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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스탄불에서 설계하는 법
The Way They Design: How to Design in Istanbul
  • 환경과조경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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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1000년, 다시 오스만 튀르크 족의 영광과 함께 500년을 보낸 이스탄불의 옛 지도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 해(Marmara deniz)를 보스포루스 해협이 연결한다. 해협의 오른쪽은 아시아고 왼쪽은 유럽이다. 바다로 흘러 드는 하천은 지형의 특성상 대부분 짧다. 아시아 쪽은 대부분 흑해로 흐르고 유럽 쪽은 마르마라 해로 흐른다.

 

1 마음에 든 몇 가지

이스탄불의 일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간섭을 받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상지 경계의 확정 같은 주요 의사 결정을 빼면, 일을 진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간섭을 크게 받지 않았다. 우리가 초기에 제안한 설계안은 이스탄불 시가 정해준 경계의 밖을 과감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면적이 크면 클수록 높은 설계비를 받는데 유리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하천 복원이 인접 토지의 이용 전환과 맞물릴 때 효과가 더 좋기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사유지의 수용이 우리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공공 기관이 공익을 목적으로 토지를 싼 값에 수용하는 시스템—우리나라의 LH나 SH공사 등이 늘 하는 것처럼—이 아마 이스탄불, 터키에는 정착되지 않은 듯 했다. 있어도큰 규모의 택지 개발 사업이 아닌 블록 규모의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공유지가 아닌 하천 주변의 사유지는 토지 수용과 매입의 어려움 때문에 모두 제외됐다. 다행스러운 건 하천 주변에 우리나라보다는 시유지 등의 공유지가 많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대상지의 경계 외에도 불법 오수 처리와 유지용수 급수 방식은 워낙 중요한 문제라 오랫동안 서로 토의하며 협의해야 했다. 우리의 아이디어에 대한 그들의 판단과 실무상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를 주로 주고받았다. 우리가 제안하면 엔지니어가 기술적으로 검토해 결과를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조경은 물론이고 토목, 수자원, 도시계획, 경관 등 복원 계획 전체를 다루는 상위 기본계획SD 팀으로 우리를 인정하고 예우하는 태도가 협의 과정 전반에 깔려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대상지 경계와 수자원 파트와의 실무적 협의를 제외하면, 설계에 관해서는 일절 얘기가 없었다. 첫 번째 강인 젠데레Cendere의 SD를 3개월 만에 끝내고 PT를 하러 이스탄불에 갔을 때, 발주처 과장이 주도한 첫 회의는 7시간이 넘게 걸렸다. 관련 부서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설명을 듣고 확인하는 자리였다. 3일 뒤에 부시장 보고, 다시 3일 뒤에 시장 보고를 했다. 보고 중에 설계안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질문은 매우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수고했다는 의미의 코멘트가 많았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스탄불 시청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2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젠데레의 설계안은 잘 풀렸다. 현재 이스탄불의 여건을 잘 읽어냈고 이스탄불의 역사 속에서 젠데레라는 하천의 문화적 함의도 잘 찾아냈다. 하천 복원에 꼭 필요한 수리·수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즉 홍수위, 통수 단면, 오수의 분류 또는 합류에 대한 시스템과 유지용수의 공급에 대한 이해를 갖춘 조경설계사를 잘 만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스탄불 시의 전폭적인 믿음과 신뢰, 자료 지원—물론 자료가 우리가 원할 때마다 빨리빨리 지원된 것은 아니다. 혹 이슬람 국가와 일할 기회가 있다면 이들의 여유로움, ‘인샬라’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이 동반되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과장 보고, 국장 보고, 부시장 보고 그리고 시장 보고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해, 그리고 어디가 제일 높은 데야”하고 의아해했듯이 보고 체계가 다소 복잡하고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보고에서 호평을 받았다. 국장은 보고가 끝나자마자 당장 부시장 보고 약속을 잡았고, 부시장은 희색이 만면했다. 나이 지긋한 노老시장은 보고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그때 내가 “사진 좀 찍을까요”라고 청했고 노시장은 기꺼이 응해줬다. 노시장은 꼭 설계안처럼 시공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 되니까 드디어 ‘발표까지 끝났구나’하는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더 많아졌다. 보고는 대개 잘 나온 공간 위주로만 요약되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무시되거나 안 풀린 공간이 없을 리 없다. 이 때문에라도 좋은 DD, CD팀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도 그렇고, 이번에 보니 이스탄불의 경우도 자문 회의가 없었다. 적어도 설계사가 설계한 내용에 대해서 자문하는 절차가 없던 것이 확실하다. 사실 설계를 담당한 설계사보다 해당 설계를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설계공모의 경우, 당선작으로 선정된 설계안의 정당성과 퀄리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몇 십 년의 전투로 단련됐고 지금도 일선에서 땀 흘리며 전투를 치러 내는 야전 사령관에게 어떻게 싸우라는 전투의 방법을 자문할 수는 없다. 발주처 입장에서는 해당 설계의 방향, 특히 예산의 범위나 민원, 설계안이 진행되면서 행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의 자문이 필요하다.

자문 위원회의 자문은 자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문내용을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발주처가 감독하는 현실에서는 자문 내용이 맞고 안 맞고 간에 설계사가 고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스탄불에서는 단 한 차례도 자문이 없었다. 인허가와 관련된 지루한 협의 과정도 없었다. 오롯이 설계만 풀면 됐다. 그리고 풀린 설계안에 대해 지금까지는 진심 어린 칭찬을 많이 받았다. 설계안이 좋다고 하니,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자문 단계가 없으니 정말 일하는 기분이 났다. 우리나라도 설계사가 신명나게 설계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떤 발주처의 감독관은 자기가 설계하겠다고 연필까지 든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그 설계 작업을 우리의 설계 목록에서 뺀 지 오래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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