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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동주
심상의 풍경
  • 환경과조경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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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로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한 토요일이었다. 한 주를 간신히 버텨낸 몸, 주말이 되자 작정한 듯 식은땀이 나며 제대로 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따라 병든다. 작은 일에 서운해지고 화나고 상처받는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까지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작은 전시관에는 시인의 고향 집 나무 우물을 가운데 두고 백석의 시를 정성껏 옮겨 적은 원고지와 잉크로 눌러쓴 그의 시들이 유리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영화 ‘동주’의 영향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방문객이 적잖았다. 물탱크 천장을 열어서 만든 중정 ‘열린 우물’에 서서 물탱크를 그대로 보존한 전시관 ‘닫힌 우물’에서 상영 중인 영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담겼던 누런 흔적이 남아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에서 올려다보니 잔뜩 찌푸린 네모난 하늘이 보였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빨강, 파랑,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비슷한 크기의 배낭에는 하나같이 등산 스틱이 꽂혀있었다. 시인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타국의 교도소에서 숨지고 수십 년 후, 그가 잠시 머물렀던 경성의 어디쯤에서 등산복을 입은 해맑은 사내들과 호기심 어린 연인들과 몸살에 식은땀을 흘리는 조경하는 여자가 그를 만나러 온 풍경을. 그가 내려다봤을 시내 전경까지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어마어마한 소나기가 내렸다.

영화 ‘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조명이 없었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이준익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이 투영된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 주목할 만한 독립운동 기록은 없으며 29세 나이에 타국의 교도소에서 독립되기 몇 개월 전에 숨지다.’ 이 드라마틱한 윤동주의 삶을 그리는 전기영화라면 자칫 감상에 빠지거나 평이해질 수 있다. 감독은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인간 윤동주가 체험한 혼란의 시대와 그의 주옥같은 시를 ‘현재’라는 시공간에 입체적으로 소환해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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