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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이라인 파크를 방문하려는 당신에게
Column: A Special Route to the High Line Park
  • 환경과조경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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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특별한 경로로 뉴욕 맨해튼의 서쪽 끝, 하이라인High Line 파크를 방문하고 싶다면, 뉴욕 동쪽 퀸즈의 끝 플러싱에서 7번 전철을 타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길을 택한다면 고가철도 위로 퀸즈를 관통하며 한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그리스, 중남미 등 적어도 10개 이상의 이민자 밀집 지역의 전경을 차창 너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러싱 역의 불결함과 이민자 구역의 퀴퀴함이 고단한 일상에 대한 당신의 공감 능력을 자극해도 좋고, 도시 빈곤과 이주민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정당화해도 괘념치 않겠다. 종점인 허드슨 야드 역에 도착하면 이 역의 쾌적함에 당신은 덩달아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이런모든 감정이 당신에게 엉겨 붙기 시작한다면, 이제 하이라인 파크에 들어설 채비는 끝났다. 하이라인 파크가 초행길이더라도 명색이 공공 공원public park이라는 이곳의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해가 긴 여름이라도 10시면 문을 닫는다. 허드슨 야드에서 가까운 34번가로 통하는 통로는 공사 중이라 막혀 있다.

공원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역은 뉴욕에서 가장 힙한 주상복합 지역인 미트패킹 구역과 첼시다. 설계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딜러는 이 공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의 공간이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흔한 노상 카페나 매대도 하이라인에는 없다. 도시의 별천지다.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3월까지는, 하이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며, 과거의 흔적이 현재와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지 사색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1.45마일의 하이라인은 거대 도시 뉴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향유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와 관광객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을 듯하다. 하이라인은 산뜻한 지속가능성의 표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커져가는 불평등의 속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2009년 9월 개장한 하이라인의 짧지만 불편한 역사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임한 1994년에서 2001년 사이, 맨해튼에서는 수많은 시 소유 건물이 철거되거나 개발업자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뉴욕 전체를 휩쓴 콘도미니엄 붐은 줄리아니의 민영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주변에 섹스숍과 스트립 조인트가 사라지고 디즈니 스토어와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것도 이즈음이었다. 임기 후반인 1999년, 줄리아니는 미트패킹 구역에서 첼시에 이르는 하이라인을 철도 회사로부터 단돈 1달러에 사들여 철거하려 했다. 주변 건물주들도 철거 계획에 찬성했다. 그해 8월, 첼시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철거안은 무난히 통과될 수 있을 듯 보였다. 오직 두 명만이 반대했다.

작가 지망생 조슈아 데이비드와 비영리단체 컨설턴트 로버트 해먼드, 두 사람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출범시키기로 의기투합, 뉴욕시에 소송까지 하면서 철거 계획을 저지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라인 공원화 프로젝트가 제 궤도에 오른 것은 후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때였다. 2002년에 취임해 2012년에 퇴임한 블룸버그는 블룸버그통신의 창업주인 억만장자다. 그는 공공 정책 입안이나 실행의 적잖은 부분이 비효율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공공 서비스에 고객 서비스적 요소를 가미하는 정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와 기업 서비스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공공의 안녕이 목적이지만, 후자는 이윤 추구나 고객 만족 따위가 목적이다. 블룸버그의 이러한 신념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가 자

립 공원self-sustaining park 개념이다. 민관이 기금을 조성해 공원을 건설하고 그 후 관리 비용은 민간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사실 공원 주변의 건물주와 사업체가 공원의 관리 예산을 부담하는 것은 뉴욕에서는 꽤 오래된 거버넌스 모델이다. 1980년에 구성된 센트럴 파크 컨서번시는 현재 공원 관리에 필요한 연간 6천5백만 달러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 개념을 건설 단계로 확대했다. 하이라인뿐만 아니라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 거버너스 아일랜드가 자립 공원으로 지어졌다. 하이라인의 경우 예산의 2억3천8백만 달러 중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모은 기금은 18%에 불과한 4천4백만 달러수준이다. 그나마 기금을 낼 수도 없고 공원 관리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구성할 능력도 없는 중산층 이하의 이웃들은 도시 녹지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 1930년대 이후 최대의 공원 확장을 블룸버그는 자신의 최고 업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뉴딜정책 때의 공원 조성은 불평등의 해소였지만, 블룸버그의 공원 건설 모델은 불평등의 심화였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은 연간 관리 예산 1천2백만 달러의 95%를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이라인은 상당한 기간 자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번성할 듯하다. 1구역 개장 1년 만에 주변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휘트니 뮤지엄도 근처로 이사 오고, 북쪽 허드슨 야드에는 고급 식당가와 쇼핑가가 조성될 계획이다. 사실상 공공 자금으로 조성된 시소유의 공원이지만 관리 단계에서 공공의 예산을 받지 않으니 개장 시간부터 주변 개발까지 시정부가 공공재의 관점에서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하이라인 파크는 녹지라는 공공재가 사유화된 하나의 상징이다. 공공재가 사유화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답한다. “부자들은 공원이나 교육, 의료나 개인의 안녕을 정부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더욱 동떨어지게 될 것이고, 보통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알량한 공감 능력도 잃어버린다. 또한 부자들은 그들의 부의 일부를 앗아다가 공공의 선에 투자할 강력한 정부가 들어설까봐 염려한다.”

이런 탓에, 하이라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당신에게 플러싱에서 7번 전철 타기를 권하고 싶다. 고가철도를, 즉 하이라인 위를 달리는 동안 당신은 차창 밖 풍경에서 넉넉지 못한 이민자 지역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원이 특권인가 권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공공재로 향유되어야 하는지 사적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과 번민을 품게 된다면, 7번 전철로 시작한 당신의 하이라인 파크 방문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설갑수는 뉴욕에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The National Underwriter, BusinessInsider.com, Labor Notes, Progressive Magazine 등에 근무하거나 글을 실어 왔고, 국내의 오마이뉴스와 시사저널에도 기고한 경험이 있다. 1999년, 광주항쟁 백서인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를 영문 번역한 『K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를 UCLA Monograph Series를 통해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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