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모던스케이프] 효창공원 단상
  • 환경과조경 2023년 04월

유네스코(UNESCO)는 2011년 제36차 총회에서 ‘역사도시경관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안(UNESCO Recommendation on the Historic Urban Landscape)’을 채택하고 사회와 문화의 가치가 도시 경관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을 공론화했다. 경관을 다루는 조경 분야에서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할 유산(heritage)의 범주에 ‘도시 경관’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산에 내재한 무형의 가치, 즉 시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환경의 맥락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큰 변화다.

도시 유산은 생성과 변화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이를 속성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한 이 권고안은 도시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중첩된 경관’에 주목하게 한다. 서울 효창공원(이하 효창공원)은 이러한 동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특별한 사례다. 우리의 오래된 공원 대부분이 그렇듯 효창공원도 처음부터 공원은 아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효창공원의 시작은 원묘(園墓)다. 효창孝昌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원자인 문효세자 묘소의 명칭이며, 효창묘는 1870년(고종 7년) 12월에 원(園)으로 승격됐다. 무덤은 1944년 10월 9일 고양시 원당동 서삼릉 경내로 이장되기 전까지 당시 경기도 고양군 율목동(현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 일대)에 있었다. 식민지기에 들어서면서 묘역 일대는 근대의 성격이 간섭되기 시작했고 다른 곳과 달리 여러 시설의 층위가 중첩되어 진화했다.

 

Hyochang 01.jpg
그림 1. 골프장으로 이용된 효창원 전경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소장: 서울역사아카이브)

 

첫 번째는 식민지기에 지정된 공원으로서의 층위다. 효창원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원유회(園遊會)를 시작으로, 1921년부터 1924년까지 골프장으로 사용됐다. 한국 묘역의 특징인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과 상대적으로 양호한 산림, 열린 경관 등의 환경은 코스 설계에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곳은 도성으로의 진입과 외부로의 진출입이 편하고 당시 개발로 인해 급부상하는 용산, 영등포 지역과도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골프장이 아닌 무엇이 들어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였다.

 

Hyochang 03.jpeg
그림 2. 1965년 항공 촬영한 효창운동장과 효창공원 전경

 

Hyochang 04.png
그림 3. 오늘날의 효창공원

 

참고문헌

노형석, “왕실묘 → 골프장 → 유원지 → 독립투사 묘지 ‘영욕의 232년’”, 「한겨레」 2018년 5월 31일.

박희성,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의 비판적 고찰”, 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특별세션, 2019.

이연경, 『효창공원의 연혁과 공간적 변화』, 서울특별시, 2018.

『조선총독부관보』 제3945호, 1940년 3월 12일.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 www.hyochangpark.com

서울역사아카이브 museum.seoul.go.kr

서울기록원 archives.seoul.go.kr

 

그림 출처

그림 1. 『朝鮮』, 朝鮮總督府, 1925

그림 2. 「한겨례」 2018년 5월 31일.

그림 3. 구글 지도 www.google.co.kr/maps/?hl=ko

 

 

환경과조경 420(2023년 4월호수록본 일부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