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지면에 편집한 해외 작품을 인쇄가 끝나기도 전인 3월 말에 실물로 확인하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포틀랜드에서 열린 조경교육자협의회CELA 학술대회가 끝나자마자 시애틀행 기차에 올랐다. 오랜 세월 시애틀 도심과 엘리엇 베이를 가로막았던 고가 고속도로를 철거하고 공원으로 잇는 혁신 프로젝트의 심장, 시애틀 워터프런트 오버룩 워크(Overlook Walk)를 마음껏 걸었다. 도시와 바다가 다시 만났다.
도시와 바다는 오랜 시간, 때로는 조화롭게, 때로는 단절된 채 공존해왔다. 시애틀 엘리엇 베이의 워터프런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바다에 면하고 숲이 풍부한 조건 덕분에 형성된 도시 시애틀은 목재 산업과 생선 통조림 가공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공장, 창고, 부두가 수변을 빼곡히 채웠다. 19세기 후반에는 워터프런트를 따라 철로가 놓였고, 20세기 중반에는 그 자리에 복층 고속도로가 건설됐다. 그 해안 풍경은 도시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시애틀은 바다를 등진 도시가 되었다. 하루 9만 대 이상의 차량이 오가며 소음과 매연을 쏟아낸 알래스칸 웨이 고가도로는 시민과 바다 사이에 물리적 장벽을, 심리적 단절을 남겼다.
그러나 도시는 기억한다. 바다를 품었던 본래의 모습을. 기능과 효율 중심의 공간을 넘어, 기억과 일상, 자연과 커뮤니티를 품은 공간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모두를 위한 워터프런트’라는 따뜻한 비전을 내걸고, 시애틀은 다시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길이 1.5마일에 이르는 워터프런트 공원을 만들어 도심과 연결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필드 오퍼레이션스 설계)를 추진한 것이다. 단지 고가도로를 삭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화 시대의 상처 위에 도시와 바다가 다시 만나는 다리를 놓는 일. 그것은 기술을 넘어 도시의 철학과 삶에 대한 신념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오버룩 워크다.
오버룩 워크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과 엘리엇 베이 사이의 약 30m 단차를 완만한 경사로 이어주는 공중 공원이다. 단순한 보행로가 아니다. 넓은 산책길을 따라 펼쳐진 정원과 광장, 놀이터와 카페, 전망대는 자유를 만끽하며 걷는 이들에게 잠시 머무를 이유를 선물한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시애틀 항구의 분주한 일상, 바다 건너 올림픽 산맥의 힘찬 숨결, 멀리 레이니어산의 만년설이 눈에 들어온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리면 다운타운의 역동적 스카이라인이 시선을 붙잡는다. 걷는다는 행위가 도시를 다시 읽는 여정이 된다.
도시는 이렇게 바다를 되찾았다. 오버룩 워크는 도시의 단절을 치유하고, 도시의 기억을 복원하며, 산업화에 빼앗긴 공공의 장소를 시민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인류세 도시의 공공 공간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 접근성과 일상성, 사회적 포용성, 생태적 회복력, 비인간 생명체와의 공존이 교차하는 복합적 풍경. 그것은 곧 도시와 시민 사이에 끊겼던 감정의 회로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많은 워터프런트 재생 프로젝트가 상업화나 관광지화에 치우치는 것과 달리, 시애틀의 사례는 시민의 일상을 최우선에 두었다. 오버룩 워크는 관광객을 위한 길이 아니라, 매일 이 길을 걸을 시민을 위해 설계되었다. 조경가, 예술가, 엔지니어,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가 참여해 긴 호흡으로 함께 만든 이 공간은 도시 재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직하게 보여준다. 회색 인프라를 걷어낸 자리에 초록의 사람 길을 놓고 산업과 개발의 기억 위에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것. 이 길은 이제 시작이다. 시민들의 삶을 서서히 바꿔나갈 것이다. 매일 아침 산책을 즐기고, 저녁이면 노을을 바라보며 친구와 맥주를 나누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바다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하늘과 구름을 만나는 벤치에서,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광장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퍼지는 놀이터에서, 이곳은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될 것이다.
브랜드가 도시의 경관과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며 새로운 장소성을 빚어내고 있다. 이번 5월호 특집은 이러한 흐름을 ‘브랜드 어바니즘’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이원제(상명대학교 교수)는 브랜드가 일상과 자연, 업무와 여가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도시 전략이 되고 있는 양상을 도쿄 사례를 통해 짚는다. 김희원(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대리)은 공간 브랜딩의 관점에서 조경이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논의한다. 권정삼(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 책임)은 쇼핑몰과 같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유사공원’ 현상에 주목하며, 몰링하는 도시생활자의 감각을 추적한다.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 소장)은 살아 있는 것들의 현상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곧 조경의 힘이라고 말하며, 조경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