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사람처럼 부르는 건 좀 유난스럽네요. 언젠가 라디오 청취자에게 받은 메시지다. 식물을 ‘아이’라 하고, 구입해오는 것을 ‘데려온다’고 말하는 습관이 방송에서 새어 나왔나 보다. 혹시 내 마음이 다칠까봐 제작진들이 염려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우리와 다르다. 두뇌가 없으니 생각과 감정을 갖지 않고, 근육과 신경계가 없으니 움직이지 않으며 고통을 모른다. 배가 고파도 엽록체로 양분을 스스로 만들어내니 밥과 빵을 찾지 않는다. 고플 배 자체가 없기도 하고. 적당한 토양과 수분, 햇빛, 공기가 있으면 자라나는 생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식물의 낯익은 표정과 몸짓을 발견하게 된다. 보도블록 틈새의 새싹은 씩씩하고, 꾀죄죄한 스티로폼 박스에서도 꽃은 말간 얼굴로 핀다. 기다리던 단비를 맞는 잎사귀들은 춤을 추는 듯하고, 오랜 바람에도 줄기 끝에서 대롱거리기만 하는 민들레 씨앗은 주저하는 발걸음 같다. 그래서 식물을 그저 식물로 여길 수가 없다.
길고양이를 위해 골목 구석구석 숨겨놓은 물 그릇,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앉아 졸고 있는 강아지, 학생들이 운동장 구석에 쌓아놓은 가방에 매달린 아이돌 인형. 이들의 주인을 생각해 본다. 이들에게는 고양이가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짐승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이웃, 강아지는 집 지키는 동물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아가, 아이돌이 만나볼 가능성조차 희박한 남이 아니라 액정 너머로도 힘을 전해주는 소중한 사람이겠구나. 나에게 식물이 그런 것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당연할 뿐 유난스러울 수 없다.
**각주 정리
1. 인터넷 밈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스케히로 토미타와 나오 야자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웨딩 피치’ 마지막 화 대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