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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의 경제학] 경관의 수요: 자본에 의한 발생과 소멸의 메커니즘
    경관 수요와 경관 효용 경관의 수요는 경관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 이상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 또는 욕구의 차원을 넘어, 대가를 지급하고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의사를 경제학에서는 ‘수요demand’라고 한다. 경관의 수요자는 대가를 지급하고 경관을 소비한다. 이때 그 대가가 조망점의 공급자에게만 귀속되고 조망 대상의 공급자에게는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경관의 적정한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호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경관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리가 경관을 체험할 때 무엇을 얻는가? 경제학자는 이러한 질문을 ‘경관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무엇인가?’로 정리할 것이다. 경제학에서 효용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우리의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하는 능력’ 또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만족’을 말한다. 효용은 수요의 원천이다. 사람들은 효용을 얻기 위해 소비하고, 기업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골몰한다. 이 글에서 경관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대기를 정화하고 종 다양성을 높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경관이라는 단어는 인지된 심상뿐만 아니라 (인식 밖에 존재하는) 인지의 대상을 칭하기도 하므로, 위와 같은 효과가 경관의 효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 자연, 생태계 등의 단어와 차별화된 ‘경관’이 가지는 고유의 효용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오관을 통해 인지되는 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경관을 체험한다’고 할 때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경관이 발산하는 긍정적 외부효과 정도로 생각하자. 경관의 효용을 인식의 영역에서 찾는다면 경관 체험의 중심에는 미적 체험이 자리하게 된다. 우리가 경관의 체험을 통해 얻는 쾌pleasure에 미적인 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 미학에서 다루는 미적인 것the aesthetic의 범주가 매우 넓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학적 방법으로 경관의 효용을 다루는 것이 그리 편협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는 경관을 체험하는 과정을 파헤치거나, 미적 체험을 유발하는 경관을 선별하거나, 보다 근본적으로 경관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등의 미학적 설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경제학적 관심으로 경관에 대한 수요의 발생과 소멸에 자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성과를 몇 가지 참고한다. 자본에 의한 경관 체험의 조작 자본은 능동적이고 지능적이다. 자본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토대와 상부 구조를 능동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 변화의 대상에 경관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본이 강압적이지는 않다. 자본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를 조작함으로써 목적 달성의 효율성을 지능적으로 추구한다. 경관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특정한 경관에 대한 우리의 미적 체험을 바꾸는 기제는 18세기 영국의 미학 이론인 취미론에서 단서를 찾을수 있다. 취미론은 독일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1714~1762)에 의해 자리 잡은 ‘미학’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 널리 쓰이기 전에 벌어졌던 철학 논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 기독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상가들 사이에는 ‘미beauty’라는 것이 객관적인 대상에 내재한 성질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이 비례와 같은 특징이건, 이데아와 같은 추상적 실재건, 신으로부터 기인한 무엇이건, 시대에 따라 설명은 달랐으나 미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세의 몰락과 함께 낭만주의가 등장했고 미적 체험에 대해서도 주관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취미론은 이러한 과정에서 미의 존재론에 대한 객관론과 주관론의 거리를 세련되게 탐구한 이론이다. 샤프츠베리Third Earl of Shaftesbury(1671~1713)는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에 대한 이론으로 취미론의 문을 열었다. 무관심성이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진정한 미적 체험을 ‘무관심의 상태에서만 도달 가능한 어떤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미의 철학을 성립시켰다. 경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허치슨Francis Hutcheson(1694~1746)은 내적 감관internal sense이라는 개념을 통해 취미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오관과 별도로 미를 감지하는 내적 감관으로서 미의 감관sense of beauty이 존재하며, 이 감관을 통해 느끼는 쾌가 바로 미의 관념idea of beauty이라고 보았다. 취미taste란 이러한 감관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에게 미적 감관은 오관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자극에 대해 미적 감관은 동일한 반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는 그 이유가 미적 감관에 있지 않고, 관념 연합association of ideas에 있다고 보았다. 관념 연합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일어나는 연상과 같은 것이며, 그것이 형성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습관이다. 관념 연합이 미적 체험의 과정에 작용해서 동일한 대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성장이야기
    지난달에는 감히 우리에겐 정원이라는 문화가 없었으며 그래서 조경이 참 힘든 일이 되었음을, 그러나 이제 필요성이 절실하니 조경가가 이를 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경을 업으로 삼고 있는 동료 조경가 중 어느 누구도 이 일이 중요함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이 일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단순히 돈을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큰 회사에 다니다가, 그리고 어느 설계사무소에 다니다 그만두고 스스로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설계란 그림만 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어지지 않고 그림으로만 남는 설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시작할 때도 돈이 되는 일 앞에 지어지는 일을 놓고자 했다. 이 같은 실천을 통해서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워보리라는 작은 소망을 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설계의 역할을 제대로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아 힘들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설계가로서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려한다. 보잘것없지만 오로지 순수하게 설계를 잘하고 싶은 조경가 박준서의 성장 이야기. 부디 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기를 바란다. 왜? 부끄러우니까. 습관에 대한 도전 건설사의 현장 사무소. 나는 현장의 공사 담당 소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며칠 동안 우리가 설계한 플랜터의 상세도를 자꾸만 문제 삼기에 오늘은 기필코 결판을 보리라 다짐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며칠 전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한참 시공 중인 현장에 느닷없이 시공사의 임원이 순시를 나왔는데 플랜터의 상세도를 두고 혹평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을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시공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건 안 된다는 거였다. ‘어쩌라고요?’ 나의 외침은 목구멍을 넘어오진 못했다. 대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네…. 하지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만큼 이대로 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박 소장, 이거 이렇게 진행했다간 당장 내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몰라.” “예? 아니 왜요?” “그 임원이 자기 말대로 안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큰소리치고 갔다고.”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람. 하지만 이곳은 한국,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왜 그런 디테일을 선택했는지, 그것이 생각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이삼일이 지나고 현장에서 미팅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만약 내가 디자인한 디테일로 시공하기로 결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왜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는지, 나 참 힘들어서 못 해먹겠네. 아무리 회의를 해도 내가 고집을 꺾지 않으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물어왔다. “박 소장, 만일 현장에서 저 디테일을 바꾸면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순간 머릿속에 이걸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나 이 땅에는 설계자의 손을 들어줄 수단도 시스템도 없었다. 건축에는 감리가 있으니 그를 통해서라도 설계에 힘을 실을 수 있겠지만, 조경은 그런 것도 없고 감독은 뭘 하든 문제만 만들지 말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었다. “뭐제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겠네요. 그냥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겠죠?” 정말 내 심정은 그랬다. 다음날 다행히 시공사에서 본래 디테일대로 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시공사에서 걱정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디테일을 그 후로도 자주 써먹었고, 그럴 때마다 시공자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발주자나 의뢰인을 설득하는 일보다 현장의 작업반장을 설득하기가 더 힘든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야 했다. 지어지는 설계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난감한 상황. 설계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마주하는 상황이다. 상황의 경중을 떠나서 시공자가 설계자에게 설계의 의지를 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의 시공 경험에 반한다는 이유로. 설계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역할이 이 땅에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이 땅에서는 설계의 역할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내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습관의 벽이었다. 그런 습관을 시공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 그룹도, 설계가인 나 자신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버릇처럼 해왔기 때문에 이미 굳어진 믿음을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파란 설계가 놈 하나가 바꾸려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본 것이다. 습관이 곧 고정관념이 되고, 그 고정관념을 너무 신봉하다 보니 신념이 되었고,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은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설계는 역설적으로 그런 습관을 깨는 작업이어야 한다. 힘들지만 습관을 이해하고 분명히 그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와 당위성도 함께 제시하면서 말이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작업반장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설계. 그것이 하고 싶었다. 형태 말고 공간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 설계공모. 나는 건축가와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만든 공간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생활하고 일하고 노는 곳이고, 그런 공간은 조경 작업이나 건축 작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가와 설계공모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커다란 대상지의 도면을 앞에다 두고 건축가와 마스터플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박 소장님, 저희가 원하는 건 이런 그림이 아닌데요.” “네? 그럼 어떤 걸 원하시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뭔가 좀 더 그로테스크하고 힘차면서도 기능적인 그런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건물과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네…. 그게 어떤 건데요?” “아니, 왜 그러세요. 그동안 잘 해주시더니. 왜 있잖아요. … 그래야 이 평면이 살죠. 건물도 살고. 밑바탕이 근사해야 건물이 더 도드라 지지요. 조경은 그런 거잖아요.”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금기어는 뱉지 말았어야지. 내가 삽화가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만화가를 섭외하지. 얼마 전 우리가 설계한 지방 모 기업의 사옥을 다녀왔다. 설계는 벌써 몇 년 전에 했고, 제법 많이 참견할 수 있어서 설계안에 꽤 근접하게 시공이 되었다. 의뢰인 측도 매우 만족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좋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곳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설계는 평면 중심의 설계가 진행된 대표적인 예였다. 기업의 독보적인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드라진 형태와 디테일로 설계된 곳인데. 막상 가보니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퍼걸러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숲은 얕았으며 그늘 밑에는 앉을 곳이 없고 벤치가 놓인 곳엔 볼 게 없었다. 운동 삼아 산책로를 걸을 수는 있겠지만, 머물고 싶은 곳이 없어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 된 것이다. 내심 충격이었다. 입으로는 열심히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고는 정작 기회가 왔을 때 그러지 못하다니. 보여주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나? 내가 그린 그림이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누구에게?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히 사용자는 아닌 듯하다. 나는 내가 대단한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형태를 과하게 조작하고, 입체적 조형을 도입하고, 강렬한 대비 효과를 쓰고, 이를 사람들이 못 알아먹을 이상한 말로 포장하려 했다. 어쩌면 우리가 공모나 설계 설명서에 써넣던 강렬한 기능, 즉 축제니 문화 행사니 캠핑따위의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만든 공간은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런저런 용도나 잠시 앉아 마음을 달래는 공간으로 더 많이 쓰일 텐데, 정작 그런 용도로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니. 피터 워커의 테너 파운틴(Tanner Fountain)이라는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가 평소 이야기하듯이 테너 파운틴은 하나의 디자인적 제스처가 매우 다양한 역할을 일궈내는, 그리고 분명하게 보이는 설계의 표본이라 생각했다. 2000년에 그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설계는 반드시 눈에 띄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군중 속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예로 들며 그처럼 눈을 사로잡는 대상을 설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지당하며 공감 가는 이야기다. 단, 우리가 다루는 이 공간들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라 그게 문제지. 테너 파운틴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그의 설계 태도와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설계가로서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은 무덤과도 같은 일이다. 독특하고 유일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설계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적 틀을 갖추는 노력이 더 우선 되어야 한다. 테너 파운틴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당시 그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조경 설계가 너무 튀려고만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적 세팅을 하는 데 게으르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잊고 있었다. 아니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그 너머의 사람을 보다 몇 해 전, 어느 마을의 작은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설계와 시공을 하게 됐다. 몇 차례 대상지를 답사하면서 설계 아이디어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시공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우린 그곳에 자그마한 쉼터를 만들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내심 기뻤다. 이 공간을이용하며 즐거워할 주민의 웃음 띤 얼굴을 벌써 마주하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기대됐다. 어느 날 답사를 간 우리는 한 가지 해프닝을 목격했다. 우리가 휴게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 버려진 녹지를 둘러싸고 주민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녹지 바로 옆에 거주하는 할머니 한 분이 평소 이 녹지에 꽃을 심어 가꾸고 있었는데, 이웃 주민이 그걸 보고 야단을 친 것이었다. 왜 공공의 땅에 개인적으로 뭔가를 심고 가꾸는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의아했다. 왜 그게문제가 되지? 그 땅을 그 할머니가 소유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그 땅을 일궈 밭으로 쓰려 한 것도 아닌데. 그 할머니도 우리처럼 그냥 그곳에 꽃이 피고 낙엽이 지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 문제는 비단 한 사람이 공공의 땅에 꽃을 심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기보다 설계가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명분이 항상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 마을은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 그려진 벽화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예술가의 순수한 마음이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다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예상한 것들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이런 예뿐만 아니라, 우리가 설계하면서 만나는 공간들은 대상물로서의 물리적 구성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에는 어마어마하게 깊고 복잡한 인간관계가 투영되어 있고, 그 안에는 온갖 욕망과 사욕이 얽혀있다. 어쩌면 설계란 그런 욕망의 교통정리 행위거나 욕망의 분출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년 뒤 다시 찾은 작은 녹지엔 그때 만들어 놓은 벤치들이 있었다. 길을 오르내리던 주민들이 그곳에 잠시 앉아 가쁜 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주변에는 그 당시 심긴 초화들이 사라졌다. 꽃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쉼터에서 그냥 평범한 쉼터로 변해 있었다. 아마 그 할머니는 더 이상 이곳의 꽃을 돌볼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그 작은 쉼터가 주민의 마음에 따듯한 마음을 깃들게 하는 자리이기를 바랐지만 상처만 남긴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애송이 설계가 어느덧 설계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매 순간 이제야 설계를 좀 알게 됐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땐 뭘 몰랐지 싶다. 지금까지 참 많은 프로젝트를 다루며 늘 좋은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당시에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완성해 내려 했지만, 돌이켜 보니 허점들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그 프로젝트들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이 사무실을 시작하며 수행한 프로젝트에는 결기 넘치는 젊은 열정이 보이지만, 또 다른 10년을 바라보는 지금은결기보다는 무난한 안정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야 도면에 쓰여 있는 산책이, 휴식이, 삶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몇 해 전 나이 50을 바라보는 설계 선배가 자신은 아직도 애송이라고 하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 난 아직도 많은 성장을 해야 하는, 아직은 덜 익은 설계가일 수도 있겠다. 이제야 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조금 깨달은, 이제야 설계 대상지에서 그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읽어 낼 수 있는, 그래서 이제야 그곳에 맞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설계가라고 말하고 싶다. 박준서는 ‘Link Landscape with Life’라는 모토로 디자인엘을 설립해운영하고 있는 조경 설계가다. 조경이란 근원적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문화적으로 해석해 일상에 녹여 내는 행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 조경 설계의 사회적 역할을 바로 세우기를 바라고, 지어지는 설계를 실천하고자 한다.
  • [공간 공감] 숲을 디자인하다
    내가 좋아하는 조경가 한 명은 이렇게 얘기했다. 숲에서 놀아보지 않은 자는 설계하지 말라고. 그만큼 숲은 자연을 다루는 우리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고, 사전 같은 참고 문헌이 되기도 하며,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숲에 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는 근본적인 무기를 하나 더 구비한 셈인지도 모른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구본무 회장의 아호를 따 만든 비영리 수목원이다. 부담스러운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기꺼이 또 하루를 내어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산자락의 남쪽 사면 760,330m2(약 23만 평)에 걸쳐 4,300여 종의 식물이 공존하는 화담숲은 여느 산림에 비해 종 다양성이 높다. 자연 상태로 두었다면 분명히 경쟁과 도태 때문에 유지하기 힘든 숫자일 테다. 그렇다면 이곳은 보전된 자연 산림이라기보다 정성스럽고 치밀하게 디자인되고 꾸준히 관리되는 정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겹게 얘기하는 숲’이라는 의미의 화담숲. 그러나 화담숲에서는 ‘말하기’보다는 ‘걷기’에 몰입하게 된다. ‘걷다’라는 행위는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가 찬양해왔듯, 생각과 감성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신체 행위를 통해 깨워내고 세상과 나를 감각적으로 또 사유적으로 연결시키는 사람만의 고유한 특권이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하늘을 보게 되고, 땅과 하늘을 잇는 존재로서의 독자성을 갖게 된 것은 인류사의 발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공원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을 떠올려본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하나의 이상적인 자연을 만들고자 했던 인류사적 욕구인 픽처레스크 정원은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서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걷는다는 행위, 그로 인해 풍경 속의 내가 그림을 주체적으로 편집하여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비로소 화폭에 담긴 풍경화를 우리를 둘러싼 공간으로, 현실로, 일상으로, 문화 영역으로 바꿔주었다. 화담숲은 참으로 걷기 좋은 곳이다. 편안한 경사를 유지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계획된 일련의 산책로와 데크구조물은 움직임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주제원으로 몰입시키거나, 근경과 원경을 교차로 바라보게 만들어 숲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릉이 많은 한국적 픽처레스크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많은 날에 가면 등 떠밀려 올라가야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풍경 속으로 점멸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의 무희적인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사람이 많을 때에만 나타나는 순례의 경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산 체험 방식인 등산은 일정한 경사를 앞으로, 직선적으로 걷는 것이다. 한편 화담숲에서 걷는 행위는 계속적인 시선의 굴절과 그에 따른 경관 체험의 반전을 동반한다. 숲을 디자인하는 것은 숲 자체의 디자인과 더불어 숲을 걷는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3호(2016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칼럼] 꿈꾸는 자들을 위한 변명
    이십대 학창 시절, 운동권 선배들의 주변부를 기웃거리며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꿈꾸고 싸우는가를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변혁하고자 했던 그들의 열정과 치열함을 존경했지만 나약한 나는 결국 그들의 무리에 끼지 못하고 패배자의 죄책감을 가지고 도망쳤다. 한참의 방황기를 끝내고 복학하면서, 그래, 조경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제로 만드는 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 학문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비로소 조경이라는 본연의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삼십대에 나는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중에는 일종의 경고성 당부도 끼어 있었는데, 학생들의 눈높이가 너무 올라가지 않게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헛된 꿈이 커지면 겉멋이 들어 졸업 후 현실에 부딪치자마자 쉽게 포기하고 이직한다는 이유였다. 사십대인 나는 여전히 이십대와 삼십대의 에피소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경의 최대 위기라는 지금, 이상향을 고민하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을 망각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발주처의 대책 없는 갑질, 터무니없는 설계비에 회사 운영을 위해서 짊어지는 박리다매형 운영 방식, 권위주의적 심의와 트집잡기 문화, 타 분야의 영역 침범, 사람을 뽑지 못해 안달하는 중소규모 회사들과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학생들,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징글징글한 조경의 현실은 매순간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를 옥죈다. 교수라서 현실의 냉혹함을 모른 채 꿈 타령이나 하고 있다는 비판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꿈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그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조경의 본질이 새로운 세상, 변화된 세상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 일의 보람은 이러한 꿈과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과 과정에 있다.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 이 가슴 설레는 단어를 조경의 본질과 연관 짓기에 부담을 느낀다면 조금 더 소박하게 표현해 보자.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조경 행위를 발생시키는 첫 단계다. 꿈은 비루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다. 유토피아는 땅 혹은 세계를 의미하는 ‘topos’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좋은’ 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접두사 ‘eu’를 붙인 합성어다. 16세기,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목격한 사회의 극단적인 탐욕과 부조리와 폭력성과 불평등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정의하고 세부적인 작동 방식을 제시해 왔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루이스 멈퍼드는 유토피아를 도피적 유토피아와 재건적 유토피아로 분류했는데, 두 유토피아의 차이는 지옥 같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두는 것과 그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실행력의 차이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현실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그 방식이 달라질 뿐, 유토피아의 본질은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엄중한 성찰과 비판에 있다. 도시 공원의 양식적 진화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픽처레스크 정원은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다. 근대의 도시 공원은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도피적인 유토피아를 실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건적 유토피아로 변형시켰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초의 시민 공원인 영국의 버컨헤드 공원, 여기에서 큰 영감을 받아 만든 미국의 센트럴 파크는 모두 열악한 도시 상황과 피폐한 현실을 벗어나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건설하고자 한 집단적 욕망이 실제 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바꿔 말하면 근대 조경의 시작은 유토피아를 시민의 일상 영역에 만들어 그들에게 현실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순기능의 도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공원의 질적 변화를 유도했던 라빌레트 공원, 다운스뷰 공원, 하이라인 공원 등 우리가 부지런히 ‘벤치마킹’해 왔던 공원들은 모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인식과 더불어 그 공간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 사례들이다. 급하게 베껴 비슷한 모양새로 만들어 봐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원작 공원에 배어 있는 그들의 꿈과 비전까지는 벤치마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까지의 구구절절한 과정을 벤치마킹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그렇게 가벼이 여기는 꿈은 현실의 다른 모습이며 서로를 떼어놓을 수 없는 암수한몸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나는 곧잘 학생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이나 유토피아를 그려보라고 한다. 어떠한 형태를 갖추든, 그들의 유토피아에서 현실은 악으로, 문제로, 고난으로, 디스토피아로 규정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날카롭게 해석하듯이, 근대의 유토피아가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전제로 세계의 진보를 낙관적으로 표상하는 것이라면, 현대의 유토피아는 지금 세상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한다. 또한 현대의 유토피아적 상상은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건설적이라기보다는 도피적이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생존과 도태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과 공포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혐오,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도피처,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무기력함, 이 모두가 학생들이 그린 유토피아 하나하나에 슬픈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최근 헤더윅 스튜디오의 전시와 이번 호의 특집인 아장스 테르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현대 유토피아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을 발견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의 멋진 화보 이미지를 관통하는 강렬한 에너지는 더 나은 세계, 더 좋은 삶에 대한 집단적 상상과 실천 의지다. 아장스 테르의 작업을 들여다보면서, 치열한 현장에 대한 탐구, 더 좋은 삶에 대한 꿈과 비전,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확신, 세 명의 소장과 직원들의 집단 창작 과정에 대한 믿음이 이러한 작품들을 가능하게 만든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꿈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적 창작 방식은 우리에게 과연 사치일까? 해외의 멋진 작품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선진적인 발주 시스템, 전문가를 우대하는 사회적 풍토, 현실적인 설계비, 고용 안정성등을 부러워하며 한숨짓는 무기력 대신, 오늘은 당당하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자. 꿈과 현실의 변증법, 그것이 조경의 본질이므로. 김아연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느슨한 설계 집단 스튜디오 테라의 대표로서,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과 커뮤니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작업을 하고 있다.
    • 김아연[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
  • [에디토리얼] 이름 짓기
    이번 11월호의 특집은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다. 매년 한두 호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국내외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만으로 지면을 구성한다는 편집 구상. 작년에는 마르틴 라인-카노(Martin Rein-Cano)가 이끄는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을 실었고(2015년 2월호), 올해는 이 달에 아장스 테르를 다룬다. 온천수의 생태적 프로세스를 시각적으로 강하게 전달해 큰 화제를 모았던 ‘아크바 마기카’ 이후, 아장스 테르는 유럽을 넘어 남미와 중국에 이르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펼쳐 왔다. 특히 도시 스케일의 조경 계획과 물을 기반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만일 찰스 왈드하임의 신간 제목처럼 ‘어바니즘으로서의 조경(landscape as urbanism)’이 우리 시대 조경의 과제라면, 아장스 테르는 아마도 그것에 가장 근접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취재를 하며 모든 에디터들은 아장스 테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 똑같은 짐작을 했다. 아장스는 영어 에이전시(agency)와 마찬가지이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고, 테르는 흙이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수년 전에 출판된 그들의 작품집 제목도 ‘Territories’이고 이 중에 앞의 Ter만 다른 색으로 인쇄한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확신에 찬 진지한 목소리로 에디터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장스 테르나 김아연 교수의 스튜디오 테라(Terra)나 결국 같은 뜻이지.” 그런데 본지 파리 리포터 박연미 선생이 공들여 진행한 인터뷰 원고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첫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급하게 사무실 이름을 짓다가 대표가 세 명이라서 숫자 3에 해당하는 라틴어 ter를 썼다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는 깊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논문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이 에디토리얼처럼 짧은 글쓰기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제목 달기다. 회사 이름 짓기, 사정은 더 하다. 이름이란 자고로 크고 좋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설도 무시할 수 없다. 어감도 중요하다. 겉멋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망설이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멋은 있어야 한다. 유행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거나 금년 『환경과조경』 지면에 등장했던 조경설계사무소 몇 곳의 이름에는 어떤 의미나 사연이 있을까. 거칠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정확하게 조사를 하거나 직접 문의를 한 건 아니다. 대부분은 짐작이고 떠도는 말을 주워 담은 이야기다). 첫 번째 유형은 작심하고 작명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전통적인(?) 2음절의 한자어 이름이다. 가원, 서안, 서인, 신화, 유림, 한림처럼 설립된 지 비교적 오래된 한국 조경의 대표적인 사무실들에 이런 이름이 많다. 이런 유형의 이름에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계림원, 동심원, 이화원처럼 3음절인 경우도 있는데, 이때의 ‘원’은 아마 정원이라는 조경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번째 유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설계의 대상 자체를 이름의 중심에 놓는 경우가 두 번째 유형이다. 아장스 테르의 테르가 3이 아니라 땅이었다면 바로 이 경우다. 테라, 로사이(loci), 사이트, 플레이스랩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생 사무실인 경우가 많다. 이 유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엘’이 아닐까. 스튜디오 엘도 있고 디자인 엘도 있다. 참, 팩토리 엘도 있다. 소장의 성인 이(Lee)에서 따온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L은 동시에 랜드스케이프의 L이다. 땅이든 장소든 경관이든, 영어—심지어 라틴어— 표현이나 그 약자를 쓰는 게 대세다. 세 번째 그룹은 대표 조경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다. 전통적으로 변호사, 의사, 건축가와 같은 전문가들은 사무실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의 여러 조경설계사무소 역시 마찬가지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례를 많이 볼 수 없었다. 오래 전의 『환경과조경』 광고란에서 매달 볼 수 있었던 ‘김종해조경설계사무소’가 내 기억으로는 이 유형의 대표 사례다. 이원은 이교원에서 교를 뺀 이름 아닐까. 흥미롭게도 지난 십여 년간 새로 문을 연 사무실인 경우, 린, 오피스박김, D스퀘어, JWL, KnL처럼 소장(들)의 이름을 쓰거나 조합하거나 응용하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 로직은 논리가 아니라 초기 창립자들의 영문 성 첫 글자의 조합인 LOSYK이다. HLD의 뜻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 문의했더니 ‘호영리디자인’이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물론 신생 사무실만의 경향은 아니다. CA도 ‘진’과 어소시에이츠이니 이 유형에 속할 테고, C’Topos는 ‘최’의 땅이니 이름과 대상이 결합된 예다. 네 번째 그룹은 사무실 이름에 설계의 지향점이나 설계 태도를 담는 경우다. 마당, 라이브스케이프, 비욘드, 빅바이스몰, 사이, 어리연, 우리엔, 채움, D+H(디자인 플러스 호프(Hope)), salmworkshop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유형에는 기타 또는 우연 정도의 카테고리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 이작은 ‘이번 작품’의 줄임말이라는데, 확인한 팩트는 아니다. 스튜디오 101은 수년 전의 『환경과조경』 연재물 제목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수는 소장의 딸 이름 ‘이수◯’에서 앞의 두 글자를 가져온 경우.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이 이수역 근처에 있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룹한의 작명 사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조경에 ‘한’ 맺힌 사람들이 모여 한을 풀어보자는 뜻이라는 설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무실로 성장한 걸 보면 크다(大)라는 뜻의 우리말 ‘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한 것 같다. 아장스 테르 특집 덕분에 우리나라 조경설계사무소들의 이름과 그 사연을 새삼 즐겁게 생각해 보았다. 전진형 교수의 리질리언스 연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6개월간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를 마감하는 다음 호에는 여러 연재물의 마지막 원고가 실릴 예정이다. 편집실의 가을 풍경은 또 다른 시작을 새롭게 준비하느라 몹시 분주하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CODA] 11만2천5백
    남기준 편집장의 코다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도 이번 달도 코다를 쓰고 있다. 편집장과 번갈아 쓰고 있는 이 지면을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난달에도 말씀드렸듯 10월 여러분께 찾아갈 ‘2016 서울정원박람회’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박람회 준비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편집장의 낭랑한(!) 전화 통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편집장이 동심원의 20주년 기념 작품집 제작 역시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경계에서 한 설계사무소가 20년을 버텨왔다는 것도 축하할 일이지만, 그 기록을 남긴다는 점도 반길 만하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라면 한 기업의 사적 기록이기도 하지만 조경계의 역사라고 부를 법하다. 최근 몇몇 설계사무소에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사진작가에게 작품 촬영을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경계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크고 작은 사무실들이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은 좋은 징조처럼 보인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과거를 정리하고 반추하며, 미래를 위해 장점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는가. 결론은 그래서 이번 달도 바쁜 편집장을 대신해 코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서울정원박람회 오픈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그 뒷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볼까 한다. 식물을 경험하는 또 다른 감각 성황리에 사전 접수가 마감된 ‘해설이 있는 정원 투어’는 서울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정원을 전문 가드너와 함께 돌아보며 식물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성식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센터장, 노회은 제이드가든 가드너, 남수환 천리포수목원 가드너,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 그리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김장훈 전문정원사까지 총 6명의 전문가가 흥미로운 정원 식물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본래 독특한 디테일이 더 있었다. 기획자인 이형주 기자가 장애인을 위한 정원 투어를 제안했다. 감각에 제한이 있는 사람도 정원을 통해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저널리스트 고규홍에게 투어 해설을 부탁드렸다. 고규홍은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 경험을 담은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을 펴냈고, 이 기자는 이 두 사람의 사례에 감화된 상태였다. 정원 투어 요청에 대해 이 기자가 받은 답변은 이러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고규홍은 김예지와 1년 가까이 교감한 덕택에 그녀가 나무를 느끼는 데 중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식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는 전언은 인상적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 교감하는 방식에 관해 특강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역으로 해주기도 했다. 조경가나 전문가들에게 정원을 조성하는 데 색다른 시각을 던져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여러 여건상 그 특강은 이번 박람회에서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일련의 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오팔지 휘날리며 그리고 많은 고민과 토론, 시행착오 끝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늘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의 개ㆍ폐막식, 정원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벌어질 박람회장 중앙무대 앞 광장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미션에 관한 이야기다. 200여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가려야 하므로 기성품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천막을 치듯 광목천을 씌우려고 했지만 천의 무게를 감당하는 기초의 천문학적(!) 제작비 때문에 좌절되었다. 그다음 등장한 아이디어가 헬륨 풍선으로 그물망을 지탱하는 안이었다. 그러나 헬륨 풍선은 7시간 밖에 못 견딘다는 한계 때문에 탈락. 그럼 이번엔 일반 풍선. 애드벌룬 업체에서는 바람이 불면 그물을 지탱하던 풍선이 터져 버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그럼 가벼운 셀로판지를 달자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차에 L.A.의 퍼싱 스퀘어(Pershing Square)에 설치된 ‘Liquid Shard’가 확신을 주었다. 그물망에 불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하늘로 날리는 영상은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물망에 투명한 셀로판지를 달아 타프(tarp)를 치듯이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그늘막 디자인을 맡았던 C 실장은 매번 초조한 얼굴로 편집부 문을 밀고 들어왔다. C 실장은 셀로판지를 달 그물망을 찾아 전국을 뒤졌다. 새를 막는 방조망부터 차량 덮개용 그물, 운동 경기용 네트까지 알아본 끝에 부산에서 적당한 어망을 발견했다. 그물코를 계산해 어망을 제작하니 이번에는 셀로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몇 장이나 달아야 할까. 이때 쓰인 셀로판지의 이름은 업계 용어로 ‘오팔지’, 쉽게 설명하면 사탕 포장지다. 환경과조경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마케팅팀의 P 부장과 H 대리가 그물망과 씨름하며 적당한 모듈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 동기가 떠올랐다. 졸업 후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휘하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한다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비즈(beads) 2천 개를 일일이 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천 개 쯤은 별거 아니라는 결론이다. 계산 결과 11만2천5백 조각의 오팔지가 필요했다. 그 다음의 제작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제발 청명한 가을 하늘에 오팔지가 만국기처럼 휘날리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 [편집자의 서재]로드
    때때로 배경은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주인공의 눈물 대신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가로등 불빛만이 유일한 조명인 골목길은 스릴러 영화의 단골 소재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풍경은 청춘의 상징으로 곧잘 사용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잘 지내냐는 외침을 던지는 장소가 짙푸른 수목이 우거진 산이었다면, 설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두었을 때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은 영화의 분위기와 상대에게 닿을 수 없는 물음을 더욱 먹먹하고 아련하게 그린다. 『로드The Road』의 배경은 잿빛이다. 잿빛은 파괴된 도시의 모습과 희망이 없는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전부 불에 타버린 도시에는 색이 없다. 부서진 아스팔트, 바람에 날리는 재, 금이 간 건물, 신발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등 명도나 질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회색빛이다.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도 이 책 속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다. 숯덩이처럼 타버려 하늘을 향해 뻗은 날 선 나뭇가지가 메마른 느낌을 더하고, 검은 상록수 숲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유일하게 색을 지닌 것은 조리된 고기의 단면에 맺힌 핏물이나 고장 난 자판기에서 발견한 코카콜라 캔(붉은 물체 중 가장 선명하게 묘사되는데, 책의 저자인 코맥 매카시는 과거 코카콜라의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등의 먹을거리와 계속해서 도시를 태우고 있는 불길과 소년의 마음속에 있다는 ‘불’이다.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문명, 인간성까지 파괴된 세계에서 생명력 또는 희망을 품은 것만 색을 지니고 있다.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의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흑백의 여정 사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색들은 어둠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회색빛 세계에 『로드』의 불친절한 전개 방식은 막막함을 더한다. 일반적인 재난, 지구 종말을 다룬 작품과는 달리 이 책은 세계가 불타버린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수준의 설명은커녕, 언제부터 세계가 타기 시작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남자와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파괴된 도시 위를 걷고 있었다. 둘의 관계나 이름 하나 나오지 않지만, 둘의 대화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오가는 것으로 부자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에는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다. 먹을 것을 찾고, 잠자리를 찾고,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찾는 일이 반복되며 시간은 흐른다. 수식어구 하나 없는 문장으로 표현된 풍경과 담담한 대화를 통해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 긴 시간을 “한 해가 저물어 갔다. 몇 월인지는 알 수 없었다”라는 두 문장만으로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스톤 박사가 어디가 끝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에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알았어요.” 부자의 담담한 대화에는 부성애와 더불어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녹아있다. 식량을 약탈하려는 사람이나 인육을 먹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공포와는 다른 종류다. 긍정적인 일을 상상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이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그저 길이 있기 때문에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두운 현실 때문에 소년의 가슴 속 희망을 상징하는 ‘불’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해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작은 아이 기억나요, 아빠?”, “그 아이 괜찮을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요?”, “길을 잃었던 걸까봐 걱정이 돼요”라며 지나쳐온 아이를 걱정하는 아이의 대사가 밝게 빛난다. 소설 초반부, 남자는 우연히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집 안의 가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에 나 역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를 떠올렸다. 같은 동네 안에서 서너 번 이사를 다녔던 탓에 집보다는 골목에 쌓인 추억이 많은데, 체계적인 계획 없이 만들어져 삐뚤빼뚤한 형태로 조성된 골목길은 숨바꼭질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골목은 말끔한 선을 따라 재정비되었고, 몸을 숨길 수 있었던 낮은 벽돌담은 범죄 예방을 위해 허물어졌다. 때때로 옛 동네를 지나갈 때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보다 주택에 사는 내가 더 많은 추억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아파트를 허무는 일이 주택을 허무는 일보다는 어려우니,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도 길 테니 말이다. 이번 달의 특집인 광교신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어디에 추억을 쌓게 될까. 아파트 단지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사라질 염려가 없는 호수공원이 문득 부러워진다.
  • [광교신도시의 교훈] '한국형 신도시' 모델은 유효한가?
    2000년대 초 우리나라의 급속한 성장이 국외의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에 따른 주택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한 ‘한국형 신도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불과 수년 만에 허허벌판 위에 수백만 평의 도시를 ‘뚝딱’ 만들어내는 한국의 신도시들은, 비슷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던 개발 도상국에게는 도깨비방망이 같이 보였을 것이다. 당시 국내 시장의 포화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던 정부 투자 단체와 일부 건설사들은 이와 같은 관심을 등에 업고 한국형 신도시를 수출하려는 움직임을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몇몇 국내 건설사가 간헐적으로 외국 신도시의 시공 과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한국형 신도시의 수출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 와서야 정부가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세계 선도형 스마트시티 구축사업’을 포함시켜, 이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K-스마트시티(한국형 스마트시티)’가 건설 분야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정보 통신 기술)의 융합이란 측면에서 창조 경제에 최적일 뿐 아니라 침체된 국내 경기의 돌파구인 수출까지 연계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이인성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전공으로 환경조경학 석사를, 일리노이 대학교(어버너-섐페인)에서 지역 및 도시계획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96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의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고현재 한국도시설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 [광교신도시의 교훈] 오래된 나의 신도시, 광교
    광교신도시는 광교산을 뒤로 하고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이다. 광교신도시의 이름 역시 이 광교산에서 비롯되었다. 광교산은 원래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산 정상에서 신비로운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빛의 가르침’을 뜻하는 광교산光敎山으로 명명토록 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광교산이 광교신도시 안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고, 광교산 인근에서 광교라는 지명을 법정 동명으로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터라 ‘광교’라는 지명 사용에 대해서 광교산 인근 주민의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2007년 11월 착공하여 2011년 6월에 입주를 시작하면서 광교신도시는 도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행정적 변화 속에서도 신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 아래, 교통·주거·교육·녹지·문화·의료 등이 집약된 인프라와 업무·상업·위락 시설 등을 혼합 배치해 자족성을 갖춘 명품 신도시를 향한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2018년 이후에는 주민 입주, 공공 청사의 입주, 상업 용지의 활성화 등 도시의 기능이 완성될 것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현재 경기도청 신청사계획은 난항을 겪고 있고, 컨벤션센터와 광역 상업 시설인 파워센터 등 자족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사업은 폐기된 상태로 새로운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강중구는 아주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를 전공하고 EDAW/AECOM 뉴욕, 베이징, 홍콩 오피스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도시 프로젝트를 다뤄왔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아주대학교의 도시,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도시 속의 공간과 건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현재 광교신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도시에서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
  • [광교신도시의 교훈] 광교호수공원을 보다
    필자는 광교신도시에 대한 계획이나 설계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과정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광교신도시가 만들어진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광교신도시와 필자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교신도시 기공식이 2007년 11월에 있었으니까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린플랜Green Plan의 일환이었던 환경상세계획 중 광교신도시의 개발 전 모습을 어메니티amenity 자원이라는 측면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다. 광교신도시 사업 지구를 7개 권역으로 나누고 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도시 콘텐츠를 기록하기 위해 마을과 저수지를 오갔다. 아직도 그때의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원천저수지는 유원지로 난개발이 되어 주변에 각종 위락 시설과 숙박업소 등이 들어서 있었다. 보트와 수상 가옥, 수영장, 대규모 야영장과 심신 단련장, 원천그린랜드, 원천호수랜드, 물 위를 지나는 케이블카와 관광호텔 등이 었다. 신대저수지는 낚시터로 이용되어서 조용한 편이었으며 주변 산림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두 저수지의 서로 다른 모습은 나중에 광교신도시의 호수공원설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2004년 10월에 있었던 제5차 MP 회의에서도 당시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의 성을 반영하여 전체적으로 녹지축을 보존하고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유원지 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원천저수지는 활동적 기능을 맡게 하고, 신대저수지는 보존을 중심으로 한정적인 기능만 부여해 차별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광교호수공원 국제설계공모를 하기 전, 개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9번에 걸쳐 공동 시행자 실무자 회의를 열었고 원천저수지는 활기차고 도시적인 장소로, 신대저수지는 조용하면서도 정적인 장소로 조성하는 콘셉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설계공모 지침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광교호수공원 설계안이 나올 수 있었다. 광교호수공원이 두 개의 테마를 가지게 된 것은 광교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 342호(2016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전영옥은 1988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음 해 조경학에 입문하여 1998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지역 발전, 도시 문제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도시환경연구센터 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인문학, 공학, 마케팅 등을 넘나들며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도시와 농촌 지역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