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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도시 밖의 도시, 도시 안의 도시
  • 환경과조경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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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제기동의 격자형 블록과 자연발생형 블록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협동과정 도시설계연구실 길은정 그림

 

제기동, 구로4동, 황학동

제기동 약령시장, 남구로역 주변의 빌라 지구, 황학동 중앙시장과 같은 지역을 거닐다 보면, 언뜻 유사해 보이는 서울 내 저층 고밀지의 다채로운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제기동 청량리역에 인접한 약령시장과 청과물시장 일대는 1934년 6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서울 밖 교외 주거지로 낙점된 곳이다.1 이후 1980년대까지 지속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양호한 주거지 조성을 위한 기반 시설이 들어서지만, 온전한 주거지로 자리를 잡기보다는 1960년대 전후부터 전국의 약재상과 청과물 도소매 상인의 주요 활동 무대로 널리 이용된다(그림1). 황학동에는 한국전쟁 이후 벼룩시장이 개설되었고, 이는 점차 주방 기구부터 각종 식자재와 양곱창을 판매하는 초대형 재래시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는 물품 판매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식당을 개점하려는 자영업자들에게 간판과 메뉴, 식자재와 주방 용품을 포함한 원스톱 창업 컨설팅도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왕십리 뉴타운과 청계천 변 주상 복합 개발, 그리고 동대문 패션 상가의 변용과 함께 황학동은 도심 속 변두리 공간으로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그림2). 구로동은 개발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 서울시 정책에 따라 영등포 부도심권의 커뮤니티 센터—이를테면 불광동이나 수유동과 유사한 기능—로 지정되었다.2 비교적 영세한 주택지가 우선 개발된 후, 1990년대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남게 된다.3 그럼에도 토지구획정리가 일괄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격자형과 자연 발생형 가로가 혼재되어 있고, 과소 필지와 부정형 필지가 다수 남아 있다. 여기까지는 세 지역이 어떻게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신시가지로 조성된 서울의 구시가지

세 지역은 이러한 차이점과 함께 흥미로운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20세기 중반 사대문 밖 ‘신시가지’로 개발된 21세기 서울의 저층 ‘구시가지’라는 점이다. 이들 대상지는 1920~1940년대까지 논밭이었거나 혹은 일부 가옥이 점유하고 있는 미개발지였다. 도심부 인근이라 고용 중심지로부터의 접근성이 좋았고, 넓고 평평한 배후지를 갖고 있어 해방 전후 신시가지 개발을 위한 적지로 여겨졌다. 1940~1960년대 이후 주요 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현재 다수의 노후화된 주택과 퇴색한 상업 판매 시설이 뒤섞여 있고, 이 지역 안팎으로는 각종 뉴타운과 지식 산업 단지가 개발 중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러한 서울의 구시가지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있는 ‘낀 세대’다. 수백 년에 걸쳐 역사 문화 자원을 축적한 구도심이나 현대적인 감각으로 단장한 신시가지 사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어정쩡한 주변인이다. 늘 전환기의 위기에 내몰리면서도 구도심과 신시가지가 누리고 있는 각종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는 오래 거주한 사람과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뒤섞여 있어 상인들의 결속력도, 거주지의 사회적 자본도 취약한 편이다. 생활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낮지는 않지만 대체로 쇠퇴가 진행 중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던 판매 시설 임차인들마저도 상권 쇠락에 따른 무력감을 호소한다(그림3). 그럼에도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의 대상이 될 만큼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지는 않다. 토지 소유 구조도 매우 복잡하고, 더욱이 최근 왕십리 뉴타운과 같은 21세기형 재개발로부터 20세기의 저층 시가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신시가지의 구시가지화

이렇게 오늘날 서울의 구시가지는 대체로 전환기의 주변인으로서 정체와 쇠퇴,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고가 공존하는 장소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식의 이분법적 처방전이 요구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과거의 신시가지가 오늘날의 구시가지가 되면서 때로는 낙후되고 때로는 새로운 수요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도시다운 특질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도시 공간의 낡음과 닳음, 개별 건축물에 대한 다시 쓰기와 고쳐쓰기, 그리고 새로운 용도를 담기 위한 점진적 재개발을 통해 소박하지만 자연스러운 멋과 일상의 격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성숙미를 더해가고 있는 지역의 사례는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맨해튼 동쪽에 있는 브루클린이 그러한 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브루클린 브랜드Brooklyn brand’나 ‘브루클린 라이프 스타일Brooklyn lifestyle’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4 런던에 위치한 복합 문화 클럽인 ‘브루클린 볼Brooklyn Bowl’, 스톡홀름에서 맛볼 수 있는 ‘브루클린 맥주’, 독일과 스위스 등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는 ‘브루클린 스펙터클즈Brooklyn Spectacles’ 안경은 브루클린 브랜드가 해외 수출에 성공한 사례다. 더 이상 값비싼 맨해튼에 대한 저렴한 대체재로서가 아니라 재능 있는 예술가나 젊은 창업가, 스타일리스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겨지면서 브루클린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브루클린이 처음부터 이러한 지역성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브루클린은 1810년대 맨해튼에서 증기선이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새로 개발된 신시가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뉴욕 외곽에 만들어진 신규 교외 주거지이자 지금의 구시가지인 셈이다.5 1920년대 자동차의 대중화와 함께 폭발적인 도시화를 겪었지만, 20세기 후반 지역의 쇠퇴와 함께 각종 폭동과 사회 문제의 진원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시가지가 구시가지로 변하면서 새롭게 형성된 지역성이 오래된 지역성을 대체하고, 부분적인 증축과 재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아가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적 구성원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때 비로소 모방하기 어려운 도시의 품격이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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