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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세기말의 혼돈과 희망
  • 환경과조경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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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만난 건 대학에 합격하고 한 달쯤 지난 뒤였다. 천장 벽지의 패턴을 눈감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와식 생활을 즐기다 마침내 결심했다. 낯선 친구 조경과 이제 친해져 보자. 강남역 지하상가의 대형 서점 동화서적에서 19871월호(통권 15)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화가 이왈종의 그림을 표지에 쓴 파격이 근사했다. 판형은 지금보다 조금 길고 약간 좁다. 계간에서 격월간으로 바뀐 첫 호, 152, 3,800. 대학 구내식당 점심이 400, 호프집 생맥주 한잔이 500원인 시절이었다. 특집 전국대학 학생 조경작품덕분에 조경학과에서 뭘 배우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8월의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지난 39년간의 잡지를 되돌아보는 기획의 세 번째 순서,

내가 다시 읽을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9월호부터 200010월호까지다. 1996년 가을에 나는 박사 논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잔뜩 위축된 박사과정 4년 차였고, 2000년 가을에는 불안정한 박사 백수 신분으로 필라델피아의 유펜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꿈틀대던 미국 조경의 변화상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조경비평대안적 조경 잡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나는, 조경진(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이하 모두 당시 소속과 직책), 박승진(조경설계 서안 실장) 등 몇몇 선배들과 힘을 합쳐 무크지 로커스Locus창간호(1998)2(2000)를 만들고 우리 시대의 조경 속으로(1999)를 펴내느라 환경과조경을 펼쳐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애써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세기말. 모두가, 사회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던 시대였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했고, 공원과 녹지가 민선 시장들의 공약 리스트에 단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와 사회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모뎀과 PC통신을 넘어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 하나로통신이 최대 8Mbps 속도의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은 마침내 대중과 결속하기에 이른다. 이동 통신 시장이 무선 호출기에서 휴대 전화로 급격히 이동한 1998년 이후에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히 바뀐다. 변화와 혼돈,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세기말의 풍경은 101호에서 150호까지 쉰 권의 환경과조경지면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올인원잡지

설 연휴 첫날, 19969월호(101) 표지의 뽀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내며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뒤표지에 찍힌 정가는 6,300원이다. 200쪽에 달하는 분량, 광고 지면이 2021년보다 두 배 이상인 걸로 보아 잡지사 재정 상태가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편집부 데스크는 김인숙(편집부장대우)이고, 기자는 김찬주, 김진오, 정종일 셋이다. 한글 제호는 환경과조경’, 영문 제호는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 ‘환경 & 조경에서 환경과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45(19921월호)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크기는 몇 차례 미세하게 변했지만 글꼴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에 두고 분홍 코스모스를 클로즈업한 풍경 사진을 쓴 표지는 25년 전의 평균적 미감을 고려하더라도 올드한 느낌이다. 식자로 조판한 뒤 인쇄한 필름을 투명한 대지에 오려 붙이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애플의 쿽Quark 프로그램을 써서 본문 편집 디자인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갈한 멋이 있었던 1980년대 환경과조경보다 오히려 어수선해 보인다.

이 시절의 환경과조경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통권 101호의 꼭지들을 지면 순서 그대로 나열해 보자. 함께 생각해 봅시다, 뉴스, 내일을 위하여, 특별기획(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습지 보전), 초점(건설산업기본법 제정에 관한 조경 분야 토론회), 조경계 동서남북, 동아리탐방, 만나보고 싶은 사람, 신정보소개, 실무자코너, 특별기획시리즈(한국 전통의 도시공원), 기획시리즈(조경설계.시공시 고려해야 할 재료별 특성), 리포트, 해외석학에게 듣는다, 유학생활기, 수상작, 그리운 내 고향, 시가 있는 환경, 신간안내, 해외레이다, 인터넷정보, 편집자에게, 만평, 카메라포커스, 문화가소식, 편집후기.

올인원all-in-one. 정말 모든 게 잡지 한 권에 다 있다. 지식의 전달, 기술과 실무 정보의 제공, 완공작 소개, 최근 소식을 총망라한 구성이 조경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이채로운 꼭지는 93(19961월호)부터 139(199911월호)까지 이어간 그리운 내 고향인데, 조경환(105), 임현식(106), 전유성(107), 최백호(125) 같은 연예인부터 이해찬(93), 이한동(112) 같은 정치인까지 각계의 명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114(199710월호) 지면에서는 대선을 목전에 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그리운 내 고향을 만날 수 있다. 기사 타이틀은 어린왕자가 되어 자연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자 오락이다. 해외 설계사무소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따끈따끈한 근작과 새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게 가능해진 1990년대 말, 젊은 세대 조경인들과 조경학과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올인원환경과조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변화의 모색, 지면의 섹션화

창간 15주년 기념호인 19977월호(111)에는 월간 환경과조경의 과거.현재.미래라는 흥미로운 좌담 기사가 실렸다. 이재근(서울신문사 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서 편집에 관한 다각적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조경계의 유일한 잡지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한다(장태현, 청주대학교 교수), “일단 산만하다내용이나 편집 측면에서 색깔이 많이 결여되어 있(박정수, 범우사 편집국장), “내용과 편집의 부조화전체적으로 잡지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광고의 레이아웃”(서정우,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장), “잡지가 너무 크고 무겁다”(안영애, 현대엔지니어링 차장)에 이르는 신랄한 지적이 눈에 띈다.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투영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한다(정찬용, 중앙개발 차장)는 방향도 제시된다. 24년 전의 이러한 진단은 2014년 전면 리뉴얼(309)의 핵심 이슈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중략

 

환경과조경 395(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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