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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맘욜루 어반 데크 Hamamyolu Urban Deck
    하맘욜루 어반 데크(Hamamyolu Urban Deck)’는 약 2만 5천 제곱미터 규모의 도심 설계 프로젝트다. 터키 에스키셰히르(Eskisehir)주의 가장 큰 자치구인 오둔파자리(Odunpazari)는 지역 고유의 문화적, 역사적, 시각적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해 하맘욜루 거리(Hamamyolu Street)를 도시의 한 부분으로 다시 통합시키고자 했다. 20세기말까지 번화했던 이 거리는 도시의 발전에 따라 공공적 가치를 잃어 갔고, 이에 따라 도시 남북부의 연계도 약화됐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하맘욜루 거리의 입지적 장점을 살려 단절된 지역을 연결하고, 거리를 시민들과 관광객이 일상을 보내는 활기찬 도심지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독특한 방식으로 지역을 잇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첫 번째 연결고리는 거시적 연결이다. 끊김 없이 이어지는 보행로를 통해 도시의 남북 지역을 다시 연결했다. 두 번째 연결고리는 녹색 연결이다. 126그루에 달하는 기존의 가로수에 더해 50그루의 피나무, 262그루의 관목, 3,877주의 담쟁이, 3,066본의 지피 식물을 식재했다. 새롭게 조성된 585개의 녹지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그린 벨트를 형성한다. 차도가 지나 보도가 단절되는 곳에는 보행교를 설치해 보행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다리의 일부는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개방형 미술관으로 활용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Yazgan Design Architecture Architect Yazgan Design Architecture Structural Erduman Engineering Mechanical STM Engineering Electrical RAM Engineering Infrastructure MPK Engineering Irrigation Pegasu Engineering Client Odunpazari Municipality Location Odunpazari, Eskisehir, Turkey Area 25,000m2 Installation 2016~2018 Completion2018 Photographs Yunus Ozkazanc, Soner Simsek 야즈간 디자인 건축사무소(Yazgan Design Architecture)는 2003년 케렘 야즈간(Kerem Yazgan)과 베굼 야즈간(Begum Yazgan)이 설립한 건축, 인테리어, 조경, 그래픽 디자인 회사다. 터키 앙카라(Ankara)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건축가, 조경가, 기술 설계가, 그래픽 디자이너, IT 전문가 등 37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지난 16년 동안 19개 국가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다양한 건축, 인테리어 및 조경 프로젝트에 참여해 97개의 국내 및 국제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 Yazgan Design Architecture
  • 앨드게이트 광장 Aldgate Square
    ‘앨드게이트 광장(Aldgate Square)’은 런던 앨드게이트 구의 고속도로와 공공 영역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런던 시내의 낙후된 공간을 재생하고 인근 다문화 거주자들을 수용하며 지역 간 장벽을 낮추는 오픈스페이스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상습적 교통 체증이 일어나고 주변 미관을 해쳐온 차로를 없애고 오픈스페이스와 보행로 및 자전거 도로를확충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Gillespies Client City of London Corporation Location Aldgate, London Cost £23,000,000 Completion 2018 Photographs John Sturrock 길레스피에스(Gillespies)는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경 및 도시설계사무소다. 영국 내 여러 주요 공공 공간 설계를 진행했고,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호주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마스터플랜부터 조경 및 도시계획, 교육 시설, 의료 시설 등 다양한 스케일과 유형의 설계를 한다. 모든 디자인은 미래의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지역 사회의 경제 및 문화적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 Gillespies
  • 장크트 갈렌 자연사박물관 공원 Natural History Museum Park St. Gallen
    장크트 갈렌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St. Gallen)과 장크트 마리아 노이도르프(St. Maria Neudorf)교구 교회 사이, 종교와 과학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어우러진 공원이 조성됐다. 대상지는 여러 도시 기반 시설과 목가적인 교외 풍경이 촘촘히 어우러진 스위스 경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바로 아래로는 차량용 터널이 지나고 운동장, 다세대 주택, 간선 도로가 주변을 두르고 있다. 이 역설적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역사, 종교를 사유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야 했다. 자연이나 풍경 같은 콘셉트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인공적 자연스러움, 자연스러운 인공을 주제로 설계를 진행했다. 서어나무와 빽빽한 지피 식물로 일종의 틀을 만들었다. 이 틀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복잡한 환경을 적절히 가려 방문객들이 공원 그 자체와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자연에 오롯이 빠져들게 한다. 공원 중앙에 자리잡은 거대한 콘크리트 징검다리는 보행로인 동시에 전시물로 기능하며 시적, 과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원 곳곳에 파편처럼 흩어져 배치된 요소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특정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관련된 인용구, 지질학 용어 등을 콘크리트 슬래브에 30mm 높이의 양각으로 새기고, 빙하에 의해 만들어진 화석, 빙하에 의해 퇴적된 바위 옆에 설치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Studio Vulkan Architecture Armon Semadeni Architekten in cooperationwith Meier Hug Architekten Client Hochbauamt St. Gallen Location Rorschacherstrasse 253, 9016 St. Gallen, Switzerland Area 5,000㎡ Competition 2009 Completion 2018 Photographs Jean-Claude Jossen, Das Bild, Studio Vulkan 슈투디오 풀칸(Studio Vulkan)은 2014년 조경설계사무소 슈바잉루버 출라우프(Schweingruber Zulauf)와 로빈 비노그론트(Robin Winogrond)를 합병해 만든 회사다. 취리히와 뮌헨에 본사를 두고 45명의 전문가가 조경 팀을 이끌고 있다. 조경, 도시설계, 도시계획, 예술, 전통에 대한 전문 지식과 스위스,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 Studio Vulkan
  • [비트로 상상하기, 픽셀로 그리기] 루미온과 어른의 사정
    루미온(Lumion)은 정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로그램이다. 1998년의 레이던(Leiden)이었던가. 네덜란드의 두 청년이 새로운 3D 그래픽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회사를 창업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들이 헤비메탈과 스타크래프트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고등학생의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지, 후에 설계에 몸담게 된 나의 이중 자아가 만들어낸 과대망상의 편린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루미온은 내게 마치 호머 심슨의 도넛처럼 도파민 가득한 그런 존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브이레이(V-ray)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프로그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어른의 사정을 투영하는 정말이지 대단한 골칫덩어리다. 어른의 사정이란 이런 일들이다. 공허의 심연에서 뭐라도 꺼내 15주의 커리큘럼을 채워야 하는데, 루미온을 설명하고 나면 불과 30분밖에 지나지 않는다.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루미온을 설명하며 한 시간을 넘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고나면 왠지 민망해져 낯을 좀 가리다 수업을 일찍 마치게 된다. 아마도 학생들은 일찍 마친 수업을 반기다가도 이내 캠퍼스를 방황하며 내 전문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다시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브이레이를 또 장황하게 설명하게 된다. 복잡한 용어를 잔뜩 사용하며 코 묻은 애들 사탕 뺏는 격이다. 별 볼 일 없는 내 자아를 감추며 시간을 때우기에도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하지만 예민한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쌓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저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지. 로컬 일루미네이션과 글로벌 일루미네이션 자, 렌더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실시간 렌더링과 오프라인 렌더링. 실시간 렌더링은 말 그대로 루미온이나 트윈모션(Twinmotion)처럼 리얼타임(real-time)(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독립 프로그램이다. 오프라인 렌더링은 스틸 컷(still cu)t, 즉 정지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렌더링 버튼을 누르고 점심을 먹고 오면 되는 브이레이 같은 것들 말이다. 당연히 실시간 렌더링은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퀄리티가 좀 애매하고, 오프라인 렌더링은 퀄리티는 좋지만 시스템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따라서 루미온과 브이레이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에 대한 논의는 정말 최고로 신나는 화젯거리다.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며 밤새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술집에 가면 갑자기 화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린다. 진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다. 그림 1은 로컬 일루미네이션(local illumination)(LI)의 예시다. 그림 2는 브이레이를 사용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global illumination)(GI)의 예다. 렌더링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요소는 크게 조도 시스템, 재질, 소스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조도 시스템’이다. 루미온은 실시간 작업 시 주 조도 시스템으로 로컬 일루미네이션을 사용하며, 렌더링 단계에서 여러 필터를 활용해 그 단조로움을 보완한다(그림 3). 그래서 대체 로컬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게 뭐냐고? 이제 어른의 사정이 이어진다. 아주 장황하게.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한국의 디자인 엘,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West 8의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한국,미국,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열었다.
  • [공간잇기] 숨겨진 시간의 이야기
    무심히 변해가는 도시 우리는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면 부러워하곤 한다. 유럽의 도시는 옛 멋을 간직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덧입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마치 여러 장의 트레이싱지 그림이 쌓여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1역사가 깊은 도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호 관계를 조절하며 누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 깊은 멋을 더한다. 삶의 흔적을 시대에 맞게 쌓아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우리 도시는 어떨까. 대한민국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도시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일상이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고 그 이야기가 쌓여 특별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며 사는 듯하다. 흔히 한국의 도시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비해 건축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이유를 오래된 건축물이 없어서라고 설명한다. 서울은 5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수많은 트레이싱지에 시대의 켜를 남기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 숨 쉬던 역사 도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듯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고즈넉한 골목길을 송두리째 없애며 개발하고 있다. 골목은 ‘땅에 새겨진 문양’이라는 의미의 지문(地紋)혹은 ‘땅의 이야기’라는 뜻의 지문(地文)이라고 했다.2건축가 승효상의 이 말처럼, 골목은 우리 윗세대가 긴 세월 삶을 가꿔온 터전이 있는 곳을 의미하지, 그 땅을 갈아엎은 뒤 새로 지어 올려 장소성이 해체된 아파트 단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계획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오래된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며, “활기 있는 도시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유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3오래된 공간의 잠재력은 사회·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소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공간 속에 새겨진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들이 모여 도시의 다양한 지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거창한 물음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네, 부모 혹은 조부모가 살았던 동네, 아니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도시 공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켜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또 새로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삶의 흔적 몇 년 전 동네 연구를 하던 중 만난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재개발이 추진되던 그 동네는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었다. 주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할머니의 일상을 몇 주간 함께하며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다세대 빌라에 살고 있었고, 그 빌라가 작은 마당 딸린 주택일 때부터 40년 넘게 같은 터에 거주해온 지역 원주민이었다. 시골에서 시집와 처음 살게 된 서울 집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식 셋을 모두 공부시켜 출가시켰다는 자부심이 컸다. 집 앞 골목 한 귀퉁이의 한 평 남짓한 땅에 상추와 깻잎 농사를 지어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살아온 집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과 달리 할머니는 재개발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의문이 든 나는 며칠간 할머니의 일상을 관찰하며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을유문화사, 2015, p.146. 2. 승효상, 『지문: 땅 위에 새겨진 자연과 삶의 기록들』, 열화당, 2009, p.79. 3. 제인 제이콥스,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p.272. 서준원은 열다섯 살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뉴욕에서 약 10년간 생활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인테리어디자인학과에서 다양한 생활 공간에 대해 공부했고, 한국인의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SOM 뉴욕 지사, HLW 한국 지사, GS건설, 한옥문화원,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등에서 실내외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이너이자 공간 연구자로 활동했다. 한국인의 참다운 주거 환경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공간 연구를 위해 곳곳을 누비며 ‘공간 속 시간의 켜’를 발굴하는 작업을 긴 호흡으로 해오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이타심의 정원, 데카메론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1재앙이 닥친 듯한 2020년 초, 일상이 멈췄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를뿐더러 언제 어떻게 옮을까 무섭고, 나도 모르게 전파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감염의 공포는 모두를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과학이든 종교든 믿고 의지할 곳을 찾거나 비방을 일삼고 괴담에 휩쓸려 어리석은 짓을 한다. 한편에서는 전염병을 다룬 문학 작품에서 위로를 찾는다.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든, 허구의 사건이든 작가들은 참담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흑사병이 창궐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La Peste)』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책 속 194X년 알제리의 오랑에 앞서 이를 겪은 134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보자. 『데카메론(Decameron)』2은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1450년부터 1453년 사이에 집필한 책으로, 몇 년 전의 재난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우선 피렌체에서 페스트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곱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도시를 잠시 벗어나 인근 빌라에 가게 된 연유가 소개되고, 이어 이들이 열흘 동안 지내며 돌아가면서 나누는 백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10일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은 제목이 유래했다.3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을 담은 백 개의 이야기도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인 정원을 눈여겨보자. ...(중략)... *환경과조경384호(2020년4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번역을 한다.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2020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 정원 공모 5개 작품 선정, 캐나다 퀘백 그랜드 메티스에 6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시
    ‘2020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The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가 6월 19일 퀘백 주의 그랜드 메티스(Grand-Metis)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캐나다 국제정원박람회는 매년 전 세계의 건축가, 조경가, 디자이너, 예술가를 대상으로 공모를 열어 새롭고 혁신적인 정원을 선보여왔다. 올해의 주제는 메티사주(metissages)다. 캐나다 원주민과 유럽 이주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의미하는 메티스(metis)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주로 인종차별적 용어로 쓰여 왔다. 이 단어를 정원의 형태로 재해석함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메티사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경가, 정원 디자이너,건축가, 시각 예술가, 산업 디자이너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의 협업, 토착 식물과 외래종의 조합, 자연 재료와 인공 재료의 결합 등은 새로운 것의 출현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1일부터 11월 25일까지 진행된 공모에 38개국 200개 팀이 작품을 제출했고, 이 중 5개 팀이 정원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오는 6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그랜드 메티스의 레포드 가든(Reford Garden)에 전시될 다섯 개 정원을 소개한다. ...(중략)...
  • 광화문광장 재조성 추진 방향 전면 광장화, 사직로 유지, 광화문일대 종합발전계획 수립
    지난 3월 13일 새롭게 수정된 광화문광장 재조성 추진 방향이 공개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되찾고자 서울 시민과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광화문포럼(2016. 9)을 조직하고, 포럼에서 도출된 개선 방향과 원칙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초안(2017. 8)을 마련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2018. 10)를 개최해 CA조경+유신+김영민+선인터라인건축 팀의 ‘깊은 표면Deep Surface’을 당선작으로 선정(2019. 1)했지만,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의 강한 반발로 사업이 보류(2019. 9)됐다. 이후 많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공개 토론, 시민대토론회, 현장 소통, 설문조사 등을 여러 차례 실행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조성 방향을 설정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4호(2020년 4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멜론 스트리밍에서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갈아탄 친구가 한 음악 채널의 선곡 목록을 추천해줬다. 타이틀은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실린 노래도 좋았지만 남 얘기 같지 않은 제목에 더 마음이 갔다. 저 정도 워딩 실력이면 카피라이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 유튜버들은 못 하는 게 없네. 그로부터 몇 주 후, 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그 영상은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었다. 유튜버와 출판사가 제휴해 책 제목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영상의 조회수는 (2020년 3월 27일 기준) 75만. 중복 스트리밍을 감안하더라도 7천도 7만도 아닌 75만이라니. 이젠 북토크 같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스마트폰이 막 나왔을 때만 해도 페이스북이 세상을 제패할 줄 알았다. 근데 웬걸? 몇 년 사이에 메인 플랫폼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바뀌었다(페이스북이 발 빠르게 인스타그램을 인수했기 때문에 여전히 대세인 건 맞다). 블로거들이 아무리 성심성의껏 포스팅을 해도, 맛집 검색은 이제 초록 창보다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다.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가 됐지만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건 만족스럽다. 유튜브 덕분에 한 시간이나 되는 출근길이 지루할 틈이 없고, 카카오톡으로 송금이 되니 보안 카드를 주섬주섬 찾을 일도 없다. 하지만 기술이 훨씬 더 발전하면? 지금이야 엄마한테 유튜브 구독하는 법을 알려주지만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언젠가는 새로운 플랫폼에 접근도 못하는 날이 오겠지. “세상은 수시로 가득한 대입 전형 같은 게 되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서 보통 이상의 정보력이 없으면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다. 흐름을 못 따라잡으면 놀랄 만큼 뒤처진다. … 끊임없이 새로고침되는 SNS 피드 어디에도 남보다 앞서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나의 도태와 패배를 암시하며 광고를 해보라고 부추길 뿐이다.”2 LTE 통신망으로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는 편리하고 누릴 것투성이지만 적지 않은 피로감이 뒤따른다.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프리랜서나, 눈팅만 하던 전자 기기를 협찬받아 언박싱하는 유튜버를 볼 때 드는 은근한 패배감에 잘 대처해야 한다. 디지털 세계뿐인가. 한강의 야경은 낭만적이기 그지없지만 불빛이 나오는 건물 중 어느 하나도 내 것이 아니다. 강의 남쪽에도, 북쪽에도. 수학 시간에 배운 정규분포 그래프를 기억하는지? 평균값을 중심으로 몰려 있는 그 무수한 점들에 자꾸 눈이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기왕이면 멋있게 살고 싶은데 열정도, 재능도, 의지도, 배짱도 평균 언저리를 웃돌 뿐인 상태. 저 제목처럼 주인공도 뭣도 아니라면? 박찬용의 답은 “별수 있나”. 그는 주인공 되기를 부추기는 대도시 게임에서 열정 아닌 적당한 열심으로 자기 삶을 영위한다. 자신이 “뭘 하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포르쉐의 신형 911 발표회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도, “긍정적인 기운으로 인생이라는 코트에 파워 서브를 넣기는”커녕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날아오는 공포의 서브를 계속 리시브로 받아치는 삶”이어도, 일이 궤도에 오르고 해야 할 일을 어떻게든 해냈을 때 찾아오는 작은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SNS보다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는 도시 구석구석을 관망하며 나름의 의미를 찾고 애착이 가는 소박한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동묘의 ‘개쩌는 빈티지 숍’에서 힙스터들을 구경하고, 오래된 중국집에서 ‘그냥 낡은 맛’일 뿐인 볶음밥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책의 표제와 소제목을 연결하면 그럴듯한 처방이 된다.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1부)해야 할 일을 합니다’-‘(2부)산란한 마음이 유행병처럼 들어도’-‘(3부)도시 생활은 점입가경이지만’-‘(4부)어쩔 수 없이 여기 사람이니까’. 어렸을 때 상상하던 어른 된 내 모습과 지금이 너무 달라서 약간 소름 돋을 때가 있다. 기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만 뭐랄까, 어떤 직업이든 멋있는 어른일 줄 알았지. 사명감은 무슨, 커리어는 무슨. 적당한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의 품위는 누리며 살자는 마음이다.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다이소에서의 탕진잼이고, A4 한 장 분량의 원고를 못 써서 젤리를 폭식하는 어른이 될 줄이야. 이번 마감 때 먹은 젤리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불어난 몸무게가 알려줄 테니 그런건 나만 알기로 하고, 이번 달도 해야 할 일을 해냈음에 안도한다. 마감이 끝난 주말에는 을지로 만선호프에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무기한 연기됐다. 아껴뒀던 ‘킹덤2’나 봐야지. 1. 박찬용,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웅진지식하우스, 2020. 2. 같은 책, p.109.
  • [CODA] 시니어가 소비하는 도시
    “평생 편히 돈 버는 일은 못해 볼 사람들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을 덕담처럼 주고받는 요즘에는 저만한 악담이 없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TV에서 부동산 중개 예능(‘구해줘! 홈즈’, MBC)을 보다 돌연 화가 치민 우리 엄마, 수신인은 위층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우리 집이 선 땅은 내가 걸음마를 떼던 시절만 해도 어마어마한 경사의 오르막이 있던 곳이다. 그 중턱에 페인트가 죄 벗겨진 대문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다. 철문에는 한국전쟁 때 군인들이 개머리판으로 찍어 남긴 섬뜩한 흔적이 있었고, 마당 한가운데 콘크리트를 발라 만든 수도는 방공호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목조 건물답게 겨울이면 온몸을 얼게 했던 그 집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며 허물어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보상을 기다리며 근방을 5년 정도 떠돌고는 마침내 입주한 아파트에서 채 2년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딸에게 일언반구 없이 헐값에 집을 팔았다. 대신 집장사가 마구 지어 천장 수평도 맞지 않고, 겨울이면 곰팡이가 피는 다세대 주택 하나를 얻었다. 1년만 참았으면 더 좋은 값을 받고 집을 팔았을 거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엄마도 부모님이 아파트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안다. 도통 엘리베이터 조작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며, 재래시장을 좋아하고, 소일거리인 고물 해체 작업을 할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한 두 분에게 아파트는 보기 좋은 감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적당히 낡고 한적한 이곳의 풍경에 훨씬 편안하게 녹아든다. 얼마 전 이 조용한 동네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한 블록 건너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외곽에서부터 골목을 타고 개인 베이커리, 카페, 향초 공방 등 이곳과 통 인연이 없어 보였던 가게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심 반가웠지만 아쉽게도 힙함과 인스타그래머블을 내세웠던 상점들은 오래가지 못해 문을 닫았다.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낮았던 것도 아니고, 성수동 같은 뜨는 동네보다 인테리어가 뒤처지지도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힙과 인스타그램이 통하는 곳이 아니니까. 사람들을 유혹할 독특한 산업 생태계나 볼만한 문화 자원도 없고,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선 주택과 빌라에서는 어떤 특색을 느낄 수 없다. 아침이면 젊은이들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학교, 직장으로 떠나버린다. 월세야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지만 주말 장사만으로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상품을 소비해줄 사람은 은퇴 후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며 동네를 산책하는 50~60대 정도다. 그들이 어떤 설명도 없이 아인슈페너, 생크림 산도, 뚱카롱 등 생소한 메뉴를 무심하게 적어 놓은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달의 특집 ‘밀레니얼이 만드는 도시’가 진단하듯, 밀레니얼은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며 도시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는 세대가 있다.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0~60대가 그 주인공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0』(미래의창, 2019)는 이들을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라 명명했다. 이 세대는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탈피해 자아 찾기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사용해 능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한다. 규모 또한 전 인구의 28%를 차지해 상당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구매력도 크다. 이들은 머지않아 밀레니얼이 만든 도시를 소비하는 주축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도 세대를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세대를 잇고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만드는 일”에서 찾는 ‘공유를위한창조’, “청년은 일종의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는 세대”이며 “50대 이상에게도 어반플레이의 프로젝트와 공간을 알리는 게 목표”라는 홍주석 대표(어반플레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이 그리는, 모든 세대가 소비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단언할 순 없지만 왠지 이들이 내놓은 답이 골목을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채운 뉴트로 콘셉트의 공간은 아닐 것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야기했듯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경향에는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에 내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1이 묻어 있으니까. 필름 카메라, 카세트테이프 등 디지털 네이티브가 맛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 역시 언젠가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 오래된 것을 무조건 쓴다고 뉴트로가 되는 건 아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다리 역할을 하기에 지금 유행처럼 번져 있는 뉴트로는 조금 가벼워 보인다. 각주 1. 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역, 『레트로토피아: 실패한 낙원의 귀환』, 아르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