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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 공유 공간의 마법
    최근 가장 ‘핫’하다는 연희동과 연남동.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그다지 잘 알려지 지 않은 한 사람이다. 이 일대에서 50여 채에 이르는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불과 5~6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창조한 중심에는 수십, 수백억 원의 공적 자금이 아니라 지역에서 건축업을 하는 김종석 대표가 있다. 그렇다, 그는 소위 말하는 ‘업자’다. 학자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흔히 듣는 ‘공공◯◯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대화에 사용하는 언어는 어바니즘의 고전에 등장하는 설계 기법들이다. 노출 계단, 오픈스페이스, 선큰sunken, 발코니, 시선의 높낮이, 빛과 밝기, 공간 심리학 등. 어쭙잖은 건축가가 종종 내뱉는 말뿐인 소통이 아니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통, 대화, 연계와 맥락의 디자인’을 그의 건축을 통해 너무도 쉽고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거리와 건물의 소통, 사유 재산과 도시의 대화, 손님과 주민,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볼 수 있는 현실의 교과서다. 그는 언제나 현장을 두고 말한다. 그가 쌓아온 방식이다. 경남 함양 출신으로 스무 살에 상경해 연희동의 전파상인 정음전자에서 일하다 제대 후에 사장님이 돌아가신 가게를 인수했다. 그 후 연희동에서 30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온갖 인생 스토리가 녹아 있다. 책상머리에서 구상한 거창한 마스터플랜 없이, 정부도 손 놓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 이 독특한 남자의 경험 보따리는 도시재생이 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그의 도시재생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 가장 부합하는 도시재생이다. 공중에서 투하되는 지원 자금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욕망, 서로의 행복에 충실한 도시재생이기에 현실적이다. 우리 도시재생에 필요한 것은 눈먼 자금이 아니라 불합리한 절차와 제도의 개선을 통해 창의적인 개인이 뜻을 펴고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사업 성과를 위한 재생, 도시재생의 이름을 빌린 지자체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재생, 강소 경제 서민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철저히 시장성을 바탕으로 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생이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 [정원 탐독] 문화로 식물을 읽을 때
    식물을 그리지 않은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의 선조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있다. 벽화 속에는 소와 산양 등 주로 사냥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간결한 선과 색으로 표현된 일종의 상징 예술이다.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구석기 시대부터 동굴의 벽이나 동물의 뿔과 뼈에 이렇게 전문적으로 그림을 새겨 넣는 작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상할 정도로 식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2013년 대영박물관에서 전시된 질 쿡Jill Cook의 ‘빙하시대의 예술: 현대적 감성의 출발Ice Age Art: Arrival of the Modern Mind’에서도 증명됐다. 구석기 시대의 여인상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물에서도 식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해 전문가마다 주장이 다르다. 하지만 구석기인에게 식물은 지금과 다른 의미였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즉 동물이 식량이며 잡아야 할 어려운 대상이었다면, 식물은 이런 목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산, 돌, 구름과 같은 자연의 현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들이 하늘, 태양, 구름, 산을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식물도 환경이었을 뿐, 먹고 살아감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5천 년이 지나서다. 이 시기는 인류가 수렵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원전 2,500년 경, 이때부터 식물은 인류에게 풍요와 부활의 상징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림과 조각은 물론 신화의 세계로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기원전 1,300년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테베 지역 센네젬Sennedjem 가문의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밀과 아마를 키우고 수확하는 장면이 나온다. 벽화는 씨를 뿌리고 잎과 꽃을 틔우는 식물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식물을 키우는 일이 중요했다는 증거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1호(2017년 7월호) 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죽여주는 여자 노인을 위한 경관은 없다
    성매매를 하는 소영(윤여정 분)의 주 활동 무대는 탑골공원이다. 일명 바카스 아줌마인 그녀는 5년이나 이곳에서 활동했기에 단골도 제법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죽여준다’는 소문을 듣고 고객이 찾아온다. 하지만 성병에 걸린 사실이 소문나는 바람에 활동 무대를 남산공원으로 옮긴다. 수포교와 남산 순환로를 배회해 보지만 탑골공원에 비해 영업이 시원치 않다. 먼저 다가가 “바카스 한 병 딸까요?” 했다가 모욕만 당하기 일쑤다. 딱한 처지에 놓인 코피노 꼬마와 이태원 산동네를 오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오늘도 무겁다. 소영이 세 들어 사는 허름한 집에는 주인인 트랜스젠더와 장애자와 동남아시아 이주민이 모여 산다. 영화는 서울의 오래된 공간을 배경으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소외 계층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소영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에 이북에서 태어났다. 식모와 공장 직공을 거친 후, 동두천에서 만난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돌도 안 된 채 입양 보내야 했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사는 그녀는 길 고양이뿐 아니라 곤란에 처한 꼬마나 노인들을 살뜰히 챙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이 “그럼 미군 상대하는 양공주였던 거예요?”라고 묻자, “그럼 일본군 상대했겠니? 그 정도 나이는 아니야”라며, “나같이 못 배우고 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라고 씁쓸히 미소 짓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동네에 생기는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쉬었을까. 청계천과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들자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어디서 놀았을까.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영역
    고즈넉한 호수를 찾아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장엄한 폭포를 만나 들뜬 마음에 차를 세웠다. 앞에 ‘◯◯갈비’란 이름의 식당이 자리한 걸 보니 이게 그 유명한 ◯◯폭포구나 싶어 그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동료 작가가 장난삼아 한 마디 던진다. “모르지, 위에 밸브가 있을지도.” 우리는 돌아서며 그럴 법하다고 키득거렸지만(물론 이 말은 장난이고, 그럴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포를 찬찬히 살펴보다 절벽의 맨 위, 밸브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밤이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주던 산타가 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허탈한 기분으로 차를 몰아 호수 인근에 당도하니, 어딘가에서 강한 기운의 일렉트로-토속-뽕짝이 귀에 흘러들어온다. ‘설마 호수 쪽에서 나는 소리는 아닐 거야’ 하는 기대와는 반대로 호수 입구에 다다를수록 소리는 커지고, 디즈니랜드와 디즈멀랜드Dismaland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맨홀 속으로 떨어지면 있을 법한 미니-놀이동산에 입이 벌어지는 것도 잠시. 블랙홀 같이 벌어진 입과 눈꺼풀 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거대한 아기 머리-조각 작품 앞에서는 심지어 공포감에 빠졌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저 강력한 사운드의 원천, 사방팔방이 오방색으로 뒤덮인 ‘제의’가 열리고 있었으니, 호수의 기운이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요동쳐 금방이라도 거대한 파도가 올라와 덮칠 것만 같았다. “오늘, 도, 추움~을 춘다, 두웅-기 둥기 두둥-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흰 타이츠에 빨강, 파랑 치파오를 입은 파마머리 아주머니 셋이 제단 위에서 힘차게 다리를 벌려 선 채로 음악에 맞춰 커다란 장구를 때리는 동안, 그 앞에서 총천연색 아웃도어 복장의 중장년 남녀 한 무리가 이 각설이-테크노 뽕짝의 리듬에 맞춰 짝을 지어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얼~쑤! 아~하! 허잇!!! 헛! 헛! 두구두구두구두구 띠로리~~~~” 그런 ‘도란스’ 현장 뒤편으로 보이는 RGB 현수막에 붓글씨체로 쓰인 문구는, 다름 아닌 ‘제◯회 ◯◯시 산악협회 등산대회’. 글씨에 ‘볼드’와 ‘아웃라인’ 처리가 되어있음에도 워낙 현수막이 매직아이 같아서, 문구를 단번에 읽을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터널 오브 날리지(Tunnel of Knowledge), 장충풍경 2017 근대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공모전 대상작
    지난 6월 8일 한국도코모모가 주최한 ‘2017 근대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공모전’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한국도코모모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을 위해 활동하는 학자, 건축가, 전문가 연합체로,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매년 다양한 주제의 디자인 공모전을 열고 있다. 이번 공모전의 주제는 ‘남산2호터널과 장충동 일대의 문화적 재생’으로, 남산과 장충단을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교통 기능이 취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역할을 다한 남산2호터널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냉전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도시건축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대지와 프로그램의 범위는 “응모자가 스스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석과 디자인 제안의 방향에 따라, 제공된 도면 외부로의 확장”도 가능했다. 명확하지 않은 설계 범위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예상과 달리 “꽤 구체적이고 당장 실현가능한 안에서부터, 장충동 일대의 장소성을 근간으로 이상적인 메니페스토manifesto를 제안한 안 등 폭넓은 응모작”들이 접수됐다. 총 150여 개의 작품 중 대상 2점(국토부장관상, 문화재청장상), 우수상 2점(한국도코모모 설립추진위원장상, 새건축사협의회장상), 특별상 2점(도코모모 인터내셔널회장상, 심사위원장상), 특선 7점, 입선 26점 등 총 39점의 수상작이 선정됐다. 조민석 대표(매스스터디스, 심사위원장), 김찬중 대표(더시스템랩), 정현아 대표(디아건축), 조남호 대표(솔토건축), 한광야 교수(동국대학교 건축학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공모전에 참여하는 과정의 반 이상은 좋은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다.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여작이 작품의 완성도와 설득력을 통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심사 총평을 밝혔다. ...(중략)...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 공공장소에서 해도 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공영선 안무가
    성큼성큼 걷는다, 손을 잡는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으로 춤춘다.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럼 다음의 경우는 어떤가. 한발로 오래 서 있는다, 바닥을 만진다, 책을 읽다가 베고 잔다.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옷을 몽땅 벗고 나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장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20일 윤슬(p.44 참고) 개장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윤슬 사용법’은 우리에게 “어느 순간 사회적인 제약에 묶여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익숙해져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윤슬 내부를 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 퍼포머를 선두로 아홉 명의 무용수(공영선, 강진안, 최민선, 장홍석, 김승록, 박유라, 허효선, Pieters Alma, Yena)가 ‘안무’보다는 ‘행위’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등 놀이 같은 퍼포먼스에 어린이들이 끼어들어 놀기 시작했고, 윤슬 상부의 루버 사이로 푸른 공이 쏟아지며 공연은 극에 달했다. 간간이 말소리만 울리던 선큰 공간이 십여 분 만에 아이들이 신나게 공을 튀기는 놀이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독특한 형식의 공연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윤슬 사용법’의 콘셉트 기획과 안무를 맡은 공영선 안무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51호(2017년 7월호)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반란의 도시
    독회 모임의 세 번째 책은 S가 고른 데이비드 하비의 저작이었다. 그에 대한 수식은 대략 이렇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중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문학자 20인 중 1인, 급진 지리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론가, 세계적인 비판적 지성, 유연한 마르크스주의자….” 책날개를 펼친 순간 대학교 4학년 때 스터디를 하며 개념어와 씨름했던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데이비드 하비 지음, 구동회 옮김, 한울, 1994)이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책을 고른 S에 대한 원망이 몇 줌 섞여 있는 두통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1970년대 중반 무렵 파리에 머물던 나는 우연히 생태주의자가 붙인 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로 시작한 책은 “우리는 폐허 위에서 대안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의무이다”로 끝났다. 첫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 개인적 경험과 구체적 사례가 책의 후반부까지 이어졌다. 아주 가끔 서울이 등장했고, 중국은 약간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보충 도서로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창비, 2017)까지 읽고 온 S의 발제는 이해도를 높였다. P는 매끄러운 번역을 칭찬했다. 일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1870년대 파리 대개조, 1930년대 대공황, 1950~1960년대 도시 재개발과 교외화,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부동산 버블 등 여러 사회 혼란의 근원으로 하비는 소수에 의해 사유화된 도시를 주목한다. 도시의 위기는 곧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현대 도시의 위기를, 또 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하비는 ‘약탈에 의한 축적이 자행되는 도시에서 주변부로 추방당했던 99%의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밑줄 그었던 문장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도시 네트워크를 통한 운동은 계급적 지배와 상품화된 시장의 결정이라는 제약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성이 꽃피는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제약을 넘어설 때 진정한 자유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했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고 조직하는 것은 그 위대한 출발점이다.” 물론 독회 모임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공유지의 비극, 공유재를 둘러싼 투쟁, 도시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 거버넌스 메커니즘, 도시 공유재를 되찾자’ 등에 대한 독후 소감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공원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잠시 머물렀다. 하비는 마지막 장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거론하며 “권력의 지렛대가 밀집한 장소 부근의 중심적인 공공 공간 즉 공원과 광장을 빼앗아 거기에 눌러앉는 방법으로 공공 공간을 정치적 공유재”로 바꾼 점에 주목하며 “공공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항수단”이라고 갈파했으나, 독회 멤버들은 공원의 근원적 필요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해했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는 하비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이어진 2부 독회에서는 ‘나의 도시’에 대한 추억이 하나둘 소환되었다. 지난번에 『당신의 사물들』(허수경 외 48인 지음, 한겨레출판, 2015)을 읽고 각자의 사물을 두 가지씩 꼽아보았던 것처럼, 나의 도시를 정해보기로 한 것. ‘나의 도시 이야기’는 과천, 필라델피아, 베이징, 항저우, 경주, 파리, 하바나, 수원, 치앙마이, 에든버러를 거쳐 서울에서 끝났다. ‘나의 도시’는 태어나서 자란 도시, 그래서 속속들이 가장 알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고, 오래 머물렀으나 여전히 모르는 도시이기도 했으며, 우연히 다섯 번이나 방문한 바다 건너의 어떤 도시이기도 했다. L은 가보지 못한 도시인 쿠바의 아바나Havana를 꼽았다. 송일곤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간의 춤’을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서…. ‘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 길거리, 공터, 집, 장소를 불문하고 이어지는 쿠바인들의 낭만과 멋을 이야기할 때 그의 감탄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반면 S는 뜻밖에(?) 서울 예찬을 펼쳤다. ‘박철수 교수가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면 책장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자신의 책장을 보았더니 서울에 대한 책이 가장 많았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있는 도시가 서울이고, 가족과 집이 있으니 그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면서. 한강철교를 건널 때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는 유머(?)도 곁들여가면서. 5월호 ‘편집자의 서재’ 말미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 S가 애착을 넘어 집착하는 손톱깎이란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하지 못한 채 글을 닫는다. P가 추천한 다음 책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하며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결핍의 도시로 에든버러를 기억하는 K의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4차 독회 모임은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니 말이다. 참, 요즘 모임은 누가 일부러 유도하지 않아도 ‘기 승 전 서울역 고가’로 귀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날의 독회 모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서울역 고가는 다들 가봤어요? 어땠어요?’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지면 다들 두 마디씩 거든다. 정체성부터 과정과 그 결과물까지 참으로 논쟁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논쟁적 =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일단, 논쟁은 반갑다!
  • [CODA] 열린 결말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연애 소설 『폭풍의 언덕』을 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다시 쓴 소설이다. 책을 읽어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소설가 김영하는 이 소설이 근대에 쓰인 고전을 다시 쓰거나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문학에 속한다고 설명하며 그 특유의 저음으로 소설의 일부를 낭독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책 이름을 저장하며 옛날이야기를 현대에 되살릴 때 어떻게 현대 독자를 사로잡을 매력을 만들어낼지 궁금해했다. 2014년 11월의 일이다. ‘다시 쓰기’라는 표현 때문이었을까. 당시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구상이 등장하며 논란이 피어나던 시기라 고가를 어떻게 다시 쓸지, 다시 쓸 대상인 서울역 고가는 소설로 치면 ‘고전’이라 부를 만큼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스마트폰 안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한 것은 역시 서울역 고가였다. 7월호 특집으로 준비한 서울역 고가, 이제는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어째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참 고민스러운 기획이었다. 이미 2015년 7월호에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결과를 비평과 함께 특집으로 다뤘고, 2년 만에 그림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가 실체를 드러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된 디자인 논란. 그 핵심은 설계자의 콘셉트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는 설계공모라는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설계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그 절차가 적절하게 진행되었는지 질문한다면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과연 고가를 보존해야 하는가 혹은 고가 보존이 과연 보행 친화 도시를 만드는 길인가, 그 여부를 사회적으로 합의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당선안을 잘 이해하고 수긍했는가 등의 이슈로 소급된다. 이미 2015년 2월 김영준 서울역 7017 MP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사업 자체를 되돌리는 논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제 정해졌으니 정해진 상황에 맞는 논의를 하란 말인데, 기본 취지에 동의하는 과정이 없었는데(혹은 워낙 빠르게 지나갔는데) 어떻게 그 다음 이야기를 할지 난감해진다. 이번 특집의 방향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한참 논란이 되고있는 세부적인 디자인이나 식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혹은 서울로 7017이 표방한다고 알려진 도시재생 차원에서 넓게 보고 이야기할지, 아니면 다시 절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건 너무 늦어버린 주제가 아닌지…. 어쨌건 세부적 디자인 논란은 이번 특집의 핵심이 아니라는 데 편집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과정과 결과를 잘 정리하고 각 주체의 의도를 충분히 드러내 앞으로 이어질 논의의 기초 자료로 제공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세부적인 주제 중 하나로 거버넌스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 그간 서울로는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민간 공동 운영과 같은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논의의 중심에는 시민 단체인 서울산책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민간 위탁은 무산되었고, ‘협치’는 실패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다. 많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협치’, ‘거버넌스’, ‘플랫폼’, ‘허브’ 같은 말로 시민과의 동행을 표현한다. 결국 절차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공공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거나 반대할 의지를 가진 시민이 존재하는가. 과연 관은 누구와 협치를 할 것인가.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설계공모 직후 마련된 특집의 비평 지면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은 과연 존재하는가” 질문한다. 해외 사례에서 목도하는 주도적인 시민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 아닌지 꼬집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역 고가의 ‘거버넌스’는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진일보한 점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우리에게 하이라인 친구들 같은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이 없다면 거버넌스는 실패한 것인지, 과연 우리 사회에서 협치란 무엇인지, 홍보용 보도 자료에 등장하는 ‘선한’ 용어로서 협치 대신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가능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울연구원의 라도삼 박사(도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라 박사는 소위 협치에는 여러 가지 방식(단계)이 있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행정 주체 간의 협치, 즉 부서(기관)를 넘어서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행정과 시민 단체/주민 단체와의 협치. 그리고 세 번째는 주민 속에서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주민과의 협치로 나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단계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우니, 서울로의 과정 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MVRDV의 이교석 씨가 밝혔듯이 서울시를 넘어 부처 간의 협치, 즉 경찰청, 문화재청, 코레일과의 협의에는 어려움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인 구 서울역사를 압도하는 쇼핑센터(롯데마트)는 조성이 가능한데, 서울로에서 서울역광장으로 이어지는 연결로를 못 만들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반문했다. 조반장(서울산책 공동대표)은 행정 기관 사이의 협치는 덜컹거렸지만 서울시 내부의 협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평했다. 시민 활동가인 조반장이 관의 전략 회의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선례가 되겠다 싶지만,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을 기한 내에 완수하기 위해 서울시 내부의 여러 부서가 협력한 것이 과연 협치의 진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조반장은 또 현장시장실을 운영한 시의 시도에도 의미를 부여했지만, 남대문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의 관심이 보행로 혹은 공원의 성격에 있던 것은 아니니, 과연 이 공공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이 있었는가도 의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과연 시민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나 선명한 답변을 얻기 힘들었다. 결국 첫 번째, 두 번째 협치에 대해서도 물음표 투성이다. 온수진 주무관은 “현재 우리의 경제 수준이나 사회 시스템 아래서 온전히 자발적인 민간에 의한 운영 방식이 불가능한 것인지 고민스럽다”는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고민에 공감하면서도, 서울시에서 조직한 그린트러스트같은 시민 단체가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역할과 색깔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비록 처음에는 관변 단체처럼 시작했지만 서울산책의 내적 진화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사회만의 해법과 문화가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져보고 싶다.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이번 기획을 마무리 했다. 어쩌면 성급하게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서울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지켜보며 또 다른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PRODUCT] 어스그린코리아(주) 빗물저장형 잔디보호블록 ‘그린100’ 출시 잔디 생육 환경 개선, 뛰어난 내구성과 지반 밀착력
    어스그린코리아(주)가 빗물저장형 잔디보호블록 ‘그린100’을 출시했다. ‘그린100’은 빗물 저장·투수 기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잔디의 생장점과 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돌기가 있어 잔디의 생육 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205 × 205 × 40mm 규격으로 제작되었으며, 설치와 해체가 편리해 블록 일부가 파손되더라도 쉽게 교체할 수 있다. 블록 연결 부위가 벌어지지 않는 맞물림 구조로 설계해 잔디 보호판 침하나 토사 융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블록을 구성하는 육각형의 벌집 구조는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한다. 또한 경사지에 블록을 설치해도 잘 밀리지 않는 지반 밀착력을 지녔다. 간단한 커팅만으로 다양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공원, 산책로, 골프장, 카트 도로, 특별 행사장 등 다양한 장소에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잔디 훼손이 예상되는 구간이나 토사 유출 방지가 필요한 법면에 적용하면 효과적이다. 한편 어스그린코리아(주)는 LID형 빗물 침투 기술을 적용한 30여 건의 특허를 지니고 있으며 NEP 신제품인증,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 등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순환 도시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10여 개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가로수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생육 삼통관’과 ‘생태형 가로수 보호판’이 있다. 이 제품들은 현재 일본, 베트남은 물론 중국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TEL. 02-858-2970 WEB. www.earthgreen.co.kr
    • 어스그린코리아(주) / 어스그린코리아(주)
  • [에디토리얼] 문재인 정부와 용산공원
    용산공원과 관련된 글을 쓸 때면 늘 첫 문장을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금단의 땅, 미지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이라는 새 옷을 입고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질곡의 땅은 과연 언제, 어떤 모습의 공원으로 부활할 것인가.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한 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공원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1,700만 촛불이 함께 만든 문재인 정부는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돌이켜보면 2012년이 용산기지 공원화 프로젝트의 분수령이었다. 1990년 6월,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한미 간의 기본합의서와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기지 활용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원보다는 임대 주택 건설, 주거 단지 개발, 복합 상업 시설 개발 등이 논의의 주를 차지했지만 점차 주거지 개발론과 공원화론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이전 비용 부담 문제로 소강상태에 들어간 논의는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용산기지 이전에 합의함으로써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정부 내에 담당 조직과 위원회가 설립되고 다양한 연구와 구상 프로젝트가 줄을 잇는다. 이 과정을 거치며 종래의 주거지 개발론은 자취를 감추고 ‘민족·역사’와 ‘생태’를 키워드로 한 공원화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이즈음 공원화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한 최초의 계획인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2005)이 발표됐고, 참여정부는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2006)과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2007)을 통해 용산공원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원화 프로세스에 가속이 붙는다. ‘용산공원 아이디어 공모’(2009)와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2011)을 통해 공원의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2012)를 통해 기본계획안의 밑바탕을 마련한다. 2012년 설계공모는 20년 넘게 계속된 공원화 담론을 디자인 단계로 이행하는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정작 용산공원은 얼어붙는다. 설계공모 당선작을 바탕으로 진행된 웨스트 8West8의 기본설계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공전했다. 참여정부가 시동을 건 일이고 임기 내에 착공조차 시작되지 않는 일이어서였을까. 환경복지를 대표적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는 용산공원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 국회의원이 주도해 설계비가 전액 삭감돼도 수수방관의 기조를 지켰다. 정부 주도 공공사업의 전형을 되풀이하며 사업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형식적 절차만 챙겼다. 2005년 구상, 2011년 기본계획, 2012년 설계공모를 관통하는 철학이었던 과정 중심적 계획, 열린 계획, 단계별 계획, 시민 참여는 장식적 구호로 전락했다. 반대 여론이 일어나면 정치 공세라고 억울해할 뿐 소통과 대화의 의지없이 4년을 흘려보낸다. 작년에는 국토부가 난데없이 용산공원 내 콘텐츠 선정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로부터 ‘토건 시대의 난개발’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러 언론과 시민 사회도 정부의 일방통행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대선 직전인 지난 4월 24일, 문재인 당시 후보는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 공약의 일환으로 광화문광장 재구성과 용산 생태자연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생태자연공원이 조성될 것”이고 “북악에서 경복궁, 광화문, 종묘, 용산, 한강까지 이어지는 역사,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벨트가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용산공원을 통해 “서울은 세계 속의 명품 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용산공원 조성은 노태우 대통령 이후 역대 정권에서 항상 추진되어 온 사업이다. 늘 센트럴 파크, 생태 공원, 문화벨트, 명품 도시를 말해 왔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용산공원 프로젝트에서 지난 30년 간 가장 소홀히 해온 게 무엇인지 반성하고 교정해야 한다. 전문가의 고민과 계획안은 늘 있었다. 하지만 수사와 구호로만 소비되고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 문재인 정부는 누가 어떻게 만들고 보살펴야 용산공원이 다음 세대를 위한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지 시민과 전문가 모두의 지혜를 모으는 참여의 장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지난 5월 19일부터 소통과 공론화에 방점을 두고 시작된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1.0’과 같은 계기를 수시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용산공원을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용산공원의 표류 이면에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공원 조성 주도권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다. 비단 2016년에만 그랬던 게 아니다. 예컨대 2006년에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용산공원을 놓고 한바탕 기 싸움을 벌였다. 당시는 대통령-서울시장의 정치적 노선이 2016년과 반대였지만, 갈등 양상은 엇비슷했다.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당시 건교부가 공원 부지 용도 변경권을 갖겠다고 하자 서울시는 부지 일부를 개발해 기지 이전 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2007년 제정된 특별법에는 서울시 주장대로 공원을 다른 목적으로 용도 변경할 수 없다는 조항이 명시됐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한다는 의미의 ‘국가 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서울시는 조성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1990년대에는 용산공원 논의를 앞에서 이끈 서울시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에는 ‘용산공원 평론가’로 위치가 바뀐다. 모처럼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정치 이념이 다르지 않다. 소유권, 기지 이전과 공원 조성 비용 부담, 조성 주도권 등은 정치적 지향이 같다고 해결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협치의 지혜를 발휘해 용산공원과 관련된 서울시와의 대립을 풀어야 한다. 생태 공원, 기존 건축물 재활용 같은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문재인 정부가 노력해 다루어야 할 또 하나의 의제는 용산공원 영역과 경계의 문제다. 용산기지 본체 부지는 이미 1990년대부터 반환되기 시작해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섰다. 이후 한미 협정에 따라 드래곤힐 호텔과 방호 부지가 사우스포스트의 요지를 계속 차지하게 됐다. 미대사관이 메인포스트 북쪽에 들어설 계획이며, 반환될 예정이던 한미연합사 부지도 전시작전권이 이양될 때까지 공원 영역에서 제외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국방부는 부지를 계속 사용한다. 이대로 조성된다면 정상적인 공원 형태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영역과 경계의 문제를 외교, 한미 관계, 안보, 방위의 차원이라는 이유로 용산공원과 별개로 취급했다.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랜 굴절과 질곡을 딛고 귀환하고 있는 이 땅의 기형적 영역과 경계를 놓고 미국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외교력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국방부 이전 이슈도 검토해 주기 바란다. 공원 계획과 나란히 진행해야 할,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