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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 스케이프] 플로리다 프로젝트 허상의 공간
    언뜻 보면 아름답다.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곳,아이들의 왁자지껄 웃는 소리와 함께 야자수에 둘러싸인 낭만적 외관의 건물이 즐비하다.오렌지 월드와 거대한 마법사 조형물을 얹은 선물 가게와 아이스크림 모양의 가게도 있다.여섯 살 주인공 무니가 사는 곳은‘매직캐슬’이고 친구인 젠시는 로켓 모양의 입간판이 서 있는‘퓨처랜드’에 산다.조금 더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하다.관광객이 잠시 묵는 모텔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장기 투숙 중이다.홈리스와 다름없는 하층 계급이 모여 사는 매직캐슬은 방값이 없어 쫓겨나는 사람들의 고함과 술 취한 사람들의 소동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복도 난간에는 이불이 널려 있고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이곳은 어디인가. 월트 디즈니가1955년 캘리포니아에 개장한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의 선배격인 코니아일랜드나 드림랜드와 다른 개념으로 기획되었다.쾌락과 일탈의 장소가 아니라 어린이 위주의 건전한 가족 문화가 실현되는 공간을 추구한 것이다. 1966년에 올랜도에 세운 두 번째 디즈니랜드 계획은 주변 지역이 포함된 도시계획 차원으로 확대된다.정원도시운동(Garden City Movement)에서 영감을 받은 계획으로,현대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기획되었다.도심을 중심으로 그린벨트와 공업 단지가 모노레일로 연결되는 방사형의 구조다.이 신도시 개발은 엄청난 예산과 디즈니의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대신1971년에 매직킹덤이 세워지면서 전 세계인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68호(2018년12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올해 가을에는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웠다.적당한 강수량으로 나무의 영양 상태가 좋은 데다 일교차가 큰 날이 예년에 비해 많아서라고 한다.며칠 전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찬란했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며 이제 겨울임을 알려왔다.
  • 스플래시 마누엘 오카나 패스트, 퓨리어스 프로덕션 오피스 설계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은 해가 저물 무렵이면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수영장이었다. 하지만 인근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며 수영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인피니티 풀은 석양 감상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커다란 회색 벽으로 인해 답답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되었다. 인피니티 풀을 다시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마누엘 오카나 패스트(Manuel Ocana Fast)와 퓨리어스 프로덕션 오피스(Furious Production Office)는 2016년 가을, 거대하고 거친 회색 벽을 끊임없이 반짝이며 색다른 경관을 만들어내는 벽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들은 단순히 벽을 녹화하는 방식으로는 인공 구조물이 주는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해 반사체, 식물, 안개를 분사하는 분무기로 구성된 ‘스플래시Splash’를 제안했다. 스플래시는 수직 정원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빛과 대기의 변화에 반응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색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또한 인피니티 풀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석양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어반 블룸 상하이에 조성된 팝업 가든 2018. 3. 14. ~ 17. AIM 아키텍처 설계
    상하이 도심 속에 이색적인 경관을 선사하는 팝업 가든이 설치됐다. 건축 사무소 AIM 아키텍처(AIM Architecture)는 중국의 도시 콘텐츠 플랫폼 어반 매터즈(Urban Matters)와 함께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 찬 안푸Anfu거리에 활기 넘치는 공공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들은 건물 사이의 협소한 주차 공간에 ‘어반 블룸(Urban Bloom)’을 조성했고, 이 작은 정원은 도심 속 싱그럽게 움튼 꽃처럼 녹음을 선사하고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는 소통의 장으로 거듭났다. 어반 블룸은 2018년 3월 11일부터 12일까지 총 이틀에 걸쳐 조성됐으며, 같은 달 14일부터 17일까지 4일 동안 이용된 후 철거되었다. 지나치는 곳에서 즐겨 찾는 목적지로 도시에서의 삶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와 ‘어디에서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다. 어반 블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장점을 살리고, 주어진 환경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누구나 충분히 즐길만한 공공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비롯된 실험적 프로젝트다. 안푸 거리는 주거 단지와 사무실, 레스토랑, 상점, 학교 등이 밀집한 번화가다. 이곳에는 30층 이상의 고층 건물과 3층짜리 주택이 공존하는 등 옛 도시 풍경과 새로운 도시 경관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형성하지만, 외부 휴게 공간과 녹지가 부족하다. 안푸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치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찾고 머무르는 목적지, 더 나아가 도시민에게 즐거움과 여유를 줄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중략)...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골목길·마을마당 디자인 국제학생 공모전 제5회 조경나눔공모전, 골목길 환경 개선을 위한 디자인과 주민 참여 유도 프로그램의 운영·관리
    지난 11월 12일 ‘골목길·마을마당 디자인 국제학생 공모전(제5회 조경나눔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 주최·주관하고 디에스디 삼호와 본지가 후원하는 이번 공모의 대상지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 골목길로, 공항 인근에 있어 비행기 소음으로 피해를 받는 지역이다. 또한 학교가 밀집되어 있지만 통학로의 보행 환경이 좋지 않으며, 좁은 골목길, 부족한 주차 공간 등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상지의 골목길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과 효과적인 운영·관리 방식 제시가 공모의 주요 과제였다. 지난 10월 30일까지 국내 14개 작품, 해외 1개 작품이 제출되었으며, 11월 9일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심사위원장), 강주형 대표(생각나무파트너스), 박명권 대표(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박준서 대표(디자인엘),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영범 교수(경기대학교)가 심사를 통해 대상 1점, 최우수상 1점, 우수상 2점, 가작 5점을 선정했다. 대상(상금 200만원)에는 신소원·이종인(울산대학교)의 ‘늘 라온 길’이 선정되었다. 좁고 낙후한 골목을 개선하고자 10cm라도 더 알뜰하게 공간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며, 데크를 활용한 3차원적 디자인으로 복합적기능을 부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디자인 또한 좁은 대상지의 조건에 잘 부합한다는 평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가파도 프로젝트 현대카드 스토리지, 2018. 11. 1. ~ 2019. 2. 28.
    11월 1일,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에서 ‘가파도 프로젝트’ 전시가 열렸다. 현대카드가 주최하고 원오원 아키텍츠(ONE O ONE architects)가 주관한 이번 전시는 가파도 프로젝트의 철학과 배경, 주민과 관계자들이 기울인 노력, 그간의 변화 과정 등을 소개한다. ‘생태, 경제, 문화가 공존하는 섬’이라는 멀고도 아득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 쌓아 온 리서치, 아이디어 스케치, 도면, 사진, 인터뷰 영상 등의 자료가 작은 지하 전시 공간에 차곡차곡 담겼다. 지키기 위한 변화, 가파도 프로젝트 가파도 프로젝트는 가파도를 지속가능한 섬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지역 재생·활성화 프로젝트다. 현대카드가 컨설팅과 재능 기부를 담당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재정 지원, 원오원 아키텍츠가 공간 설계를 맡았다. 제주도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가파도는 면적 약 0.87km2, 둘레 4km의 작은 섬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000여 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명만이 남았으며,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청보리축제가 열리는 4~5월이 되면 이 작은 섬으로 약 6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관광객을 겨냥한 임시 시설물이 난립한다. 가파도 본연의 경제적, 자연적 생태계는 점차 위협받고 있었다. 2012년 현대카드와 원오원 아키텍츠는 급격한 난개발과 변화 속에서 가파도의 시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섬마을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방문객들을 수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구수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남아 있는 주민들의 생활이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가 프로젝트의 목표가 되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8호(2018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작가나 가수처럼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타인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하지만 완전히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하는 모순을 끌어안은 번역가는 ‘자기를 보여 주는 일’의 대척점에 놓인 사람이다. 원작은 완전한 타인의 산물이기 때문에 번역가의 목소리가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그래서인지 27년차 번역가 정영목은 번역가의 정체성을 두고 작가보다 배우나 연주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기자나 연주자와 달리 번역가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미묘하다. 흔히 번역된 글을 두고 ‘이건 번역 같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말을 칭찬처럼 하곤 한다. 대패질한 듯 매끄럽게 다듬어진 문장, 번역 냄새가 나지 않는 글은 좋은 번역 혹은 옳은 번역의 사례로 여겨진다. 따라서 ‘번역다운 번역은 번역 같지 않은 번역’이고, 번역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번역을 하면서도 번역을 하지 않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딜레마 그 자체다. 번역가는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하는 걸까. 이쯤 되면 머리가 아파진다. 번역을 평가하는 기준은 ‘원문에 대한 충실성’이나 ‘가독성’ 따위에만 머물러 있어서, 번역은 문학과 비문학을 모두 아우름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작업’만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인공 지능은 번역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엉터리로 번역한 문장을 두고 ‘번역기를 돌렸다’는 표현이 곧잘 쓰이곤 했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구글 번역기는(적어도 영어에서만큼은)속도나 정확도 면에서 꽤 신뢰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 학교 과제나 회사 업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급부상했다. 아무리 긴 글도 마우스로 긁어 복사+붙여넣기 하면 단 몇 초 만에 해석된 글이 눈앞에 짠 하고 펼쳐지니 외국어로 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덕분에 모르는 단어를 하나씩 찾는 시간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성질이 급해져서, 내 컴퓨터 인터넷 창의 북마크 바 한가운데는 구글 번역기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는 번역에 대한 단상과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번역가를 위한 실용서 같지만 번역 스킬과는 무관하다. 알랭 드 보통, 필립 로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커트 보니것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의 책을 번역해 온 정영목은 문학성이 깊고 번역이 까다로운 소설의 적임자로 여겨진다. 하나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균형 잡힌 번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는 편집자들이 ‘믿고 맡기는 번역가’ 중 하나다. 정영목은 번역 논의의 빈약함과 문장의 매끄러움에만 연연하는 인식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묵은지처럼 푹 묵혀둔 번역의 사회적 역할과 인문학적 가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전문 번역가는 넘쳐나지만 좋은 번역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연주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나 스타일이 전혀 달라지듯이 번역도 그러한 법인데 번역을 평가하는 기준은 직역 혹은 의역인지, 가독성이 좋은지 등의 단편적인 수준에만 그친다. 대신 번역 오류나 문체에 대한 논란과 질타가 번역 논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되려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 좋은 그림, 훌륭한 연주, 높은 수준의 소설을 평가하고 그 기준을 되묻는 것처럼 좋은 번역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번역이란 “불완전한 양쪽 언어에서 다른 완전한 언어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는 성기고 번역의 반은 상상”이다. 그래서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 된다.1 저자는 그의 단상을 고민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맺는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 ‘번역의 자리’에서 번역은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뒤엉키고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는, 서로 다른 인간들의 본질적인 교섭과정을 살펴보며 인간을 공부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닐까”2라며, 번역의 새로운 자리를 모색하는 물음을 던진다. 정영목은 책의 첫머리에서 번역가로서 번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번역 자체의 미진함에 대한 군색한 변명으로 비춰질까 걱정했지만, 그의 글은 변명보다는 분야에 깊이를 더하고 외연을 넓히려는 절실함으로 보인다. 건조하기만 한 문체에서 왜인지 모를 짙은 호소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의 것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일, 번역가와 편집자는 근본적으로 유사한 직업성을 공유하기 때문일까. 나는 동종 업계도 아닌 남의 일 얘기에 여기저기 많이도 밑줄을 그어 놓았다. 편집부는 12월호 마감이 한창일 때 내년 계획을 짜느라 여느 때보다 더 분주했다. 내년 1, 2월호에 예정된 ‘젊은 조경가 특집’ 때문이었다. 12월호에 실릴 젊은 조경가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날, 처음 시도해 보는 기획의 가닥을 잡고자 수상자들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특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기준 편집장은 특집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조경가 김호윤을, 이호영과 이해인을 ‘보여 주는’ 기획임을 거듭 강조했다. 보여 주기. 한 인터뷰에서 정영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번역은 빙산을 보여 주는 일이다. 일부는 위에 솟아 있지만 아래는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가장 풍부한 언어로 밑바닥까지 모두 긁어 보여 줘야한다.”3글과도면, 사진 아래 숨겨진 설계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여져야 할까? 또 한 사람의 설계관을 어떻게 번역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까? 책의 말머리에 실린 인터뷰에서 “어찌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인지도 모르죠”라고 답했던 번역가의 말에 묘하게 공감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각주 정리 1. 정영목,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문학동네, 2018, pp.166~167. 2. 위의 책, p.198. 3. 김기중, “[사람과 사람] 번역가 정영목”, 『문화+서울』 2018년 8월호, 서울문화재단, p.26.
  • [CODA]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늘 남들보다 한 달을 먼저 산다. 교정지 귀퉁이를 차지한 12, december 등 한 해의 끝을 뜻하는 단어를 살피다 보면 내가 머무르고 있는 달을 잊기 일쑤다. 종무식 전에 잡지를 마감할 수 있을지 걱정하다가 지금이 11월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한다. 연말을 미리 맞는 만큼 빨리 늙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카페에 들어서자 기분이 나아졌다. 달리 생각하니 남들보다 두 배 긴 12월을 보내는 셈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더라도 괜히 낭만적 감상에 빠지게 하는 축제 기간은 길수록 즐겁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에 걸맞게 올해 12월호 특집도 ‘올해의 조경인’이 장식한다. 부문이 네 개에서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도 설계를 놓지 않는 조경가들을 응원하고자 ‘젊은 조경가’가 신설됐다. 모쪼록 조경가를 꿈꾸는 학생에게는 새로운 꿈을 품게 하는, 설계에 전념하고 있는 조경가에게는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지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의 조경인이 네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든 만큼, 인터뷰하느라 동분서주한 작년과 달리 조금 여유롭게 잡지를 편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젊은 조경가 인터뷰는 2019년 1월호와 2월호의 특집에 게재될 예정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이러한 기대는 처참히 빗나가고야 만다. 편집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발목을 잡았다. 사실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 조경가 공고를 내기 훨씬 전부터 작은 포부가 있었더랬다. 각양각색의 소품과 조명으로 사물이나 사람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화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물의 특색과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사진으로 지면을 채우겠다는. 커다란 사진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고, 그 위를 흐르는 간결한 글이 꼭 시처럼 느껴지는 지면을 꾸려보고 싶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부터 유청오 사진작가를 만날 때마다 이러한 계획을 은근히 흘리는 치밀한(?)전략도 수행했다. 이윽고 11월, 사진 촬영에 앞서 유청오 사진작가에게 유의 사항을 전달했다. “1. 도비라1의 경우 사진을 디자인 요소로 변형해 사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단색 벽 앞에서 인물의 정면과 반측면을 골고루 촬영해 주세요. 2. 작년과 달리 인물 사진을 두 쪽 가득 넣어 사진 위에 글을 흘리는 편집 디자인을 시도하려 합니다. 인물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배경과 소품을 더한 사진을 촬영해주세요. 글을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인물이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로 부탁드립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니 촬영은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탓이다. 탄탄한 계획과 관계없이 사진 촬영은 피사체와 사진작가와의 교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깜빡했다. 졸업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자, 웃어볼까요? 너무 진지합니다”, “네, 지금 아주 어색하고 좋아요.” 긴장을 풀어주고자 건넨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입꼬리는 자꾸 굳어가고, 나중에는 내가 웃고 있는지 울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안면 근육이 얼얼해진다. 표정뿐만이 아니다. “그냥 편하게 서 계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평소에 어떻게 서 있었더라? 갑자기 숨 쉬는 방법도 헷갈리고 팔다리 모두가 내 것 같지 않다. 렌즈 마주하기를 어려워해 인물의 따스함이나 예리함, 말 한마디에서도 느껴지는 고유의 분위기가 전해지지 않을 때면 모니터에 가득한 애꿎은 사진 목록만 계속해서 훑게 된다. 글이든 사진이든 어떤 대상을 왜곡 없이 담아내는 일은 항상 어렵다. 그래도 완성된 지면이 꽤 마음에 찬다.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 조경가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유 작가가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게 유도해준 덕분이다. 표지 디자인을 위해 미간을 찌푸린 채 누끼 따기2에 여념이 없는 팽선민 디자이너를 보며, 작은 사진 스튜디오가 있었으면 하는 큰 꿈도 꿔보았다. 어지러운 배경에서 인물만 오려내는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촬영 장소에서 흰 벽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젊은 조경가에 도전해보려는 이들에게 그다지 요긴하지 않은 조언을 하나 하자면, 사무실에 아무 무늬 없는 벽을 두면 사진 촬영에 유용하다. 심심해 보일 것이 걱정이라면 액자 하나를 걸어두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졌을 것이다. 글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저 제목 말이다. 아실지 모르지만 『환경과조경』은 매달 마지막 주 즈음에 마감을 진행한다. 이곳의 기자가 된 후 내게 크리스마스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기사를 걱정하거나 급하게 ‘편집자의 서재’를 적어 내려가는 날들이었다. 2019년의 목표 중 하나는 마감을 앞당겨, 독자 여러분이 1일마다 기쁜 마음으로 『환경과조경』을 받아들게 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12월 25일, 이미 훨씬 전에 마감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인사드린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각주 정리 1. 문짝(とびら)을 뜻하는 일본말, 꼭지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 페이지를 말하는 편집·인쇄 동네의 속어다. 2. 배경을 지우고 필요한 피사체만 인쇄되도록 하는 그래픽 작업의 속어. 누끼는 일본어로 빼다(ぬき)라는 의미다.
  • [PRODUCT] 때로는 축구장으로, 때로는 농구장으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멀티 코트’
    라렉스(LAREX)는 목재를 활용한 다양한 조경 시설물을 생산해 온 비엔지(BnG)의 휴게 시설물 브랜드다. 조경(landscape)과 왕(rex)의 합성어인 이름에 걸맞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고품질의 시설물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라렉스의 ‘멀티 코트’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양끝에 축구 골대와 농구 골대 기능을 겸하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때로는 축구장으로, 때로는 농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구기 종목이나 달리기 등 다른 운동 공간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견고한 펜스가 둘러져 있어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얼마든지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과 갈색으로 디자인되어 눈을 편안하게 하고, 어디에 설치되어도 주변과 잘 어우러진다. TEL. 031-761-5313 WEB. www.toryi.com
    • / 비엔지
  • [에디토리얼]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참가하는 조경가들에게
    지난 8월부터 한 일간지에 3주마다 칼럼을 쓰게 됐다. 전국의 불특정 독자를 상대하는 지면이라 글감 택하기가 쉽지 않다.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1,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로 첫 글의 주제를 잡았다. 대중 일간지라는 부담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힘이 과하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법.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와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서울시 논리의 맹점을 꼬집은 후, 서울역 고가 공원화 못지않은 속도로 전개될 이 사업의 과정을 경계하는 다음 문단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 사업의 속도다. ‘토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속도전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7월 말에 전문가와 시민 150명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토론회를 열었다. 초대장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함에 따라 …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서 동시에 8월 말 설계공모, 내년 말 설계 종료,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과속 주행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성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진정한 광화문시대를 여는 과정의 첫걸음이라면,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미래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배정한, “광화문시대를 연다?”, 「한겨레」 2018년 8월 11일). 당연히 볼이었다. 10월 12일,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린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 조성을 목표”(공모 지침서 초대의 글)로 하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공고됐다. 가까운 조경가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공모에 참가한다고 한다. 건축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적의 드림팀을 꾸리느라 거의 모든 세대의 조경가와 건축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몇몇 조경가(L)와의 대화 몇 토막을 추려서 옮긴다. J. 광화문광장, 할 건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L.당연히 한다. 어떤 안을 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침서에 적힌 ‘10가지 이슈와 과제’는 사실 ‘아무 말 대잔치’나 ‘뻔한 말 대방출’처럼 읽힌다. 진지하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말들이다. 그 과제들을 조금 더 고급진 어휘로 바꿔 보고서에 다시 적고 패널에는 한두 가지 강한 아이디어를 세련된 CG로 산뜻하게 담을 생각이다. J. ‘보행 중심 공간화’는 결국 현재의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확장하는, 이른바 ‘편측 광장’화다.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은 광화문 앞 월대와 해태상의 제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다. 어길 수 없는 정답이다. 이 두 문제가 현재의 광장, 즉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낸 촛불의 광장을 지금 당장 고쳐야 하는 합리적 이유일까. L. 시급히 고칠 이유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바꾸면 광화문광장이 더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J.물론 현재의 광장 구조, 형태, 디테일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10년 전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광장을 만들었다면 시민의 일상과 더 넓은 접면을 가지고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보다 쾌적한 보행 환경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필요할 때 차도를 막아서 유연하게 쓰고 주변의 빈 공간들을 잘 엮어서 써도 되지 않나. 당장 뜯어고칠 당위성은 없는 것 아닌가. L.동감이다. 바꿀 거면 확실하게 바꾸는 게 맞다. 기왕이면 입체적 교통 계획을 세워 세종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랜드 플랜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단기 처방을 하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 아닐까. J.단기 처방 후 또 새로 수술을 해야 할까. 역사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와 전통 이야기만 나오면 왜 언제나 전근대의 조선만을 원형으로 설정하는 것일까. L.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몇십 년간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철거와 복원 행위의 대부분은 조선 왕조의 공간적 흔적을 단편적으로 소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의미가 적층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J. 그렇다. 4·19 혁명과 1987년 민주 항쟁도, 붉은 악마의 월드컵 군무도, 촛불로 타오른 시민 혁명의 기억도 조선의 왕궁이나 육조거리, 월대나 해태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L. 그 지점에서 참가작들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분기될 것 같다. J.왜 이 공모가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라는 공모 지침서 첫 문장처럼 실제로 우리는 광화문광장을 문제라고 생각할까. 시민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L. 우문이다. 이 시대 도시·건축 정책을 이끄는 키맨들의 문제의식과 열망이 낳은 프로젝트다. 어느 정도는 순수한 열망이라고 본다. J. 그 순수한 열망이 왜 이렇게 급하게 실험되어야 하는가. 연구와 토론, 참여와 소통이 필요하지 않나. L.물론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데드라인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키맨들은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라고 판단하니까 과속하는 것 아니겠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 J.그렇다면 왜 이 땅의 대다수 조경가와 건축가도 이 과속 주행에 동참해야 하는가. L.잘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전문가로서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공모전 사이트가 가장 상징성 있는 서울의 대표 공간 아닌가. 내 설계 능력과 지식을 이곳에 펼쳐봐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서울로 7017’의 재판이 되는 걸 막아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느낀다. 아무튼 정치는 정치고, 일은 일이다. 그들이 노 저을 때 우리도 노 저어야 한다. J.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지만, 그러다 쓸데없이 팔뚝만 굵어질 수도 있지 않나. 2017년 1월호부터 격월로 연재된 ‘정원 탐독’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오경아 필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2018 서울정원박람회
    지난 10월 3일부터 7일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2018 서울정원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작년에 이어 정원 문화 확산과 노후 공원 재생을 목표로 잔디마당 곳곳에 작가정원 7개소가 조성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4일부터 6월 12일까지 ‘서울 피크닉’을 주제로 작가정원 공모를 진행했으며, 실용성, 창의성, 심미성, 시공성, 주제 반영도를 고려해 1차 서류심사에서 11개의 작품을 선별하고 2차 프리젠테이션 심사를 통해 최종 7개 작품을 선정했다. 배정한 심사위원장(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은 “주제를 참신하게 풀어낸 창의성이 돋보이는 응모 작품들이 많았다”며 “서울정원박람회의 품격을 높이고 새로운 정원 디자인의 트렌드를 선도할 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을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원 조성 이후 현장에서 이루어진 최종 심사 결과, 김인선(팀펄리가든)의 ‘피크닉을 즐기는 N가지 방법’이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날씨, 계절, 분위기 등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휴식할 수 있는 정원으로, 정원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와 주변 경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공간 구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8 서울정원박람회는 10월 9일부로 막을 내렸지만 여의도공원 잔디마당에 조성된 일곱 개의 작가정원은 존치된다. 2018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공모 주최 서울특별시,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주관(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월간 환경과조경 위치 여의도공원 잔디마당 일대 주제 서울 피크닉 규모7개소(100m2 이내/개소당) 지원금2,000만원(개소당) 상금 대상1,000만원(1팀) 금상500만원(1팀) 은상300만원(1팀) 동상100만원(4팀) 심사위원 안영애(안스디자인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주신하(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윤영주(디자인필드 대표) 이선화(지호디자인 대표) 이병철(아침고요수목원 이사) 권진욱(한국정원디자인학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배정한(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박명권(월간 환경과조경 대표) 전시2018. 10. 3. ~ 9.(박람회 이후 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