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노트
“서울의 대량 교통수단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역에 내리면 우리는 소비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보이는 롯데월드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잠실역에서 내려 본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역에서 롯데월드로 들어가는 입구가 가장 넓고 화려하기 때문에 현대 소비 생활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욕망 구조에 매여 있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흡입되어 버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지만 여기서는 모든 길이 롯데월드로 통하게 되어 있다.”(각주 1)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브랜드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도 하나의 객체로서 브랜드가 되는 시대. 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생활자가 경험하는 공간의 감각과 감흥까지도 이제는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의 언어로 조직되고 유통되며 포장되고 소비된다. 물론 이 현상은 긍정성뿐만 아니라 부정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브랜드는 도시에 스며들어 부산스럽고도 은밀하게 “도시생활자의 고객화”를 추동하기 때문에 도시 공간은 자칫 BX(Brand Experience)와 UX(User Experience)가 무의식적으로, 수시로, 파편적으로, 수동적으로 경험되는 브랜드 범벅의 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믹스의 공간을 대하는 포용과 경계의 유연한 자세가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글은 특정 기업과 브랜드를 통해 도시재생과 활성화를 도모하는 ‘브랜드 어바니즘(Brand Urbanism)’ 또는 대형 쇼핑 공간과 도시 구조의 관계를 모색하는 ‘몰 어바니즘(Mall Urbanism)’, ‘리테일 어바니즘(Retail Urbanism)’ 등을 논하기에 앞서, 브랜드의 집대성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조경 변천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유사공원의 가치를 탐색하고자 한다.
유사공원 선언
“도시 생활은 점점 더 전통적인 도시 지도의 경계 밖에서 이루어진다. 주차장, 패스트푸드점, 쇼핑몰 ― 이 공간들은 공공 공간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공적 삶을 위한 장소로서 자주 점유된다.”(각주 2)
나는 꿈을 꿨다. 그 꿈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공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원이 아닌데 공원처럼 느껴지는 장소들에 대해. 대형 쇼핑몰의 중정, 백화점 옥상, 상업 가로 등은 제도적으로는 ‘공원’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모이고 쉬고 멈추고 관계를 맺고 있었다. “삼촌, 여긴 공원이 아니잖아.” 조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그곳들이 충분히 공원 같았다. 나는 그 공간들을 ‘유사공원(parklike space)’이라 부르기로 했다.(각주 3) 이런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런 공간의 원형은 17세기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Piazza)(1630)이나 블룸즈버리 광장(Bloomsbury Square)(1661)과 같은 플라자 가든에서부터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 한가운데서 자연과 사람, 사회적 관계를 불러일으키는 조경적 장치들. 그것은 이미 그 시절부터 공원이라는 제도 이전에 그 바깥에서 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사공원의 성립 조건은 “몰링하는 도시생활자”(각주 4)에서 언급한 것처럼 물리적, 구조적, 구성적, 제도적, 미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감각(감흥)적 공공성을 매개로 한 커머닝(communing), 즉 공적 교류와 사회적 관계 형성 가능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유사공원 담론은 명백한 대상지의 디자인 재생과 그에 파생하는 미적 함의를 다루는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화 담론이나 기타 레거시 어바니즘 담론과는 달리, 명백하지 않은 장소를 도시생활자의 관계 형성 관점과 미적 감흥(감각)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 독특한 도시미학적 정체성과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서둘러 정의내리기”보다는 “천천히 질문하기”에 가깝고, 온전히 도시생활자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미완의 사유 구조이자 개방형 담론의 틀이다.(각주 5)
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공원이 아닌 공원들, 제도 바깥의 조경적 실천과 조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공원이라는 제도와 관계없이 공원의 감각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재구성하고 있을까? 쇼핑 공간의 조경은 분명 오프라인 리테일의 대형화와 체류 시간 증대 전략의 흐름 속에서, 장식적 조경으로부터 관계 중심의 조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 백화점, 아울렛 등의 공간이 어떻게 공원의 감각적 공공성을 대체하거나 확장해왔는지 살피는 과정은 “공원이 아닌 곳에서의 공원성”과 “공원에서의 공원성” 모두를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쇼핑 공간에서의 유사공원성을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조경이 할 수 있는 질문과 실천의 틈을 찾으려는 시도다. 도시생활자의 감각이 앞으로 조경, 쇼핑 공간, 어바니즘 사이의 유연한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 꿈에서 보 고픈 사람들을 만나다니, 오늘은 분명 운수 좋은 날이다. 허나 현실을 자각할수록 꿈의 장면들은 희미해진다. 내일이 오기 전에 소멸되는 조각들을 메타로그(metalogue)로 맞춰본다.
* 환경과조경 445호(2025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정정호·강내희, 『포스트모더니즘론』, 도서출판 터, 1989, pp.13~14.
2. Margaret Crawford, Everyday Urbanism ,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John Kaliski and Michael Speaks, eds., Monacelli Press, 2008, pp.22~23.
3. 대형화된 쇼핑 공간에서의 몰링 감흥과 도시공원적 면모를 포착하며 유사공원 재해석을 통해 쇼핑-도시-조경 간 유연한 관계 맺음 가능성에 주목한 비평은 다음을 참조할 것. 권정삼, “몰링하는 도시생활자: 공동공간 쇼핑안내서”, 『환경과조경』, 2025년 2월호, pp.116~124.
4. 위의 글
5. 유사공원 담론의 핵심 주제인 “비-공원 공간의 감각(감흥)적 공간 경험과 공공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적 공간을 사회적 기술이 훈련되는 장소로 바라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The Fall of Public Man , Vintage, 1978), 걷기를 통한 도시생활자의 감각적 실천을 강조한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 UC Press, 1984), 제도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 대항하는 주체적 공간에 주목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 Blackwell, 1974), 일상적 장소와 상업 공간에서 발생하는 공공성에 주목하며 비계획된 도시 공간의 공공성 회복을 주장한 마거릿 크로퍼드(Margaret Crawford, Everyday Urbanism , Monacelli Press, 1999), 도시의 잉여 공간과 폐허에서 나타나는 심미적 가능성을 조명한 매튜 갠디(Matthew Gandy, “Marginalia: Aesthetics, Ecology, and Urban Wastelands”, Annals of the AAG 103, 2013) 등의 도시·조경 논의를 부분적으로 참조할 수 있다.
권정삼은 롯데백화점 디자인센터에서 조경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렉팅을 맡고 있다. 특정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대중적 감흥,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 요소, 그로 인해 형성되는 사회적 혜택에 주목하며, 조경 디자인의 언어를 보편적 디자인과 일상의 언어로 확장하는 실무, 글쓰기, 영상, 사진을 추구한다. 오늘도 기획서-설계 도서-시공 현장 사이에서 감각과 개념 사이의 언어들을 찾고 짓고 보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