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정원은 실패를 배우는 곳
  • 환경과조경 2022년 2월

나의 정원은 지름 반 뼘, 높이 두 뼘에 살짝 못 미치는 유리 화병. 3년 전 방이 너무 건조하다는 이유로 들였던 스킨답서스가 자란다. 소박한 정원 앞의 선반은 엄마를 위한 숲이다. 다육 식물과 선인장, 미인초, 이름 모를 난이 들쑥날쑥 서 있다. 주말이면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화분을 모조리 욕실로 옮겨 흠뻑 적신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다시 끙끙거리며 해가 잘 드는 곳에 화분을 일렬로 세운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역시 게으른 나에게는 스킨답서스가 제격이구나 생각한다. 스킨답서스 돌보는 법은 간단하다. 화병에 물을 보충한다. 2주에 한 번은 화병을 닦아 물을 새로 채우고 그 김에 잔뿌리를 정리한다. 잎이 심하게 많아졌다 싶으면 마디 아래 부분을 잘라 물꽂이 해주면 끝. 병해충에 강해 걱정할 일이 없고, 가끔은 너무 잘 자라서 벅찰 정도다.

 

공유정원, 처음 보는 낯선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다 의문이 생겼다. 공공적 성격도 띠지만, 일정 금액을 내고 일시적으로 사유하는 정원이 겨울에도 작동할 수 있을까. 대체로 겨울의 정원은 쓸쓸하다. 봄과 여름을 채웠던 잎이 떨어지고, 땅을 덮었던 가을 낙엽마저 바람에 흩어지면 앙상한 가지와 퍼석한 흙바닥이 드러난다. 계절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지만 황량하다는 감상을 지우기 힘들다. 상록 식물을 가득 심으면 겨울 풍경은 따스해질지 모르지만, 일 년 내내 비슷비슷한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타임워크 명동 공유정원에 오른 날은 영하 10도의 한파가 닥친 날이었다. 마스크를 써도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웠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런데 정원의 풍경은 예상처럼 추워 보이지 않았다. 갈색으로 변했지만 잎과 열매를 떨구지 않은 키 큰 그라스가 바람에 느직히 몸을 흔들고, 연녹색의 작은 식물이 낮게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하나의 식물이 일정 영역을 차지하도록 군식해 볼륨감을 주었는데, 수종마다 키가 다를 테니 그에 따른 리듬감이 생긴다. 플랜터는 날렵한 띠 형태다. 식물 사이에 깐 화산석과 색이 비슷해 멀리서 보면 그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정원은 신기하게도 추위가 가신 이곳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중 최영준 소장(랩디에이치)은 금민수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정원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노동이라 생각해요. 정원은 계속 손을 대야 하는 곳이에요. 관리가 생명인데, 바쁜 삶을 이어나가며 정원을 돌볼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죠.” 이곳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푸른 나의 정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조영민 대표(앤로지즈)의 말에는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었다. “도시인에게는 접근성이 높고 몰입할 수 있는 자연이 필요해요.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죠. 하지만 자연은 가상 세계로 옮길 수 없어요. 삶에서 물리적이고 인공적인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질수록 자연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는 더욱 높아질 거예요. 겨울이 오면 정원의 식물이 다 죽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봄이 되면 거짓말처럼 싹이 돋아요.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꼭 봐야 하는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은 실패를 배우는 곳이 될 수 있어요. 모든 게 끝난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생명은 다시 태어나요.”

 

실패하지 않는 나의 정원을 떠올렸다. 늘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양의 빛을 받고 비슷한 초록을 유지하는 그 정원에는 계절이 없다. 새 잎이 돋아 크게 자라는 모습은 볼 수 있지만, 꽃이 피고 지거나 낙엽을 떨구진 않는다. 한 번도 아쉬워한 적 없는 것들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 큰 정원을 꾸릴 엄두는 나지 않는다. 덧없는 상념의 끝은 결국 공원에 가닿았다. 도심 곳곳의 정원도 좋지만, 이왕이면 더 큰 자연의 변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이 더욱 좋은 공간이 되기를. 조영민 대표의 말이 문득 부러워졌다. “임대 시장에서 입주민을 만족시킬 어메니티를 갖춘 곳은 이미 많아요. 미국의 경우, 라운지 서비스와 더불어 정원, 조경처럼 환경 요소가 건물의 값어치를 바꾸는 요소가 되고 있어요. 건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 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도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의 선두에 잘 가꾸어진 공원이 놓여있기를, 그 방법도 모르고 막연히 꿈꿔본다. [email protected]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