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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바이를 탄 조경가
조경가 고 이광빈의 1주기 맞아 추모전 개최
  • 양다빈
  • 환경과조경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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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된 ‘이광빈의 작업실’

 

작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청담동의 갤러리 원에서는 조금은 생소하지만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오도바이를 탄 조경가’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조경가 고故 이광빈(1972~2013)1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와 함께 공부하고 일했던 경신원, 김아연, 박희성, 배정한, 손방, 송영탁, 신준호, 안세헌, 오형석, 정욱주, 주신하가 준비하고, 가원조경, 현디자인,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91학번, 서울대학교 조경미학연구실이 후원한 이번 추모전에는, 고 이광빈이 생전에 설계를 하면서 그렸던 드로잉 수십여 장이 전시되었으며, 전시장 한쪽에는 그가 그림을 그렸던 작업실도 재현되었다. 또 ‘이광빈의 작업실’ 맞은편에서는 그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서커스Circus’도 상영되었다.

고 이광빈은 ‘손 드로잉’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조경가다. 단지 손재주가 있었다거나 보기 좋은 그림을 그렸던 조경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거의 모든 설계 구상과 작업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산되는 환경 속에서도 손 드로잉의 역할과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광빈의 드로잉은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글 제목인 ‘드로잉, 탐구와 소통을 위한 미디움’(『LAnD: 조경·디자인·미학』, 도서출판 조경, 2006)에서 나타나듯 ‘탐구’와 ‘소통’을 위한 매체로 기능했다. 그는 자신의 드로잉이 설계안을 재현하는 그림보다는 설계 과정에서 ‘창조적 탐구를 위한도구’로, 또 설계 주체 및 여러 이해 당사자 간의 ‘소통수단’으로 작동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탐구와 소통을 실험했다.

전시회가 마무리된 후, 여러 선후배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만나 조경가 이광빈과 이번 전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의 20대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덩치가 꽤 컸어요. 근데 그 덩치에 안 맞게 여렸고요. 재즈를 즐겨 들었죠.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정말 ‘꾸역꾸역’했어요(웃음).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죠.” 전시된 드로잉의 섬세함과 자신감에 차있는 선의 움직임에 놀라움을 표시하자, 김 교수는 “한 장의 드로잉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보았나요”라는 질문을 역으로 던졌다. 고 이광빈이 그림 한장을 그리기 위해 들였던 시간을 알면 그리 놀랍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설계를 참 좋아했어요. 자리에 앉아서 계속 그렸죠. 그렇게 ‘꾸역꾸역’, 아주 섬세한 그림을 그리다가도, 어느 순간 ‘할리 데이비슨’을 타러 나가곤 했어요.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또 그림을 그렸어요. 꾸역꾸역.” 전시회의 기획 의도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 “단지 한 개인을 추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길 바랐다”며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전시회가 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50평 넘는 전시실에 모두 펼쳐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교한 드로잉은 그의 설계에 대한 열정과 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의 추모전이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드로잉을 통해 “설계에 대한 애정은 물론 관심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은 지금의 젊은 세대, 그리고 과거의 열정을 잃어버린 듯한 기성 세대 조경가들 모두에게 설계가 주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설계에 대한 열정과 고민의 흔적을 보여줄 수 있는 ‘드로잉 전’을 계속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지금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수작업’이 설계과정의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며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드로잉 작품을 모아 한 곳에 전시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러한 드로잉은 전시를 목적으로 준비된 것들이 아니고, 중간 단계의 결과물이다 보니 보관이나 수집, 분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전시에도 방대한 양의 드로잉이 수집되었지만, 그의 사고의 깊이만큼 정교하게 분류하고 기록하기에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조경 분야도 아카이빙archiving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최종 결과물들만큼 중간 과정이나 체계적으로 분류된 기록들에서, 조경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발판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조경가 이광빈이 좋아했던 음악가 빌 에반스의 가장 빛나는 시기로 평가받는 작품은 ‘익스플로레이션즈explorations’다. ‘탐험’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을 나타내며, 공간이든 음악이든 창조적인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다. 고 이광빈은 드로잉 또한 그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설계자가 내적 사고를 통해 생산해내는 결과물이며 소통 수단이자 설계를 완성하는 도구라 했다. 그가 드로잉을 통해 실험하고자 했던 ‘탐구’도,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의 가치를 보여준다. 재즈를 즐겨 듣고, 키보드로 음악을 만들고, 외롭고 답답할 때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를 탐험했던 ‘오도바이를 탄 조경가’ 이광빈, 그의 설계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수많은 드로잉 속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라 믿으며, 이번 전시가 훗날 그의 ‘탐구와 소통을 위한 드로잉’을 재평가하는 기반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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