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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
  • 환경과조경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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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하지만, 사실이 세상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때로는 텍스트가 가장 적절한 매개medium가 아니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의 사람들Citizens of No Place』은 그러한 “감수성 강한 생각들”을 만화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표현한다. 그렇다. 이 책은 ‘만화책’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대사로 시작된다. “잠깐, 자네말은 잔디가 나쁘다는 건가”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그래서 이젠 텍스트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잔디를 ‘까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물론 잔디 탓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1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떠난다. 시나리오만 보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지구를 찾는 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중력이 없다는 것, 그런 조건에 맞는 새로운 주거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플롯plot의 기본 바탕이 되는 설정일 뿐이다.

제2의 둥근 땅을 향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 우주선’에서 어린 건축가는 그의 인스트럭터instructor에게 자신이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1 기법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그는 34컷에 걸쳐 복잡한 수식과 ‘있어 보이는’ 다이어그램을 설명하지만, 인스트럭터는 단 두 개의 문장을 덧붙일 뿐이다. “직관적인 것에 대해 그렇게 객관적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냥 마음 편하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젊은 건축가의 동공이 확대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기서 만화라는 매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다. 히메네즈 라이Jimenez Lai는 만화의 형식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대사’를 통해 서술과 묘사, 그리고 비판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관계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많은 설계가가 단편적인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고 모듈module화시켜 적용하려는 성급한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설계를 하는데 있어, 논리가 직관적인 결과물의 ‘설명을 위한 설명’으로 ‘생산(혹은 편집)’되는 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일까(젊은 건축가는 직관적 결과물을 소개하기 위해 ‘논리’를 끼워 맞췄을 수도 있다) 1,187일 하고도 17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젊은 건축가는 다시 한 번 인스트럭터를 마주하게 된다. 인스트럭터는 젊은 건축가가 들고 온 ‘단면 위주의 계획’을 비판하며, “(평면은) 전일주의Holism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명하게 콘텍스트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건축가의 답변이 이어진다. “하지만 평면은 인간은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신의 시각으로 보게 되잖아요.”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이 순간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평면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있어보다 편리하고, 조건 별로 구분하여 공간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객관성이 진정으로 객관적인가? 평가를 위한 매개가 경험의 질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면 그 매개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분명 흥미로운 평면은 정리된 모습이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1인칭 관점에선) 재미없는 모습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해 흥미로운 단면은 정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공간에서의 경험’으로서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설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의구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런 의구심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받아본 적이 없다. 35세의 젊은 건축가 라이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까? 그는 그의 의구심을 서로 다른 (그러나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10개의 이야기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며 말 그대로 ‘별 말 없이’ 풀어놓는다. 이 ‘만화책’은 건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간을 다루거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며 당신이 들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 글을 읽고 페이퍼 프로젝트paper project만을 진행해 온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려 할 수도 있겠지만. “이봐. 그건 네[니] 생각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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