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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의 서재] 한숨의 기술
    내가 아는 한숨의 기술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전 직장에서 선배 옆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뭔가를 배우고 있는데 순간 콧구멍으로 큰 숨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숨을 코로 쉬는지 입으로 쉬는지 의식도 못했는데, 별안간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한숨을 쉬어? 내가 답답해?” 당혹스러움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로 시작하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다 상황은 대충 정리됐다. 이야기가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진짜 한숨을 쉬었다. 누구에게 들릴까 입이 아닌 코로, 들이마신 숨을 옅게 내보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숨을 크게 쉰 이유는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성 비염이라 코가 근질거렸던 걸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한 가지 배운 건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때론 호흡도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많은 숨을 한꺼번에 확 뱉지 말고 살살, 느리게. 자주 가는 동네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구석에 놓인 『한숨의 기술』을 발견했다. 책을 두른 띠지에는 ‘임소라의 독립책방 폐업기’라고 쓰여 있었다. 임소라 작가에 대해서는 그가 낸 다른 책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서점을 열었다 망했다는 것과 망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는 건 몰랐다. 내가 가진 그의 책은 한 도시의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기록한 것인데,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 적절한 때에 이 지면에 소개해볼까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숨의 기술』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제목을 보자마자 한숨에 관한 웃지 못 할 사연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영업 붐 시대에 무슨 배짱으로 폐업기를 책으로 펴냈는지도 궁금해졌다. 일단 제목의 의미는 한숨을 쉬는 법(technique)이 아닌 한숨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었다. “책이 안 팔려서, 책을 들여올 돈이 없어서, 책방에 아무도 안 와서, 그냥 막막해서 때마다 코로 마시고 코로 뱉던 한숨을 담배 연기 대신 활자로 담은 글”이라니. 담배 연기는 싫지만 담배 연기 같은 활자라는 표현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편집자였던 임소라는 직장을 다니던 중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을 오픈했다. 개업과 동시에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우려 섞인 권고를 들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겸업을 금지한다는 점, 업무 효율에 미칠 영향, 판매 사이트 운영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국 등 떠밀리듯 퇴사하게 되지만 모든 시작이 그렇듯 머릿속에는 잘 될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수입은 전무하고 모아둔 돈은 금세 동났다. 뒤늦게 연 오프라인 서점도 지속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그는 책방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둔다. “내가 겪은 책방의 시계는 분침과 시침이 없다. 초침만 있는데 그 초침의 이름이 기다림인 거다. 난 초침 이름이 기다림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말이지 그럴 줄은 몰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을 궤도에 올리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험은 여러모로 쓰라리다.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결정에서 도망쳤기에 실패는 오롯한 내 몫이 된다. 자랑은 아닌데, 망하고 튄 이력이라면 나도 어디서 뒤지지 않을 것이다. 입시, 취업, 인간관계까지 다양하다. 사실 한숨 사건이 일어났던 전 직장은, 졸업 후 탈조경의 모범이 되겠다며 호기롭게 (부모님의 손을 빌려 마련한 보증금으로)독립까지 하면서 다녔던 곳이다. 과한 열정에 비해 능력도 사회 경험도 인내심도 한참 모자랐던 나는 수습 기간 3개월을 겨우 마치고 달아났다. 안 친한 사람들이 물으면 인턴 같은 거였다고 얼버무리기 바빴다. 『한숨의 기술』은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싶은 시간을, 일이 안 된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사람들이 구경하도록 내놓는다. 책방을 운영할 때의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지, 콘셉트나 운영 방식은 얼마나 모호했는지, 손님을 대할 땐 얼마나 미숙했는지 등을 죽 정리한다. 책방은 망한 채로 남았지만 폐업 후 그가 만든 책들을 보면 이 멋도 없는 무용한 기록이 결국 그 다음으로 나가게 해주는 숨 고르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에게는 더 좋은 책을 만들게 하는 압력이 됐을 테고, 로망을 걷어낸 핍진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현실적 조언으로, 나 같은 프로 탈주자에게는 소소한 위로의 맛으로 다가왔다. 문득 지난달 진행한 조경협회 40주년 좌담이 떠올랐다. 패널들 사이에 오갔던 회한의 말들, 예전에 부딪혔거나 지금 직면하고 있는 한계를 누군가 슬쩍슬쩍 언급하곤 했다. 언젠가 그런 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캐물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각주 1. 임소라, 『한숨의 기술』, 디자인이음, 2018.
  • [CODA] 디지털 공원
    누구나 한 번쯤 아날로그 붐에 휩쓸리고 싶어지지 않나. 레트로 열풍에 알맹이가 없다는 진단도 있지만,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 종이책, 만년필과 같은 것에서 낭만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시류에 탑승해 지난해 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손바닥만 한 필름 카메라를 샀다. 변덕스러운 성정을 고려해 중고로 저렴하게, 작동법이 어려우면 구석에 처박아 놓을 게 빤하니까 반자동 모델로. 피사체야 다양했지만 가장 찍고 싶던 건 나라 사슴공원의 사슴들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블로그로 탐방한 사슴공원은 디즈니가 그린 세계 같았다. 사슴과 노래하고 춤추는 건 무리지만, 그럭저럭 어울려 함께 걸을 수 있다. 사슴이 허락만 한다면 (센베이 모양의 먹이를 대가로) 등허리를 쓰다듬고 사이좋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배경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이라는 점이 멋졌다. 우거진 나무와 너른 잔디밭도 있지만, 사슴의 발길은 아스팔트 도로나 자판기와 오토바이가 서 있는 상점 앞에도 서슴없이 닿는다. 그 풍경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그럴듯한 예처럼 보였다. 차곡차곡 쌓은 환상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부서졌다. 도시와 자연이 뒤섞인 유토피아 같은 모습은 상상 그대로였는데 사슴이 달랐다. 그들은 커다란 눈을 착하게 뜨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먹이를 갈취했다. 150엔을 주고 산 먹이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이번에는 좀 더 잘해봐야지, 다시 산 먹이를 가방에 숨기고 태연한 척 걷는데 사슴무리의 시선이 나와 일행을 계속 쫒아왔다. 순간 그 크고 예쁜 눈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100미터쯤 걸었을까 또다시 사슴 패거리에게 붙잡혀 주머니와 가방을 수색 당하고(옷 주머니와 가방에 머리를 들이밀고 샅샅이 뒤지는데 반항하면 물리거나 걷어차인다)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카메라 롤을 가장 많이 돌렸다. 어쨌든 동물원 철창 속에서 기운 없이 거니는 사슴보다야 훨씬 ‘진짜’다운 사슴을 만난 기분이었으니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사슴들이 공원을 탈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관광객이 줄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도시로 향한 것 같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공원에서 장장 2킬로미터를 걸어야 닿을 수 있는 나라 역, 그곳에 쓸쓸히 선 사슴의 눈은 착해 보이지도 섬뜩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척척해 보였다. 비슷한 일이 태국에서도 일어났다. 원숭이의 도시라 불리는 롭부리 한복판에서 원숭이 수백 마리가 패싸움을 벌였다. 원인은 역시 관광객 감소로 인한 먹이 부족. 결국 사슴공원도 원숭이의 도시도 우리만 없을 뿐 거대한 관광 산업 시스템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유토피아를 빙자한 동물원이었구나. 어쩌면 가방과 주머니를 헤집던 행동이 갈취가 아닌 구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있을 때는 모르다가 없어지면 아쉽다. 문화생활이 삶을 맛깔나게 해주는 조미료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미술관이며 도서관이며 공연장이며 죄 문을 닫으니 너무 적적하다. 대안으로 온라인 콘서트나 VR 미술관 등이 등장했지만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가상(혹은 증강)현실에는 음악과 예술 작품이 있지만, 스피커에서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발밑을 꽝꽝 울리는 진동과 고요한 가운데 이상한 방식으로 집중력을 높여주는 백색소음이 없다. 하나하나 따지다보니 실재하는 진짜 공간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감각은 내 문화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꽤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가상현실로 즐기는 문화생활을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테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을 넘어 공원 역시 디지털화되는 날이 올까. 바람, 풀숲, 햇빛,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 등 어떤 공간의 감각을 0과 1로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다 문득 공원의 생존 여부는 공간이 아닌 역할의 문제라는 결론에 닿았다. 나무와 잔디밭, 광장, 벤치를 보기 좋게 버무린 그림 같은 풍경에 주목한 공원은 언젠가 사슴을 잃은 공원처럼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코로나 시대 이미 집 안에 갇힌 사람 중 몇몇은 공원 대신 액정 속 ‘동물의 숲’1을 방문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며 “휴게 기능을 넘어 문화, 복지, 소통 등의 가치를 어떻게 공원에 도입할지 고민”2하는 일이 디지털 공간이 공원을 대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 [COMPANY] 정원문화연구소 자연의 가치를 배우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업
    정원문화연구소는 2010년 제이하우스(JHaus)를 전신으로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설립된 비영리 연구 기관이다. 다양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는데, 그 일환으로 교재를 발간하고 아카데미와 가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스토어에서 ‘가든아이’라는 정원 용품 상점을 운영 중이다. 김정하 소장(정원문화연구소)은 국내에서 정원 붐이 일기 전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원 놀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해 왔다. 서울숲 녹색공유센터, 과천시 청소년수련관, 안산시 다문화글로벌센터, 서초 한우리정보문화센터, 석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꼬마정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정원 일의 기쁨을 가르쳤다. 누리과정 및 표준보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유아 전문 연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면, 정원놀이사, 정원놀이교육사 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민간정원전문자격 등록 및 관리 등 정원 놀이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정원문화연구소의 프로그램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수업하며 정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점진적 교육 과정을 지향한다. 여기에는 “정원 프로그램의 목표는 식물과 지속적으로 교감하고 돌보는 행위로 공감, 창의 실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김 소장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만 2세부터 5세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만나 1년을 함께하는 커리큘럼을 마련했는데, 개발에만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개발 후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유아 교육 시장에 정원 교육 프로그램 보급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직접 공략해야 했는데, 일일이 방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전국 수백 명의 영업 교육사를 기반으로 네트 워크를 구축해 정원 교육의 씨앗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원 용품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캡슐에 씨앗을 담아 조제약 봉투 형식으로 포장한 ‘캡슐씨앗’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작은 씨앗을 집기 어려운 아이들을 고려해 씨앗을 캡슐에 넣어 땅에 바로 심을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약을 떠올리게 하는 외형은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약을 먹듯 마음에 병이 들거나 위안이 필요할 때 식물을 찾았으면 하는 김정하 소장의 바람을 전한다. 캡슐은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재료로 제작되어 흙에 집어넣고 물만 주면 누구나 쉽게 식물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캡슐에는 일절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씨앗을 넣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 [PRODUCT] 기하학적 선형이 돋보이는 벤치 ‘노바’ 다면체 알루미늄 캐스팅이 연출하는 입체감
    일상 속 외부 공간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더하는 조경 시설물 기업 ‘예건’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벤치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대 도시 경관과 어우러지는 단순하고 명쾌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선보였는데, 그중 ‘노바Nova’는 기하하적 선형이 돋보이는 알루미늄 캐스팅 벤치다. 접은 종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납작한 직육면체를 몇 번 접은 것처럼 다리 기둥을 디자인했다. 옆에서 보면 알파벳 N을 뒤집은 듯한 형상이다. 벤치의 형태를 결정하는 이 알루미늄 뼈대는 예리하게 세공된 다면체다. 각각의 면이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면서 빛을 다양하게 반사해 벤치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용자의 몸이 닿는 좌판과 등받이에는 목재를 사용해 쾌적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파이프와 목재가 조화돼 만드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특징인 바제Base, 플랜터와 의자를 겸하는 육각형 벤치 헥사Hexa 등 실내외 어느 공간이나 잘 어울리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달 열리는 2020 대한민국 조경·정원박람회에서 이 같은 신제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TEL. 031-943-6114 WEB.www.yekun.com
  • [에디토리얼] 코로나 이후의 도시 공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 넉 달을 넘어서고 있다. 바이러스에 움츠린 흉흉한 도시의 봄, 코로나 이후의 사회와 도시에 대한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빌 게이츠 같은 스타 기업가,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인기 지식인은 물론이고 너도나도 유행처럼 예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탄을 예견하면서 도시와 사회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면 귀 기울일 만하지만, 최근의 언론 매체를 휩쓸고 있는 경고성 예측들은 지나치게 요란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섣부른 예상이나 주장을 보태기보다는, 유사한 위험이 다시 닥쳐올 때 도시가 탄력적으로 대처할 회복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기초 시스템을 보강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재난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위험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서 공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공원은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관계와 소통의 장소, 곧 희망의 ‘사회적 인프라’라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세계 전역의 도시에서 공원의 존재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구글이 발표한 ‘지역 사회 동선 보고서(Covid-19 Community Mobility Reports)’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된 뒤 거의 모든 도시에서 공원 방문이 증가했다. 감염의 공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도시 내의 유일한 장소가 그나마 공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외 여러 매체들도 공원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3월 19일 자「뉴욕타임스」는 “뉴요커가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곳, 공원이 희망이다”라는 기사에서 위안과 안전감을 찾아 센트럴파크에 몰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상황이 심각한 유럽의 몇몇 도시에선 공원마저 폐쇄됐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를 지킨다면 공원은 신체와 정신 건강의 위기를 치유하는 공간적 백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세기의 급속한 산업화가 낳은 도시 인구의 폭증과 과밀, 빈부 격차와 노동자의 여가 문제, 위생 악화와 전염병 유행을 치료하는 공간적 해독제로 투입된 게 도시공원이다. 옴스테드는 공원을 통해 열악한 도시 위생을 개선하고 시민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펼쳤다. 오랫동안 잊혔던 공원의 이 고전적 효능이 새롭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조경(학)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공원이 중요하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만 독백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시 분야는 이미 ‘코로나 이후의 도시’를 주제로 다양한 온라인 세미나와 웨비나(webinar)(웹+세미나)를 열고 있다. 구글 창에 corona, pandemic, city 정도만 넣고 검색해보면 집단 지성의 힘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다. 예컨대 뉴욕 컬럼비아 대학 도시계획 전공 대학원생들이 한 달 만에 만들어낸 오픈 소스 “팬데믹 어바니즘: 코로나 시대의 실천(Pandemic Urbanism: Praxis in the Time of Covid-19)”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도 유튜브 도시TV를 통해 ‘도시와 감염병’(3월 31일), ‘Covid-19 이후의 도시 정책’(4월 21일)을 기획해 공론의 장을 열었다. 도시공원동맹(City Parks Alliance)은 지역 사회를 코로나 위기로부터 구하는 공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전략적 공원 프로그램, 2020년 여름 이후를 위한 공원 계획 등을 다룬 세 차례의 웨비나를 개최했다. 온라인 조경 네트워크 Land8은 공원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제로, 줌(Zoom)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세미나를 4월 20일부터 나흘간 진행했다. 우리 조경계도 조경가, 교수, 학생 가릴 것 없이 ‘코로나 이후의 공원’ 설계와 문화를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공원이 중요하다는 뻔한 당위론만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시의 위기를 구한 공원의 선례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데 어떤 공원이 필요한지, 멀리 있는 큰 공원 하나가 더 중요한지 가까이 있는 작은 공원 여러 개가 더 필요한지, 감염과 재난에 강한 공원 설계는 무엇일지 다각적 주제를 발굴하고 토론해야 한다. 모이지 않아도 된다. 많은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온라인 세미나, 웨비나, 아이디어 공모, VDF(Virtual Design Festival)등 간편하고 참신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이달에는 오피스박김의 최근작과 에세이, 이명준 교수의 비평을 엮어 특집으로 올린다.지난 15년간,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과 김정윤 소장은 도시 환경의 난맥과 사회적 쟁점이 얽힌 프로젝트에 ‘산수전략’과 ‘대체 자연’ 같은 전략적 설계 해법을 대입하면서 글로벌 조경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경관의 형태’를 실험하며 진화해온 그들의 작업은, 이번 특집 지면에서 볼 수 있듯 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이론적 실천과 실천적 이론을 가로지르며 탐사 중인 ‘새로운 황야(new wilderness)’는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조경이 지향해야 할 좌표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 오피스박김
    오피스박김PARKKIM은 2004년 박윤진과 김정윤이 네덜란드에 설립한 디자인 오피스다. 그로부터 2년 뒤 서울로 오피스를 옮겨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19년 김정윤이 하버드 GSD에 교수로 임용되며 보스턴에도 사무소를 세웠다. 이후 오피스박김의 시간은 서울과 보스턴 위를 나란히 흐르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디자인과 그 실현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젝트의 이론화, 대화, 글쓰기, 리서치, 교육을 통한 또 다른 차원의 실험은 오피스박김의 설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어 왔다. 이번 특집에 싣는 두 편의 에세이에서는 산수전략(山水戰略)에 이어 이들이 꾸준히 탐구해온 개념인 대체 자연(alternative nature)이 동시대의 기후 변화 이슈와 결합된, 새로운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명준의 비평은 오피스박김의 설계 언어가 공간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 발걸음을 따라가며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유를 통해 시작되는 오피스박김의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개성 강한 여섯 개의 근작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련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송도 트리플스트리트와 경기도 북부청사 광장은 각각 상업 공간과 공공 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둘 다 광장을 다룬다. 민간이 만들었지만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는 광장, 모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비어 있지만 동시에 황폐하지 않은 광장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두 광장에서 시도된 빈 공간에 대한 실험은 에어부산 김해 사옥과 경주 블루원 룩스타워 루프탑에서 바람과 햇빛 등 일기와 그림자, 주변 경관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된다. 퇴계로,만리재로 보행환경 개선 프로젝트와 CJ E&M 사옥에서는 섬세한 디테일을 볼 수 있다. 오피스박김이 다룬 또 다른 기업 공간이 수록된 『환경과조경』 2013년 8월호(SBS 프리즘 타워)와 2016년 9월호(CJ 블로썸 파크)를 펼치면 기업 로고를 활용하는 방식, 건물 안팎을 연결하는 전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2015년 1월호부터 3월호에 박윤진과 김정윤이 연재한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다시 꺼내볼 것을 권한다. 진행 김모아, 윤정훈, 곽예지나 디자인 팽선민
  • [오피스박김] 이론과 실천과 교육을 가로지르다, 오피스박김의 2030년
    지난해 하버드 GSD의 새 학장으로 부임한 사라 와이팅(Sarah Whiting)은 조경, 건축, 도시 분야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기후 변화와 주거를 꼽았다.1 그 여파로 올 봄 학기에 개설된 33개의 조경학과 수업 중 강의계획서에 직접적으로 기후 변화를 언급한 과목이 12개에 이른다. 특히 옵션스튜디오(option studio)(심화설계스튜디오) 다섯 중 넷이 기후 변화를 다루고 있다. 가을 학기부터 조경학 석사 학위 취득 필수 과목으로 ‘디자인이 만드는 기후(Climate by Design)’도 신설된다. 서울에서 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바깥세상에 대한 감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었다. 크든 작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항상 과연 이 일은 동시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사이 어디쯤 위치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진 것은 조경의 기술과 지력으로 기후 변화 등 인류가 당면한 여러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받는 타격의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연관 분야의 기술자, 과학자들과의 연대가 필수적이고 대상지를 넓고 깊게 보는 것이 관건이다. 조경을 실천(practice)하며 주어진 일을 넓고 깊은 시야로 살피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며 일해야 한다. 과업지시서만 따라가다가는 시대를 이끌기는커녕 현재 일어나는 상황들에도 대응할 수 없다. 쾌적한 보행 환경의 기본은 걷다가 발이 젖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점차 잦아지고 있는 집중 호우 시 빗물이 기존 매립 관거에 다 담기지 못해 도심지 배수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퇴계로와 만리재로 보행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 강북 지역의 고르지 못한 보행로 기반을 고려한, 매끄럽지만 미끄럽지 않고 물이 잘 흘러 빠지는 포장재의 설계로 귀결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김정윤은 2019년 하버드 GSD의 조교수로 임용됐으며오피스박김의 보스턴 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광교신도시 공원디자인 커미셔너(2008), 서울시 공공건축가(2011)로 활동했고,정부로부터 차세대 디자인리더(2007)로 선정됐다.
  • [오피스박김] 일상의 극화
    새벽 1시 반에 시작된 하버드 GSD 교수 회의에 참석한 후, 연이어 3시부터 스튜디오 강의를 시작했다. 아침 7시에 스튜디오 크리틱이 끝났고, 9시경 출근한 오피스박김의 디자이너들과 일상의 업무를 시작했다. 서울과 보스턴을 오가며 진행한 하버드 리서치 프로젝트는 사회적 거리를 최대한 늘리며 줌(Zoom)화상 연결을 통해 3년 차를 맞이했다. 2018년 하버드 GSD의 초청으로 시작된 오피스박김의 디자인 리서치는 서울 산수山水의 상대역이라 할 수 있는 DMZ 연구에서 출발해, 2019년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주제로 동아시아의 황무지를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윤 대표가 하버드로부터 정규 교원 제안을 받게 되었다. 김 대표가 하버드 GSD의 교수로 임용되면서 오피스박김의 연구 활동은 서울 사무실에서의 프랙티스와 더불어 공식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에서의 프랙티스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허나 클라이언트의 직설적 요구와 한정된 예산, 공사 현장의 투박함이 만들어낸 설계 문맥은 역설적으로, 아주 작은 생산 행위라 할지라도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인식을 관통하게 만들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발굴하게 한다. 즉 매출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만듦을 통해 얻는 지적 성취는 풍족할 수 있다. 2017년 이후 오피스박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반추해본다. 우선 송도에서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맞은 광장의 흥행과 성공을 경험했다. 가장 경제적인 재료로 셀피어블(selfiable)한, 개인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을 만들었다. 집단의 아우성이 아니라 개개인 하나하나가 중요해지는 광장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었다. 송도 광장에서의 비움(emptiness)은 에어부산 김해 사옥 옥상에서도 실험되었다. 개방된 공간을 빈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며 그 재료는 가늘고 미묘해야 한다. 남천의 모습을 닮은 가볍고 긴 구조물의 처짐을 현장에서 실험했고, 완성된 빈 공간은 일기와 경관을 초대하는 스펙터클이 되었다. 물론 현장 구조 실험이라는 도박과 같은 초긴장의 순간도 있었지만....(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박윤진은 하버드 GSD의 설계 담당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피스박김을 총괄한다. 네덜란드 바헤닝언(Wageningen)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 글림처 특훈 교수(Glimcher Distinguished Visiting Professor)로 선정됐다.
  • [오피스박김] 송도 트리플스트리트 Songdo Triple Street
    인스타그래머빌리티(instagrammability) 트리플스트리트(Triple Street)는 송도에 위치한 길이 550m의 쇼핑몰이다. 바로 인접한 지역에 상업 시설이 성업 중이던 때 설계에 들어갔다. 따라서 외부 공간 설계의 주안점은 주변 상업 지역과의 경쟁에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매력으로 주목받을 만한, 그리고 걷고 싶은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대상지와 다른 점은 지하 슬래브 상부에서 1층 마감 레벨까지 단 6cm의 여유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부 옥외 공간에 식재가 불가능함을 의미하는데, 외부 공간 설계에서 식재에 의존하지 않고 ‘바닥’의 경험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오피스박김 시공 계룡건설(세종통상) 발주 에스디프런티어 위치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면적 59,253m2 완공2017 사진 신경섭 오피스박김(PARKKIM)은 박윤진과 김정윤이 2004년 네덜란드에서 설립했다. 2006년 서울로 이전해 한국의 지역적 가능성에 근거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한편, 활발한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2019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에도 사무소를 설립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양화 한강공원(2011), SBS 프리즘 타워(2011), CJ 블로썸 파크(2015), 송도 트리플스트리트(2017)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공예박물관, 청담 에테르노, 한화리조트 설악 호수정원 등의 설계를 진행 중이다.
    • 오피스박김
  • [오피스박김] 경기도 북부청사 광장 Gyeongi-do North Provincial Office Plaza
    잃어버린 지형의 프로그램화 경기도는 서울시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는 한국에서 가장 큰 행정 구역이다. 수원에 있는 본청 외에 경기도 북부를 관장하는 북부청사가 의정부에 위치한다. 이 북부청사 전면의 광장을 재조성하게 되었는데, 발주처는 청사 앞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추동로를 우회시켜 광장을 넓히고, 빈 공간에 각종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했다. 먼저 전 세계 주요 공공 기관의 광장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북부청사와 같이 건물 중앙에서 뻗어 나온 축이 대로와 만나고, 축을 포함한 대형 광장이 청사 전면부에 펼쳐져 있는 형태였다. 행정의 온라인화로 인해 직접 관공서를 찾는 시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연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광장들은 비어 있었다. 물론 광장은 비어 있음으로써 의미와 역할을 갖는다. 또한 고밀도의 도시에서 시민이 필요로 할 때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야말로 상업 공간이 하지 못하는 관청 외부 공간의 값진 역할이다. 하지만 비어 있는 동안의 시각적 황폐함, 동선의 혼란, 무작위로 들어서는 행사 공간이 초래하는 불편 등은 개선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 보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85호(2020년5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오피스박김 시공 대국건설 발주 경기도 위치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면적26,851m2 완공2018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박윤진과 김정윤이 2004년 네덜란드에서 설립했다. 2006년 서울로 이전해 한국의 지역적 가능성에 근거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한편, 활발한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2019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에도 사무소를 설립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양화 한강공원(2011), SBS 프리즘 타워(2011), CJ 블로썸 파크(2015), 송도 트리플스트리트(2017)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공예박물관, 청담 에테르노, 한화리조트 설악 호수정원 등의 설계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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