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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역 고가를 넘어올까?
고가산책단의 두 번째 고가포럼
  • 환경과조경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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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산책단은 지난 4월 두 번의 고가포럼을 통해 서울역 고가와 관련한 논란의 현실과 대책을 진단하고 지향점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4월 28일 열린 두 번째 포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다루었다. 
ⓒ이형주


악순환의 고리, 문화백화현상

김남균 회장(맘편히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은 ‘문화백화현상’을 소개하며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공멸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문화백화현상은 김회장이 제안한 개념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떤 공간에 예술가들이 이주해 터를 잡는다. 이후 예술인들과 교류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는데,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한다. 이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합세하면서 임대료가 올라가며 집값에도 영향을 미쳐 감당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프랜차이즈가 상가를 점령하면서 문화의 다양성과 소비의 매력이 떨어져 30대 이상의 구매력 있는 연령층의 이탈이 발생한다. 포화 상태에 이른 상점들은 팔아도 이윤이 남지 않게 되며 프랜차이즈는 철수하고 유동인구는 감소한다. 빈 점포가 늘어나 건물주들의 부도로 이어진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황에 이른다.

김 회장은 법 제도를 보완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법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일정한 수준의 임대료는 보호되지만 오히려 임대료가 높은 세입자는 보호되지 않는다. 건물주가 바뀔 때 기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는 환산보증금액(보증금+월세×100)이 일정 수준 이하(서울은 4억 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3억 원, 광역시는 2억 3천만 원)인 임차인에게만 5년 계약 갱신 요구권을 인정해주었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높은 임대료를 거둬들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는 안을 담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5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개정안은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최초 임차 시기부터 5년간 영업 기간을 보장하는 조항을 넣었다. 또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지 못하게 손해배상 규정도 추가했다.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수수하는 행위’,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으로 하여금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한 경우’,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한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 계약 체결을 거부한 경우’를 방해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임차인은 임대차 종료 후 3년 이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방해 행위를 입증하고, 감정평가액 산정과 변호사 선임 비용도 부담하도록 규정해 실제로 권리를 보호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임차인이 다음 임차인을 고를 수 있고, 계약이 끝난 후 2개월간 유예기간을 두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보호 기간이 5년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과 재건축의 보상 범위가 없다는 맹점이 있다. 김 회장은 이를 두고“최소 법으로 10년은 보호해야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진 이사(동림피앤디)는 “어떤 규제도 완벽하지 않다”며 규제에 앞서 의식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제안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여러 도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에 대해 김남균 회장은 “의식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법이 의식을 만들기도 한다”며 법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되고, 건물주도 앞에서 언급한 문화백화현상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공동체는 있는가

남기범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는 “도시의 변화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상을 일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도시재생 전략의 하나로 다양한 마을공동체사업이 시행되고 있는데, 사업의 주역으로 나선 공동체가 부동산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리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남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진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그에 따르면 폐쇄적이지만 중산층이 오히려 공동체의 형태를 잘 형성하고 있다.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항력을 키우자는 주장들이 제기되지만, 지역 공동체가 그들만의 문화를 도시 전체에 적용하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남 교수의 생각이다. “나만 주장하는 문화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문화를 통한 도시의 경쟁력이 시각적으로나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냐를 따져볼 일이다.”

설재우(서촌지역활동가)는 “지역의 변화가 단순하게 경제적 논리로 변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실 “상인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라며 변화의 맥을 달리 봤다. 그에 따르면 본인의 장사나 활동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나 주변에 주는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주변 환경을 돌아보지 않는 상인이나, 친한 사람끼리만 모인 공동체가 그 지역의 주민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이해만을 바란다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는 공동체 혹은 개인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지역과 정보를 공유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꽃(문래동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413)도 지역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보탰다. 건축가 홍윤주(진짜공간)는 문화예술인들이 마을 사람을 쫓아내기도 한다고 지적했는데, 삶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시에서의 예술을 무조건 ‘선善’이라 규정하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잡히지 않는 해법, 함께 풀어갈 숙제

이날 포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많은 이야기오갔는데, 화두를 던지는 정도로 일단 마무리 되었다. 시리즈로 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니 차후 더 많은 담론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여러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몇 가지 대안도 제시되었다. 법 제도의 정비와 캠페인을 통한 인식 제고, 세입자의 지역 사랑, 관계 맺기 등이 문제 해결의 단서가 되었다. 그런데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관이나 정부 관계자가 관조하는 입장이 아닌 주체가 되어야 실행 가능성이 보이는 일도 있고, 여러 이해당사자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는 특정되지 않는다. 연관된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서울역 고가를 매개로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는 고가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다. 유기체로서 도시의 구성원이 함께 풀어갈 숙제다. 고가산책단이 제시할 새로운 모델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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