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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정원은 자연의 풍경들을 특별하게 꿰어 맞추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일의 산물이다
  • 환경과조경 2025년 6월호

바삭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두부과자를 즐겨 먹고 있다. 얼마 전 부여를 다녀오며 얻어온 것인데, 씹을 때마다 부여 알밤의 단맛이 옅게 풍긴다. 맛이 좀 심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주워 먹다 보면 금세 동이 난다. 은은한 분위기의 부여와 제법 닮은 맛이다. 돌연 부여로 떠나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된 건 그륀바우의 김인수 소장 덕분이다. 처음에는 좀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이다. 너도나도 정원을 외치는 시대에 숨겨져 있지만 꼭 주목해야만 하는 부여의 동네 정원들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은 예쁜 수사를 붙여 볼만하게 꾸민 초대장 같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도 컸던 건, 귀한 것을 발견해내는 김인수의 눈썰미와 정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어떤 지역의 맛집 가이드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맛집 가이드북. 막막하기 그지없다. 지도를 펼쳐야 하나,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 유명한 맛집 목록을 만들어야 하나,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김인수의 숨은 정원 찾기 전략은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쉽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그 지역과 친해진다. 낯설지 않게 느껴질 때까지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 담 너머의 풍경이 궁금해지면 문부터 두드린다. 한번의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뷰도 불사한다. 보고, 듣고, 쓴다. 오늘은 정원을 찾아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서는 게 아니다. 그의 기록 생활은 일상에 아예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김인수는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목수책방, 2022)와 『서울 골목길 비밀정원』(목수책방, 2023)을 펴냈다.

 

안내를 따라 둘러본 부여는 참 신기한 곳이었다. 고요하고 모든 것이 낮고 부드럽게 흘렀다. 궁남지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산등성이는 없었다. 고운 천을 구겨 만든 곡선이 사비성을 감싼 듯했다. 질주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보기 힘들었고, 모든 길은 보행자와 자전거에게 다정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 군데군데 고여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김인수가 부여를 새 삶의 터전으로 잡은 것은 4년 전이지만, 만나는 사람들 모두 그를 부여 토박이보다 부여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라 말했다. 숨은 정원을 찾아 느릿한 풍경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함께 탐방한 정원 대부분은 전문가의 손길보다는 정원의 가꾼 이의 취향과 생활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곳들이었다. 대중없이 늘어진 화분들이나 작물이 거칠게 자라고 있는 텃밭, 빨래 건 조대와 갖은 폐목들이 군데군데 놓인 정원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정원들보다 생활감이 느껴졌고 그래서 가꾼 이들의 진심이 와 닿았다. 가장 가까이에 둔 초록의 땅을 더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리려는 작은 지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평범한 단어들이 연결되어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지듯이 정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들을 아주 특별하게 꿰어 맞추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일의 산물”(『서울 골목길 비밀정원』 중)이라는 설명이 딱 어울렸다. 가장 재미있던 건 정원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김인수는 식물 가꾸기는 한 개인의 삶을 넘어 마을 공동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마을 동산바치의 집 주변으로 빈 땅을 정원으로 가꾸려는 시도를 한 가구가 여럿 보였다.

 

자연스럽게 따라한 경우도 있었고, 정원을 만들며 불어난 꽃과 식물, 씨앗을 주변에 나눠준 동산바치도 있었다. 길가나 집 밖 공터에 꽃창포가 자라고 있는 게 신기해 김인수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식물이 있다고 답했다. 지역의 원예 상가가 중점적으로 파는 식물이 마을 경관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도 흥미로웠다.

 

개인이 꾸리는 정원이 정원도시의 기반이 될 수 있을지, 아름다운 백마강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국가정원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인수의 기록들이 정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정원을 만들며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 행복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두 권의 책에 빼곡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원 가꾸기가 노동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복하기에 계속 정원을 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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