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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학교의 외부 공간은 운동을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성향의 학생을 포용하는 다양성 높은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 환경과조경 2025년 7월호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엮는 일. 잡지 에디터가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정원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읽히는 이번 호 지면을 편집하고 교열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그중 정원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사실 본질이 다른 공간이 있다. 사가람 열린 정원이 바로 그것. 개선 사업을 통해 새로 탈바꿈한 사천여자고등학교는 다양한 성향의 학생을 포용할 뿐 아니라 산책하거나 쉴 곳이 없는 지역 주민들까지 끌어안는 교정을 갖게 됐다. 이때 정원이라는 단어는 그 독특한 성격을 은유한 표현이다.

 

학교 공간을 소개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가장 최근에 다룬 게 서울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 서울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서울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서울원효초등학교 놀이지붕(모두 2021년 3월호)이다. 어린이 놀이터를 한데 모아 실었던 호였다. 대학 캠퍼스면 모를까 해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학교의 교정을 다룬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아마 새 학교를 짓는 경우가 드물며, 학교를 새로 만든다 하더라도 공간 구성 요소와 이를 배치하는 방식이 이미 굳어져 있고, 리모델링할 경우 부분적인 보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럴 것이다. 게다가 학교라는 공간은 특수하게도 교육청의 관할 아래에 있다. 2021년 3월, 많은 학교 놀이터를 소개할 수 있던 이유는 교육청이 놀이 중심의 학습 공간 조성의 일환으로 ‘꿈을 담은 놀이터’ 사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놀이터에만 변화가 있던 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학교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기억에 남는 사업 중 하나가 경기도교육청이 진행한 ‘생태 숲 미래학교’다. 학교 내 숲을 조성해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 해결 역량을 길러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이야기했지만, 교내에 관상을 넘어 교감과 경험이 가능하고 미기후를 조성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녹지를 만드는 일로 보였다. 수목과 식물이 자라는 작은 공간이 뭐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 오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로 느껴졌다. 부천 송내고등학교의 생태 숲(조경하다열음 설계)은 비가 오면 연못이 되는 빗물정원이 아주 인상적이다. 시험을 망쳤건 친구와 싸웠건 울적해진 당신이 교정을 거닐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빗물에 젖을 뿐인 콘크리트 벽보다는 빗방울을 맞으면 그 무게에 고개를 꺾었다 드는 식물이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원래 나와 전혀 다른 존재보다는 조금이라도 닮은 대상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애정을 품게 되기 마련이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식물에 별 감흥을 보이지 않았던 동기들이 점차 수목을 배워가다 담배꽁초를 회양목에 버리는 아저씨를 목격한 날 함께 분개했던 것처럼.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밀주초등학교(스튜디오일공일 설계, 30쪽 참고)에 대해 검색했다. 색다른 운동장의 사진이 늘어져 열심히 마우스 휠을 굴렸다. ‘생태환경 미래학교 운동장’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었다. 운동장의 반절은 놀이터였다. 조합 놀이대도 있지만 독보적인 주인공은 리듬감 있게 흐르는 잔디언덕과 모래사장이다. 언덕을 만든 김에 비탈을 따라 미끄럼틀도 놓았고, 언덕 아래에는 동굴을 연상시키는 터널도 만들었다. 그네를 매단 아름드리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있다. 운동장의 남은 반절은 개울이 차지한다. 디딤돌을 밟고 건너다 심심해지면 슬쩍 발을 담글 수도 있다. 벤치를 비롯해 목재 평상까지 앉을 곳이 넘쳐 난다. 축구와 농구 같은 운동은 따로 마련된 풋살장과 실내 체육관에서 할 수 있다.

 

이곳저곳에 삼삼오오, 하나의 원을 이룰 만큼 큰 무리, 또는 단둘이 모여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과 교직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학교의 외부 공간은 운동을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성향의 학생을 포용하는 다양성 높은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연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 생명체도 포용하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을 테다. 그런데 이 공간을 유지‧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겠다 걱정하는 순간 이번엔 문정석의 말이 나를 나무랐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학생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학교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면, 학교 공간의 사회적 담론화로 이어진다. …… 그런 이유로 학교가 더욱 공공 공간화되어야 학교 공간을 바꿀 수 있는 예산을 끌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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