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은 사람인 줄은 알겠어요
“이제는 좋은 친구로 남길 바래요.” 민망한 말이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이만하면, 뭐 빠지는 거 없잖아. 두루두루 원만하고 딱히 흠 잡을 것도 없는데 말이지. 그런데 이 양반, 모르긴 몰라도 뚜렷한 특징이 없을 수는 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떠나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남다른 매력, 그것이 브랜드라 생각한다. 나음보다 다름의 시대다. 나아지려는 노력은 그동안 충분히 했다.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를 사지 않고 다른 데는 없나 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케이크 맛이 어떤지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카페며 리조트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가본 바다. 이제는 다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 브랜드의 떠오름은 당연하다.(각주 1)
경험의 합, 공간일 때의 브랜드
어떤 사람과 지내면 그 사람의 성품, 성격, 스타일, 버릇들을 통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게 된다. 그것의 그것됨, 그것을 브랜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간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미국 유학을 위해 비자를 받으러 광화문의 미국대사관에 간 기억이 난다. 창살, 펜스, 무뚝뚝한 영어 폰트, 한국 표준보다 약간 높은 문고리의 위치, 화장실의 변기, 천장의 등 모두 미국 조달 품목들만 사용했다. 그때는 ‘여기 참 미국스럽다’ 생각했다. 돈을 뽑으려고 현금 인출기를 찾았는데, 모니터엔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라고 적혀 있었다. 요즘 말로 UX의 정점이다. ‘이곳은 한국 한복판에 있지만 그냥 그대로 미국 영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압도적으로 미국 느낌이 들었다. 그 시간 그곳에서의 경험의 합이 미국이란 브랜드의 한 단면을 충실하게 나타냈다. ‘공간에서 경험한 것의 총합=브랜드’라는 관점에서 미국 대사관은 성공한 공간 브랜드다.
요즘 공간 디자인들은 ‘그곳에서의 시간을 어떤 경험으로 채울까’를 생각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소위 말하는 ‘몰입의 공간 경험’이라는 말도 결국은 그것을 압축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법이다. 미장센(mise-en-scene)보다는 미장아빔(mise-en-abyme)을 내세운다. 공간은 마치 게임처럼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하나의 맥락 안에서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라는 맥락은 애트모스피어(atmosphere)의 완성이다. 내가 아는 공간 브랜딩에 대한 관점이다.
브랜딩과 조경에 대한 원고를 의뢰 받고 막상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슬프다’였다. 연약한 사회적 토대에서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브랜딩에 기대어 보고 싶은 마음에 동감하는 동시에 여전히 아쉬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기획하는 어떤 브랜딩에 이번에도 조경은 그 부분을 돕는 것에 그칠 것 같기에, 브랜드의 시대에도 결국 여전히 종속 변수일 것 같아서.
분명히 브랜딩의 시대는 기회의 시대다. 개성이 확실할수록 누구나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조경은 무엇일까. 조경은 조경이다. 타 분야와 다투거나 비교하지 말고 나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 딛고 서면 된다.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된다.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그것에서 군더더기를 덜어 내어 날카롭고 선명하게 만들면 된다.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경은 무엇이 다르냐
오랫동안 수없이 말하지만 조경은 살아 있는 재료들로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정하던 건축을 놓고 조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매료된 점이다. 이만큼 다른 게 어디 있나,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직업이 있나. 세상 유일무이라는 점에서 조경은 이미 브랜드다―네이밍 관점에선 아쉽다―. 하면 할수록 이것을 넘고 싶은 마음이 든 이유는 언어가 품은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식되고 있는 조경造景은 풍경이나 경치(景)(볕 경)를 조작하고 조형한다(造)(지을 조)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가 만든 좁은 프레임에서 나와서 부수적인 것들을 모두 걷어내보자. 무엇이 남는가. 살아 있는 것이다. 조경가는 살아 있는 것을 가지고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내린 조경의 정의다. 그렇기에 그 대상은 식물뿐 아니라 사람, 온도, 습도, 대기, 소리, 냄새 등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것을 디자인합니다. 라이브스케이프.” 이것이 우리의 일을 다르게 정의할 만한 문장이라 생각해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와 이름에 담았다.
![[크기변환]smooth 01.JPG](http://www.lak.co.kr/data/ebook_content/editor/20250508105831_dkmoxdik.jpg)
* 환경과조경 445호(2025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조수용·홍성태의 『나음보다 다름』(북스톤, 2015)을 간단하게 재구성했다. 관련한 인사이트를 구한다면 이 도서를 읽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유승종은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희림건축에서 5년간 일하고 조경에 대한 애정을 품고 유펜(UPenn)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말로도 쉽지 않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머리에 넣었지만, 사실은 피터 워커의 테너 파운틴을 좋아하고 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를 숭배한다. 모두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태 디자인을 ‘살아 있는 것들이 티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정의한다. 자연의 형상뿐 아니라 현상이 여러 감각을 통해 인지되게 하는 작업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어간다. 관련 특허 기술과 UX 기법들을 공간에 적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IF 디자인 어워드, 대한민국 조경대상 우수상, 공공디자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건축과 조경을 넘나들며’라는 흔하고 뻔한 말을 구체적인 결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