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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퍼니처] 예건
장소성과 연계한 조경 시설 구현
  • 환경과조경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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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퍼걸러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예건은 그동안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조성된 장소의 공간 활용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해 왔다. 한 장소 안에서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기능하는 조경 시설, 음식의 감칠맛을 높이는 소금처럼 공간의 활용도를 높여 공간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조경 시설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장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조경 시설을 통해 도시를 위한 공간의 장소성을 구현하고 있다.

 

입체적 경험을 만드는 장소성

장소성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공간에 담긴 역사, 문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장소성의 관점에서 보면 조경 시설은 단순한 쉼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조경 시설은 시민들에게 일상 속 여유를 제공하며, 특정 장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소성을 고려한 조경 시설은 공간의 정체성과 그 공간이 가진 고유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연출해 이용자에게 더 깊게 각인되는 입체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간을 설계한 조경가의 계획을 충분히 숙고하며 설계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숲속 공간에 현대적 시설을 배치하는 것보다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적용한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통 공간에 전통적 색감과 형상이 반영된 시설을 배치하면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조선왕릉길에 조성한 조선왕릉 퍼걸러는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퍼걸러의 절제된 형상은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를 통해 왕릉이 가진 특유의 정취와 장소성을 돋보이게 했다. 이처럼 장소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영한 조경 시설은 이용자의 정서와 장소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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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생태공원 아트월

 

 

장소를 읽어주는 디자인

조경 시설은 단순한 편의 시설을 넘어 도시 안에서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장소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장소의 정체성과 맥락을 해석하고 시각화해 장소를 읽어 주는 디자인을 시도한다. 지역의 역사, 지리적 특성, 지역 주민의 삶의 방식 등 다양한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설의 형태, 재료, 공간 배치 등을 기획한다.

 

이러한 기획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가 양재천의 복합휴게시설 ‘플로우 스테이션(Flow Station)’이다. 양재천 유속 흐름에서 형태적 모티브를 얻은 플로우 스테이션은 크게 커뮤니티 에디션과 바이커스 에디션으로 나뉜다. 커뮤니티 에디션은 주거 단지와 업무 단지의 이용자들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담소 공간, 학습 공간 등을 마련해 다양한 형태의 휴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바이커스 에디션은 자전거 이용객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1층 자전거 임시 거치대에 자전거를 거치한 뒤 잠시 휴식할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여름철 폭우로 자주 범람하는 양재천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서랍식 구조의 유선형 테라스를 구성하고 대상지 사면과 일체화된 유체역학적인 형태로 디자인해 폭우 시 범람과 부유물에 의한 파손을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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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우 스테이션의 커뮤니티 에디션 주변 주거, 업무 단지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만든 쉼터다.

 

 

사고를 확장하는 디자인

장소성을 고려한 어린이 놀이 공간 디자인은 어린이와 놀이터를 연결한다. 최근 어린이 놀이 시설 디자인에서 주목 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지형의 재해석이다. 한때 인기를 끌던 원색과 캐릭터 조형 요소가 접목된 놀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형을 살린 창의적 놀이 시설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언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놀이 공간은 자연을 접할 일이 적은 현대 아이들에게 자연을 닮은 놀이 구조가 되어주어 다른 시설과 비교해서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더 효과적이다.

 

다양한 높낮이를 가진 지형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신체 활동, 상상력, 공간 인식 능력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균형 감각을 기르고, 꼭대기를 향해 경주하고 정복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행동 및 신체 발달을 꾀하고 적극성을 기를 수 있다. 언덕 사면을 따라 슬라이드, 네트, 터널, 암벽 홀더 등을 설치하면 다양한 도전과 협업, 창의적인 놀이가 가능하고, 경사도를 조절하면 다양한 연령의 아동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언덕 자체를 놀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아도 될까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보이는 모든 구릉과 언덕이 놀이터라는 확장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조성한 서산 명륜근린공원 놀이터는 언덕을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활용했다. 기존의 노후된 공원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계단만 놓여 있던 공원의 언덕 사면에 메가슬라이드를 설치하고 중앙 공간에 네트, 마운딩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다양한 수준의 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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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명륜근린공원 놀이터는 언덕 사면을 활용한 메가슬라이드, 네트, 마운딩을 적절히 조합해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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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퐁퐁 어린이 놀이터 메가슬라이드, 미니축구장, 모래놀이장 등 다양한 놀이 시설을 설치하고 모든 공간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게 했다.

 

 

장소성을 위한 보편적 경험 설계와 소통

장소성을 구현하려면 단지 보기 좋은 형상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이용자의 동선, 행동 패턴, 감성적 반응 등을 고려해 방문객이 실제로 편하게 이용하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특히 어르신, 아이,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접근성과 편의성까지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요구된다. 특정 계층과 연령대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보다 모두가 나눌 수 있는 보편적 경험과 감성을 시설에 담았을 때 진정한 장소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장소성을 구현하는 디자인은 개인적 창작물이 아니라, 공공성과 협력을 전제로 한다. 지역 주민, 방문자, 기관이나 단체 등 다양한 주체와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장소가 지닌 특성과 활용 가능성을 함께 찾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정해준 형상만을 그리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조율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반려동물 테마 시설 ‘왈로Waalo’ 시리즈다. 수도권 공동 주택, 용산 미군 장교 숙소, 수안보 생태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 왈로가 활용됐다. 수도권 공동 주택 유휴 공간에 왈로를 조성할 때 입주민들과 디자이너가 함께 협업했다. 이곳은 훈련, 놀이, 휴게 공간을 구분해 디자인했으며, 반려견과 보호자가 교감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조성됐다. 용산 미군 장교 숙소에서는 기존 잔디와 보행로로 기획된 공간을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수안보의 생태공원에는 반려견을 동반한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시설로, 바비큐장과 어린이 놀이터와 별도 분리된 안전한 공간을 선정해 자연석과 수목이 어우러진 공간 속에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했다.

 

실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디자인

장소성과 연계된 시설물은 단기적 설치물이 아닌, 오랜 시간 장소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 실용성과 지속적인 유지·관리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소재의 내구성, 이용자의 접근성, 계절 변화에 따른 대응력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는 소재다. 소재는 음식으로 비유하면 고급 식자재라고 할 수 있다. 재료가 특별하면 맛도 특별하듯 품질이 뛰어난 자재가 주는 감성은 그대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며 그 장소에서의 생명력도 길어진다. 양질의 소재는 사용자, 관리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소성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공간의 장소성은 더욱 오래 유지되고, 공동체의 자산으로 남는다.

 

진정한 의미의 장소성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과 상호 작용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장소성과 연계된 조경 시설은 장소의 완성도를 높이고, 사람과 장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제 단순한 ‘쉼’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장소와 이용자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조경 시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계 단계부터 장소성과 깊이 있게 연결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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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놀이 시설 왈로에서 반려견은 주인과 함께 훈련이 아닌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예건(Yekun)은 1990년 창립한 조경 시설 전문 기업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지향점으로 삼고, 도시 경관과 조경 공간에 어울리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갖춘 조경 시설을 만들기 위해 창립 이래 꾸준히 매진해왔다. 국내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조경 시설 ‘푸르너스’, 친환경 어린이 놀이터 ‘아이붐’, 반려동물 시설 ‘왈로’와 X-게임 등 다양한 조경 시설 브랜드를 선구적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기술과 완성도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제작, 시공, 유지·보수까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 왔으며, 국내외 특허를 비롯해 ISO 9001, ISO 14001 인증을 통해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받았다. 자연친화적 소재와 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자연과 조화를 꾀하며 시민들에게 편리하고 풍요로운 도시 환경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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