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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물을 철학하다
  • 환경과조경 2013년 5월

Water is expressed philosophically as old paintings

신화시대의 물4
서왕모, 곤륜산 요지에서 연회를 베풀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에도 물이 있다. 만남과 이별의 장소에도 물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지하에 다섯 개의 강이 있다고 말한다. 증오의 강인 스틱스, 슬픔의 강인 아케
론, 후회의 강 코키토스, 불의 강 플레게톤, 망각의 강인 레테가 그것이다. 이승에서 저승
으로 갈 때 모두 버리고 가야 할 감정이나 기억을 상징하는 강이다. 동양에서는 이승에
서 저승으로 들어갈 때 삼도천이라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
신성한 장소에도 항상 물이 있다. 불교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수미산은 바다 한 가
운데 있다. 예수는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힌두교에서는 우유의
바다 젓기를 통해 불사의 감로수 암리타를 만든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그녀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담갔다. 물이 지닌 정화와 재생의
의미가 연관된 이야기다. 동양신화에서 요지(瑤池)는 서왕모가 사는 연못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은 요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용호좌의 주인 서왕모
위의 두 작품에 등장한 서왕모는 아름답다. 곱고 세련됐으며 우아하다. 그런데 원래 서왕모
의 모습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에는 서왕모가 곤륜산이 아닌 옥산(玉山)에 산다고 적혀 있다. 또 「해내북경(海內北經)」에는 서왕모가 아리따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생김새가 사람과 같은데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하고, 휘파람을 잘 불며 흐트러진 머리에 옥비녀를 꽂았으며 하늘의 재앙과 오형(五刑)을 관장한다.’

<낭원여선도>에서 묘사된 것 같은 조신함이나 부드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가히 봉두난발한 괴물 같다. 하는 일도 무시무시하다. 서왕모는 하늘의 재앙과 함께 오형을 담당한다. 우박이 내리고 천둥과 번개 치는 일, 돌림병과 괴질 같은 하늘의 재앙이 전부 서왕모의 몫이다. 오형은 어떤가. 오형은 옛날 중국에서 죄인을 처벌하던 다섯 가지 형벌이다. 즉 살갗에 먹물을 넣는 묵형(墨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뒤꿈치를 베는 비형(剕刑), 불알을 까는 궁형(宮刑), 죽이는 대벽(大辟) 등이 그것이다. 그 잔인한 형벌을 서왕모가 결정한다.
서왕모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신인만큼 그녀가 어떤 형상이든 실제 모습이 아니다. 상상일 뿐이다. 그런데 굳이 그녀에게 이런 잔인한 역할을 맡긴 것은 곤륜산이 서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쪽이 해가 뜨는 곳이라면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다. 뜨는 해가 생명을 상징한다면 지는 해는 죽음을 상징한다. 스산하고 황폐하고 쇠락함이 서쪽의 특징이다. 뭔가 평범하지 않은 기괴한 모습이어야 특출한 능력이 있다고 믿은 의식도 반영된 탓이리라. 그런데 서왕모는 원래 이렇게 혐오스런 신선이 아니었다. 곤륜산의 주인으로 신 중에서 최고의 여신이었다. 지난번에 살펴본 삼황오제를 묘사한 화상석의 맨 윗부분에도 서왕모가 앉아 있었다. 산동성에서 출토된 <서왕모화상>은 최고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얇은 부조에 새겨진 이 화상석에는 서왕모가 단정히 앉아 있고 머리에는 그녀의 상징인 청조가 앉아 있다. 그녀 어깨에서는 구름이 피어오르는데, 문양이 도안적이어서 마치 날개가 달린 것 같다. 그녀의 양 옆에는 서왕모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복희와 여와가 서 있다. 주인공을 크게, 조연을 작게 표현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인물화와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서왕모가 복희와 여와보다 위대한 여신임을 보여준다. 우주를 창조한 복희와 여와는 뱀이나 용처럼 하반신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복희와 여와가 얽힌 꼬리는 다시 두 마리의 새 꼬리로 연결된다. 사나운 부리를 가진 두 마리 새는 서왕모의 머리 위에 앉은 새와 함께 삼청조일 것이다. 화상석에 드러난 것처럼 ‘청조’나 ‘난봉’은 결코 예쁘거나 고운 새가 아니다. 독수리나 매처럼 사납고 무서운 맹금류다. 서왕모에게 날라다 주는 음식도 콩이나 씨앗 같은 열매가 아니라 토끼나 꿩 같은 고기였다. 서왕모의 우측에는 ‘서왕모(西王母)’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사천성에서 출토된 <서왕모화상> 역시 서왕모의 위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곤륜산의 주인 서왕모가 용과 호랑이가 새겨진 의좌에 앉아 있다. 흔히 좌청룡(左靑龍), 동 우백호(右白虎), 서로 배치되는 용호좌(龍虎座)는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다. 그녀의 좌우에는 신선세계에서 사는 구미호(九尾狐)와 삼족오(三足烏)가 배치되었다.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는 흔히 천 년 묵은 여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변신을 잘하고 재주가 뛰어나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어낸 동물이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상징하는데,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문화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령스런 새다. 서왕모의 곁에 구미호와 삼족오가 있다는 것은 서왕모의 권위와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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