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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빅바이스몰, 관객참여형 잡담회 ‘빅토크’ 개최
  • 환경과조경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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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아

 

잡담은 때때로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한다. 많은 사람들이 몰아치는 과제나 며칠째 이어진 야근에 지쳤을 때, 어떤 고민이 생겼을 때,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카페나 술집을 찾곤 한다. 맛있는 음료나 음식이 목적일 때도 있지만, 잡담이 목적일 때도 많다. 잡담에는 뚜렷한 논점이나 결론이 필요하지 않다. 직장 상사나 교수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처럼 논리적으로 말하기 위해 긴장할 필요도 없다. 떠오르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놓다보면 고민에 대한 해결 방안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잡담의 힘이다.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가진 생각을 잡담처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도시와 공간, 사람과 지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빅토크Bigtalk’에 참여할 수 있다. 빅토크는 이를 주최한 빅바이스몰이라는 단체의 이름에 걸맞게 소수의 강연자가 다수의 관객에게 말하는 일반적인 형식small for big이 아닌 다수의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관객참여형 잡담회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 3월 24일, 제1회 빅토크가 시청역 인근 스페이스노아 4층에서 열렸다. 이날 빅토크는 ‘도시 그리고 생존: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도시·건축·조경 분야의 학생들과 실무자 등 40여 명이 참석해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참석자들은 강연장 입구에서 포스트잇과 볼펜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나에게 디자인이란’, ‘나에게 서울이란’, ‘생존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은’ 이 질문은 강연의 뼈대이자 관객들을 잡담회에 참여시키는 촉진제였다. 행사 시작 전, 박영석(빅바이스몰 대표)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나 궁금한 점 등을 포스트잇에 작성해주기를 부탁했다.

 

행사는 크게 스몰 토크인 1부와 잡담회인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사회자 중 한 명인 문정석(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 센터장)이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후 스몰 토커인 조반장(고가산책단 대표), 박경탁(삶워크숍(salmworkshop) 소장)의 강연이 이어졌다.


경계와 욕망

조반장은 디자인은 ‘경계를 걷는 일’이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서울역 고가는 과거 차가 다니는 도로였지만, ‘서울역7017 프로젝트 국제 설계공모’의 당선작인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의 계획안에 따라 수목이 가득한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렇게 조성된 공원은 기존의 서울역 고가가 뻗어 있던 서울 곳곳을 연결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울역 고가는 과연 길일까, 공원일까”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중 이어진 갑작스러운 질문에 관객들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를 본 그는 “어렵다. 디자인이란 그런 거다”라며 다양한 영역이 만나는 지점을 균형감 있게 디자인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서울 7017 프로젝트’가 시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진행된 점에 아쉬움을 표하며 자연스럽게 ‘나에게 서울이란’이라는 질문의 답을 이어나갔다. 조반장에게 서울은 산책하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먹잇감’이다. ‘재생’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개발’을 막아내는 방법과 시민과 함께 도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하며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노려보던 주인공처럼 서울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탁은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디자인은 ‘튀고 싶은 마음’, ‘나를 봐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과 같은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벤틀리 리저브 빌딩Bentley Reserve Building의 ‘페이퍼 폴딩 인스톨레이션Paper Folding Installation’도 남들과 다른 것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빌딩의 로비에는 매년 새로운 예술 작품이 설치되는데, 2013년 이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남들처럼 캔버스에 인쇄한 그림을 걸고 싶지 않았다. 40만 원이라 는 예산 안에서 작업이 가능한 재료를 찾다가 종이를 선택하게 되었고 가로 3m, 세로 3m의 종이에 칼집을 내고 손으로 일일이 접어 조립하기 시작했다. 매우 고된 작업이었지만 덕분에 벤틀리 리저브 빌딩의 벽면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전시 될 수 있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현재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해루HAERU’라는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자신에게 서울은 아직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

1부가 끝난 뒤, 화이트보드 위에 세 가지 질문의 답이 적힌 노란 포스트잇이 가득 붙여졌다. 이 중 몇 가지 흥미로운 답변들을 뽑은 후, 2부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함께 나눴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있어 서울이란 ‘마음에 안 드는 엄마 집’이라고 답했다. 오랜 시간엄마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집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함부로 손댈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점이 서울과 닮았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다 다르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유지하는 기존의 시스템을 나 하나를 위해 바꿀 수 없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서울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디자인이란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는 답에 다른 관객이 “우리는 익숙한 공간을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새로운 것을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의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박경탁은 오히려 “디자인의 고객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헤어 디자이너와 동네 미용사 중 누가 더 훌륭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후 “고객이 동네의 아줌마인지, 헤어 쇼에 참가하는 관객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덧붙였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세 가지 질문들뿐만 아니라 도시·건축·조경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관객들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빅토크는 단순한 잡담회에서 멈추지 않고 이 안에서 오고간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제2회 빅토크는 ‘도시 그리고 생존: 겸업, 미필적 고의에 의한(가제)’이라는 주제로 5월 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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