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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의 서재]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종종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을 잘하게 되는 상상을 한다. 50m만 뛰어도 숨이 차는 내가 수십 킬로미터를 질주하며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경지에 이르는 상상, 중저음의 노래에서 벗어나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가슴이 뻥 뚫리는 삼단 고음을시원하게 내지르는 상상, 일찍이 수포자(수학포기자)이자 물포자(물리포기자)임을 깨달았지만 영화 속 천재처럼 넓은 칠판을 수식으로 빼곡하게 채우는 상상.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몇 초 만에 끝나버린다. 천재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겐 어렵기만 한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못해 하루만 뇌를 빌려보고 싶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보고 생각할 테니까. 『빌트(built),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이하『빌트』)을 읽고는 저자 로마 아그라왈(Roma Agrawal)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는 주목받는 여성 구조공학자다. 성 역할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에 굳이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게 촌스러워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전모와 형광 안전 재킷을 걸치고 거대한 교량 공사를 진두지휘하거나, 벌거벗은 여자 사진이 도배된 건설 현장 사무소에서 유한 요소 모델링과 토양 강도 프로파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아그라왈의 모습은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그라왈의 주 종목은 고층 빌딩 설계다. 현재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영국의 더 샤드(The Shard)를 포함해 세계 각지의 주요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건물 외에도 터널과 다리, 기차역 등 다양한 공간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아그라왈은 공학 설계뿐만 아니라 건축 속 숨겨진 과학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공학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던 내가 이 책을 완독했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다). 기둥이나 보 같은 기초적인 구조가 어떻게 중력을 분산하는지를 카드나 당근으로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 건물의 고유 진동수와 지진의 관계를 유리잔을 깨뜨리는 소프라노의 고음에 빗대고, 건물의 움직임이 만든 에너지를 흡수하는 장치(동조질량감쇠장치)의 원리를 진동하는 포크에 손을 대는 일로 쉽게 이해시킨다. 아그라왈의 이야기를 통해 구조공학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일종의 경외심까지 갖게 됐다. 건물을 세우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은 말만큼 단순치 않다. 수많은 변수를 예측하고 이에 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리를 예로 들면 전체적인 골격뿐만 아니라 구조를 이루는 재료에 열이 가해질 때 얼마나 팽창하고 수축하는지 계산해야 한다. 지역 축제 등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하중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고도로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은 그간 화려한 건물의 외형에 감춰져 왔다. 사람들은 공학 원리 같은 것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건축가만 주목받는 것이 서운하진 않을까. 그러나 아그라왈은 멕시코시티의 토레 마요르(Torre Mayor)가 공학적으로 잘 설계된 덕분에 건물 안 사람들이 지진이 일어나는 줄도 몰랐던 사례를 들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엔지니어의 꿈이다. 건물이 안전하게 설계되어 거주자들은 건물이 서 있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복잡한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자신의 일을 편안하게 계속하는 것 말이다.”2 이번 달 마감과 함께 『빌트』를 읽었다. 덕분에 잡지에 소개된 파빌리온과 다리가 어떻게 땅을 딛고 서 있는지, 어떤 식으로 결합됐는지 눈여겨봤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 하루도 안 돼 습득한 지식의 9.9할은 휘발되고 말았다. 얕게나마 접한 공학의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고, 멋지고, 다 알 수 없어 신비롭다. 아쉽지만 이번 생에 그 멋진 일을 하기에는 영 그른 것 같으니,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만족하기로 한다(다음 생을 기대해 본다). 대신 이렇게 숨은 자리에서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데 집중하기로.
  • [CODA] 길치의 변명
    난 길치의 자질을 타고났다. 방향 감각이 부족하고 길을 걸을 때 주변 지형지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길치다. 일찍이 그 소질을 깨달은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는 버릇을 들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얼마나 분주했는지 모른다. 현장 학습이라도 가게 되면 전날 밤 몇 번이고 가는 길을 예습하고 약도를 뽑아가는 공을 들였다. 예상 소요 시간에 넉넉히 30분을 더해 미리 출발하면 제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던데, 어미에 ‘치’가 붙는 사람들은 예외인 게 분명하다. 여전히 내게 길은 어렵고,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대상이다. 이런 길치가 웨이파인딩(wayfinding)프로젝트를 다루게 되다니. 인터뷰를 앞두고는 괜히 가슴이 뛰었다. 길 찾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니 길을 잘 찾는 비결도 알고 있지 않을까, 기대심이 들끓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와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내 위치를 알려주는 점에서부터 인터뷰 장소까지 연결된 선에 의지해 열심히 걸었다. 벌써 길 잘 찾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꾸만 걸음이 빨라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웬걸, 비결은커녕 내가 길치라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다. “사람들은 낯선 곳에 방문할 때 지도를 살피며 미리 길을 그려봅니다. 알아보기 쉬운 건물이나 랜드마크 등 거점을 몇 개 선정하고, 이 거점들을 이어 가상의 경로를 그려보는 거죠.” 보통 사람이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데, 그저 낯설기만 한 이야기다. 내게 목적지는 출발지에서 시작된 선이 마무리되는 끝 점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독립된 점일 뿐이다.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 속 지도를 확대해 건물 이름을 확인하는 일이 1년에 한두 번은 있을까. 나는 건물이나 길 이름 대신 화면 속 내 위치를 알려주는 점에 절절맨다. 오로지 이 점이 애플리케이션이 제시한 동선에서 벗어나는지, 벗어나지 않는지만 확인하는 것이다. 가끔 위치 인식이 잘못되어 동그란 점이 차도 한복판에 놓이면 그대로 굳어 거리 한가운데에 멈추어 선다. 휴대폰을 이리저리 흔들고, 앞뒤로 왔다 갔다 걸음을 옮겨 점의 위치를 제대로 된 곳으로 옮기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어떻게 길이 어디론가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보이는 걸까. 내게 길은 건물과 사람과 가로수와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풍경이다. 그늘이 많은 길, 사람이 많아 어깨를 다른 이들과 자주 부딪치게 되는 길, 가을이면 은행 냄새가 고약한 길. 머릿속에 떠오르는 길의 이미지를 나열하다보니 그제야 문제점이 보인다. 사실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게 길의 방향은 어렵고,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대상이다. 지하철이 멈춰 선 시각,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오를 때면 종종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질문이 던져진다. “어떻게 갈까요?” 한강의 다리 갯수도 잘 모르는 내가 어떤 다리를 건너, 어떤 도로를 타야 집으로 갈 수 있는지 알 리가 없다. “빠른 길로 가주세요.” 대충 얼버무리고 창밖을 보면 이내 한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모습이 펼쳐진다. 택시 기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으면서도, 다리의 이름들이 궁금하지 않다. 알고 싶은 건, 저 멀리 다리를 수놓은 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왜 지금 도로를 달리는지, 그들도 나와 같이 야근에 시달렸는지, 저편에서는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의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길치는 길의 방향보다 길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사연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치를 구박하거나 불쌍히 여겨서는 안 된다. 길치는 남들보다 조금 바쁘게 일어나 조금 여유롭게 걸으며 길에 펼쳐진 이야기들을 즐기는 사람이다. 방향은 몰라도, 걷기에 좋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길을 헤매는 게 일상이라 웬만큼 걸어서는 지치지도 않는다.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동행인으로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우리집에서 길을 제일 잘 찾는 사람이 나다.
  • [COMPANY] 뉴테크우드코리아 마음을 울리는 합성 목재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환경에 따라 많은 기업이 옷을 갈아입는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뉴테크우드코리아(이하 뉴테크우드)는 언제나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데 힘쓴다. 단순히 제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영배 대표는 우수한 품질의 합성 목재뿐만 아니라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 문화를 뉴테크우드의 성장 비결이라 설명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품질의 합성 목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뉴테크우드가 꾸준히 추구해 온 가치다. N서울타워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난 8월에는 방문자가 무려 160만 명에 달했는데 이곳 건물 복도와 테라스, 광장에 뉴테크우드의 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낡거나 부서진 곳이 없어 유지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목재의 따스한 색감이 서울의 경관과도 잘 어우러져 보기에도 편안하다. 한 대표는 “많은 관광객이 편안하게 걷고 쉬는 공간에 우리 제품이 설치되어 자부심을 느낀다. 설치부터 관리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덕분에 시공된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제품의 내구성, 디자인, 색상이 뒷받침되어 가능한 일”이라 설명했다. N서울타워는 한 대표가 합성 목재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한 프로젝트다. 당시 클라이언트는 제품의 안정성과 품질에 매력을 느껴 뉴테크우드를 선택했다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뉴테크우드의 제품은 시중의 합성 목재보다 가격대가 조금 높다. 하지만 변색이 적고, 특히 뉴테크우드의 ‘울트라쉴드’는 긁힘과 충격에도 강하다. 유지 관리에 소요되는 금액을 고려하면 뉴테크우드의 제품이 경쟁력이 높다. 황영미 이사는 “건물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외장재인만큼 완벽하게 시공되어야 한다. 유지 관리 비용이 크게 절감되므로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가치를 인정받은 건 아니다. 5년 전, 뉴테크우드의 제품을 한국지사로서 국내에 처음 선보일 때에는 아무리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품질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합성 목재에 대한 인식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 대표는 사업 관계자를 일일이 찾아가 합성 목재 피복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테스트를 통해 도출한 자료를 제시하며 뉴테크우드 합성 목재의 우수함을 알렸다. 그는 단단히 박힌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난관에 부딪쳤을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던 원동력은 제품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술회했다. 또한 황영미 이사는 “품질이 뛰어나도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안된다”며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제품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 철저한 사후 관리 역시 다른 기업과 차별되는 핵심 요소다. 직원 누구든 길을 가다가 잘못 시공된 현장이 보이면, 자재만 납품된 곳이라 하더라도 회사 자금을 들여서 수리해 줄 정도로 사후 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쏟고 있다. 작은 규모의 공간이라도 정성을 다해 시공하고, 직접 시공을 하지 않고 자재만 납품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달려나가 유지 관리를 했던 것이다. 고객의 불편함을 하루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휴일 출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윤도현 부장 역시 “뉴테크우드 제품이 설치된 장소 모두가 우리의 얼굴”이라며 제품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강조했다. 조직 문화 깊숙이 뿌리내린 주인 의식은 직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제품의 유지 관리에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한 대표는 고객의 만족도가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굳게 믿는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제품을 만들고,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으로 완성된 공간을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WEB. www.newtechwood.co.kr TEL. 02-2236-4516
  • [PRODUCT] 경관에 휴식과 감성을 더하는 ‘자르디노 코뮌’ 부드러운 곡선과 독특한 패턴이 돋보이는 퍼걸러
    시흥 배곧한울공원에 가면 독특한 형태의 휴게 시설을 만날 수 있다.길게 뻗은 직선형 몸체에 부드러운 곡선과 감각적 패턴이 가미된 예건의‘자르디노 코뮌Giardino Commune’퍼걸러다.퍼걸러는 드넓은 바다와 건너편 송도 신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놓여 공간에 모던한 느낌을 더한다.따뜻한 색감의 목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자연적 감성은 덤이다. ‘자르디노’와‘코뮌’은 각각 정원과 공동체를 의미하는데,꽃 피는 공원에 잘 어울리고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기 좋은 카페형 퍼걸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뒤로 개방된 구조라 시원시원한 경관을 연출하기 좋고, 벤치가 마련된 아늑한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잎맥 패턴을 본떠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목재 스탠드를 갖춘 원형 휴게 공간이 앞쪽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퍼걸러 내부에 테이블과 의자를 추가로 배치해 사용할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 / 예건
  • [에디토리얼] 옛 잡지를 다시 펼치며
    시험 전날 굳이 책상을 정리하고 소설책을 펼치던 버릇처럼, 마감 때만 되면 책장 한구석에서 과월호 몇 권을 무작정 꺼내 드는 습관이 생겼다. 명분은 마감 압박감 해소인데 자칫 대책 없는 추억팔이로 흐르곤 한다. 몇 시간 후면 최종 교정본을 인쇄소로 넘겨야 하지만 그만 과월호 보관용 서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오늘은 이번 호 기준 5년 간격으로 옛 잡지를 소환했다. 불과 일곱 권의『환경과조경』 과월호로 무려 35년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묵은 먼지와 책벌레가 선사하는 온몸 가려움증을 감수해야 한다. 딱 5년 전인 2014년 9월호(317호), 마치 석 달 전 잡지처럼 기획과 편집 과정이 또렷이 떠오른다. ‘거버너스 아일랜드’(West 8)를 필두로 여섯 개의 근작이 밀도 있게 배치돼 있다. 편집부 전원이 참여한 ‘활자산책’은 파주 시대의 마지막 여름을 뜨겁게 달군 기획 특집이었다. 당시 편집부의 막내 양다빈 기자는 설계사무소를 두 번째 직장으로 택했고, 조한결 기자는 대학원에 진학해 예술 이론과 테크놀로지를 공부하고 있다. 우성백 인턴기자는 공기업에 취업했고, 김정은 편집팀장은 2018년 늦은 봄, 건축 전문지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뉴얼 첫해의 열정과 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2014년 9월호를 한참 뒤적이다 최근의『환경과조경』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새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2009년 9월호(257호)의 대표작은 최근 재조성 논란으로 시끄러운 ‘광화문광장’이다. 그해 8월 1일 완공된 ‘오세훈 표’ 광화문광장을 다룬 지면과 비평 집담회가 실렸다. 그 밖의 근작 중에는 ‘송도 중앙공원’과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가 눈에 띈다. 당시의 인기 연재물 ‘스튜디오 101’(정욱주+김아연)을 10년 만에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기준 편집장이 야심 차게 이어가던 조경가 인터뷰 코너, 257호의 인터뷰이는 이수학 소장이다. 시인 허수경을 매개로 절절하게 이어지는 푸릇한 대화가 귓전을 때린다. 15년 전인 2004년 9월호(197호)를 펼치면 몇 가지 편집 실험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영문 병기가 가장 큰 특징이고, 잡지 앞쪽에 ‘피플’ 꼭지를 마련해 필자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시도가 이채롭다. 근작 지면을 넘기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시선이 꽂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의 비극적 현장에 무심하게 새로 솟은 최고급 주상 복합 단지다. 15년 전 잡지 책값은 12,000원. 1999년 9월호(137호)에서는 제도권 바깥 고급 조경설계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이교원(이원조경 대표)의 회고록 마지막 회를 볼 수 있다. “이제 조경이 무엇인지 그 맛을 느낄 듯 말 듯한데 … 벌써 인생의 노을은 저만치 다가섰구나”라는 회한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특집은 ‘조각공원의 새로운 가능성.’ 그때나 지금이나 새로운 가능성은 참 만만한 제목이다. 남기준 편집장의 이름 뒤에 ‘기자’가 붙어 있다. 그의 신입 시절, 벌써 20년 전이다. 1994년 9월호(77호)는 디자인과 콘텐츠 둘 다 지금과 매우 다르다. 1990년대까지 『환경과조경』은 작품과 설계 프로젝트 중심의 디자인 전문지라기보다는 뉴스, 기고, 이슈별 특집이 섞인 종합지 성격이 강했다. 그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77호에는 인도네시아, 사이판, 방글라데시 등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기획 기사가 배치돼 있다. 1989년은『환경과조경』이 아직 격월간으로 발간되던 때다. 이 해의 9-10월호(31호)는 ‘건설업법 어떻게 달라졌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싣고 있다. 당시 건설업법 개정에 반대해 학부 3학년이던 본지 박명권 발행인이 전조련(전국조경학과학생연합)을 창립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이끌던 장면이 떠오른다. 1984년 가을호는 제호부터 다르다. 1982년 7월 창간된 계간『 조경』의 통권 7호. 창간 주역들의 열정과 분투가 지면에서 그대로 읽힌다. 한국 조경 원로들의 35년 전 모습을 모처럼 다시 만날 수 있다. 표지에 적힌 책값은 3,500원이다. 35년이 흐른 2019년 9월호(377호), 이번 달에는 그룹한, 이수, 자연감각, CA, JWL, KnL 등 국내 조경설계사무소의 근작들로 프로젝트 지면을 구성했다. 대형 공원, 광장, 오피스 건물, 호텔 정원, 모델하우스 정원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에서 한국 조경의 현재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김기천 소장(그룹한)의 연재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는 이달로 막을 내린다. 세 달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배곧한울공원 Baegot Hanul Park
    배곧한울공원(이하 한울공원)은 도시의 외곽을 따라 바다와 접한 경계에 조성된 약 6km 길이의 수변 공원이다. 그룹한은 시흥군자배곧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배곧생명공원(『환경과조경』 2016년 10월호 참조)과 한울공원을 설계했는데, 2016년 배곧생명공원이 준공된 데 이어 작년에 한울공원이 완공됐다. 한울공원은 북측으로 월곶 포구, 남측으로 오이도, 서측으로 서해와 면하고, 인근 옥구공원과 시흥늠내길을 연결한다. ‘인간을 품은 도시’, ‘자연을 품은 도시’라는 배곧신도시의 개발 목표에 부합하는 친환경적 공원을 조성하고자 했다. 바다와 갯벌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조류 서식처를 조성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대상지가 도시와 갯벌이 공존하는 특별한 환경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갯벌의 경관적 아름다움과 체험 공간으로의 활용 가능성을 공원에 담아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해안선의 재조성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화약 성능을 시험하는 매립지였다. 매립지의 직선적 해안 경계는 경관을 단조롭게 만들고 바다를 다채롭게 경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울공원에는 갯골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구불구불한 동선을 계획했는데, 이를 통해 해안선의 단조로움을 완화하고 생태적 다양성을 높이고자 했다. 길은 크고 작게 너울대며 인간과 자연을 품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바람의 흐름과 파도의 울렁임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조경 시공(주)건림원, 신화건설(주) 발주 시흥시 위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1771-1번지 일원 면적1,249,871m2 설계 기간2012. 6. ~ 2016. 1. 완공2018. 7. 사진 유청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대표 박명권)는1994년 창립 이래,경제 발전의 피로에 찌든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그룹한의 디자인은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해 왔으며,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해 왔다.
  • 방학사계광장 Banghak Four Seasons Square
    대상지는 서울의 북쪽, 의정부로 이어지는 왕복 10차선 도로변의 교통 광장이다. 도봉로와 방학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는 네 개의 삼각형 교통섬이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이 중 북측의 봄마당과 여름마당을 재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교통 광장의 변신 대개의 교통 광장은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녹지와 보행로로만 이루어진다. 하지만 방학사계광장에는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 있었다. 산을 형상화한 기존의 환경 조형물이 광장의 관문처럼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는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자동차에 탄 사람의 눈에 띄기 좋은 크기였다. 도봉구는 봄마당과 여름마당이 시민을 위한 문화 활동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네지만 정작 가까이에는 휴식이나 이벤트를 위한 공간이 부족했다. 대상지와 주변 현황을 파악해보니 왜 대로변에서 쉬고 놀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자동차보다 사람을 위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했다....(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기술사사무소 이수(서영애,황혜성,정경화,이명금,남금비,이정현) 조경 시공 봄마당:홍용종합건설 여름마당:옥포건설 발주 도봉구청 위치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679일원 면적 봄마당: 3,633.77m2 여름마당: 4,330.81m2 완공2019. 5. 사진 유청오 기술사사무소 이수는2002년 설립되어2007년 기술사사무소로 전환했다. 7명의 직원 중4명이10년 이상의 경력자로 구성되어 있으며,공원,가로 경관,건축 외부 공간 설계 등의 업무를 주로 수행한다. 2015년에 서울특별시 환경상 조경생태분야 우수상을 수상했으며,평창 동계올림픽특구 도시경관 지원사업 기본계획공모에 당선된 바 있다. 2018년에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여 조경 아카이브와 공원 보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서영애
  • 윤동주 문학동산 Yoon Dong Ju Hill of Literature
    숲과 언덕에서 만나는 문학 연세대학교의 중심축인 백양로 끄트머리 좌측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졸업생 윤동주의 시비가 여기에 있다. 시비 주변 천여 평을 ‘윤동주 문학동산’으로 조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시비 주변 동산을 재정비하면서 시작됐다. 시비와 함께 연세대학교 동문의 시를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했다. 설계부터 감리까지 참여했고 연세대 염상훈 교수, 성주은 교수와 함께 진행했다. 오랜 고목들이 풍성한 녹음을 만들어내고 있어 디테일한 식재 계획보다는 문학적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공간 계획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주 동선인 계단은 핀슨관과 백양로를 연결하고 있다. 통로 역할을 하던 이 공간을 시비와 시의 담장으로 장식했다. 이를 통해 단순한 통행 공간이 시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길 바랐다. 입구는 다듬어 완만한 둔덕으로 만들었다. 외부에서 바라본 마운드는 시비를 부드럽게 감싸며 마운드 너머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존 지형을 보존하며 오래된 고목 사이에 공간을 재조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공 과정에서도 레벨과 지장물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잇따랐고, 현장에서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풍성한 녹음 덕에 터만 잘 마련하면 오래된 숲 속에서 시인의 유산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설계·감리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 시공 방림이엘씨 발주 연세대학교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내 윤동주 시비 주변 면적3,938.8m2 완공2018. 10.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는 2001년 설립된 이래 다양한 유형의 정원과 공원, 건축 옥외 공간 등을 조성해 왔다. 설계에 그치지 않고 공사와 감리까지, 설계한 모든 부지를 실제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양수리 주택을 시작으로 주택 정원과 한국 정원, 치료 정원 및 주제 정원을 조성했고, 공원 조성 및 마을만들기 등 공공 영역의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생태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풍경 만들기를 추구하고 있다.
    • 김용택, 강연경, 김상권
  • 더글라스 정원 Garden of Awakening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바꿀지 아는 통찰력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 조경가는 땅과 자연을 다루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주어진 대지에 창의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1960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더글라스 호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텔은 지형에 순응해 계곡을 가로지르며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길게 뻗은 형태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일부처럼 보인다. 흔적을 따라 더글라스 호텔은 2018년 4월 해안건축사사무소가 리모델링해 도심형 리조트인 워커힐 더글라스 하우스(이하 더글라스 하우스)로 재개장됐다. 기존 정원은 건물 서측 사면에 자리했다. 폭 1.5m의 데크 산책로가 있었고, 인공 장미, 하트 조형물, 데크를 따라 설치된 조명들이 조잡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상지의 아름다운 숲을 보존하고자 기존의 데크 길을 따라 정원을 조성했다. 어린 시절 눈 내린 운동장을 걸을 때 눈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누군가 만든 발자국을 따라 걷곤 했다. 마찬가지로 숲을 또 다른 발자국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숲의 빈터나 나무 사이에 뜰과 숲길 등 작은 공간을 더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진행했다....(중략)... *환경과조경377호(2019년9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CA조경기술사사무소 (진양교, 조용준, 김지현, 최은지, 유지영, 이재현, 김미경) 조경 시공 창우조경(이순오) 식재 컨설팅 최재혁 발주SK네트웍스 위치 서울시 광진구 워커힐로 177 면적 약 1,500m2 설계 기간2018. 2. ~ 2018. 3. 완공2018. 5. 사진CA조경기술사사무소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지난 15년간 작은 공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서울 청계천 MA, 한강르네상스 기본계획,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서울광장, 터키 이스탄불 젠데레 하천 복원 설계, 부산 에코델타시티 설계공모, 더글라스 정원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조용준
  • 우란문화재단 Wooran Foundation
    우란문화재단 우란문화재단은 2016년에 설계를 진행한 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018년 여름에 구현한 프로젝트다. 대상지는 택시 회사의 부지였다가 성수동 개발 붐에 힘입어 부티크 건축물이 들어선 곳이다. 초기 건축 용도는 문화 시설 및 호텔이었는데, 문화 시설 및 사무 공간과 F&B로 바뀌면서 용도 변경에 따른 조경 설계 변경이 진행되었다. 공개공지를 포함한 1층 외부 조경, 3층 실내 조경, 4층 실내 조경과 테라스 정원, 12층 옥상 정원의 설계와 시공이 프로젝트의 범위였다. 1층은 주 출입 공간과 공개공지 조성이 주된 과제였다. 성수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 출입구에 노각나무와 계수나무로 방문객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개공지는 시민에게 제공되는 오픈스페이스이자 1층 카페 전면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공간이다. 자작나무를 군식한 휴게 공간을 조성해 활용성을 높이는 동시에 이미지 향상을 꾀했다. 3, 4층의 실내 조경은 떠맡은 숙제였다.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 점수를 얻기 위해 식물이 생육하기 힘든 조경 공간을 강요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식물 공장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광원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생육에 필요한 환기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4층 테라스 정원은 전통적 양식을 추구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고장대석 등 오래된 재료를 사용하되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모던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12층에는 11층의 F&B와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넓은 데크와 화단을 조성했다. 조경 설계·시공JWL(정욱주, 원종호, 송윤정, 이상윤) 조경 설계 파트너 바인플랜(윤미방, 천현우) 조경 시공 파트너 서화, 쌔즈믄 건축 설계 더시스템랩(THE_SYSTEM LAB)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314-12 대지 면적1,782m2 완공2018 사진 유청오 JWL은 2014년에 설립되어 공원, 광장 등의 공공 공간, 주택, 오피스, 호텔, 연수원, 리조트의 오픈스페이스를 계획·설계하고, 정원을 직접 구현하고 있다. 간결하고 심미적인 설계 언어를 통해 단순한 대상지의 문제 해결을 넘어 동시대의 격조 있는 문화적 산물로 공간이 인식되도록 합리적 배치와 감각적 연출을 추구한다. 대표작으로 디에이치 아너힐즈 헤리티지가든(2019), 동원플라자 하늘정원(2017), 울릉도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2017) 등이 있다.
    • 정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