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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스케이프] 두 자리
    “영 불편해서 못 살겠어요. 옆방으로 가려면 신발 신고 가야 하는데, 비라도 오면 아주 힘들어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늑한 느낌도 없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집에 살고 계신 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분이 설계한 집에 사는 소감을 물었더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시네요. 의외로 유명 설계가의 ‘작품’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그분도 유명세에 비해 실용성이 부족한 ‘작품’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깔끔한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군더더기 없는 형태, 권투 선수 출신의 괴짜 건축가,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일본의 현대 건축가. 모두 안도 타다오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죠. 그는 건축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아주 높은 건축가입니다. 국내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제주도의 본태박물관과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직 모르시는 분도 많은데 서울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혜화동에 위치한 전시 및 업무 공간인 JCC아트센터와 크리에이티브센터. 지난 봄 혜화동 근처에서 약속 시간이 한 시간쯤 남아서 어디를 둘러볼까 하다가, 미뤄두었던 JCC를 방문했습니다.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JCC는 안도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마감 덕분에 멀리서 봐도 그의 작품 같아 보이더군요. 바깥쪽 외관을 대충 훑어 보고 안쪽 중정으로 들어가서 옥상 쪽으로 이동하다가 벽에 붙은 의자를 만났습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안도 타다오 연전전패, 그럼에도
    설계공모에서 또 떨어졌다. 갖가지 핑계를 대보고 아쉬움으로 투덜대봐야 오로지 승자만 기억되는 게임이다. 설계공모에 도전할 때는 매번 가슴 뛰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면 시간과 경제적 손실이 크다. 주어진 일을 할 때와 달리 압축적으로 집중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 심사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정신적 타격이 가장 크다. 이번에는 대체 무엇이 부족했을까. 뒤끝 있고 쪼잔한 성품이라 깔끔하게 돌아서서 마음을 접지 못한다. 한동안 담아두었다 당선작이 완공된 다음에 기어이 확인하고 흠집을 찾아내야 분이 조금 풀린다. “다음엔 이기자고 다짐하지만 또 져요, 하하하.” 익숙한 바가지 머리의 안도 타다오가 말한다. 촌스러운 하얀색 추리닝을 입고 동네 공원에서 섀도 복싱을 하는 장면으로 다큐멘터리 ‘안도 타다오(Tadao Ando - Samurai Architect)’(2015)가 시작한다. 복싱 선수 출신으로 전문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본인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건축가는 배시시 웃으며 좋은 작품을 위한 “창조의 근육”을 강조한다. 1980년대 작품인 ‘빛의 교회’와 ‘물의 절’처럼 익숙한 작품부터 최근작인 상하이 폴리 그랜드 시어터(Poly Grand Theatre)에 이르기까지 설계와 시공에 얽힌 에피소드를 건축가가 직접 소개한다. 오사카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초기 구상안을 놓고 회의하는 장면, 책상에 구부리고 앉아 칼질하는 모습,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해나가는 과정, 정교한 거푸집을 짜고 ‘공구리’를 부어 만드는 안도식 노출 콘크리트 제작 과정까지도 볼 수 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과 영화를 좋아했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영화에 나타난 도시경관의 의미 해석”으로 석사 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도시경관으로서 서울 남산”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으로 일하고,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가르치며, 조경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다. 2014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5년간 『환경과조경』에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했다.
  • 일과 삶, 그 사이에서의 정원 일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 블루메미술관, 2019. 4. 13. ~ 9. 1.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시대다. 하지만 균형을 맞추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많은 사람이 일과 삶을 분리한 채 주로 여가와 소비에서 만족을 얻고 있다. 반면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은 일 또한 가정이나 건강 같은 삶의 일부이며, 통합된 일과 삶에서 행복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블루메미술관이 개최한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은 미래 사회가 워라밸을 넘어 워라인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렇다면 워라인 시대 행복하게 일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정원 일에서 찾는다. 블루메미술관은 그동안 정원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은 전시를 열어왔다. 정원의 느릿한 시간성을 사유한 ‘정원사의 시간’ 전(2017), 정원 일의 가치를 놀이와 접목한 ‘정원, 놀이’ 전(2017)에 이은 이번 전시는 정원 일에서 행복한 일의 원형을 탐구한다. 김도희, 박혜린, 아리송, 슬로우 파마씨(Slow Pharmacy), 베케 더가든(Veke The Garden)다섯 팀이 전시 작가로 참여해 일과 정원에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정원 일은 고된 노동이다. 잡초 뽑기, 물 주기 등의 반복 노동뿐만 아니라 날씨, 병충해같이 예측할 수 없는 각종 변수가 도사린다. 이 가운데 식물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정원 일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성,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땅의 시간에 따라 멈추기도 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정원사의 모습은 효율을 바탕으로 한 기계에는 없는 능력이다. 전시는 “정원 일의 더딤과 고요함, 한가로움은 미래 사회가 품을 일의 속성에 가 닿아 있다”고 말한다. 박혜린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정원에서 머뭇거리고 기다리는 행위를 통해 만나는 계절의 변화와 그로 인해 얻는 삶의 풍성함을 이야기한다. 싹이 움트듯 좁은 통로를 통과해 마주하는 봄, 소리가 많고 움직임이 많은 여름, 무언가를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가을, 고요하게 어딘가 숨어들고 싶은 겨울을 네 가지의 조형물로 표현했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 마곡 커뮤니티 팜 농업공화국 조성사업 설계제안공모 당선작
    지난 5월 10일 ‘농업공화국 조성사업 설계제안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됐다. 서울시가 개최한 이번 공모는 도시 농업 활동을 총괄적으로 지원하는 거점 공간의 조성을 목표로 한다. 참가자들은 도시농업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건축물 및 외부 공간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했다. 또한 건축가와 조경가의 공동 응모가 참가 필수 조건이었다. 시는 2015년부터 도시농업을 육성하는 ‘서울도시농업2.0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도시농업 공간 확보, 관련 기술 보급, 네트워크 형성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베이스캠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마을 개념의 도시농업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공모가 지난 3월 29일 개최됐다. 대상지는 서울시 마곡동 일대 11,817㎡크기의 부지이며, 마곡 지역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농경지다. 대상지 인근에 위치한 서울식물원과의 연계성 확보가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중략)... *환경과조경374호(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 [이달의 질문] 『환경과조경』에 제안하고 싶은 특집 주제가 있다면?
    20대 젊은 조경가에 대해 알고 싶다. 최근 설계사무소를 이끄는 30~40대의 젊은 조경가가 주목받고 있는데, 아직 내공은 부족하지만 설계에 애정이 많은 20대나 다른 분야와 조경을 연계해 색다른 활동을 펼치는 20대도 있다. 조경이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학문이라고 배우는 만큼 실제로 조경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융합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젊은 조경가들의 활동과 생각을 다뤄주었으면 한다. 백규리 동심원 조경 가까운 미래 조경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최근 4차 산업 혁명, 스마트 기술 등 미래를 연상케 하는 단어가 조경 설계에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조경과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조경의 미래에 대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특집을 진행했으면 한다. 김진아 경기도 과천시 유럽 여행 중에 꼭 가봐야 하는 공원과 그 공원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는 특집을 제안한다. 전 세계에 좋은 공원은 많지만, 그 공원의 역사와 프로그램 등을 소개한 여행 안내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경에 친숙하지 않은 비전공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특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애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사무국장 조경 사무소의 구체적인 업무를 다루는 특집을 제안한다. 조경 업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현실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 많은 학생이 막연한 상상에 기대어 기계적으로 전공을 공부한다. 자신이 하게 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조경 경기 위축에 대응하는 방법을 다루면 좋겠다. 개인 정원, 주택 단지 내 조경, 공원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조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실질적인 조경의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대처 방안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특집이 필요하다. 박진하 미담 과장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현대 조경 디자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집을 보고 싶다. 특히 가까운 과거, 예를 들어 지난 50여 년간 조경 디자인에도 유행이 있었는지, 그 유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유진 서울시 동작구 조경을 공부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래서 조경이 정확히 뭐 하는 거야?”다. 설계, 수목, 시공 등 조경이 포괄하는 것들을 헤아려 볼수록 점점 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 『환경과조경』에서 현대 조경의 다원적 면모를 망라하는 특집을 기획해보면 어떨까. 학생은 진로를 고민하는 데 참고할 수 있고, 전문가는 사고의 폭을 넓히고, 비전공자는 조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이다. 신명진 서울대학교 통합설계·미학연구실 조경인의 삶에 대한 특집을 기획하면 어떨까. 설계 및 시공 사무소, 엔지니어링 회사, 공사 및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조경인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조경인의 삶에 대한 깊이 있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면 후배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조경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는 인력난 문제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설문 조사 등을 통한 보다 현실적인 기사를 담은 특집을 제안한다. 송동근 부영주택 조경부 일본 출장을 가서 부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도심 빌딩 근무자들의 점심시간의 모습이었다. 빌딩 숲 사이 조성된 숲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은 피크닉을 즐기는 것처럼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귀국 후 점심시간 서울 도심에서 비슷한 규모의 빌딩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의 회사원은 커피숍을 오가거나 빌딩 로비 안팎을 서성이는 정도였다. 『환경과조경』에 녹지가 잘 조성된 도심 휴게 공간을 소개하는 특집 ‘다양한 도심 속 숲 들여다보기’를 제안한다. 더불어 휴게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공간을 소개한다면 보다 흥미롭고 풍성한 특집이 될 것이다. 이지영 롯데건설 조경팀장
  • [편집자의 서재] 피프티 피플
    하나의 이름에는 그 사람을 향한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누군가의 이름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내 이름만큼 익숙한 가족의 이름도 몇 번 곱씹다보면 금방 새삼스러워진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와 통화하면서 열정적으로 다른 아줌마 흉을 볼 때, 할머니가 시골에서 보내준 쑥개떡을 먹을 때, 나는 종종 호칭을 생략한 순수한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다보면 서울 사는 최지연 씨의 스펙터클한 동네 인간 관계를 파헤치고 충남 사는 김보물 씨의 떡 짓는 소소한 하루를 엿보고 싶어졌다. 엄마와 할머니가 아닌 지연 씨와 보물 씨를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단편적으로 인식됐던 두 사람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곤 했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많은 이름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각 장의 제목은 송수정, 이기윤, 권혜정, 조양선, 김성진, 최애선, 임대열, 장유라, 이환의, 유채원, 브리타 훈겐 등으로, 평범한 이름을 가진 50명의 이야기가 약 400쪽의 지면에 촘촘하게 전개된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온갖 사연이 우글대는 종합병원. 병원을 찾은 환자부터 시작해 의사, 간호사, 보안 요원, 또 다른 환자의 가족, 그 환자의 가족의 가족, 그 가족의 가족의 친구의 사연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14쪽부터 18쪽까지는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기윤의 하루이고, 24쪽부터 27쪽까지는 데이트 폭력에 희생된 승희라는 여자의 엄마 조양선의 이야기이며, 152쪽부터 157쪽까지는 승희와 종종 말을 섞었던 친구 권나은이 나오고, 77쪽부터 84쪽까지는 이기윤 몸에 있던 타투를 그린 타투이스트 한승조가 등장한다. 애잔한, 섬뜩한, 발랄한, 훈훈한, 처량한, 찌질한, 통쾌한 등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우여곡절 많은 하루를 보낸 것 같고, 다음 편엔 누가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익숙한 이름이 다른 이야기에서 불쑥 나타나면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 틈에서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소소한 쾌감은 덤이다. 하나의 서사는 보통 한두 명의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주변인들의 사연은 통편집되거나 많은 생략이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조연이고 엑스트라다. 분명한 이름과 생생한 에피소드를 입은 인물들은 복잡한 관계망에 놓여 다른 사람과 이쪽저쪽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납작하지 않고 두툼하게 묘사되며, 작가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낸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 그렇게 맞추다보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만 끝에 남을 때가 잦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모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2 마지막 장에서는 책 속 모든 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작가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각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독자 손에 쥐여 준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납득하며 책을 덮고 목차의 이름들을 찬찬히 복기했다. 다시 떠올린 이름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름에 관해 덧붙이자면, 다음 달 『환경과조경』에도 많은 이름이 등장할 예정이다. 7월호 특집으로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무소를 하나하나 자세히 다루진 못하겠지만 각 사무소의 이름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데 모아 더 많은 이에게 불리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름 속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도 누군가의 마음에 심기지 않을까. 각주 정리 1. 정세랑, 『피프티 피플』, 창비, 2016. 2. 같은 책, p.392.
  • [CODA] 공간은 어떻게 장소가 되는가
    새 학기가 다가오면 시험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학기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강 신청 기간. 학점이 후한 수업이나 팀플이 없다는 교양도 좋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1교시 수업을 탐내곤 했다. 당시만 해도 아침형 인간에 가까웠던 나는 기왕이면 일찍 하루를 시작해 단 일 분이라도 빨리 학교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운 좋게 수강 신청의 전쟁에서 썩 괜찮은 승리를 거둔 난 오후 세 시면 캠퍼스를 탈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됐다(그래봤자 설계 스튜디오 과제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시간만 많고 돈은 없는 대학생의 발걸음은 뻔한 루트를 따라 돌았다. 경비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낯선 동네를 탐색하거나 티켓값이 만만한 전시회에 들락거렸다.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날에는 영화관에 갔다. 한 잔에 오천 원가량 하던 아메리카노와 비교하면 영화 감상은 가성비가 좋은 취미 활동이었다. 더울 땐 시원하고 추울 땐 따뜻하고, 무엇보다 설계 스튜디오 하나를 마무리할 때마다 바닥을 드러내는 머릿속을 영화의 무언가가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서랍 한구석에 쌓인 영화표가 설계에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 보다 보니 영화가 좋아졌다. 전공 때문일까 유독 영화의 배경에 눈이 갔고, 한때는 그런 풍경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내든 첫 번째 이유는 최근 그 꿈을 어설프게나마 이루게 됐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영화 공부를 시작한 친구가 20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찍는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 기껏해야 짐을 옮기거나 심부름을 하는 허드렛일인 줄 알았는데, 그는 내가 설계를 배웠다는 이유 하나로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미술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덕분에 뜻하지 않은 책임감에 허덕이며 주말과 저녁 시간을 자진해서 내어놓아야 했다. 가구와 소품 배치 위주의 실내 공간을 꾸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야간 야외 촬영이 문제였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말싸움을 한 두 주인공이 갈등을 해소할 겸 맥주 한 캔을 나눌 장소가 필요했는데, 벤치와 테이블이 있으며(주인공의 키, 앉은키 모두에 어우러지는 적당한 높이어야 한다) 뒤로는 녹지가 적당히 풍부하고(주인공은 낡은 아파트에 살기에 잘 관리된 느낌을 풍기면 곤란하다)많은 조명을 설치할 필요가 없이 밝기가 적절하며(테이블 근처에 가로등이 있으면 역광이 진다)인적이 드물어야 했다. 분위기가 그럴듯한 어느 골목은 녹지가 지나치게 잘 관리되어 있어 좋은 동네라는 느낌이 물씬 났고, 가로등이 많은 놀이터에는 저녁 산책을 즐기러 온 사람도 많았다. 편의점 앞 테이블을 찍자니 촬영 감독이 차도 한가운데서 서 있어야 할 판이였다. 결국 찾아간 곳이 아파트 내 녹지였다. 심심하게 심긴 수목과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조명, 그 아래 어디에나 있을 법한 테이블과 벤치, 뒤를 스쳐 지나는 몇몇 주민과 고양이까지. 틀에 박힌 지겨운 풍경이 프레임에 담기자 새삼 정겹게 느껴졌다. 줄곧 다세대 주택에 살아온 내겐 조금 부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 정도의 녹지와 벤치와 테이블과 조명이면 밤에도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케이션 헌팅 중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한 수경 시설이나 독특한 모양의 퍼걸러가 보이는 곳은 번번이 후보에서 제외됐는데, 일상적 이야기를 담던 뷰파인더에 그러한 공간이 잡히는 순간 극의 흐름이 틀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유독 그런 공간에 오가는 사람이 적었던 걸 보면, 그 일상적 흐름이 뷰파인더 안에서 깨지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 두 번째 이유는 이번 호로 막을 내리는 ‘시네마 스케이프’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 때문이다. 영화 속 경관을 풀어낸 서영애 소장의 글은 여러 번 보아 익숙해진 영화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다. 내겐 공간이 누군가의 경험과 기억으로 새로운 정서와 의미를 갖게 되며 비로소 장소로 탈바꿈한다는 사실1을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글이기도 하다. 영화와 조경의 경계를 리드미컬한 걸음으로 오가던 연재를 떠나보내며, 언젠가 조경과 또 다른 무언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연재 필자를 발굴해 오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글을 닫는다.
  • 자연 속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아이붐 동물 가족 시리즈’ 아까시나무로 만든 동물 테마의 놀이 시설
    아이붐I-BOOM은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새로운 붐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로 개발된 예건YEKUN의 복합 놀이 시설 브랜드다. 아이붐은 다양한 감각 체험과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놀이 시설의 개발에 힘써 왔으며, 국내 최초로 놀이 시설에 1등급 목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좋은 자재로 만든 아이붐의 놀이 시설은 목재 고유의 따뜻한 색감과 촉감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오감을 발달시키고 자연에 대한 무한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붐 동물 가족 시리즈’는 아까시나무 목재로 제작한 동물 테마의 놀이 시설이다. 새로 출시된 ‘두더지 가족’은 귀여운 두더지 가족과 함께 숨바꼭질을 한다는 테마로 만들어졌다. 친근한 두더지 얼굴, 직선형 및 나선형 미끄럼틀, 다양한 높이의 계단, 네트 등이 입체적으로 조합되어 아이들은 두더지들 틈에 숨어 흥미로운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도 호랑이와 보물찾기를 하는 ‘숲속 호랑이’, 고래와 함께 바닷속을 여행하는 ‘고래 가족’ 등 다양한 동물 테마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TEL. 02-324-0070 WEB.www.iboom.co.kr
  • [에디토리얼] 북한 도시 읽기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실시간 영상을 통해 전파된 평양의 도시 경관도 큰 화제를 낳았다. 우리의 상상과 달리 카메라에 잡힌 동시대 평양의 거리는 활기찼다. 고층 건물의 형태와 아파트의 색채가 화려하게 변모했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려명거리에는 첨단 도시의 분위기가 감돌았고, 대동강과 풍성한 녹지를 품은 도시 풍경은 여유로웠다. 한반도에 불어온 봄바람은 북한의 도시, 경관, 건축에 대한 다양한 학술회의로 이어졌고 관련 서적이 연이어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 연말,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는 ‘영화로 보는 북한 도시와 경관’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사흘에 걸쳐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북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 구조와 형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환경과조경』은 5월호 특집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에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시, 건축, 조경을 탐사해 온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이번 기획이 평양과 북한 도시들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을 바로 잡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조경학 연구자들에게는 북한의 조경 문화와 도시 경관에 대한 탐색의 실마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이번 특집을 통해, 북한을 침체된 국내 건설 시장의 돌파구로만 여기는 ‘대박론’에 대한 교정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한의 도시계획과 도시 주거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해 온 정인하(한양대학교 교수)는 특집 원고에서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수립된 평양복구계획,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건축가 김정희가 펼친 사회주의 도시 마스터플랜의 이상, 1950년대의 평양 도시계획안, 1960년의 평양 도시총계획 등을 촘촘히 개괄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구조, 직주근접의 토지 이용, 녹지 체계가 자본주의 도시의 그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을 논의한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 도시화 이후의 도시』 등의 저작을 통해 북한 도시의 구성 환경을 생산, 녹지, 상징의 측면에서 탐구해 온 임동우(홍익대학교 교수, PRAUD 대표)는, 이번 원고에서 북한 도시의 핵심적 상징 공간인 광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평양에 비해 그간 많이 연구되지 않은 청진, 함흥, 신의주, 원산의 특징을 직접 작성한 액소노메트릭axonometric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시장 경제 체제의 도입을 목전에 둔 사회주의 도시의 미래를 전망한다.1 최근 출간된『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의 저자인 이선(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은 평양의 여러 공원의 모태가 된 명승고적을 살펴보고, 공원과 유원지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개관한다. “편협한 시각을 거두고 북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때”라는 그의 시각에 눈길이 멈춘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와『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를 통해 한반도 광역경제권 네트워크를 구상한 바 있는 민경태(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는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미래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기존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사회주의 도시 시스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도시 박물관’을 기획하면서 그는, 공간의 연결성을 향상시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상징적 공간을 재활용하여 관광 명소를 발굴하는 구상을 펼친다. 낙후된 시설을 재발견하는 평양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평양의 명소를 따라 걷는 올레길 코스를 제안하기도 한다. 북한 도시 특집 외에, 이번 5월호에는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의 근작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맘껏광장’, ‘숲 갤러리’를 싣는다. 최근의 ‘제주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 당선작과 함께 이번 달의 근작들에서 그의 설계의 중심이 형태와 구성에서 관계와 구조로 옮겨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치된 ‘숲 갤러리’를 함께 둘러보고 그와 나눈 긴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싣는다. 그가 강조하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풍경의 디자인”이 한국 조경의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기획하는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각주 1.최근 임동우는 1945년 이전 평양의 근대화 시기의 건축을 지도와 함께 자료화한 작업‘모던평양’(http://modernpyongyang.org)을 공개했다. 사회주의 도시로 재편되기 이전 평양의 근대 공간·건축 정보를 구글 API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시각화한 ‘모던평양’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평양을 재발견할 수 있다.
  • 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Pyongyang, An Unknown City
    멀지 않지만 다가갈 수 없던 곳, 북한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며 들뜬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머지않아 남북한이 경제, 문화,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교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남과 북의 단절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를 초래했고, 우리는 줄곧 왜곡된 상상에 기반해 북한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번 기획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살펴봄으로써 북한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도시의 형성 과정과 변천사를 살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넌지시 헤아려 보고자 한다. 나아가 평양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기획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북한의 도시 공간에 대한 탐사 없이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북한 도시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고 평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흥미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