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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 환경과조경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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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남 일로만 여기던 기후 변화는 50일이 넘는 장마 끝에 피부에 와닿았고, 유례없는 감염력의 바이러스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이걸로 끝일까. 더 강력한 바이러스, 더 큰 재해가 언제고 들이닥칠 것만 같다. 기후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도 결국 환경 파괴가 근본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70억 인구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온실가스와 멸종 동물의 수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을 유지하는 지구 시스템을 회복 불능한 속도로 무너뜨리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다가 먼 미래 의외의 방향으로 지구가 인간에게서 해방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켄 리우의 공상과학SF 소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1에 수록된 싱귤래리티(Singularity) 3부작을 보고 나서다.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는 말은 인터넷에서 드립으로 흔히 쓰이지만 본래는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협하는 강력한 인공 지능AI이나 신체 일부가 기계로 대체된 기계 인간의 출현이 대표적 예다. 소설은 두뇌를 스캔해 컴퓨터에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발달로 더는 육체가 필요 없게 된 인간을 이야기한다. 디지털화된 트랜스 휴먼은 유한한 몸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고 아프거나 죽지도 않으며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이 같은 변화 앞에서 인간 본질과 인간성은 어떻게 될까.


멀쩡한 몸을 버리고 의식을 기계에 집어넣는 설정은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노인이나 육체의 연약함을 실감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싱귤래리티 1(‘카르타고의 장미’)에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본 에이미와 동생 리즈처럼. “어렸을 때 아빠가 얼마나 튼튼해 보였는지 기억나? 달려가서 아빠 품에 뛰어들 때면 무슨 벽에 부딪힌 것 같았어. 내가 사과를 따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나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앉혀 줬지. 하지만 언니, 그런 건 다 가짜야. 몸이란 것 자체가 가짜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거라고. 그저 혈전이 한 개 생겼다는 이유로.”2 이 일을 계기로 리즈는 자신을 데이터화하는 시범 프로젝트에 자원한다. 2(‘뒤에 남은 사람들’)의 배경은 특이점이 도래한 이후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월적 존재가 된다는 욕망에 이끌려 업로드를 택하고, 육체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잔류자로 남는다. 하지만 모든 생산 활동이 멈춘 세계는 폐허가 되어 잔류자들은 폐품을 주우며 어렵사리 살 수밖에 없다. 신념과 생존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인공 지능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트랜스 휴먼들은 계속해서 선동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한한 시공간을 누리는 황홀한 세계에서 함께 살자고.


이어진 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시간이 더 지나 잔류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의식 업로드는 보편화되고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을 누린다. 생각을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고 자기만의 다중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고차원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르네의 방은 4차원 형태이고, 아빠의 모습은 20차원이다. 반면 르네의 엄마는 여전히 육체를 지닌 3차원의 고대인이다. 다른 행성으로의 탐사를 앞둔 엄마는 르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질 세계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납작하고 지루할 줄로만 알았던 3차원 세상에는 데이터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상상도 못했던 생생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책의 머리말에서 켄 리우는 소설을 통해 희망과 공포로 가득한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고자 했으며, SF는 우리 자신과 사회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를 선명히 드러내고 강조하는 고성능 필터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했지만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던 언택트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스마트폰이 출현과 동시에 빠르게 생활을 잠식한 것처럼 낯선 기술은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삶에 틈입해 더 나은 일상을 만든다. 이대로 지구가 거주 불능한 환경이 된다면 (대체 행성을 찾지 않는 이상) 인류는 트랜스 휴먼으로의 진화를 돌파구로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수백 년간 줄기차게, 망가진 것을 회복하기보다 어떻게든 살 궁리를 모색하는 데 급급했으니까. 바이러스투성이 세상이라지만 종일 쓰던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새삼 좋고 감사하다. 공존과 회복을 위한 진보는 그저 순진한 바람일까?

 

각주 정리

1. 켄 리우, 장성주 역,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 2020.

2. 같은 책, p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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