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청소년 보호소 근처 텍사스 공항에 내렸다. 우버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색 밴이 도착했다. 한때 열여덟 개 바퀴가 달린 화물 트럭으로 캐나다-미국-멕시코를 오가던 백인 기사는 고향으로 돌아와 물건 대신 인간을 실었다. “A에서 B로 이동하는 일일 뿐”이라며 그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곧 ‘하이웨이 투 헬(highway to hell)’이라 불리는 285번 고속도로에 올라타 하염없이 직선으로 달렸다. 무심히 돌아가는 석유 채굴기 뒤로 소각탑이 맹렬히 열기를 뿜었다. 회갈색 평야엔 텀블위드(tumbleweed)가 바람 따라 앙상하고 둥근 몸을 굴렸다. 고속도로에서 내리자 허허벌판에 홀리데이 인(Holiday Inn) 녹색 간판만이 빛났다. 갈색의 3층짜리 호텔 건물 뒤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담장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이어졌다. 저 담장 뒤에 아이들이 있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비자도, 보호자도 없이 넘어온 아이들이.
“아이스(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시설은 너무 추웠어요. 거기서 만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버스에 올라탔어요. 한참을 가고, 졸다 깨니 밤이더라고요. 여기 도착했을 때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둡고 무서웠던 것만 기억나요.” 청소년 보호소의 첫인상을 물었을 때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다.
2021년 한 해 동안(각주 1) 미국 국토안보부는 체류 허가도, 보호자도 없이 넘어온 미동반 아동(unaccompanied child) 12만 명을 수용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8배 증가한 수치로, 급증의 이유는 두 가지다. 미국 입국이 가능해져서, 그리고 고향을 떠나야만 해서다. 1기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공중 보건을 명분으로 미국-멕시코 국경의 망명 신청자와 이민자들을 추방했다. 이후 들어선 바이든 정부가 미동반 아동에 대해 이 조치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아이들은 미국 국경을 넘어도 추방되지 않고 보호 절차를 받게 됐다. 미국 입국의 기회가 생긴 중미 지역의 많은 아이들이 살기 어려워진 고향을 떠났다. 그래야만 했다. 중미 3국으로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서는 수년에 걸친 가뭄과 허리케인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고,(각주 2) 그 와중에 갱단의 강제 징집, 성폭행, 살인이 남은 일상마저 파괴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아이들 중 12만 명이 미국에 도착했다.
긴 여정에 지친 그들을 맞이한 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수용 시설이었다. 일례로 수용 가능 인원이 250명인 텍사스 도나(Donna)의 한 시설은 4,000명까지 수용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찬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은박 담요를 덮고 잤다. 음식은 엉망이었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아팠다.(각주 3)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긴급 수용 시설을 신설했고 그중 하나가 내가 일하게 된 청소년 보호소였다.
기독교계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이 보호소는 원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며 온실을 설계할 자원봉사자를 찾았고, 지도 교수였던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가 내게 권해주었다. 대학원 졸업 후 방황하던 중이었기에 선뜻 시작했다. 무지로 가벼웠던 마음은 곧 무거운 현실로 가라앉았다. 온두라스에서 미국 국경까지는 약 3,000㎞. 서울에서 울란바토르까지가 겨우 2,000㎞에 불과한데, 그 거리를 아이들은 걷거나 화물 열차에 몰래 올라타며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리엔 갭(Darién Gap)이라는 정글에서 길을 잃어서, 열차에서 떨어져서, 멕시코 북부 사막을 건너다 목이 말라서, 리오그란데 강에 휩쓸려서, 인신매매와 성폭력을 당해서, 많은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했다.(각주 4)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은 짝 잃은 신발과 옷가지, 망가진 인형으로 남았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그래서 보호소의 아이들이 상실감에 잠겨 있으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슬픈 얼굴이 아닌, 작은 몸이었다.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Z가 13세에서 17세 사이 청소년만 머물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만난 그들은 기껏해야 열 살이나 됐을까 싶었다. 저 여린 몸으로 어른들도 통과하지 못한 길을 넘어왔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여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꽤 자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저 또래 아이들처럼 친구들이랑 노래도 부르고 축구도 하면서. 무엇이 이 평범한 아이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오게 할까.
배고픔과 폭력을 피해 왔다는 거시적 설명은 명료해 보이지만, 실상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과 꿈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미 지역 가난한 농부의 아이들이었고, 고향에 두고 온 형제와 자매, 부모를 걱정했다. 갱단의 폭력에, 기후변화로 알 수 없게 된 농사까지. 살기가 막막해진 많은 가정이 미국에서 친척이나 가족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밀입국 브로커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아이들은 가장의 눈을 하고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 아이들 5백여 명이 머물던 보호소는 본래 오일 산업 노동자를 위한 시설이었다. 광화문광장의 네 배 정도 되는 20에이커 평지에 57개의 기숙사동, 대형 텐트로 만든 다섯 개의 교실, 의료 시설부터 가족 혹은 난민 케이스 담당자와 연락하는 콜센터, 급식실, 축구장, 농구장까지. 많을 때는 약 천 명의 아이들과 비슷한 수의 직원들까지 있어서 작은 마을 같았다. 다만, 단층 조립식 건물 사이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갈색 담장과 철조망, 그 위로 한없이 푸른 하늘이 이곳에 갇혀 있음을 상기시켰다. 오직 평면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자마저도 날카로운 갈색의 풍경. 나는 그 광활함과 답답함, 황량함에 압도되어 도망치고 싶었다. 종종 저 담장을 넘어 탈출을 감행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 발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 농담처럼 돌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미국에 속할 수도 없어, 아이들은 기름 사막 위를 부유했다.
이런 사막에서 많은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피난처를 만들어주고자 했다. 원예 치료사로 일하는 K는 화단을 만들며 아이들에게 꽃과 흙을 만질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좋아했지만, 사막의 겨울은 생각보다 추워 더 이상 야외에서 수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온실 설계를 부탁했다. 나는 설계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대학원 교수 V, 교육학 전공 대학원생 P, 원예 치료사 E, 코디네이터 Z와 함께 우선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급조한 흰색 모형 위로 십여 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느낀 것들을 물감과 실을 사용해 풀어놓았다.
그 결과 우리가 배운 건 아이들이 세 가지 공 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친구랑 놀 수 있고, 녹색이 많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첫 번 째와 두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축구장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곳은 다 함께 뛰어놀 수 도 있었고, 인조 잔디에 앉아 삼삼오오 수다를 떨기도 좋았으며, 금요일 밤에는 노래자랑에, 일 요일 아침에는 미사까지. 축구장은 그들에게 성당이자 노래방이었고 자유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기숙사에서는 혼자 있을 수 없기에 아이들이 괴로워했다. 두 명이 한 방을, 그리고 네 명이 두 방 사이에 하나뿐인 샤워실과 변기를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성인 혼자 누우면 꽉 찰 방은 이층 침대와 작은 책상으로, 유일한 창문은 블라인드로 답답했다. 기숙사 건물은 복도 양쪽으로 스무 개의 방이 붙어 있는 구조였지만 공용 라운지 하나 없었다. 잘 때도 ‘보호’를 이유로 방문을 닫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각주 5) 그렇다면 기숙사 외에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있을까? 모든 시설은 항상 단체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혼자 사용하기엔 너무 크고 개방되어 있었다. 온실을 만든다 해도 오직 원예 수업을 들을 때만 접근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그저 혼자서 울거나 기도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절실히 원했지만, 그곳 어디에도 그런 공간은 없었다.

자신만의 장소가 없다는 것은 인격의 상실과 다름없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 에서 한 인간은 사회가 자리를 내어줄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환대란 바로 이 자리를 주는 행위이며, 그 자리가 모여 사회가 된다. 즉, 사회란 서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각주 6) 청소년 보호소는 난민 제도 속에 떠도는 아이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일 뿐, 누구도 속한 장소가 아니었다. 아이 들은 평균 2주가량 머물렀고, 직원들 또한 3주 간 근처 호텔에서 출퇴근한 뒤 일주일의 휴가 동 안 자신의 장소로 돌아갔다. 사막의 풍경과 갈색 건물이 단지 낯설어서 아이들이 풀과 나무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의 갈색 풍경 속에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 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자리가 있던 곳이 언덕 과 강,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 작은 마을과 옥수수 밭이었기에.
그러므로 이 보호소에서 건축과 조경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 환대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영감을 준 것은 아이들이 손수 엮은 우정 팔찌였다.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엮는 그 팔찌처럼, 중남미 지역에는 기하학 무늬의 다채로운 천을 짜는 문화가 있다. 직선으로 반복되는 기숙사 건물을 씨줄로 삼고, 그 사이 공터마다 크기와 색상이 다른 그늘막과 정원을 날줄처럼 배치해 보호소 전체를 하나의 직조된 풍경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아래에서 일과를 마친 아이들이 함께, 혹은 홀로 쉴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시 보호소를 이끌던 A는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프로토타입을 만들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통과하는 삼각 형 길목에 작은 마당과 그늘을 만들었다. 2백만 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 목재와 그늘막을 사고, 창고에 남아 있던 인조 잔디를 가져왔다. 남는 목재로 삼각형 테이블과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땅을 파서 기둥을 올릴 기초를 만들고, 잔디를 깔고, 화단을 놓았다.
우리는 이 공간을 아이들에게 익숙한 색상과 식물, 상징으로 장식하기로 했다. 무엇을 심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부겐빌리아(Bougainvillea glabra)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종이꽃’으로도 불리는 부겐빌리아는 중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으로, 종이처럼 얇고 바스라질 듯한 세 장의 포엽이 아주 작은 꽃을 받치고 있다. 연중 열 달 가까이 꽃을 피우며, 복숭아색, 자주색, 빨간색으로 만발하는 포엽이 무척 화사하다. 우리는 화단에 부겐빌리아를 심고, 맞닿아 있는 기숙사 건물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고향의 새와 나무, 국기부터 유명한 피라미드까지 아이들이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호들로 채웠다. 아이들은 이 공간을 작은 광장이라는 의미의 라플라시타(La Placita)라고 불렀다.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만들자마자 직원들과 아이들이 많이 찾았다. 특히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할 공간이 필요했던 상담사들과 케이스 담당자들이 자주 이곳에 앉아 있었다.
첫 디자인 워크숍이 끝난 뒤, ‘호수에’라는 이 름의 한 소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줘서 고맙다고. 비록 이 공간이 완성될 즈음에는 자신이 떠나 있을 테지만, 앞으로 이곳에 올 친구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니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곤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 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뿐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각주 7)
사실 부유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저 주어진 단계만 따라가면 인생이 정답처럼 풀 릴 거라 생각했는데, 졸업 후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그 막막했던 시절, 그 친구의 꿈이 내게 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좀 더 해볼 까 싶었다. 어쩌면 여기서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까 싶어서.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각주 정리
1. 2021 회계연도(FY2021, 2020년 10월 1일~2021년 9월 30일) 동안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난민재정착국은 총 122,731명의 미동반 아동을 보호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약 8배 증가한 것으로, 2020년에는 15,381명의 미동반 아동을 보호했다. 출처: 난민재정착국(acf.gov/orr/about/ucs/facts-and-data)
2. 2021년 3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이 지역 주민 약 백만 명이 기아 상태임을 선언했다. American Immigration Council, “Rising Border Encounters in 2021: An Over-+view and Analysis”, March 4, 2022.
3. Hilary Andersson and Anne Laurent, “Children Tell of Neglect, Filth and Fear in US Asylum Camps”, BBC News, May 23, 2021.
4. 이러한 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르포 기사를 읽어보길 권한다. Julie Turkewitz, “A Girl Loses Her Mother in the Jungle, and a Migrant Dream Dies”, New York Times , June 20, 2023.
5. 인류학자 김현경은 고프먼의 『수용소』를 요약하며 이와 같이 타인 과 함께 자는 데서 오는 일상적 노출과 감시의 편의를 위해 강요되 는 노출이 “자아의 영토”를 침범하며 인격의 신성함을 오염시키는 것임을 지적한다. 자세한 논의는 ‘4장. 모욕의 의미’ 속 소단원 ‘배 제와 낙인’ 참조.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6. 위의 책 ‘1장. 사람과 개념’과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참조
7. 빅터 프랭클이 인용한 니체의 문구를 변용했다. 한국어판에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로 나와있으며, 원문은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06, p.123.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로 일하며 좋은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