야겠다고 작심했다. 굳은 결심의 효과였을까. 어깨를 펼틈도 없이 좁은 이코노미 좌석은 집중을 넘어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구상, 검색, 커피, 흡연, 산책 등 글쓰기의 필수 과정이라고 여겼던 일련의 습관을 강제로 생략당하니 글이 단숨에 풀렸다. 육필로 휘갈겨 쓴 원고를 옆 자리 승객에게 빌린 노트북으로 타이핑한 후 모니터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착륙 후 와이파이 터지는 곳에서 ‘원고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원시와 첨단이 뒤섞인 이 이상한 프로세스에 아마 독자들은 물음표를 던지실 것 같다. 몸은 바다 건너 멀리 있었지만 그 어느 달보다 빨리 끝낸 원고를 칭찬하며 편집장은 한 달에 한번 마감 때마다 국내선이라도 꼭 탈 것을 권했고, 마침내 비행기 의자 선물이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떠올린 것이다. 이제 2년 반이 넘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매달 잡지의 첫 지면에 무언가를 쓴다는 게 영 어색하다.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A4 두 장의 짧은 글, 하지만 한 달 내내 어깨를 내리누른다. 사례는 나의 힘! 서점과 온라인을 두루 헤매며 국내외 저명 전문지는 물론 잘 나간다는 상업 잡지의 에디토리얼을 사례 연구하기도 수차례. 그러나 답은 없다. 근사한 스타일로 간명하게 독자들을 사로잡는 멋진 글들을 흉내 내보지만 결국 아류의 티를 보정할 수 없다. 그달에 실리는 내용을 두루 안내하면 모범생이 쓴 교과서 서문처럼 재미가 없어진다. 공들여 기획한 특집에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끌어들일 요량으로 특집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중언부언이 되기 십상이다. 약간의 메시지를 담거나 주장을 넣으면 진부한 계몽이나 어설픈 설교의 곁길로 샌다. 최근에 마음 꽂힌 책이나 작품에 초점을 두면 먹물 버릇이 발동해 당장 고루한 논문이라도 쓸 태세다. 이른바 조경계의 현안(?)이란 걸 다루자니 수영복 입고 지하철 타는 기분이고, 그 현안을 다른 프레임으로 진단하자니 매국노 취급당할 게 뻔하다. 재치를 발휘한답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프로 편집장과 편집팀장, 그리고 아마추어 편집주간이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거나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수다를 떠는 용도로 쓰는 ‘단톡방’의 대화내용을 버무려 집단 창작이라는 미명 하에 이 지면에 적은 적도 있다. 잡지 리뉴얼 때부터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고견을 들려주고 있는 몇몇 선배들로부터 얻어내는 아이디어나 정보를 가공해 싣기도 한다.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세미나의 줄거리를 옮긴 적도 몇 차례. 심지어 어느 제자와 나눈 대화를 조금 살을 붙이고 가다듬어 기록하기도. 고백하자면 어느 학기의 종강 때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었던 편지를 에디토리얼에 재탕으로 우려 싣기도 했다. 참으로 놀랍고 곤혹스러운 사실은 의외로 이 지면을 읽는 독자가 많다는 점이다. 정확한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편집부에 들려오는 여러 소문을 종합해 보면, 비교적 열독률이 높은 지면은 에디토리얼과 잡지 제일 뒤쪽의 코다CODA, 본문 중간중간의 텍스트 양이 많지 않은 짧은 연재 글들이라고 한다. 특히 잡지의 첫 쪽이다 보니 이 지면을 펼치고 잠시 시간을 투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에디토리얼보다는 열심히 만든 특집, 그달에 힘준 작품, 필자의 많은 공이 들어가는 연재 글들에 시선을 던져 주십사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앞에서 구구절절 징징거리며 늘어놓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 에디토리얼 지면은 매달 잡지의 마감일을 지연시키는 주범이 된다. 디지털 출력본의 교정까지 끝내고 인쇄소로 넘어갈 준비가 완료된 상황, 모두가 목을 빼고 내 원고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 대략 난감이다. 또 한 달이 흐르고 어김없이 만난 막다른 길, 머릿속을 산만하게 떠다닌 글감 세 조각을 소개한다. 원래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가 강력한 후보로 경쟁했는데 마감에 몰려 쓰다 보니 어디론가 휘발된 모양이다. 첫 번째 후보는 조경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가 “조경, 다른 이름을 가지는 것은 어떤가”(라펜트, 2016년 7월 10일)라는 칼럼을 통해 6월호 에디토리얼 “조경이라는 이름”의 문제의식을 확장해 주었다. 공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는데, 이 지면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가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듯이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이 하는 일이나 결과물을 대변하지 못하고 … 조경이 하는(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고 있다”면, 40년 넘게 정든 이름이라 아쉬움 가득하지만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경은 조경에 갇혀 있다. 경합을 벌인 두 번째 후보는 용산공원. 수면 아래에서 잠잠하던 용산공원이 지난 4월 이후 심심찮게 언론을 타고 있다. 공원에 들어갈 ‘콘텐츠’를 선정하는 공청회 이후의 일이다. 2012년의 국제 설계공모 이후 당선작을 바탕으로 기본설계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실종되었던 용산공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쟁점의생산 과정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그 핵심 이슈가 시간을 역행하는 양상이라 우려된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의 비논리적인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의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추진하는 것과 예산의 전액 삭감에 따른 계획 중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슈다. 심도 있게 기획해 본문에서 다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마지막 후보는 이번 특집인 파빌리온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8월의 특집 ‘파빌리온’은 무더위에 지친독자들을 의식한 계절형 기획이다. 폭염으로 가득한 한여름의 도시, 어딘가에 숨겨진 나만의 자유의파빌리온을 찾아보시길. 참고로, 비행기 의자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중고로 나온 물건도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취향의 탄생과 유행
    요즘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혹독한 감기에 시달린 후 나는 자극적인 커피 대신 평소 밍밍하게 느끼던 차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당시 누군가 건넨 홍차 한 잔에는 은은한 달콤함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둔했던 나의 혀끝과 코는 차의 맛과 향을 분간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최근 다양해진 커피의 세계만큼, 홍차 역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그 종류가 다양해서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처음에는 조금 막막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인터넷에서 최근 홍차의 유행 바람을 타고 각종 티살롱이나 브런치 카페를 섭렵한 파워 블로거들이 펼쳐내는 수많은 정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는 지인들과의 정보 교류가 활발해졌다. 모여 앉으면 각 차 맛에 대한 품평(까지는 아니고 추천)이 이어졌고, 블랜딩 방법, 차 도구, 티푸드, 패키지 디자인 등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때 각자의 성향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차를 만드는 시간에 가벼운 차 이야기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며 본격적인 대화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차를 우리는 시간을 조급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차를 마시기 좋은 소위 ‘핫’한 카페를 소개하는 사람도 있고, 찻잎의 색깔을 논하는 사람도 있다. 차에 관한 해외의 최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고, 차라면 모르는 일이라고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아무튼 차를 마시는 시간은 바쁜 일과 중 모두들 짬을 내어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다. 또 차를 둘러싼 다양한 화제를 보면 차는 맛뿐만 아니라 멋이 중요한 문화인 듯하다. 이런 차 문화는 비단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차를 마시는 문화가 처음 시작된 18세기 영국에서도 비슷했다. 최근 한국18세기학회의 회원들이 엮어낸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은 ‘미각’이란 키워드를 통해 18세기의 여러 문화적 현상을 살펴본 책이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고급스런 음식이 대중화되고, 이국적 음식이 세계화되는 변화가 크게 일어난 시대이다. 또한 18세기는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어온 맛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문화의 전면에 등장한 시대이기도 하다. 민은경 교수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는 영국에 상륙한 홍차에 담긴 문화적 의미와 정치경제학적 배경을 설명한다. 영국의 국민 음료라고 할 수 있는 홍차가 영국에 보급된 시기 역시 18세기이다. 당시 중국에서 수입했던 차나 자기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는데,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찻상과 장식장을 별도로 제작하고 화가를 고용해 찻상을 둘러싼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풍속화에는 ‘담화도Conversation Piece’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컨버세이션conversation’은 대화를 나눈다는 좁은 의미보다, 여러 사람과 관계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렇듯 가정에서 차를 마시는 공간은 손님을 접대하고 만나는 사교의 공간이었고, 차는 새로운 사교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집에서 마시던 차를 점점 정원과 공원과 같은 야외에서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귀족들에 한정되었던 차 문화는 누구나 향유하는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 즉 ‘그들만의 호사’가 ‘모두의 취향’이 된 것이다.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이 사실 차 전쟁이었고, 미국 독립전쟁 역시 식민지 미국에서의 차 수입과 유통을 통제하려 했던 영국의 정책에 반발했던 사건인 보스턴차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음을 떠올린다면, 미각과 음식은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주경철 교수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는 유럽에서 버터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밝히며, “사람이 향유하는 맛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특정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기까지는 분명 사회적으로 배워서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현재 서양 요리는 대부분 베이스로 버터를 사용해 부드럽고 섬세한(느끼한) 맛을 내는데 반해 중세의 음식은 고급 요리일수록 후추를 많이 첨가해 매웠다. 중세 유럽에서 매운맛이 고귀한 지위를 누린 것은 아시아에서 수입해야 했던 후추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을 평가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퍼뜨리는 주역은 대개 상층사회 인사들이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가 어떤 음식을 즐기는 것은 그들만이 그 음식을 독점한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맛의 유행에서 희소성은 지극히 중요한 요소다.” 17세기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직항로가 개척되면서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모든 사람이 후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상류층은 후추 대신 다른 향료를 찾았고, 최대한 섬세한 맛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러한 맛의 이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18세기 프랑스 요리였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프랑스 요리는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맛의 역사라는 것이 쉽게 말해 ‘허세’가 좀 섞인 ‘멋’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내가 커피 대신 홍차에 관심을 돌리게 된 계기가 지인이 건넨 차 한 잔에서 비롯된 것이니, 차를 마시겠다는 선택은 내가 한 것이지만 지인들의 차 문화 혹은 지금의 홍차 유행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에서 기호품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그 역시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 놓여 있다. 기호 음료를 둘러싼 산업 구조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한 때 ‘세련된 취향’으로 자리매김했던 커피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웰빙과 힐링 바람을 타고 온 녹차 문화가 시들해지면서 그 대체품으로 홍차가 떠올랐을 수도 있다. 바우만 Zygmunt Bauman은 그의 저서 『유행의 시대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에서 오늘날 “문화의 역할은 기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동시에, 이미 확립되었거나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들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유행이 ‘되어감’이란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갈망, 즉 “어떤 집단이나 집합체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과, 군중과 구별되어 개성과 독창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며 멈추지 않는 진자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편승한 곳은 취향의 공동체이리라. 그리고 나의 홍차 사랑은 언제 또 다른 기호의 소비로 옮겨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아파트에 얽힌 우리의 삶 아파트 인생 展 2014.3.6.~2014.5.6.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아파트는 급작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1950년대 서울에 초창기 아파트가 출현한 후 불과 3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아파트를 다르게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펼쳐진 다층적인 삶의 모습은 길지 않은 아파트 발달사 속에 촘촘하게얽혀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를 전시로 엮어냈다.기획을 맡은 정수인 학예사는 “아파트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며 “아파트가 담고 있는 삶의 여러 모습을 통해, 주로 비판의 대상이었던 아파트를 ‘우리 것’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아파트 인생” 展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우선 중산층의 표상이 된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아파트 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의 삶이 이어진다. 마지막 ‘내 고향 아파트’에서는 차가운 콘크리트를 따듯한 고향으로 여기는 아파트 키드를 묘사한다. 세대와 계층의 차이로 다르게 펼쳐진 세 가지 ‘아파트인생’인 셈이다.연계 전시로 열리는 “프로젝트 APT” 展도 눈여겨볼만하다. 아파트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현대 작가17인이 참여하여 아파트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아파트의 탄생과 소멸, 아파트에 내재된 욕망, 아파트에 관한 추억과 환상이 담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 아파트와 중산층의 역사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에서는 해방 이후 최초로 건설된 종암아파트부터 오늘날의 타워팰리스로 이어지는, 아파트 공급과 중산층 양산의 역사가 전개된다. 각 시대별 아파트가 탄생한 배경과 아파트를 ‘좇는’ 중산층의 삶을 당시의 사진과 분양 홍보물, 아파트 지구도 등다양한 사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아파트의 발달로 인해 변화하는 어머니들의 삶과 복부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냈다. 생활양식의 변화를 다룬 전시 가운데 서초삼호아파트의 내부를 구현한부분이 흥미롭다. 서초삼호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해 철거될 예정인데, 그곳에 살던 한 가구의 집(111m2, 33평)을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분양 당시의 모습을 거의 변형 없이 유지하기 위해 라디에이터, 붙박이형 거실장식장 등을 고스란히 전시했다. 아파트 내장재와 함께 옮겨온 생활용품과 가구는 시대에 맞게 추가 보완하여 1980년대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데 이용했다. 관람객은 현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30년 전 아파트 생활 공간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는 독특한 체험이다. 쫓겨나는 사람들: 철거민들의 이야기 아파트를 좇는 사람들이 중산층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한편, 아파트로부터 쫓겨나 삶이 무너진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 “홀리데이”(2006)의 철거 반대 운동 장면을 편집한 영상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코너는 이러한 철거민들의 삶을 다룬다. 아파트 개발은 서울의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터전마저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1960년대 서울 도심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은 상계, 목동 등지의 외곽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1971년에는 광주 대단지 이주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시빈민운동의 시작을 알린다. 1980년대는 상계, 목동개발로 촉발된 철거민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난 시기다. 전시된 사진과 언론 출판물 등은 이러한 철거민들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은 1980년대 철거민들이 마주한 처절한 현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내 고향 아파트: 아파트 키드 세 번째 코너에 들어서면 동요 “고향의 봄”이 들려온다. 노랫말 속 ‘꽃피는 산골’을 고향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중년들에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아파트는 어색한 타향일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를 전후로 태어난 ‘아파트 키드’에게 아파트는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이다. 아파트가 품고 있는 그들의 다양한 추억을 보여주기 위해 약 한 달간 시민 사진 공모가 진행되었다. 전시에는 『윤미네 집』으로 유명한 고 전몽각 작가 등 총 10인의 사진이 공개된다. 재건축으로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를 주제로 하는 전시도 볼 수 있다. 이인규 시민큐레이터의 주도로, 둔촌주공아파트를 고향으로 여기는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모았다. 이 사진들은 전시장의 ‘기억의 지도’ 위에 놓여졌다. 사진 속에는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아닌 눈썰매를 타는 언덕, 코끼리 모양의 미끄럼틀 등 즐거움이 깃든 장소가 담겨 있다. 둔촌주공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키드’의 고향은 오늘날에도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지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는 이들의 따듯한 기억이 서려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우리 곁에 언제나 익숙하게 서 있는 아파트를 ‘삶’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렌즈에 비친 아파트는 단조로운 회색 블록이 아니다. 살아있는 중산층의 역사이고, 철거민들의 삶을 누른 흔적이며, 아파트 키드의 아늑한 고향이다. 이러한 삶의 단면들은 결코 낯선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트로 빚어진 도시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시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안내하는 아파트 인생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아파트 인생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 조현준
  • 양질의 공원 조성으로 구도심 활성화 모색 안동시 도심소공원 설계 공모
    지난 2월 ‘안동 도심소공원 조성 기본계획(안) 현상설계 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당선작은 해동기술개발공사가 제출한 작품으로 ‘한국의 선비 정신’을 콘셉트로 하여 안동 구도심의 소공원을 특화 공간으로 설계했다. 안동시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48억 원을 들여 ‘안동 중앙문화의거리 사업’을 시행한 바 있는 데, 이 사업은 신한은행~대구도료, 안동관~대구은행(510m) 구간의 가로를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공동화 되어 가는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사람들이 찾아들자 부족한 녹지와 야외 쉼터 확충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시는 구도심의 부족한 녹지 해결을 위해 중앙문화의거리 시점부에 방치된 공터를 매입했고, 이를 소공원으로 조성해 중앙문화의거리와 연계된 녹지를마련하고자 했다. 공모전의 대상지는 안동시 운흥동 소공원(가칭) 외 2개소(옥야동 소공원, 태화동 소공원) 약 3,000m2로, 안동 중앙문화의거리와 연접해 있는 공간이다. 각각 안동 구시장과 신시장, 서부시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데, 방문객뿐만 아니라 시장의 상인과 구도심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을 겸하고 안동시에서 공 들인 ‘안동 중앙문화의거리 사업’의 연장선에 있어 소공원 대상지의 입지적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에 시에서는 입찰 방식이 아닌 설계공모로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소공원 조성은 입찰을 통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에 많은 소공원들이 저가 설계 입찰이나 입찰 후의 하도와 재하도, 하급 공무원과 시공/시설물 업체의 유착 등으로 공사 결과물이 허술해 실제 이용률이 저조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결국 재공사를 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3월 7일 서울시설공단 주관으로 열린 ‘조경공사전문가 합동 토론회’에서도 설계 원안의 품질이 조경공사 품질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시공사 관계자들은 현장의 상황과 크게 다른 설계도면도 다수 생산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발주처가 설계자 선정에 보다 신중을 기하길 당부하기도 했다. 조경공사 발주 방식 개선의 필요성이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일반입찰 방식으로는 한 회사 기술진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로 두세 가지 안을 만들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원은 한 번 조성하면, 몇 십 년은 유지해야 하므로,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생각했다”며, 설계공모를 실시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 한양도성 주변 성곽마을 학술회의 성곽마을의 가치와 가능성
    한국 인구의 1/5이 서울에 산다. 그만큼 한국의 도시 중 가장 번화하고 활성화되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도시 곳곳에 과거의 흔적들이 스며있고, 일상에서 유구한 역사의 맥락과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형과 하나 된 한양도성 성곽 유적이 서울을 가로지르고있기 때문인데,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며 파괴되었음에도 상당 부분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도시 속에서 원형을 잘 유지한 성곽 유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한양도성 성곽의 멸실된 구간에 대해 복원 작업과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최근 몇 년 사이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 지난해 11월 14일에는 한양도성의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 후1년간 ‘진정성’과 ‘완전성’을 인정받으면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확정된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이 있다. 바로 성곽마을이다. 확장되는 유산의 개념 그동안 한양도성의 가치는 성곽 자체에만 중점을 두어 문화재라는 단편적인 테두리 안에서 제한된 시각의 접근이 이루어졌다. 한양도성 성곽과 연접한 곳에는 20여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대개 성곽마을은 노후화된 마을로 개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기점으로, 이제 그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연구원과 온공간연구소는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한양도성 주변에 위치한 성곽마을에 대한 학술회의(서울시 후원)를 개최했다. 한양도성이 아닌, 성곽마을을 주제로 한 회의가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박소현 교수(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따르면 유산의 개념과 대상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이제 장소와 경관까지도 유산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단일 건축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서울의 장소성과 도시 경관으로서 가치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박 교수는 “단일 건축물일 때의 보존 방식과 장소 및 경관일 때의 보존 방식은 다르다”면서, “살아있는 유산의 보존을 위해서 가장 근간이 되는 요인의 하나로 지역공동체의 지속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양도성 성곽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성곽마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재개발에 발목 잡힌 주거 환경 개선 성곽마을은 계획된 마을이 아니다. 전후 피난민들이 한양도성 주변으로 모이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 때문에 주거를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은데, 박학룡 대표(동네목수)는 ‘장수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곽마을의 실태를 전했다. “장수마을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과 갈라진 콘크리트 벽, 깨진 골목길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분양권이나 투자수익을 위해서는 동네가 더 낡고 위험해야 한다고 여기는 집주인들이 많았다. 집주인과 연락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세입자들은 언제 헐릴지 모르는 남의 집을 굳이 돈을 들여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재개발예정구역이 된 순간부터 전혀 관리되지 않는 동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개발 계획이 성곽마을 주민들의 환경 개선에 대한 의지를 꺾어놓고 있었다. 다른 마을도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혜경 교수(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북정마을의 최대 화두도 재개발이었다. 토지를 소유한 주민들은 마을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그렇지 않은 주민은 환경이 더욱 열악한 곳으로 밀려났다. 성곽의 보존 그리고 재개발. 환경적 제한과 개발 논리 사이에서 성곽마을 사람들은 소외되어 왔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것이다. 장소와 사람의 내밀한 대화 아파트 재건축이나 대규모 공사를 통한 정비가 주거환경 개선의 최선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방식은 이제 시민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 재정도 이러한 개발을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도심부 관리계획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기존 장소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재조명해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박학룡 대표는 주민 간의 관계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해 장수마을 경관 개선 가능성을 일깨웠고, 이혜경 교수는 관官, 학學, 예藝, 민民 파트너십을 통해 북정마을을 예술의 무대로서 기능하게 하여 주민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기존과다른 방식으로 주거 환경 개선에 나서 성공적인 성곽마을 개선 사례로 꼽히며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양도성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치는 사람이다. 학술회의에서 발표자와 토론자들 사이에 거듭 강조된 내용은 사람들과 장소가 가진 이야기다.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한 경관 향상과 한양도성 성곽의 물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살아있는 장소가 되어야 그 가치가 배가 된다는 것이다. 송경용 이사장(나눔과 미래)은 “과거의 도시 개발방식은 개발의 희생자에게 또 다시 희생을 강요해왔지만, 이제 그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주민들과 그들이 사는 장소의 내밀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양도성의 성곽이 살아있는 생물로서, 사람과 성이 대화하는 성곽마을로 살아 숨쉬기를기대했다. 한양도성과 성곽마을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대화. 이는 성곽마을을 넘어 도시에 대규모 개발만이 주거 환경과 경관 개선의 정답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