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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조경] 채장원
그림이 실제 공간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쁨
  • 환경과조경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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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한 달은 업무에서나 일상에서나 변화가 많은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팀 단위로 진행한 업무들, 디자인 스케치부터 마스터플랜, 공간 CG, 설계도서 작성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하려니 쉬운 것이 하나도 없고 동료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정신없이 흘러간 한 달을 되돌아봤다.

DAY 1 아침부터 전화가 온다. 발주처 현장 담당자다. 뭔가 작업이 잘못됐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는다. 현재 조경 시공 회사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제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시공 현장은 목표 준공일이 분명하기 때문에 디자인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으로 진행된다. 전화는 보고 일정 때문에 걸려온 것이었다. 일주일 뒤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설계안을 보고하고 확정 지었으면 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일주일은 보고 준비와 설계 내용 검토로 정신없이 지나갈 것이다.

DAY 2~6 하필 다른 현장의 설계 변경 업무가 겹쳤다. 시공 회사의 설계 부서는 새로운 설계 제안만큼이나 현장의 설계 변경 업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보통 설계 회사는 설계 용역 그 자체로 대가를 인정받지만, 시공사의 경우 공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현장 상황(관련 공종의 간섭, 배수 및 토심 문제 등) 때문에 설계 변경이 시행되지만, 회사 수익에도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공사 여건과 금액 등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이번 제안은 새로 공사를 수주해 매출을 내야 하는 설계 영업의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공 완성도를 높이고 더불어 회사의 수익을 증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결국 설계 협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책상 한쪽에 트레이싱지를 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도면을 계속 그려본다. 시공 회사의 설계 업무 대부분이 그렇지만, 주어진 시공 기간이 길지 않아 구조 검토, 재료 수급이 너무 오래 소요되는 디자인은 지양하며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발주처와 명확한 이미지를 공유 해두었기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디자인을 확정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보고만 잘 마치면 한 고비는 넘긴다.

DAY 7 6시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7시 반에 기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니 9시 반이다. 보고 전 간단하게 대상지를 둘러보며 일주일 간 떠올린 그림이 공간에 구현되었을 때 어떨지 상상해본다. 10시, 보고 장소로 이동한다. 이동하며 머릿속으로 공간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다행히 좋은 분위기에서 보고를 마무리했다. 전체 공간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일부 수정 의견이 있었지만 큰 그림을 흔드는 정도는 아니라 내심 안도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향후 일정을 정리해본다. 이제 공사용 도면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공사 현장 여건을 확인하고 시공 협력사와 협업을 진행해야 한다.

DAY 8~20 평면 디자인이 확정됐으니 실제 공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도면 작업을 진행한다. 발주처 현장 담당자와 클라이언트에게 보고를 진행하며 받은 의견을 바탕으로 철거 계획부터 식재, 시설, 포장 도면을 그린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약속한 날까지 설계도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야 한다. 1차 설계도서를 기준으로 전문 협력사와 미팅을 진행한다. 시설물과수경 설비, 전기 등 실제 공사를 수행할 협력사들과의 미팅은 설계도서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각 분야의 공사에 문제가 없을 지 판단하고 공종 간의 간섭이 생기는 부분을 검토하며 의견을 공유한다. 나는 이 내용을 취합해 디자인에 영향이 가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며 설계도서를 정리해간다.

DAY 21~25 실제 시공을 위한 설계도서 변경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처음 설계도면 작업을 하며 놓쳤던 부분을 찾아내고, 공사에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받아 도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완성된 설계도면은 때로는 아주 단순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디테일하기도 하다. 실제 도면을 보는 당사자가 꼭 필요로 하는 부분은 자세하게 표현하고, 도면에서 확인하기 어려워 현장을 보며 진행해야 하는 부분은 다소 러프하게 그리게 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검토를 거쳐 완성된 도면이지만 아마 공사가 시작되고 나면 도면과 맞지 않는 부분이 계속 나올 것이고, 설계변경이라는 또다른 업무로 이어질 것이다.

DAY 30 최종 검토한 도면을 발주처에 납품한다. 약 한 달에 걸친 제안부터 실시도서 납품까지의 과정은 설계자뿐 아니라 시공자, 발주처 등 공사에 관계된 모두의 머릿속에 전체적인 그림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처음 생각했던 그림이 예상보다 별로일지, 더 나은 결과물이 될지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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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420(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채장원은 디자인과 시공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다 이제야 목적지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영엔지니어링에서 조경설계 영역에 첫발을 들였다. 시공과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농업회사 법인 명림원에서 시공 관리와 수목 유통 일을 배우면서 오히려 디자이너로 성장한 듯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 건설 회사인 미담과 고려조경의 디자인팀에서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조경설계사무소 ‘조경, 디자인 진심’을 꾸려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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