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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불꽃 아이디어로 공터를 공감터로!
    지난 7월 20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서울시와 한화가 공동 주관한 2017년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본래 최우수작(상금 1,000만 원)을 한 점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심사 기준을 만족시킨 작품이 없어, 한 팀에게 수여할 예정이었던 우수상(상금 500만 원)을 ‘일사천리(1472)’ 팀의 ‘1분의 행복’과 ‘동작補(보)슈’ 팀의 ‘정독도서관 꿈다방을 아시나요?’에 수여했다. 한화상(상금 500만 원)에는 ‘레터 엔Letter N’ 팀의 ‘그린 녹턴Green Nocturne’이 선정됐고, ‘일상너머의 풍경’ 팀의 ‘숲의 기억’이 장려상을 수상했다. 박준호 심사위원장은 심사 총평을 통해 “21세기 도시는 군도와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도시가 바다라면 큰 건물들은 섬이다.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군도 사이의 연결점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 프로젝트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올해 6회를 맞이한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불꽃 아이디어로 공터를 공감터로!”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서울 도심의 소외된 마을마당 세 개소(중구 봉래동, 중랑구 면목동, 노원구 공릉동), 노후 쉼터 4개소(중구 회현동, 광진구 광장동, 강북구 번동,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를 활력 넘치는 쉼터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본래 7월 6일 12시에 액션을 시작해 7월 9일 12시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올해도 작년에 이어 날씨가 변수였다. 6일 오후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서울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각 참여팀에게 작업 중단을 권고했다. 결국 72시간의 두 배에 달하는 144시간 동안 액션이 진행됐다. 이에 따른 인건비, 장비 대여료가 추가로 발생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팀도 있었다. 구성원이 독특해 눈길을 끄는 팀도 있었다. ‘동작보슈’ 팀은 동작구의 마을 공동체인 ‘마을발전소’ 사람들과 프로젝트에 참여해 계획과 시공을 함께 했다. 참여자 명단에 이름이 없는 주민들도 때때로 현장을 방문해 일을 도와, 주민 참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팀이라는 평을 받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선생님 등으로 구성된 ‘레터 엔’은 조경이나 건축, 도시 관련 전공자가 없는 팀이다. 설계 기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캐드도 다루지 못했던 항공우주학 전공자, 생물학 전공자, 미학 전공자, 역사 전공자 등이 모여 고군분투한 결과, 불법 주차된 자전거가 즐비한 공간을 야외무대와 자전거 거치대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작품의 심사 기준은 장소성과 지속성, 협동성 등 세 가지다. 특히 올해에는 작품 존치를 위해, 관리가 쉬우며 안전성을 겸비한 계획안이 요구되었다. 작품의 지속성을 위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매력 요소인 “불꽃 아이디어”가 다소 약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톡톡 튀는 상상력을 펼친 작품보다 지저분한 공간을 정비하고 활용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 팀이 많았다는 의견이다. 2014년부터 조직위원으로 활동해온 이홍선 소장(Factory L)은 “2012년에 시작된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는 본래 이벤트성 프로젝트였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만들었다 해체하는, 화려한 풍선을 불어서 이목을 집중시키다 72시간이 지나면 뻥 터트려 사라지면 다 같이 그 순간을 추억하며 즐거워하는 그런 프로젝트”였다며 초창기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작품 존치를 위해 “지속성과 안전성 등을 강조하면서 학생보다 기성 작가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줄어든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72시간은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게다가 시공과 관련한 전문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일반인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문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더불어 시공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시공 업체에 전적으로 맡기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 미사강변센트럴자이 Misa Riverside Central Xi
    LID 설계를 적용한 최초의 기후 변화 대응형 생태 조경 단지 하남 미사강변센트럴자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해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미사리 카페촌 뒤편에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인 미사강변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총 1,222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는 계획 초기부터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조경’이라는 콘셉트로 하버드 대학교의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교수와 그룹한이 협력해 설계한 프로젝트다. 산업 혁명 이후 현재까지 화석 연료 사용의 폭발적 증가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이어져 지구 온난화 발생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열파, 가 뭄, 홍수 등 기상 이변의 발생이 증가하고 극지방의 빙하 면적 감소, 해수면 상승 등 지구의 물리·생태계 전반에 걸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진행 속도는 세계 평균을 상회하여 지난 100년(1906~2005년)간 6대 도시 평균 기온은 약 1.5℃ 상승했으며, 강우 패턴의 변화로 침수 등에 의한 피해액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분야의 전략 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주거 비율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단지의 기후 변화 대응 기술은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외부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는 조경 분야에서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략)... 조경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 건축 설계 창조건축 조경 식재 장원조경 조경 시설물 한설그린 건축 시공 GS건설 위치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미사강변도시 A21블록) 면적 72,755m2 완공 2017. 2.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는 1994년 창립 이래, 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 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주거 단지에서 LID 설계를 말하다
    지난 7월 13일 미사강변센트럴자이를 만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일 비가 내리다가 다시 강렬한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해, 레인 가든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좋은 날이었다. 설계를 맡은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와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 GSD 교수, 식재를 담당한 장원조경의 신경준 대표와 홍승준 팀장, 김종범 과장, 조경 시공 현장을 담당한 GS건설의 강철현 부장, 그리고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의 강한민 차장 등이 모여 현장을 살펴보았다. 이들에게 설계 개념부터 시공, 유지ㆍ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다양성과 정체성
    내가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경험한 몇몇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에게는 꽤 명확한 취향과 목표가 있었다. 아이코닉iconic, 랜드마크, 강한 아이덴티티 같은 단어로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설명한 그들은 보다 눈에 띄고 다른 곳과 차별화될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다. 당연히 그들의 요구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엔 물론 화려하고 과감해 보이는 디자인도 마다하지 않는 JCFO의 스타일이 가미되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는 작업의 과정, 개념, 내러티브보다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되었다. 반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스튜디오 MRDO가 거쳐온 대부분의 작업은 ‘조성된 공간이 왜 좋은지’ 설명하는 데 힘쓰기보다는 ‘그 땅에 왜 그러한 디자인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왔다.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만한 공간을 만들려고 하기에 앞서, 대상지의 주어진 조건을 중재하고 이를 디자인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불특정 다수가 클라이언트였거나 비교적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 스스로 원했던 방법론을 따랐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JCFO에서의 작업과는 그 성향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처럼 스튜디오 MRDO와 JCFO의 프로젝트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이 다른 탓에 설계에 접근하는 과정, 결론, 표현 방법이 크게 다르다. 연재의 마지막 회가 될 이번 글에서는 스튜디오 MRDO와 JCFO의 대조적 작업 방식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나에게 디자이너의 다양성과 정체성은 어떠한 의미인지 짧게나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어 소개할 스튜디오 MRDO의 작업들은 대상지의 특수한 상황 자체가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주변 맥락이 디자인의 기본 골격이자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JCFO에서의 두 작업은 맥락이 결론을 좌우한다기보다 공간 자체가 전달하게 될 경험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스튜디오 MRDO_ 숨은 선 ‘센트럴파크 서머 파빌리온 공모전 2016(Central ParkSummer Pavilion Competition 2016)’은 아키아이디어스(Arquideas)가 주최한 국제 공모전으로, 여름 동안 일시적으로 이용할 파빌리온을 뉴욕 센트럴파크 내부 어디든 대상지로 선정해 제안하는 것이 과제였다. 면적 약 3.4km2의 이 대형 공원은 경계 10km가 도시와 면하고 있으며, 숲, 초지, 크고 작은 잔디밭과 저수지 등 다양한 형태의 녹지 공간뿐만 아니라 운동 경기장, 놀이터, 식당, 야외 공연장 등 매우 다양한 시설을 포함한 거대 도시 기반 시설이자 복합 녹지 시스템이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파빌리온을 짓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어떤 땅에 어떤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는가를 먼저 결정해야 했다. 파빌리온 자체의 디자인만큼이나 대상지와 디자인이 맺게 될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겼으며, 설계하게 될 공간이 주변의 맥락과 세트를 이루어야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센트럴파크의 수많은 공간 중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저수지(Jacqueline Kennedy Onassis Reservoir)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리서치하던 중 현재는 기능을 잃은 길이 720m, 너비 4.8m 댐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위성 사진으로나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옛 기반 시설은 수면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레벨에 있어, 대부분의 뉴요커도 그 존재를 모를 만큼 공원 이용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수위가 낮을 때만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720m의 긴 선과 저수지에 큰 흥미를 느꼈고, 이 선의 존재를 부각할 수 있는 구조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작품 제목인 ‘숨은 선(Hidden Line)’은 물론 저수지의 댐을 의미한다. 그 위에 다섯 가지 유형의 파빌리온을 배치해 숨겨져 있던 선을 디자인의 큰 골격으로 활용했다. 버려지다시피 잠겨있던 거대 기반 시설을 뼈대로, 우리의 디자인은 비교적 미미한 간섭을 통해 720m의 선을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재인식하게 한다. 일 년 중 서너 달 정도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질 때 모습을 드러내는 댐은 이용자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원의 그 어느 공간보다 강력한 경험을 전달하는 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용자는 그동안 관망의 대상이기만 했던 거대한 열린 공간, 즉 저수지 한가운데에서 녹지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하게 된다. 센트럴파크에서 가장 독특한 이 산책로를 통한 경험은 다섯 가지 유형의 파빌리온―tilted, quiet, sky, open, floating room―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 수위가 낮은 기간을 제외하면 선은 물 아래로 잠기고,파빌리온들은 수면 위의 점선이 되어 육지로부터 격리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의 존재를 암시하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병치되며 센트럴파크의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플로팅 파빌리온은 다른 네 유형과 기본적인 형태, 크기, 재질을 공유하는 또 다른 유형의 파빌리온으로, 물 위를 떠다닐 수 있는 구조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등장하는 호수 위의 사찰과 같이, 저수지의 수위가 높을 때 다른 파빌리온으로의 접근은 이 플로팅 파빌리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때 파빌리온들은 실제 거리상으로도 맨해튼에서 가장 외딴 장소이자 가장 큰 오픈스페이스를 가진 공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붐비고 혼잡한 도시 뉴욕에서 저수지 위의 점들이 가장 고립되고 외로운 장소가 된다. 우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디자인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장소의 매력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제시했다. 순천 미술관 프로젝트는 대상지의 물리적 요소를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시의 흐름이 관입되어 공간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대상지와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작업의 시작이자 뼈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튜디오 MRDO_ 순천 아트월 순천 아트월(Sunchon Art Wall)은 ‘순천예술광장 국제건축공모전 2016(Suncheon Art Platform International Competition 2016)’에 도시 전문가 송민경·김유진, 조경가 조용준, 건축가 지강일·김남주와 함께 참여한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형태적으로 경계를 강조했다. 도시와 미술관 사이에 세워지는 ‘두터운 경계’가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이 장소에는 그런 새로움이 매우 당연한 제스처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순천 아트월은 ‘벽wall’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분리나 차별화가 아니라 대상지와 도시, 예술과 일상,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대상지와 도시: 첫 다이어그램에서부터 이 디자인이전적으로 대상지의 맥락에 반응한 결과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대상지의 경계를 따라 선형으로 계획된 매스들을 주변 도시 조직의 연장으로 보았고, 중앙의 비워진 광장 역시 주변 오픈스페이스가 연속되어 형성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대상지 주변에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아마도 중앙에는 건물을, 가장자리에는 공개 공지를 배치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형태인 중정형 배치가 대상지의 가장자리를 주변 도시에 포함시키고 비워진 중앙 광장을 보다 강력한 성격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작동시키고자 한 우리의 의도에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예술과 일상: 연속된 프레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두터운 경계’ 구조는 도시와 중앙 광장 사이의 물리적·시각적 연결성을 향상해 예술과 일상 활동의 흥미로운 혼합을 유도한다. 사람들은 거리의 낙서와 마주치듯 도시를 거니는 동안 미술관에 설치된 작품들과 조우한다. 대중과 유리된 순수 예술, 그리고 그것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통해 도시와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월(wall)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열림’이고, 이 열림은‘도시에 열려 있는 문화 시설’뿐만 아니라 ‘일상에 열려있는 예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순천 구시가지에는 옛 성벽을 비롯해 사대문, 교차로, 다양한 형태의 필지 등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도시적·건축적 유물은 순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유형을 보존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현대 개발 패턴을 반영하는 블록 유형을 사용함과 동시에 옛 순천 성벽의 형태를 차용했다. 여기서 순천의 옛 성벽(old Suncheon wall)과 새로운 예술 장벽(new art wall)은 강한 대구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개념적으로 연결한다. 그밖에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2015) 출품작 역시 도시와 세운상가가 만나는 수많은 교점node이 디자인의 주요 골조였고,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2016)의 출품작 ‘서울 연대기’에서도 서울이라는 도시와 대상지에 존재하는 수평적 레이어가 설계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미래의 새로운 아웃라인(Plotting New Outline for the Future, 2017)과 ‘서울 어반디자인 공모전’(2013) 출품작인 ‘하이퍼 랜드스케이프(Hyper Landscape)’에서는 대상지의 능선과 골짜기가 작업의 뼈대가 되어 지형이라는 물리적 현황이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대상지의 맥락이 결과에 크게 반영되는 방식의 작업에서 설계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JCFO의 작업에서는 설계 과정이나 이유에서 당위성을 찾기보다는 최상의 결과 그 자체를 내기 위해 노력한 기억이 많다. 어떠한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 그곳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사실 대상지의 맥락이 철저하게 반영된 공간이라기보다 나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으면서도 공간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왜 그곳에 연못을 두는지, 왜 여기는 복층이고 저기는 단층인지, 왜 그곳에 천창을 뚫는지, 왜 그런 타일을 쓰는지, 별다른 논리 없이도 공간이 그것을 사용할 나에게만 만족스럽다면 성공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소개할 JCFO의 작업에서도 맥락에서 비롯된 논리보다는 의뢰인들의 요구 사항과 공간의 심미성이 디자인의 가장 큰 이유이자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JCFO_ 상하이 타오푸 센트럴파크 상하이 타오푸 센트럴파크(Shanghai Taopu Central Park)는 중국의 신도시 상하이 타오푸 스마트시티의 기반 시설로, 건설과 동시에 실시 설계가 진행 중인 면적 약 1km2의 대형 공원이다.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새로운 자연(New Nature)’으로, 타오푸라는 새로운 도시가 필요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자연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 목표다. 절토와 성토를 통해 구성되는 구릉과 골짜기는 움직이는 구름, 흐르는 물과 같은 자연을 닮았다. 또한 동양의 붓글씨나 춤사위 같이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맥락과도 연결되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나는 공원 전체의 콘셉트와 구성이 완성되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디자인이 시작되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디자인의 내러티브나 개념을 만들기보다는 디자인된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에 초점을 맞추며 작업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언덕과 골짜기’라는 큰 틀 내에서 구체적인 동선과 마운드 구성을 시작으로, 각종 시설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도면에 옮기는 작업을 약 1년에 걸쳐 진행했다. 일곱 개의 놀이 시설을 디자인했는데, 모두 주변의 구릉 지형에 반응하도록 설계해야 했다. 이는 오히려 경사지를 적극 활용한 놀이터를 디자인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경사도는 이용자의 행태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비워진 평지가 불특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다면, 경사지는 기어오르기, 매달리기, 미끄럼타기, 조망하기, 올라타기 등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도 활동적인 행태를 끌어낸다. 이 공원의 놀이 시설은 모두 그러한 행태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끌어내도록 설계되었으며, 그중 몇몇은 일상에서는 하기 힘든 공간적 경험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슬로프 플레이(Slope Play)는 언덕 한편에 놀이 시설이 삽입된 다른 놀이터들과는 달리 언덕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이 놀이 공간이 된다. 앤털로프 캐년Antelope Canyon같이 곡선형의 켜가 층층이 쌓인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는 체험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타오푸 센트럴파크는 총 열 개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남쪽 네 블록의 지하에는 각종 문화·상업 시설이 입지한다. 이러한 시설과 오픈스페이스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는가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각종 구조물과 선큰 플라자는 이용자에게 그곳이 입구임을 강하게 인지시키며 활동의 거점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중 몇 개의 공간에는 보다 역동적인 공간감을 더하기 위해 전형적인 수직 동선의 입면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앉음벽을 제안했다. 선클 플라자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앉음벽의 폭이 점진적으로 넓어져 상층 경관과 지층 구조물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섞인다. 이러한 방식을 바로 뒤이어 진행한 ‘상하이 슈헤완 도시 공원(Shanghai Suhewan Urban Park) 공모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JCFO_ 상하이 슈헤완 도시 공원 공모전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차이나 리소스(China Resources)라는 중국의 국영 개발 기업이 주최한 지명초청 설계 공모로, JCFO는 세 팀 중 하나로 초대받았다. 이 디자인은 JCFO 내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상업 시설 면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지 못해 스터디 디자인에 그친 안이다. 대상지는 약 5만m2로 그리 넓지는 않지만, 슈헤완이라는 상하이의 행정 중심지 한가운데에 있어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클라이언트는 이 오픈스페이스가 대규모 상업시설로 개발될 곳이기 때문에 주변의 랜드마크로 작동함과 동시에 강력한 정체성을 가진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변 상업 시설과 블록을 연결하는 지하 공간과 보행교를 반드시 설계해야 했고, 방문객의 자연스러운 유입을 고려한 수직 동선 설계도 필요했다. 또한 2차선 도로로 인해 두 덩이로 나뉜 대상지에는역사적 건축물을 비롯해 존치해야 하는 시설물이 다수 있어 제약 사항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클라이언트가 무엇보다도 ‘일상의 공간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공간’을 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적이고 차분한 디자인 언어는 처음부터 배제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차이나 리소스라는 클라이언트에게 이 공모전 프로젝트에서만큼은 예산에 대한 고려가 우선순위가 아니기에 다소 화려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먼저 존치해야 할 시설을 피해 큰 동선과 디자인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다. 보행교와 지하 공간이 연결되는 지점 또한 우리가 임의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의 큰 형태를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튜디오 MRDO의 작업에서도 주변 맥락이 디자인의 큰 방향을 결정했지만, 그 경우에는 설계의 개념 및 전략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작업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슈헤완 공원의 맥락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수용해야 하거나 배제해야 할 대상일 뿐 그것이 개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완성된 후에야 만들어낸 피치카토(pizzicato, 바이올린 등의 현을 손끝으로 튕겨 연주하는 기술)라는 개념은 도시의 전형적 격자 구조와 대비되는 곡선 형태의 디자인이 이 지역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설계의 장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개념이나 맥락이 아니라 공간 자체다. 타오푸 센트럴파크에서 선큰 플라자를 디자인할 때 이용한 언어를 이곳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점진적으로 넓어지고 좁아지는 앉음벽의 폭은 대상지 전체를 더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지하 레벨은 크게 네 덩이의 선큰 플라자와 지하도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선큰 플라자는 대상지 주변의 교점이나 주요 시설물을 향하고 있다. 리듬감 있게 변화하는 지하 공간의 폭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음악의 선율처럼 극적인 시퀀스를 전달한다. 보행교 역시 지하 공간의 형태와 흐름에 맞추어 머물고 통과하는 장소의 조합을 고려해 디자인했다. 특히 다리의 기둥을 뒤집어진 언덕 형태로 디자인했는데, 이는 영화 ‘아바타(Avatar)’에 나오는 공중에 떠 있는 섬들처럼 비일상적 체험을 제공하는 주요 구조물이다. 지상 레벨과 선큰 플라자가 연결되는 곳은 입구 광장으로, 나머지 공간은 잔디광장이나 정원으로 조성하여 도시 광장과 근린공원의 기능을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조경가로서 접하기 쉽지 않은 입체적공간 설계를 다루어 볼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슈헤완 공원은 얌전하고 정적이었던 과거의 내 작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디자이너의 정체성 설득 대상에 따라 명확히 달라지는 디자인을 보면 확실히 결과물의 주인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클라이언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의뢰인의 취향이 제아무리 제각각이라 한들 이를 존중하고 만족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디자이너는 다양한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 혹은 고유성은 남과 자신을 구분 지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아직 그 경지를 경험해 본 조경가가 아니기에 다소 막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좋은 디자이너란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 안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위치를 설계 인생 위에 놓고 보면아직 사춘기 같은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외부의 요구에 휘둘릴 때가 많아서인지 그런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디자이너의 소임을 다했다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조경을 안지 이제 10년 남짓한 나는 자신만의 확고한 디자인 정체성 혹은 일관성을 확보한 디자이너는 분명 아니다. 내가 중심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싶으면서도 이 일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레 다가올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어떠한 중심, 어떠한 정체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다. 지금의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려 성급히 애쓰기보다 아직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분야를 접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내가, 우리가 좀 더 확고히 흥미를 갖고 집중할 만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방향이 나와 스튜디오 MRDO의 색을 좀 더 독특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완성된 작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닐지라도 디자인의 방법론과 색은 물리적 결과보다도 더 가치 있는 우리만의 무형 자산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세 달간의 연재를 마친다(연재 끝).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형태와 기능의 통합 2
    지난 연재에서는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네이비 피어Navy Pier의 디테일에 주목했다. 흥미 있는 형태form의 디자인이 어떻게 공간에 부여된 프로그램, 즉 기능function과 연관되는지에 주목하며 특히 포장과 가구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해 보았다. 그 논의를 연장하여 이번 연재에서는 구조와 건축에 관련한 디테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네이비 피어의 진입 지역에 교목을 정형적으로 열식하여 이용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한편, 관문과 같은 공간의 전환을 연출하고자 했다. 문제는 피어가 토양이 없는 인공 지반이기 때문에 구조인 슬래브 위에 수목을 식재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거대한 플랜터를 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면과 같은 높이에 수목 터널을 만들기 위해, 수목을 식재하기 위한 보강 구조물인 트리 터브tree tub를 설치하게 되었다. 트리 터브는 쉽게 설명하자면 수목을 식재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그릇 또는 통이다. 이를 설치하기 위해 기존의 콘크리트 슬래브와 기둥 구조물을 트리 터브의 모양대로 잘라내야 했다. 사람 크기의 기계톱으로 기존 구조물을 잘라내고 부수어, 기중기로 이를 들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트리 터브의 모양대로 네모반듯하게 잘린 슬래브에 콘크리트 트리 터브를 지탱하기 위한 철제 구조물을 설치했다. 철제 구조물은 각각 트리 터브의 크기와 모양에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피어의 중심 구조인 빔beam에 고정해 트리 터브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설치된 철제 구조물 위에 트리 터브를 올리고, 필요한 방수와 배수 공사 후 비로소 계획한 모습대로 수목을 식재할 수 있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김상환 방천골목오페라축제 추진위원장 골목에 만든 신세계
    ‘대프리카’의 화염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6월, 대구의 한 평범한 골목이 밤마다 오페라로 물들었다. 슬리퍼 끌고 반바지 입고 나간 동네 길. 그 일상의 환경에서 만난 ‘카르멘’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누군가에게는 첫 경험일지도 모를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는 강렬했다. 거리에 앉거나 선 사람들에게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배우들, 모든 자리가 R석이었다. 무대가 된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주변의 무덤덤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들이 그날따라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음향 반사판이었다. 차 없는 거리는 하늘로 열린 아레나였다. 화이불치華而不侈, 오페라 축제지만 사치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아스팔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카르멘’에 취했고, 우리의 상상은 어느덧 세비야의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그야말로 골목의 축제였다. 같은 콘텐츠라도 건물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오페라하우스 건설에 드는 뻑적지근한 비용을 고려하면, 왜 이제껏 골목이 오페라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공연장 하나를 짓는 비용으로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수백 년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베로나Verona가 2,000년 전에 지은 원형 경기장을 사용해 매년 도시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50만 명을 끌어들이고 있는 예나,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레녹스Lenox의 탱글우드Tanglewood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축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지방 도시 골목 오페라의 사업적 타당성과 미래는 무척 밝아 보였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최이규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 [정원 탐독] 이슬람 정원의 상징
    문명의 발달과 정신 Civilization=Spiritual. 역사학자 엠마 클라크는 인류가 문명과 정신의 세계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함께 발전시켜 왔다고 말한다. 문명의 발달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을 단단히 움켜쥐고 흥망성쇠를 같이 해 왔다. 이 정신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종교다. 인류의 문명지마다 그들만의 종교가 발생했던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잊고 변형시키는, 한결같음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잊지 말고 끊임없이 기억하게 할 장치가 필요했고, 그것이 우리가 종교적 건물, 조각물, 예술품 속에 무수히 상징을 새겨놓은 이유기도 하다. 다시 말해 종교의 상징들은 ‘신이 여기에 있다’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 상징을 통해 변형되려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다. 유럽인들은 그들 정원의 정신적·디자인적 뿌리를 중동의 페르시아 정원으로 본다. 중동의 정원 문화를 수천 년 역사를 통해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동의 정원 역사를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 역사, 지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지역인 중동을 몇 줄로 요약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개략적으로 본다면, 중앙아시아와 맞닿아 있는 지금의 이란 땅에서 발생한 고대 페르시아 문명과 이라크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에 세워진 바빌로니아 왕국을 그 근본으로 볼 수 있다. 6세기 무렵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데, 바로 중동 전체를 종교의 힘으로 통합시킨 선지자 모하메드가 창시한 이슬람의 탄생이다. 물론 이곳에 처음부터 정원 개념이 발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시네마 스케이프] 덩케르크 시공간의 확장과 압축
    영화가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까? 서사를 전달하지만 소설과는 다르고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사진과는 다른 특별함. 그것이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전 세계인에게 결과가 알려진 덩케르크 철수 작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공간을 확장하거나 압축하여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독일군에게 밀려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다. 도버 해협만 건너면 영국 땅이다. 군사를 지원해도 번번이 실패하자 연합군은 기상천외의 작전을 세운다. 해변에 고립된 40만 명 가까운 아군을 탈출시키는 것. 실어 나를 배가 턱없이 부족하자 영국군은 민간인의 배를 징발한다. 작은 어선에서 초호화 요트까지 예상보다 많은 배를 모으고, 구축함과 함께 벌인 9일간의 대규모 철수 작전은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요약한 것이지 영화 줄거리가 아니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개봉한 좋은 영화들을 뒤로 하고 ‘덩케르크’를 한 번 더 봤다.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슴 졸이느라 놓쳤던 새로운 장면도 보이고 결과를 알고 보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진다. 여름엔 역시 극장이 최고다.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의 잠복자들
    “난 우리가 좀 더 청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 최근 이 한 문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작자 김정민 씨가 과거 자신이 속한 인디밴드 앨범 표지에 썼던 이 문구가 점점 퍼지면서 유사 문구로 패러디되기 시작했고, 이어 현대백화점 유플렉스가 이를 홍보 문구로 사용한 것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해당 문구를 사용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원작자에게 사용 문의를 하거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그러려니 했지만, 대기업조차 출처도 밝히지 않고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해당 문구를 홍보와 매장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원작자는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자주 회자되는 어떤 무형의 것을 속담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유행어와 같은 공공재로 인지하고, 그것을 창작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얼마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서 비롯한 일이다. 어쩌면 누구든지 누군가의 창작물을 끊임없이 쉽게 퍼다 나를 수 있는 인터넷 문화가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게시물조차 원작자의 의지에 따라 배포 가부 여부가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
    • 진나래[email protected] / ‘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
  • 유럽에서 가장 쿨한 도시, 리스본
    포르투갈의 도시는 우리에게 낯설다. 이 나라 어떤 도시에 대해서도 국내 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다룬 기억이 없다. 수도 리스본이나 제2의 도시 포르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사람도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단편적인 지식은 적지 않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브라질, 앙골라와 모잠비크, 인도 서부와 동티모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해양 강국이자, 알바로 시자라는 천재 건축가, 그리고 루이스 피구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세계적 축구 스타를 여럿 배출한 나라. 그럼에도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한 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EU의 경제 열등생. 이런 단편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도시계획사 혹은 수도 리스본의 도시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빈약하기만 하다. 최근 리스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사 “어떻게 쇠락하던 리스본이 ‘쿨’한 도시로 거듭났나?”에서 리스본을 “힙hip하고 저렴cheap하고 혁신적인innovative” 도시로 표현했다. 지난 7월 AESOP 컨퍼런스를 계기로 직접 목격한 리스본도 놀라우리만큼 근사했다. 도시 전체가 패치워크처럼 얽힌 랜드스케이프 작품으로 읽힌다. 골목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fado는 시적 감성마저 불러일으킨다. 근사한 현재보다 가까운 미래에 더 찬란한 변화가 예견되는 곳, 로마 시대의 골목과 18세기의 도시 격자를 배경으로 젊고 생동감 있는 문화가 꿈틀대는 곳. 이와 함께 관광화, 명소화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곳이 리스본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53호(2017년 9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