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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바니즘의 가능성을 말하다] 공간 브랜딩을 위한 조경의 가능성
  • 환경과조경 2025년 5월호

온 공간이 브랜딩으로 시끌벅적하다. 온갖 산업, 기업, 개인이 각자의 탁월함과 고유함을 뽐내기 위해 세상에 없던 정체성과 경험을 만들고 있다. 디자인 산업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이 생겨났다.(각주 1) 세상이 세상에 없던 브랜드만의 경험을 원하니, 특정 디자인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기획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독특한 공간을 기획하기 위해 그래픽, 가구, 건축,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새로운 수요로 인해 건축 시장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최근 몇년간 건축가들은 카페, 스테이, 리조트를 중심으로 공간적 실험을 거듭해 건축적 경험 자체가 방문의 목적이 되는 새로운 공간 수요를 만들어 냈다.(각주 2) 이 모든 변화에 ‘공간 브랜딩’이 있다. 이는 매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했던 브랜드가 공간적 체험에서 발견한 묘수다. 디자이너에게는 분야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큰 그림을 그려볼 기회가 됐고, 전문 분야에서는 대중적 공감을 바탕으로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볼 전환점이 됐다. 공간 브랜딩 현상에 조경을 대입한다면 어떨까. 브랜드의 요청으로 조성된 조경 공간이 많아지고 있는지, 세상에 없던 경험을 위해 새로운 조경적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지, 이로써 대중의 공감을 얻고 조경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바꿔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각주 3)

『환경과조경』이 소개하는 프로젝트만 보아도 기업 브랜드와 조경가의 협업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각주 4) 실내 조경에 조형, 미디어, 시각 디자인을 연결하는 새로운 작업도 눈에 띈다. 이렇게 만들어진 브랜드 팝업 및 플래그십 공간, 기획 전시를 디자인 업계에서 오히려 더 주목한다.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패션, F&B,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자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적 기여로, 예술적 영감으로, 공학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체험의 무대로 주목하고 이를 그들의 정체성이자 새로운 경험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세상에 없던 자연의 경험을 브랜딩하고 싶을 때 총괄기획자로 조경가를 떠올리는 건 어렵다. 주거 브랜드 안에서 다양한 조경적 실험이 이루어진 공동주택 시장만 해도 실내외 조경이라는 물리적 범위가 주어지지 않는 한 총괄 기획을 하는 분야가 조경이 아니다. 조경가에게는 넓은 잔디밭, 숲, 화려한 광장만을 기대할 뿐이다. 발주처에게 조경적 경험이란 자연에 둘러싸여 있거나 공원, 정원 등 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질 때 이뤄지는 물리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발주처의 평범한 기대는 ‘고객의 시선에서 볼 때’라는 말과 함께 조경의 새롭고 비범한 제안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공간 브랜딩 시대에 건축과 조경 모두 새로운 요청을 받고 있다. 건축은 비교적 자유도가 높은 여건을 쟁취했으나, 조경은 스스로 만들어온 이미지의 굴레에 갇혀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 대중적 공감을 얻어 새로운 조경적 경험을 원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도 틀림없이 조경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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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비트360 가든 Ⓒ유청오

 

 

필자는 건설사 브랜드와 상품을 관리하는 부서에 근무하며 조경으로 쌓아 올린 시야를 브랜딩으로 넓혀야 했다. 롯데건설 조경 브랜드 ‘그린바이그루브(Green×Groove)’의 탄생을 함께하고 롯데캐슬과 르엘의 전략을 고민하면서 브랜드 성장이 직업적 과제가 됐다. 브랜드 디렉터와 함께 고민하고 전문 에이전시와 구상하고 조경가와 협업하며 공간 브랜딩이 조경 디자인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슷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형태 만들기보다 본질적인 경험을 설계하기 위해 태도와 원칙을 수립하는 디자인. 마감재 선정보다 정체성을 극대화할 매체를 경험의 요소로 구성하는 디자인. 한 장면의 이미지에 집중하기보다 차곡차곡 중첩되는 경험의 잔상을 일관된 여정과 감성으로 구상하는 디자인. 눈에 띄는 이름을 찾기보다 고객과 공간을 연결할 서사를 구축하는 디자인. 벌써 여러 조경 공간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는 조경도 이용자 경험을 디자인 해 온 분야로서 탄탄한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과 브랜드 분야 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핵심은 조경 공간 또는 경관을 디자인하는 행위와 브랜드의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행위의 차이를 아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가 브랜드를 익혀가는 과정 속에서 썼던 업무 일지에서 시작됐다.(각주 5) 실무자로서 아직 날카로운 의견보다 두리뭉실한 질문이 많지만, 공간 브랜딩을 함께 고민하는 조경가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지금까지 브랜드 산업에서 조경 분야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공간 브랜딩을 상위 개념인 브랜드 경험과 함께 정의하고, 실무적 고민을 녹여 앞으로 조경 분야에서 함께 시도해 볼만한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 445(2025년 5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월간 디자인 편집부, “크레이티브 디렉터가 뭐길래”, 『월간 디자인』 2024년 6월호.

2. 김정은, “여가 문화의 변화와 한국 건축 시장의 다양화 과정”, 『SPACE』 2024년 8월호.

3. 다음의 문장이 질문의 시작점이 됐다. “최근 여가 수요와 결합한 카페와 스테이, 리조트 등은 높은 건축적 완성도를 필요로 하지 않던 사각지대에 건축가들을 끌어들이고, 건축가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이러한 영역에서 실험을 거듭하며 다시 공간의 수요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꾼다.” 김정은, 위의 글.

4.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오피스박김),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조경설계 서안, 디자인 스튜디오loci), 어퍼하우스 남산 전시관(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24 노들섬 초청전시 물의정원(수무), 기아비트360 가든(HLD) 등이 있다.

5. 이 글은 김아연 교수가 운영하는 웹진 「월간 테라」 2024년 10월호에 기고했던 “브랜드 탐구일지 1부”에서 시작된 원고다. 브랜드에 대한 개괄적인 이론적 고찰은 「월간 테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희원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조경설계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조경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이 많은 탐구자로, 현재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에서 조경 설계 및 브랜드 전략을 담당하며 조경과 브랜딩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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