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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님도 즐!
  • 환경과조경 2022년 3월

2022년 3월 풍경 감각 일러스트.jpg

 

2000년, 온라인 게임이 유행이었다. 집에서 ‘라이온 킹’이나 ‘고인돌’ 같은 걸하던 나와 친구들은 같은 게임, 같은 서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함께 모니터 속을 여행했다. 그런데 레벨이 높아질수록 초등학생이 아닌 척 해야 했다. 고급자용 사냥터에서는 ‘그룹사냥’이 필수였지만 어린이를 잘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딩’은 ‘노매너’라서 같이 사냥할 수 없다고 했다. 그곳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었다. 때론 불만족스러운 역할을 맡더라도 공격수는 공격하고 보조자는 보조하면서 던전 끝에 다다를 때까지 각자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파트너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욕을 하면 안 된다. 욕심이 나도 다른 사람의 아이템에 손대지 않는다. 다른 던전을 찾아가기 귀찮더라도 다른 유저가 게임 중인 사냥터에 난입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룰을 어기면 다른 유저들은 게임 룰을 알려주는 대신 “님 초딩이셈? 즐!”을 외쳤다.

요새는 ‘노 키즈 존’ 팻말이 걸린 공간을 자주 마주친다. 대개 ‘죄송하지만 다른 손님들의 편의를 위하여…’로 시작하는 안내문은 곱게 윤색한 버전의 “님 초딩이셈? 즐!”로 보인다. 시간과 돈을 들여 방문한 곳에서 ‘즐겜’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가 어린이에게 줄 것은 “즐!”이 아니라, ‘그룹사냥’에 끼워주고 ‘룰’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에 철이 없고 규칙을 모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그랬고, 또 우리의 조카나 아들딸이 그렇듯이. 이 사실을 잊은 안내판을 보며 혼자 말해본다. “님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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