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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보이후드
시간의 이중주
  • 환경과조경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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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2013)은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이 같은 배우들과 9년에 한 번씩 만든 세 편의 영화다.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루를 보내고 9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재회하며, 다시 9년 후엔 부부가 되어 그리스 카르다밀리(Kardamili)의 해변마을을 여행한다. 20대의 풋풋한 주인공들은 빈의 프라터(Prater) 공원의 대회전차에서 첫 키스와 함께 사랑을 확인한다. 정해진 여정을 깨고 그들이 찾는 놀이 공원은 어른도 아이가 되는 판타지의 장소다. 30대가 되어 다시 만난 그들은 파리의 오래된 골목과, 철로를 공원으로 조성한 프롬나드 플랑테를 걷는다. 그들이 걷는 긴 선형의 동선만큼 지나온 삶과 미래의 여정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다시 9년 후, 그들은 두 딸과 함께 그리스 해변 마을을 여행하며 폐허가 된 유적지인 메소니(Methoni) 성을 걷는다. 한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빛나던 장소는 이제 수많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시간의 흔적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그들은 20대처럼 풋풋한 사랑을 속삭이지 않고 30대처럼 꿈과 야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들의 긴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서 젊음보다 더 빛나는 40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비포 시리즈의 시간은 관객이 실제 체험하는 시간과 같다. 영화를 세 편 보는 동안 관객도 열여덟 살의 나이를 먹는다.

 

2014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시간을 모티브로 새로운 영화적 실험을 선보였다. 그의 신작 ‘보이후드Boyhood’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과 매해 늦여름에 일주일씩 만나서 완성한 영화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세 시간 동안 영화에서는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주인공 메이슨은 잔디밭에 드러누운 앳된 여섯 살 꼬마에서(첫 장면이자 포스터에 담긴 장면) 영화가 끝날 때는 열여덟살 청년이 되어 있다. 다음 해로 넘어갈 때는 특별한 메시지 없이 바로 그 다음 날처럼 부드럽게 연결된다. 2014년에서 하루 잤을 뿐인데 일어나보니 2015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들이 분장하지 않아도 되니 1년 후라는 메시지가 어쩌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어느 해에는 여드름이 늘어난, 또 어느 해에는 중저음의 변성기가 온 메이슨이 등장한다. 감독의 실제 딸인 깍쟁이 누나는 통통한 귀염둥이에서 치아 교정기를 낀 사춘기 소녀로, 시니컬한 대학생으로 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의 일상과 시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일주일에 한 번 들리는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을 메이슨은 누나와 함께 2층 방에서 내려다본다. 두 아이를 맡아 키우는 엄마는 생계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두 번 더 결혼하지만 결국 혼자 남는다.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는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가거나 볼링을 치러 간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계형 돌봄과 아버지와의 위락 활동과 조언으로 성장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릴 때 동생과 토닥거리며 지내던 영화 속 누나이기도 했다가 아이들 걱정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과 함께 12년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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