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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 환경과조경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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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 |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2

 

유키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된다. 불황기에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다. 그런데 아뿔싸! 임업이란다. 가무사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산골짜기로 가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부에서 지원하는 녹색 고용 제도에 가입되어 임업 연수생 신분이 된 탓이다. 이는 모두 선생님과 부모님의 합작품이다. 유키는 그 길로 쫓겨나듯 짐을 챙겨 기차에 올랐고, 도시 청년의 산골 적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은 최근 개봉한 영화 ‘우드잡’(2015)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전단지 모델로 나온 여자(나오키)에게 반해 임업 연수생에 자원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없이 강제로 떠밀려 시골로 가게 된다. 유키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문명화 된 첨단의 도시에서 자란 청년에게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시골의 숲은 감옥과 다름없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숲은 온갖 위험 요소로 가득 차있다. 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꽃가루 바람과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이吸蝨目와 거머리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억지로 끌려온 마당에 아무런 이유 없이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영화에서는 탈출 와중에 나오키를 만나면서 가무사리에 남을 결정적 동기가 생기지만, 원작에서는 숲 그리고 자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스스로 가무사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키가 자연과 소통하는 과정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는 점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몇몇 장면을 통해 이를 단편적으로 나열된 컷으로 표현하는 데 그친다.

반면 원작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유키의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물론 영화는 소리와 시각이 중첩된 공감각적 효과로 관객에게 가무사리 숲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만,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지점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한 감이 있다. “눈에 부러지는 나무도 살아 있는 존재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정확히, 신속하게 눈 털기를 하는 사람도 살아 있는 존재다. 나무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서 움직인다. 그런 나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나는 가무사리에 온 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다.” 유키가 자연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중도中道를 깨닫는 대목이다.

나무와 가까이 하며 ‘친자연적’임을 표방하는 임업이 사실 가장 직접적으로 나무를 해한다. 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고 땅에서 뽑아낸다. 모순이 느껴졌다. 이에 대한 해답은 책을 읽어 나가며 가무사리 사람들의 태도와 생활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아직 가무사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키는 요키(가무사리 마을의 토박이로 유키의 숲 생활을 돕고 산 일을 가르친다)가 넓은 잎딱총나무의 밑동을 도끼로 잘라내자 “불쌍하다”고 말했다. “불쌍하다고? 이 경사면에서 자라는 잡목을 전부 베어내지 않으면 땅 고르기를 못해. 땅 고르기를 못하면 묘목도 심을 수 없고. 그러면 우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굶겠지.” 이어 사장과 또 다른 팀원인 이와오 아저씨가 차례로 답한다. “모두베기를 끝낸 곳에 잡목이 무성해지면 나무도 자라지 않아. 오히려 꾸준한 식목 작업이 산의 환경을 유지시켜주지.” “일본의 삼림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드물어. 나무를 베고, 나무를 사용하고, 나무를 심어서 산을 유지하는 거야. 중요한 일이지.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벌채하고 그 자리에는 같은 종의 묘목을 심는다. 그리고 산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경건함을 유지한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나무에게 가하는 1차적 행위보다 그 정도와 마음가짐, 숲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느긋한 자세에서 자연과 관계 맺는 사람의 위치가 어디쯤이어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 묘사에 능숙한 작가는 이번에 그 재능을 풍경 묘사에 쏟았다. 가무사리의 풍경과 자연의 현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묘사된 장면을 통해 독자는 유키가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과 자연의 매력을 느끼는 지점을 공유하고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는 걸 공감하게 된다. 교감의 과정에서 유키는 숲의 초자연적 존재 들과의 영적 교류를 경험한다. 가무사리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산신에게 기대고 노하지 않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가무사리 사람들의 조언을 그저 시골 사람들의 실없는 소리로 여기던 유키는 여러 번 산의 영靈들과 조우한다. 이때 작가는 일상에서 착각으로 여기는 것들을 영적 존재로 상정하지만 이를 판타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인지되는 현상으로 그려 가무사리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살려내는 데 십분 활용한다. 도망칠 궁리만 하던 유키가 자연의 황홀경에 빠져 “아,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이 마음은 단계적으로 “갈수록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이 벅찼다”, “자부심이 충만했다”로 진화해 결국 가무사리 마을의 주민으로 남게 된다.

나는 뉴에이지를 즐겨 듣는다. 대부분 자연을 주제로 하고 때로는 음악에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귀가 심심하면 곁들여서 들을만하다. 가무사리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나아나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천천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를 가진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이 책을 펼치면 절로 “나아나아”를 읊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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