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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 사무소 리포트
Landscape Architecture Design Firms in Korea, 2019
문득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조경설계사무소가 있는지, 한 해에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몇 명의 직원이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어떤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지. 『환경과조경』은 창간 37주년을 기념해 특집으로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를 준비했습니다. 2019년 현재 국내에서 조경설계를 수행하고 있는 디자인 오피스의 정보를 총망라하여, 조경설계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조경설계사무소의 구체적인 현황을, 클라이언트에게는 유용한 리스트를, 학생에게는 각 설계사무소의 고유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지난 5월 14일 홈페이지에 ‘2019 대한민국 조경설계사무소 리포트’ 특집을 공고한 후 6월 15일까지 약 한달간 이메일을 통해 신청서를 접수받았으며, 그 결과 총 88개의 사무소가 특집에 참여해주었습니다. 길지 않은 홍보 기간으로 인해 모든 조경설계사무소를 수록하지는 못했으나, 이번 기회가 한국 조경설계사무소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록 순서는 회사명 가나다순이며 공통 요청 사항 중 답하지 않은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디자인 팽선민
요청한 공통 사항
회사명, 대표자, 직원 수, 설립일, 전화번호, 이메일, 홈페이지, 주소, 주요 설계 분야, 지난해 수행한 프로젝트 수, 설계사무소를 표현한 한 줄의 문구, 철학 혹은 비전, 대표작, 설계사무소를 대표하는 한 장의 이미지
가덕이엔지
가든율
가원조경설계사무소
공간엔지니어링
그람디자인/정원사친구들
그루 조경사무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그린에이드
그린포엘
기술사사무소 아텍플러스
기술사사무소 예당
기술사사무소 이수
다우리디자인그룹
대삼팜스빌리지
더숲
도화엔지니어링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두손엔지니어링
디자인로직
디자인스튜디오 도감
디자인스튜디오 loci
디자인오피스 더블와이엠
디자인필드
디자인하다
라디오
랜드아우라
랜드아트
랩디에이치
리앤수
마노디자인그룹
명문엔지니어링
명산L&C
모데라토조경설계사무소
바인플랜
서안알앤디조경디자인
솔토조경
스튜디오 테라
시선조경설계사무소
신화컨설팅
씨에이조경기술사사무소
씨에이티
씨엔조경설계사무소
씨토포스
아이엘오퍼레이션
아침조경디자인
안마당 더 랩
애림조경 기술사사무소
어나더가든
에스엘디자인
에이트리
엘
연성기술단
오피스박김
우리엔디자인펌
유신
인터조경기술사사무소
자연감각
정방종합엔지니어링
제이엘에이
제이제이가든스튜디오
조경그룹이작
조경기술사사무소 이지인포
조경디자인 린
조경디자인 SITE
조경설계 동산
조경설계 디원
조경설계 비욘드
조경설계서안
조경설계 이화원
조경설계해인
조경설계호원
조경설계 힘
조경설계사무소 숲속
조경설계사무소 위드
조경하다 열음
팀펄리가든
프롬
플레이스랩 기술사사무소
ALIVEUS
BE·OH ENC
D SQUARE
HERANG
HLD
JWL
KnL 환경디자인스튜디오
MW’D.Lab
PH6 Design Lab
TND조경설계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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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제국주의 사보타주
Environmental Imperialism Sabotage
지난 수십 년간 종말론에서나 있을 법한 인구 이동 및 공동체 소속을 둘러싸고 반복되어 온 전 세계적 갈등은, 환경제국주의(environmental imperialism)의 한 학파에서 나온 19세기 확장주의에서 비롯된 지역 구조의 부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 출신 연구자 라마찬드라 구하(Ramachandra Guha)는 환경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설명한 바 있다.1 그의 해석은 공간 혹은 영역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이 특정 모형으로만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한 나머지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지역 계획가가 무시하기 일쑤였던 문화적·심리학적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환경제국주의는 한 커뮤니티가 이국의 땅에 미치는 영향력 중 많은 부분은, 해당 지역에 이미 존재했으나 존중받지 못한 맥락과 다르거나 심지어 완전히 반대선상에 놓인 문화적 관례 및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자연과 분리불가결한 관계를 지닌 혼성 커뮤니티와 화해를 시도해온 수십 년(어떤 제국의 경우에는 수백 년)의 노력은 헛된 것이다.
생물권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경 계획가가 신자유주의 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시대에, 우리가 지닌 제국주의적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계가의 행동은 프로젝트에 문화보다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는 곧 자연과의 매우 특별한 존재론적 관계를 반영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 ̄즉, 교육받고 특권을 지닌 결정권자의 생정치(biopolitics)2 ̄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공학적 프로토콜의 옹호를 받고 있는 국제적 환경주의 흐름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 떨쳐내야 하는 골칫거리다. 인식론적 무정부주의3를 통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섬세하지만 존중할 만한 다른 지역적인 가치로 글로벌 문화를 논의할 수 있다.
이탈리아 미래파Futurist의 파시즘적 논리를 펼치게 했던 기념비주의와 포괄주의가 백여 년에 걸쳐 생물권의 풍부함을 비약적이고 무식하게 손본 결과, 지구Gaia의 일상과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성이 결국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국에 흩어져 위험천만한 거주지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환경적으로 구축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자연적·사회적 환경을 길들이는 대신 동행하기를 지향하는 전문가들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 환경 관리에서 쉽게 발견되는 환경 미학을 바탕으로,4 동시대의 예술 작업을 구성하는 연구와 실천적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생태철학적 현상을 잡아내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었다. 풍부하고 혼합적인 접근 방법으로서 삶 공간의 무형성을 이해하는 능력은, 뒤에서 보게 될 감각민족지학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의 사진가 필립 우다드(Philippe Oudard)와 건축가 조민석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중략)...
*환경과조경375호(2019년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Ramachandra Guha and David Amold, eds., Nature, Culture, Imperialism: Essays on the Environmental History of South Asia , New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2. Michel Foucault, 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8-1979, London: Palgrave Macmillan, 2008.
3. Paul Feyerabend, Against Method: Outline of an Anarchistic Theory of Knowledge, London: Verso, 1975.
4. Alban Mannisi, “Environmental Observatory: Sensory Landscape Permaculture”, Kansai Engineering Symposium Proceeding , Nagoya, 2018.
알반 마니시(Alban Mannisi)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다. 그는 건조 환경을 구축하고 연구하는 플랫폼 SCAPETHICAL(www.scapethical.org)의 설립자이자 이사이며, 호주 멜버른 공과대학(RMIT)의 건축·도시설계학부 부교수다. 역사와 하이브리드 컬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프랑스, 한국, 싱가포르, 영국, 태국, 일본, 호주에서 탐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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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생태 계류
단지 계획과 관련된 도면을 제외하고 재료와 형태, 디테일에 공들여 디자인하는 시설 중 하나는 수경 시설이 아닐까 싶다. 공간의 배경이 되든 중심이 되든, 수경 시설은 대상지의 조건 혹은 설계 콘셉트에 따라 비교적 구체적으로 형태와 구상을 표현할 수 있고 존재 자체로도 이목을 강하게 끄는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한남 더 힐’은 그룹한과 오오토리 컨설턴트(OHTORI Consultants)의 요지 사사키(Yoji Sasaki)가 협업한 고급 주거 단지 프로젝트다. 오오토리가 기본설계를, 그룹한이 실시설계를 진행했다. 공사용 도면을 작성하면서 세부 공간의 생소한 디테일이나 잘못 표현된 부분에 대한 샵드로잉을 그려 협의했고, 이를 통해 설계안을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제시한 도면은 단지 중심에 위치한 생태 계류 상세도로, 평지와 경사지에서 생태 계류와 산책로를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여러 디테일 전략을 담고 있다. 계류와 산책로의 결합, 녹지와의 경계 처리, 물의 흐름에 따른 세굴 방지, 계류 시작점 처리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작성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75호(2019년7월호)수록본 일부
김기천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룹한에 입사하여 현재 전략디자인본부를 이끌고 있다. 조경 이론과 담론이 왕성하던 2000년대 초부터 여러 설계 이슈에 그룹한의 고민들을 담아내며 다양한 유형의 공공 오픈스페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프로젝트의 스케일을 다양화하며 설계가의 고민을 공간에 구현하는 접근 방식에 관심이 많다. 주요 작업으로는 서울대공원 재조성 국제 설계공모, 시흥 배곧생명공원, 영천 렛츠런파크, 양평 현대 연수원 블룸비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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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손과 컴퓨터
아날로그의 손맛과 디지털의 마우스 터치 중 어느 것이 우월한가에 대한 질문은 컴퓨터 드로잉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조경가, 연구자, 교육자의 토론에 자주 등장했다. 이제 손과 컴퓨터가 다투면서 공존하던 시기를 훌쩍 넘겨 컴퓨터 드로잉의 시대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어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 VR가상 현실과 AR증강 현실을 이용해 새로운 형식의 경관을 디자인하는 지금, ‘손 vs 컴퓨터’ 구도는 ‘디지털 vs 또 다른 디지털’ 구도로 대체되었다. 근래에 초기 아이디어 구상 단계 이후에도 손으로 공들여 드로잉하는 디자이너를 본 적이 없다. 이제 손 드로잉 사례를 논문에 인용하려면 애써 찾아내야 한다. 게다가 아날로그의 손맛을 흉내 내는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 일명 디지로그(digilog)제품이 쏟아지는 현재의 디지털 생태계에서 손과 컴퓨터의 대결 구도는 해묵은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손과 컴퓨터를 드로잉 도구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조경가가 그간 손과 컴퓨터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생각했고, 이를 조경 설계에 어떻게 활용해왔는지 되짚어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손 vs 컴퓨터?
컴퓨터 드로잉은 20세기 중반 이후, 비교적 근래에 나타났기 때문에 조경 드로잉의 긴 역사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컴퓨터가 조경 드로잉 도구로 부상하자마자 조경가들은 전통적인 드로잉 도구였던 손과 새로운 기계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손과 컴퓨터를 대결 구도로 놓고 둘 중 어떤 것이 조경 설계에서 우월한지를 다퉜다. 손이 컴퓨터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은 사람의 뇌와 손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컴퓨터 마우스를 거치지 않고 바로 종이 위에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설계가의 머릿속에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손실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러한 점에서 손이 컴퓨터보다 경관의 형태, 재료, 구조에 대한 감수성을 시각화하는 데 뛰어나다고 주장한다(그림 1).1 손 드로잉을 경관에 대한 설계가의 감수성이 집적된 산물로 보는 견해는 컴퓨터가 조경 설계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에도 제기되었다.2 그 저변에는 손은 설계가의 창의성을 펼쳐내는 상상성의 도구이며 컴퓨터는 창의성을 저해하는 도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손 우월론에 맞서 컴퓨터 드로잉이 조경 설계에서 더 뛰어나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있어 왔다. 컴퓨터는 손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수정과 복제가 쉽기에, 이러한 기계적 효율성은 컴퓨터 우월론의 주요 논거로 활용됐다. 1980년대부터 컴퓨터 드로잉의 절차가 손 드로잉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조경가도 있었다. 연필과 마우스라는 다른 도구를 쓰지만, 식재를 반복해 그리거나 지우고 스케일을 조정하는 과정은 손과 컴퓨터 드로잉 모두에 해당한다.3 이러한 점에서 컴퓨터 드로잉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덕분에 오히려 창조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컴퓨터 드로잉이 손을 거의 대체하는 요즘, 컴퓨터가 창조적 도구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다양한 필터와 효과를 이용하면 경관의 분위기, 미묘함, 모호함, 역동적 프로세스 등을 자유롭게 시각화할 수 있다(그림 2).5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기능이 많아져 손 드로잉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현이 가능하고 연필에 필적하는 사용감을 주는 전자 기기가 출시되는 지금, 손이 컴퓨터보다 경관에 대한 설계가의 감수성을 시각화하는 데 우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75호(2019년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손을 옹호하는 대표적 조경 이론가인 마크 트라이브는 컴퓨터 드로잉에서는 “설계 아이디어, 특질, 예상되는 경험, 수용자의 능력이 손실”될 우려가 있고, “기계 매체(컴퓨터)가 인간을 장소와 거리 두게 하는 반면, (손) 드로잉은 특정 장소에 시간, 집중력, 이목을 집중하게” 돕는다고 주장했다. Marc Treib, “Introduction”, inDrawing/Thinking: Confronting an Electronic Age, Marc Treib, ed., London: Routledge, 2008, p.10; Marc Treib, “Introduction”, in Representing Landscape Architecture , Marc Treib, ed., London: Taylor & Francis, 2008, p.19. 뛰어난 손 드로잉을 남긴 조경가 로리 올린은 “뇌는 손에 곧바로 반응하여 (공간의) 구성, 균형감, 움직임, 예기치 않은 감정이 생성되므로 다음 선을 어디에 그려야 할지 떠오르지만, … 키보드나 마우스로는 공간의 감수성, 즉 공간의 형태, 재료, 구조, 중량감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Laurie Olin, “More than Wriggling Your
Wrist (or Your Mouse): Thinking, Seeing, and Drawing”, in Drawing/Thinking: Confronting an Electronic Age, pp.85, 97.
2. 조경가 워렌 버드와 수잔 넬슨은 “카메라나 컴퓨터는 우리의 인식과 이해를 무한하게 확장하지만 대상에 가까이 갈 필요가 없어져 감각을 통한 앎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손) 드로잉이 개인의 표현을 드러내고 지속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Warren T. Byrd, Jr. and Susan S. Nelson, “On Drawing”, Landscape Architecture 75(4), 1985,
p.54.
3. 아서 컬락은 “모든 캐드 드로잉은 근본적으로 손으로 그려지며, 복잡한 심벌을 그리고, 복사, 편집, 스케일, 비율을 변경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손 드로잉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Arthur J. Kulak, “Prospect: The Case for CADD”, Landscape Architecture 75(4), 1985, p.144.
4. Bruce G. Sarky, “Confessions of a Computer Convert”, Landscape Architecture 78(5), 1988, p.74.
5. Roberto Rovira, “The Site Plan is Dead: Long Live the Site Plan”, in Representing Landscape: Digital , Nadia Amoroso, ed., London: Routledge, 2015, p.99.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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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1980~1990년대 공간의 탄생, 근교의 도시화
주택난을 해소하라
지난 연재에서 한국 도시화 50년의 첫 번째 공간적 사례로 1970년대 농촌의 도시화에 대해 새마을운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두 번째 사례로 1980~1990년대 근교의 도시화에 대해 살펴본다. 이를 위해 근교와 근교의 도시화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근교(近郊, suburb)라는 말은 ‘도시의 가까운 변두리에 있는 마을이나 들’을 말한다.1 다시 말해, 근교는 아직 도시화가 일어나지 않은 도시 인근의 지역 또는 농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근교의 도시화는 기존 또는 인근 도시의 성장, 확장, 팽창 등에 따라 일어나는 근교 지역의 도시화 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근교의 도시화에는 중심 도시(기존 또는 인근 도시)와 주변 도시(근교 지역)의 관계가 이미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980~1990년대 근교의 도시화는 기존의 도시에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도시 문제, 특히 과도한 인구 집중으로 인한 주택 문제로부터 촉발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중앙 정부는 ‘1기 신도시’와 ‘200만 호 건설 계획’을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했으며, 이에 따라 서울 주변의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 국토에 대규모 주택 건설이 삽시간에 일어났다. 사실 주택 문제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 1960년대 이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주택 문제의 해결은 전 국민과 중앙 정부의 숙원이었다. 실제로 1972년 박정희 정부의 ‘250만 호 건설 계획’, 1980년 전두환 정부의 ‘500만 호 건설 계획’ 등 대규모 주택 건설 계획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지만,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다른 정책의 우선순위에 밀려 온전히 실천되지 못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에 따라 선출된 노태우 정부는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요구 등으로 인해 주택 문제를 더이상 도외시할 수 없었다. 마침내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되어가는 1989년 2월 24일, ‘보통사람들의 밤’에서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만 존재했던 200만 호 건설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본격적으로 천명했다.
“그동안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려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의식주 중 이제 먹고 입는 문제, 큰 걱정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내 집을 가지겠다는 모든 보통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이 사람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가려 합니다. … 중산층 이상의 주택 택지 공급을 원활히 하여 시장 기능에 의해 건설이 활성화되도록 할 것입니다. 특히 국민 주택 규모의 주택은 주택 은행 등을 통한 금융 지원을 늘려 건설을 촉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임기 중 200만 호의 주택을 짓겠다는 공약을 실천하여 약 1,000만 명의 우리 국민이 새집에 입주하게 할 것입니다.”2
1기 신도시와 200만 호 건설의 시작 및 경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시의 주택 문제는 비단 1980~1990년대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1980년대 말에 주택 문제가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에서까지 중요하게 다루어진 당시의 주거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7년 12월 말 주택 보급률은 전국적으로 69.2%인데 비해, 서울은 50.6%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높은 잠재적 주택 수요에 비해, 가용 택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주택 공급이 지지부진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이후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 투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1975년에서 1988년까지 국민 소득, 즉 실질 GNP의 증가는 세 배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택 가격은 무려열 배 이상 상승했다.3 이로 인해 1980년대 말 주택 문제는 정권 안정과 체제 유지를 위한 급선무의 과제로 부상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75호(2019년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근교”,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6월 10일 접속(https://ko.dict.naver.com/#/entry/koko/ec9e80ed1fd7488794a60bb7fa066a8c).
2. 노태우, “국민이 강해야”, ‘보통사람들의 밤’에서의 총재 연설, 1989년 2월 24일, 2019년 6월 10일 접속(http://pa.go.kr/research/contents/speech/index04_result.jsp).
3. 김관영, “주택200만호 건설계획의 평가”, 『국토정보』 1992년 5월호, 국토연구원, pp.14~22.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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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의 말입니다. 채플린이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삶은 클로즈업할 때는 비극이지만 멀리서 찍으면 희극이다”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하여간 보통은 가까운 비극과 먼 희극이라는 간단한 대비가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느끼는 내 인생은 항상 힘든 것 같고, 멀리 보이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 늘 부럽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경관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늘 이것 좀 어떻게 개선할 수 없냐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어지러운 간판, 정돈되지 않은 국도변 상가와 창고, 농촌 마을의 현란한 지붕 색. 그중 지붕 색 이야기는 아주 단골 메뉴입니다. 유럽에 가 보니까 주황색 지붕이 참 아름답던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냐는 거지요. 지붕 재료 만드는 회사에 몇 가지 색을 지정해 주면 되지 않느냐, 전체적으로 하기 어려우면 우선 고속 도로나 국도에서 보이는 곳만이라도 지붕을 개량하면 가능하지 않겠냐는 현실적인 처방까지 해 줍니다. 예전에 올림픽할 때 고속 도로 주변에 녹색 페인트를 칠했다는 얘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처방이야 어찌 되었건 진단은 정확한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알록달록한 우리나라 농촌 마을의 지붕은 참 요란스럽습니다. 채도를 조금만 더 낮추고 톤을 정돈하면 훨씬 좋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중략)...
*환경과조경375호(2019년7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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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크로노토프 라인
수인선 유휴부지 도시숲길 조성 설계공모 당선작
지난 5월 20일 인천시 미추홀구는 수인선 유휴부지를 1.5km에 달하는 도시숲길로 탈바꿈시킬 ‘수인선 유휴부지 도시숲길 조성 설계공모’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공모의 대상지는 수인선 숭의역과 인하대역 사이의 폐철도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도시 경관을 해치고 주민의 불편을 초래해왔다. 유휴 공간을 보다 의미 있게 활용하고자 미추홀구는 두 차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폐철도를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도시숲길로 만드는 공모를 개최했다.
공모는 1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되었으며, 5월 14일 김정식(미추홀구청장), 권전오(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김준석(청운대학교 교수), 임종엽(인하대학교 교수), 곽남현(인천광역시청 팀장)의 심사를 통해 다섯 개의 출품작 중 지오조경기술사사무소+정방종합엔지니어링 팀의 ‘수인 크로노토프 라인Chronotope Line’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수인 크로노토프 라인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며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선형의 대상지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충실한 분석을 기반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 점 역시 높게 평가되었다. 당선작을 토대로 기본 및 실시설계가 진행되어 2020년 12월까지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수인 크로노토프 라인
크로노토프는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을 뜻하는 말이다. 주변과 단절된 대상지를 유연한 구조로 확장시켜 시간과 공간을 연계하고, 미추홀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는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다. 전략은 네 가지다. 첫째, 선형 부지의 장점을 극대화다. 경계의 확장과 주변과의 연결을 통해 고립되어 있는 대상지의 약점을 극복한다. 또한 접근성을 향상하고 공공과 사적 영역의 결합을 통해 공원에 활기를 더한다. 둘째,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 문화 플랫폼을 구축한다. 미추홀 빈들, 철길 비스타, 버스킹 마당, 전망 카페, 도시정원숲 등을 조성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의 기반을 마련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5호(2019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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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납작하지 않으니까
데이비드 호크니 전, 서울시립미술관,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회화는 납작한 캔버스에 3차원의 공간을 재현한다. 어떤 예술가는 세밀한 묘사에 공을 들여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풍경을 담고, 또 누군가는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자유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구축하기도 한다.영국의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입체적 공간을 2차원의 화폭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석판, 아크릴, 폴라로이드 필름, 포토 카피, 팩스 등 60여 년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 그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인 이 시대의 예술가’라고 평가받는다.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해 영국문화원,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 영국 솔츠밀 등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서 대여한 호크니의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13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일곱 개의 소주제에 따라 구성된 전시를 따라 호크니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브래드퍼드 예술학교를 다니며 호크니는 추상과 재현적 이미지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당시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미술계에 호응하는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로 거처를 옮긴 호크니는 강렬한 태양과 그 아래 펼쳐지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그 풍경을 묘사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리쬐는 햇볕을 표현하기 위해 광택이 풍부하고 얇게 발리는 아크릴 물감을 선택한 그는 낮은 건물과 유리창, 수목 등의 배경을 단순하고 차분한 톤으로 그려냈다. 인스타그램을 연상시키는 정사각형 프레임과 널찍한 여백은 관람자가 작품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드는 동시에 화면을 평면적으로 느끼게 한다. 호크니는 그 정적인 풍경 가운데 물을 상세하고 집요하게 묘사함으로써 우연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더 큰 첨벙’과 ‘잔디밭의 스프링클러’ 등에서 선과 점으로 표현된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물방울들은 다이빙, 스프링클러 작동 직후의 찰나를 포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나른하고 고요한 풍경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는 관객들에게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순간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5호(2019년 7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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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질문] 좋은 설계사무소에 꼭 필요한 요소 세 가지는?
먼저 컴퓨터와 플로터. 설계 업무 대부분이 컴퓨터 작업과 출력이다 보니 업무 환경에서 이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바쁜 업무 중 혹은 창작의 고통 속에 도구가 말썽을 부리면 이만한 골칫거리도 없다. 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기계가 고장나는 순간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정도로 큰 스트레스다. 사람도 중요하다. 급여가 얼마이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업무도 즐겁고 회사에 가고 싶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박진우 디앤씨엔지니어링
양질의 일거리, 롤 모델로서의 선배 혹은 대표, 정확한 날짜에 입금되는 급여
박경복 가든프로젝트 대표
사람, 사람, 사람
이대영 스튜디오 엘
안정감이 있고 사람을 존중하는 설계사무소, 디자인 및 시공에 있어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는
설계사무소, 의식주 및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설계사무소
배준석 전라북도 전주시
첫째, 업무 분위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이므로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신뢰. 약속은 서로 지켜야 하는 의무다. 계약뿐만 아니라 업무 중 이루어지는 모든 약속을 구성원들이 잘 지켜야 한다. 셋째, 업무 공감대 형성.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공감해주지 않으면 그저 그런 일로 그칠 수 있다.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때 주체적으로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김현근 엠디엘
비전과 철학, 공감과 소통 능력, 그리고 좋은 커뮤니티. 또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역할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찰과 이해, 활발한 모니터링 연구도 필요하다.
이명정 한톨의씨앗공유비전연구소
인재, 경비, 소통
김영해서경대학교 교수
사람, 프로 의식, 사회적 책임감
김명수LH
첫째는 ‘주도적으로 설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설계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그린 도면이 실제 공간으로 만들어질 때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들어주되 상황에 맞지 않는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대상지의 특성과 회사가 가진 특색, 설계가의 아이디어를 담은 설계 내용이 실제로 잘 구현되게 하는, 그래서 직원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는 ‘적절한 업무량’이다. 설계라는 일은 수주가 일정치 않아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많은 일거리를 받아야 하고, 이로 인해 무리해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원들도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회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업무 분담을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곳이 좋은 설계사무소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얻을 수 있는 무언가’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휴가나 중요한 기회, 경험 등 다채로운 혜택을 회사 차원에서 제공하면 일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권순형 환경과조경
급여, 인맥, 나
박지원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구체적인 목표, 어떤 위기에도 대처할 수 있는 대응력,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전반적인 시스템
원종혁 경기도 평택시
일에 대한 욕심과 의지, 가끔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자연에서 진리를 찾을 줄 아는 용기,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존감. 이 세 가지는 철야도 불사하게 만든다.
윤영주 디자인필드 대표
가장 흥미로운 답을 올려주신 세 분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도서출판 조경과 도서출판 한숲에서 펴낸 단행본을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줄기』(김정민, 남수환, 노회은, 배준규, 신귀현, 정대한, 정우철 저, 도서출판 한숲)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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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기계비평들
기계+비평, 어려운 말과 어려운 말의 조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과 에세이에 집중된 독서 편력이 있고 기계를 다루는 데 유독 멍청하고 게을러지는 내겐 보기만 해도 몸이 굳는 것 같은 제목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기계비평들』은 기술적 내용보다 인간과 기계가 맺는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책이었다. 또 아래와 같은 몇몇 주제 덕분에 겁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온종일 스마트폰과 패드 앞에서 강의를 듣는 공시생들의 테크노스케이프, 통신사 약정 만료 기간이 다 되어 갈수록 잦아지는 핸드폰의 고장, 구의역 스크린도어와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기계비평들』은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기계비평』이 재출간되면서 함께 나온 책으로, 7인의 필자가 모여 2010년대 한국 기계의 현실을 진단한다. 그중 김성은의 ‘수리공은 왜 선로 안쪽에 들어가야만 했나?: 구의역 사고의 내러티브와 기계비평’은 당연하지만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질문에서 시작된다. 2016년 구의역 사고는 2인 1조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열악한 업무 환경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산 후 일단락됐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값싸고 부실한 기계를 설치한 후 고장난 상태로 계속 방치한 시스템에 있었다. 2016년 서울시 스크린도어 장애 건수에 따르면 1년에만 3,000회 이상의 장애 및 고장이 발생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여덟 번씩, 애당초 ‘항상 망가진 상태’였던 것이다. 이는 분할 발주로 스크린도어를 들여와 먼지에 취약한 저렴한 센서를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센서를 적외선 방식에서 레이저 방식으로 바꾸면 고장도 덜 나고 수리공이 선로 쪽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사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레이저 방식으로 교체될 예정이었지만 121개 역 중 16개의 역만 교체가 되었고, 결국 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여기에 스크린 도어에 부착된 광고판은 수리공들이 선로 안쪽에서 작업해야 했던 또 다른 이유이자 비상시 긴급 탈출을 어렵게 한 장애물이었다.
기계 바깥에서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돌아보면 기계에 힘을 빌려 생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사는 건 물론, 기계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출퇴근을 한다. 개인적으로 기계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고 여겼으나 오히려 너무 당연해서 무뎌진 것이었다. “기계 환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기계는 이미 공기와도 같은 존재여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 요소임에도 그것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작동시키기에는 불요불급한 대상들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 우리를 먹이고, 입히며, 살게 내버려 두고 때로는 죽게 만드는 이 기계들에 대한 해석은 늘 유보되거나 지연되어왔다.”2 일상부터 생사의 문제에 이르는 기계의 존재감을 체감하며 진부하게만 보였던 비평이라는 글의 쓸모에 눈이 갔다.
올해도 변함없이 본지는 ‘조경비평상’을 주최한다. 접수 마감은 10월 7일까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환경조경대전에 비하면 조경비평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고 아쉬운 정도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조경비평의 필요성에 대한 얕은 공감대와 그저 어려운 글쓰기라는 인식 때문일까. “비평은 아는 것을 자족하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일이다. 제때, 제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질문을 재촉하고, 질문 받았으나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를 누구보다 신실하게 고민하는 이의 자리는 다름 아닌 아마추어의 영토 안에 있다. 그렇기에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 기계비평은 학제적인 경계나 구획된 탐구 영역에 갇힌 글쓰기가 아니다. 우리 삶과 세계를 빼꼭히 채운 기계와 기계들의 질서를 궁구하여 더 나은 삶의 실천에 닿고자 하는 노력이다.”3 기계비평과 조경비평을 나란히 견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기계비평의 쓸모를 말하는 위 문장을 잠시 빌릴 수는 있겠다. 예술로서의 조경뿐만 아니라 삶과 밀접한 기술, 환경, 정치, 노동으로서의 조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소한 의문에서도 조경비평은 시작될 수 있다. 배움 혹은 실무의 자리에서 나름의 질문을 품고 있는 아마추어 비평가들의 글을 기다린다. 설계만으로는 말할 수 없던 넓은 조경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각주 정리
1. 전치형 외 6인, 『기계비평들』, 워크룸 프레스, 2019.
2. 같은 책, p.217.
3. 같은 책,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