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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경의 오늘을 진단하다(4)-지상좌담: 조경회고전망
  • 환경과조경 2012년 11월

Retrospect and Prospects of Landscape Architecture

현실 1. 풍요에서 빈곤으로…
내가 졸업했던 1980년대 중반기에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취업난이 있었다. 중동 특수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외화벌이를 하러 갔던 선배들이 귀국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었고, 아직은 이렇다 할 조경업체가 없어 이중고를 겪어야 했었다. 자격증을 취업증으로 알아 4학년을 끝
낼 즈음에는 꽤나 많은 학생들이 자격증을 2~3개쯤 가지고 있었지만, 취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와 같이 졸업을 한 사람들 중에 지금은 엔지니어링 회사의 부사장으로 있는 한 사람이 이 분야로 진출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점은 당시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케 할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 자격증이 없었고, 지금도 없는데…그때는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았던 시기였고, 지금은 시작했다가 쪼그라들었다는 점에서 보면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당시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내게는 전력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에게 독일인 기자가 찾아왔었단다. 그 기자는 만일 경부고속도로를 자신의 국가에서 건설했다면 아직도 만들고 있을 거라고 했단다. 기초를 착실하게 만들다보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거라는 의외의 생각이었다. 이 도로는 지금도 계속적인 땜질을 하고 있고 구간 전체를 바꾸는 공사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자는 이 도로로 인해 다른 분야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효과를 낳았고, 이것이 경제발전의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에는 복개도로도 고가도로도 없다. 그렇지만 1970년대의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경제발전의 상징이었고 최고의 기능을 가진 시설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이렇다 할 업체군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조경분야 역시 그 속도전의 대열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시공과 설계를 동시에 시행하고, 심지어는 설계 없는 시공도 빈번하게 시행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건설이라는 시장 속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을 것이다. 속도전은 많은 양을 단기간에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질을 생각할 수 없는 양적 충족의 시대에 필요한 개념인 것이다. 취업자리가 부족하기는 했으나 조경업이 번성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던 상황이 2000년을 지나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였고, 2010년을 전후로 해서는 공동주거단지를 비롯한 각종사업으로 인하여 끝이 없을 듯했던 화수분의 시대가 되었다. 창업을 하기만 하면 돈이 되었다고 하니 보통 화수분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화수분이었다. 속도전과 화수분이 만났으니 그 시장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된다. 산지를 개발하여 농공단지를 계획했던 어느 지방에서 산주에게 50여 명의 조폭들이 돈이 된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왔었단다. 그곳에 있던 소나무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니, 조경이라는 분야가 가히 황금알을 낳는 화수분이었던 것임에 틀림이 없었던 듯하다. 지금은 어떤가? 화수분이 깨진 지는 꽤나 된 듯하고, 덕분에 속도는 전혀 필요 없어 보인다. 거의 모든 설계업의 한 시절을 풍요의 호수로 만들어 주었던 공동주택시장이 물고기조차 퍼덕거리는 다 써버린 저
수지가 되었다. 당연히 이에 동승하였던 우리 역시 명절 전날 밤 바닥난 쌀독을 앞에 놓고 있는 종갓집 며느리 신세가 된 듯하다. 어떻게 하면 갈라진 저수지에 물을 넣고 바닥난 쌀독을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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