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미완의 정원으로 대화의 씨앗을 심다
  • 환경과조경 2021년 7월

 

다운로드 (1).jpg
2017년도에 조성된 또 다른 마을정원. 정원 내부에 수경 요소를 넣었는데 동네 어린이들이 물고기에게 밥을 주러 찾아온다.

 

한국에서 해외의 주민 자치 사례를 꼽을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일본의 자치회自治(jichikai)1. 이 자치회는 한국의 통·리 단위 수준에서 결성되며, 원칙적으로는 정해진 구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세대로 조직되고 보통 50~200세대 사이의 규모다. 인구 고령화와 도시 집중화를 거치며 기능을 많이 잃었지만, 지진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작동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써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 약 30만 개가량 되는 자치회 중에서도 치바 현의 마쓰도 시 이와세 자치회는 조금 특별하다. 자치회 위원들이 행정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치회관에는 보통 나이가 있는 관리인이 상주하는데, 이곳에는 젊은 학생 부부가 살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그룹의 구성원들이 서로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돕는 전문가)이자 동네 어린이들의 친구인 미츠나리 테라다와 그의 아내 마리아 에르밀로바다. 둘은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공부하던 5년 전부터 자치회관에서 거주하며 주민들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화상으로 커뮤니티 안에 속해서 매일 화초에 물 주듯이 공동체를 살피며 키워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거주하는 이와세2는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자치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 이와세 자치회의 커뮤니티 퍼실리테이터로 초대를 받았다. 당시 내 전공이 교육학이라는 걸 안 자치회장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축제 준비를 요청했다. 그렇게 20162월 마리아와 함께 이와세 자치회관 2층의 관리자실에 입주했고, 무료로 거주하며 이와세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있다.(미츠나리)

 

2015년 가을에 치바 대학교에서 환경계획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학부에서는 생태학을 전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도시재생과 도심의 녹지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태학은 이론적 연구에 그치거나 실천을 하려 해도 관료적 절차에 의해 제한되는 경향이 있어 답답함을 느꼈다. 도시계획을 통한 보다 실천적인 접근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왔고, 학교에서 미츠나리를 만났다.(마리아)

 

일본 자치회의 역사가 꽤 역사가 긴 것으로 알고 있다. 생성 배경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치회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자치회는 일본의 농업 사회에 기반을 둔 개념이다. 동네 단위라는 물리적 영역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지역 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한 마을 축제를 열거나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며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가로등 관리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도 하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방범 활동이나 재난 관리를 통해 동네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치회는 어린이부터 부모,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대체로 노인 세대만 참여하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자치회가 구세대 문화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치회 행사에서 여자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남자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양한 세대를 연결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고, 자치회에서도 젊은 세대를 다시 끌어들이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장도 이 동네가 노인 중심 공간이 되는 것을 우려해 우리가 이곳의 주민으로서 분위기를 바꿔보기를 바랐던 것 같다. 퍼실리테이터로서 세운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세대를 연결해 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 참여와 생태학적 기술을 이용해 조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후략)

 

환경과조경 399(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일본은 읍면동 단위에도 동사무소 대신에 협의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가 결성돼 있다. 자치회는 1800년대 후반, 메이지 시대 때 행정 말단 업무를 맡아 실질적인 주민 생활, 생산 활동의 중요 기능을 담당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 체제 강화의 도구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2. 이와세는 마쓰도 시의 통 단위에 해당하는 지역 중 하나다. 630세대가 거주하고 있지만 자치회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100세대 미만이다. 참고로 마쓰도 시에는 약 24만 세대가 거주한다. 이와세는 1970년대에 도쿄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도시로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주거지가 많다. 30분이면 동네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 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