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석 ([email protected])

[환경과조경 박형석 기자] 문화재청이 오는 25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남한산성 숭렬전’ 등 10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
문화재청은 사묘·재실·정려각 같은 유교건축 8건, 내아와 통일신라 석탑 각 1건이 지정됐고, 지역별로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에 각 1건,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에 각 2건, 전라남도에 3건의 문화재가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사묘와 재실은 조선시대에 제사의례를 중요시하던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확산됐고, 조상과 선현에 대한 제향이 주목적이었으나 후손에 대한 강학 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다.
또한 이 건축물은 가문의 지위를 높이며, 지역의 정치적 기반을 견고히 하려는 경향과도 관련 깊은 건축물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8건의 유교건축 중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남한산성 숭렬전’은 창건 사실이 문헌을 통해 증빙되고, 17세기에 이건한 뒤에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제향이 계승되고 있어 역사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간결하고 절제된 건축 형식과 구조는 17세기에 건립된 조선시대 사묘의 전형을 따르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영월 창절사’는 사육신 등 10명의 충신을 제향하기 위해 지난 1685년에 건립된 곳으로 1705년 강원도 영월로 이건됐으며, 창절사는 보통의 사당에 비해 규모가 크고, 사당 외에도 유생들이 모여 학문하는 강당과 동서재, 배견루를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조선시대 서원과 같은 구성을 보여준다.
‘영동 세천재’는 충주 박씨 황간파 박세필이 지난 1691년에 처음 지은 재실로,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재실 건축의 전형성과 지역성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창건 당시의 건축 부재를 포함해 간결한 형식의 평면 구성과 장식을 유지하고 있기에 영동지역 유교문화를 연구하고 조선 중기 이후 향촌사회의 변동, 건축 형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고흥 여산송씨 쌍충 정려각’은 정려 건축으로서 사례가 드문 매우 화려한 모습이며, 정려 건축의 품격과 장식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정려각은 고흥에서 충절 인물이 다수 배출된 무반 가문인 여산송씨 가문의 상징적 기념물이자 지역의 호국충절을 대표하는 시설로, 조선 후기 국가 통치수단 및 지역 향촌사회사 등 당시 시대상을 살필 수 있다.
‘강진 해남윤씨 추원당’은 내부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마루가 매우 넓게 꾸며졌으며, 수준 높은 목수의 기술력과 독창적인 건축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이후 지역에서 전개된 향촌과 문중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교문화유산이다.
‘강진 해남윤씨 영모당’은 18세기 지방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며, 전체가 마루방으로 돼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강당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실 건축 형식의 하나인 ‘강당형’의 모범사례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전주 조경묘 정묘’는 현존하는 사례가 적은 18세기 왕실 사묘이며,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창건과 관리, 운영, 제향에 국가가 깊이 개입했다는 특징이 있다.
‘포항 상달암’은 ‘ㄱ’자형 평면을 갖는 맞배지붕 건물로, 1484년 중건 당시 누마루인 화수루 부분이 덧붙여져 현재 모습을 갖게 됐으며, 기록과 건축 유구를 통해 재실로 변모한 역사적 전개 과정을 알 수 있고, 15세기 건축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번 보물 지정 중 유일한 내아 건물인 ‘김제 내아’는 지난 1749년 무렵 지어졌으며, ‘ㄷ’자형 평면으로 가운데 본채와 좌우 날개채로 구성됐는데, 남향인 동헌과 달리 동향으로 지어져 두 영역 간 간섭을 최소화했다.
또한 동헌 쪽 날개 채는 주택의 사랑채와 같이 구성해 안마당을 보호하면서도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했고, 반대쪽 날개채에는 안방과 부엌을 두어 살림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렇게 대청을 경계로 양쪽 날개채에 내외 개념을 적용한 것은 김제 내아의 독특한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보물 지정 중 유일한 석조문화재인 ‘경주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인 8세기 전반에 건립된 5.85m 높이의 석탑으로, 두 탑은 모두 상, 하 2층의 기단으로 구성돼 있고,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삼층석탑 상륜부는 대부분 사라지고 노반석만 남아 복원 과정에서 일부 새 부재들이 사용됐지만, 전체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 석탑 기초부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할 때, 8세기 전반에 건립돼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과 양식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가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조사·발굴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라며, “또한 지역에 위치한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 환경 정비 등 역사 문화환경 개선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