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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적 주거 공동체
아홉 개의 ‘Co-Living Scenarios’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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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1층 플랫폼 지붕 상단에 설치된 ‘페블 앤드 버블’ Ⓒ김용관

 

현재 한국은 1인 가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까지 더해져 가족 구조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더 이상 이웃과 공동체라는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회가 된 듯하다. 새로운 사회적 가족과 대안적 주거 공간의 등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은 그리 쉽게 제시되지 않는 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 Co-Living Scenarios’ 전은 이러한 주거와 공동체적 삶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아홉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술관의 1층 플랫폼 지붕 상단에는, 건축가 유걸(iArc)의 ‘페블 앤드 버블Pebble & Bubble’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조그만 땅을 갖고 있던 누군가가 적은 예산으로 공용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는 동네의 3D 프린팅 숍에서 페블과 버블로 불리는 건축물을 출력하여 자신의 땅에 설치한다. 몇몇 사람에게 세를 내주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유걸은 “그동안의 건축은 너무 비싼 ‘특수해’였다”며,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의 ‘일반해’를 제안한다. 이 ‘일반해’는 3D 프린팅을 통해 쉽게 찍어낼 수 있으면서, 건축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구조를 취할 것이라 말한다.

본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 한구석에 ‘C BAR 일보’라는 제목이 붙은 신문 더미를 볼 수 있다. 작품의 형태에서 단지 건축적인 시나리오만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C BARCo-working Bar Architecture Research는 이 신문을 만들어낸 공동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C BAR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가상의 C형 바bar에 모여 생각을 나누는 일종의 협력적 사유 집단이다. 이들은 “물리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한다면 지금과 같은 주거 환경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서울시 예산이 그들이 제안하는 ‘공유 부동산 개발 펀드 운용계획’에 투자되었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공유 공간이 창출될 수 있을지 분석한다.

신문이 놓인 곳을 지나 녹색 플라스틱 골판지로 만들어진 책장 너머로 하얀색 건축 모형이 보인다. 건축가 신승수(디자인그룹오즈)와 조경과 건축을 함께 하고 있는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이 협업한 ‘Our Home / My City’다. 

이들은 “공간의 공유에 앞서, 사용의 공유와 사용 가치의 공유”를 위한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은 나의 방과 ‘우리의 방(옥상)’이 수직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우리의 방’들은 수평적으로 맞물려서 작동하면서 공유의 공간이 된다. 씨드머니seed money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인 운영 체제도 추가적으로 제공하여 자족적인 삶이 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유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실제 공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공동 주거에 대한 공부와 작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김경란Q(크크륵크득건축사사무소), 이진오J(SAAI), 김수영K(su:mvie) 3명으로 구성된 QJK는 ‘아파트멘트Apartment’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 시나리오의 배경은 아파트다. 이들은 공유의 행위를 만드는 방법보다는, 공간이 공유된 ‘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작품은 아파트 내의 ‘가상의 공공 공간’의 운영 방식과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진오는 “어떤 공간에서의 삶은 거주자가 그 주거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아파트에 (개인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닌) 공동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살게 되었을 때, 아파트는 전혀 다른 주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멘트를 마주보는 벽에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건축적인 방식으로 공공 주거의 형태를 제안하는 작품, ‘수직마을입주기’가 있다. 건축가 조남호(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는 “그동안의 주거는 상품에 가까웠다”고 평가하며,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주택을 짓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가 이 작품에서 제안한 주거 방안은 ‘조립식 모듈러 시스템’이다. 한 변이 6m로 이루어진 정육면체가 연속적으로 배치된 철골 구조 시스템에는 고층 주거의 구조와 설비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이 구조에 더해지는 ‘경골목구조 패널 시스템’은 주민들이 인테리어 수준의 작업만으로도 집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건물 속에는 쓸모와 필요에 따라 자족적 주거 형태가 조직되고, 여러 주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직적인 구조의 마을이 탄생한다.

전시 공간 한 구석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따라가면, 하얀 플라스틱 골판지로 만들어진 공간 속에 놓인 브라운관 TV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피타집 다큐멘터리’는 실제 ‘수직마을입주기’에서 말하는 인테리어 수준(?)의 자재를 가지고 집을 지은 학생들(PaTI 한배곳 일학년)의 동영상 기록물이다. 이 다큐에는 파주의 타이포그래피 학교인 PaTI의 ‘공간 만들기’ 수업 과정(강의: 장영철_와이즈건축)이 담겨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의 기록이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각목과 플라베니아(플라스틱 재질의 골판지)로 만든 판잣집에서 학생들은 수업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체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기록한다. 한 학생은, “어른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이기주의적이고, 그들이 SNS를 통해 만드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 편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말로 ‘피타집에서의 한 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대신했다. 다큐의 마지막 부분의 “주거와 같이 당연히 필요한 것을 쉽게 얻기 힘든 사회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인터뷰 내용도 다른 작품과는 다른 ‘실제’의 경험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새로운 1인 주거의 형태를 찾고 있다면, 건축가 조재원(공일스튜디오)의 ‘우공집 복덕방’을 방문하길 바란다. ‘우연한 공동체의 집’을 줄인 우공집의 작품 설명은 “현대인이 필요한 공간, 필요한 쓸모 이상의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 복덕방에서는 방, 서재, 사무 공간 등 하나의 기능만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시간 혹은 월 단위로 시간을 변경하며 사용할 수 있는 집도 제공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팝업오피스’에서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우공집을 지나서 식물로 가득한 우편함과 선반이 창가에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설치 작품은, ‘녹색의 공극porosity: 입체적 도시 영농’이라는 실험의 일부다. 건축가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은 현재 아파트는 “공극률 0에 육박하는”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공간이라며, 이러한 공간에서 ‘농업의 행위’가 만들어낼 가능성을 얘기한다. 그는 “주거만 담당하는 건물은 필요 없어질 것”이라며, 기능과 용도에 따른 공간 분류가 아닌 인간의 행위에 따른 분류가 필요해질 것이라 말한다. 이 우편함과 공구함은 아파트의 남는 공간에서 ‘농업’의 행위가 만들어낼 변화를 미술관 곳곳의 자투리 공간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3층 중앙의 ‘크리스탈 룸’에는 건축가 김영옥(Rodemn A. I)의 ‘3rd SCAPE’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녹색의) 우편함이 전시의 끝이라고 생각하며, 이 아홉 번째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을까? 전시 공간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깜깜한 공간 한쪽 구석에 놓인 스포트라이트를 따라가면 책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책장 하나하나에는 더 나은 주거의 모습을 그려낸 수많은 스케치와 입단면도가 자리하고 있다. 수십·수백 개의 도면을 통해 “삶의 영역을 나누고 기억의 영역을 공유하는, 함께 나누면서 사는 집”을 상상하게 한다.

전시를 보고나면 마치 공유 주거가 행복과 더 나은 삶의 기반을 제공할 것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형식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건축이 삶을 바꾼다? 이것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어떤 공간에) 들어 오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라는 한 건축가의 말은 우리가 공동체적 삶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건축가별 인터뷰’를 꼭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1월 2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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