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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분위기, 맥락, 주제
  • 환경과조경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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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기다리는 마음',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2017. ⓒ최재혁
 

고민 끝에 연재를 맡은 뒤 이 꼭지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이목을 끌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그 자체로 토론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구다. ‘그들설계하는 법으로 나누어 보자. 아마도 그들은 협의로는 조경 설계가’, 광의로는 우리가 마주 하는 환경과 관련된 유무형의 산물을 디자인하는 조경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어렵고도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설계하는 법이란 무엇이고, 과연 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이 앞선다. 아직 짧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법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설계하는 법은 다양하고 원칙이 없다는 점이다. 세상의 수많은 조경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공간을 설계하고 구현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 방법은 대상지에 따라 변화무쌍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설계하는 법을 어떻게 논의해야 할까? 크게는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첫 번째는 여러 조경가로부터 다양한 설계 방법론을 수집하고, 이로부터 동시대의 설계 방법론을 귀납적으로 유추하는 방법 이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설계를 이끄는 설계 기저의 것, 즉 설계 관점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정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설계 프로세스를 논의하는 방식에 비해 개념적일 수 있지만, 한층 더 본질적인 것 을 다룰 수 있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많은 경우의 수가 있지만, 한 조경가의 설계 방법과 이를 관통하는 설계 관점(또는 설계 철학)은 대개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 이다.


나는 표면적인 설계 방법을 예시하기보다는 그 밑바탕을 이루는 설계 관점을 논의함으로써 설계하는 법을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회의 연재를 통해 주관적 설계 관점에 대해 밝히고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를 예시할 예정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임을 밝힌다. 다양하고 다른 시각이 가능한 만큼, 생산적인 비평과 풍성한 담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재성의 발견과 실재화

연재의 첫 번째 순서인 만큼 설계 관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설계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설계가는 현실 공간의 조건과 맥락을 바탕으로 각자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그려 나간 다. 이는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하지만, 일이 잘 풀리는 경우(아마도 설계공모에 당선된다거나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에는 설계-시공-감리와 같은 산업적 시스템을 통해 실재 하는 공간으로 드러날 것이다. 만들어진다고 표현하지 않고 드러난다고 한 것은, 설계가가 이미 현실 속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잠재적인 공간(설계안)의 실마리를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설계가가 감지한 그 어떤 것이 이미 현실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시원한 그늘이 될 수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빛일 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즐기는 모습일 수도 있다. 좋은 설계란 현실 공간 안에서 그와 같은 잠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재화하는 설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잠재성을 감지하지 않은 채 책상 위에서 종이 속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고 짓는 일은 진정성 있는 설계 행위라고 보기 힘들다.

 

개념과 실재, 방향성

올해 대학에서 설계 스튜디오 수업을 하면서 설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설계하는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는 설계 행위가 개인의 미적 취향을 따르는 주관적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내가 보기엔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복잡다단한 설계의 사고 과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설계에 갓 입문한 학생에게 그런 사고 과정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설계의 과정은 개념적 요소와 실재적 요소가 표류하는 생각의 바다를 떠돌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행위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피라미드 다이어그램을 살펴보자. ...(중략)...


* 환경과조경 363(20187월호) 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 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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