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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귤북지, 서울역 고가
  • 환경과조경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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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2일. 서울역 고가는 무척 부산했습니다. 1970년 준공 이후 무려 44년 만에 처음으로 보행자에게 고가 도로를 개방했기 때문이었지요. 저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사진기 가방을 메고 서울역 고가로 향했습니다. 자동차가 주인이던 도로를 걷고 있자니 왠지 모를 ‘통쾌함’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걷다보니 자동차 안에서 스쳐보기만 했던 주변의 건물들이 하나하나 자세히 눈에 들어오더군요. 역시 도시는 걸으면서 느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걸어 나가니 예전 서울역사건물이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이런 건물을 내려볼 수 있는 기회라니! 옆으로는 길게 뻗은 한강대로의 모습도 보이고. 고개를 조금 더 옆으로 돌리니 세종대로 옆 고층 건물들 사이로 남대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에게 내준 17m 높이의 고가 도로에는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주 멋진 경관이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서울을, 그것도 서울의 가장 중심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전망 장소로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달 다시 고가 개방 행사를 진행할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크게 반대하는 분들은 주변의 상인들입니다. 특히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중림동과 회현동 일대의 상인들은 고가 도로를 공원화할 경우 차량 유입이 중단되면서 상권이 위축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고가 도로 인근의 12,000여 개의 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약 4만여 명의 생계가 이 프로젝트와 직결되어 있는 만큼 당장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에 개최하려고 했던 고가 도로 활용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는 주변상인들이 대체 도로 우선 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해당사자가 관여된 프로젝트에서는 항상의견 조율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프로젝트의 진행을 통해 이익이 생기는 그룹과 손해를 보는 그룹간의 갈등은 매우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러한 갈등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충분한 논의 과정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환경과조경』 2014년 11월호를 참조). 그리고 논의 과정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는 초기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반대 의견을 낳은 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를 제외시켰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 같은 것이 반대 의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이런 프로젝트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여러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야 합니다.

‘서울의 하이라인’ 혹은 ‘한국판 하이라인’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흔히 붙이는 제목입니다. 도심의 고가 도로(하이라인의 경우 고가 철도 였지만)를 공원처럼 만들겠다는 공통점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비유인 셈이지요. 게다가 서울시가 당당히 하이라인을 ‘벤치마킹’했음을 내세우고 있고 박원순 시장이 미국 방문 때 이르면 2016년까지 뉴욕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히면서 두 프로젝트의 연관성은 더 확고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말 서울역 고가 도로가 서울의 하이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 되어야 할까요? 우선 하이라인과 서울역 고가 도로는 상당히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뉴욕 하이라인의 경우는 고가 철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주변 공업용 건물의 구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현재의 하이라인도 주변 건축물들과 물리적으로 잘 엮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태생적으로 하이라인 철도는 주변 건물과 일체화하기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 도로의 경우는 차량 통행을 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주변 건축물들과 분리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변 건물과의 관계를 새로 맺는다는 게 현재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상태입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뉴욕의 하이라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시민의 일상적인 이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위를 많은 사람이 걷기를 희망한다면 하이라인과는 전혀 다른 이유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조건에 맞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과거 ‘서울숲’을 조성할 때에도 ‘서울의 센트럴 파크’를 지향했던 적이 있었지요. ‘서울숲’ 이전의 많은 신도시에도 ‘중앙공원’이 양산됐습니다. 브랜드를 빌려오면서 얻게 되는 이득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데에는 이만한 방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브랜드를 수입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도 우리 브랜드를 자신있게 내 놓을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요?


지난 5월 13일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의 당선작으로 MVRDV의 비니마스Winy Maas의 제안을 선정했습니다.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 서울역 고가도로 전체를 나무에 비유하여 인근 지역으로 뻗어가는 유기적인 디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가 위에는 국내의 다양한 나무를 가나다순으로 심어 수목원을 만들고,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지역 상권과 연계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네요. 우선은 서울의 하이라인을 꿈꾸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남귤북지南橘北枳’는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강남에 심었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서로 다른 기후와 풍토 때문에 탱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즉, 주위 환경에 따라서 같은 인재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하이라인이라고 한들 태평양을 건너왔는 데 뉴욕의 하이라인이 서울에서도 같을 수는 없지않을까요? ‘프롬나드 플랑테’가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하이라인’으로 성공한 것처럼, 태평양 건너 새로운 ‘서울역 고가’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업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지냈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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