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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옥상정원
  • 환경과조경 2023년 02월

옥상정원은 도시의 부족한 녹지 공간을 확대하는 장점도 지니지만 에너지 활용과 절감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어 패시브 하우스에서 종종 언급되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은 최근 부각된 것이고, 원래는 근대 건축과 근대적 소비 문화에 기반해 탄생한 공간이다. 옥상정원은 뾰족한 경사 지붕을 가진 옛 건축물에는 설치하기 힘들었지만, 철근 콘크리트 기둥에 의지해 세운 평면 슬래브 건축물은 옥상정원을 두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근대 건축의 5원칙’에서 철근 콘크리트 건물 상부에 정원을 둘 것을 권장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 녹색의 옥상정원은 건물로 상실된 자연의 대체재이자 건물에서 자연으로 나아가는 연속적 경험의 중간자다.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펼쳐지는 건축적 산책의 종착지는 옥상정원인데, 관찰자는 벽체와 천장, 건축적 오브제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옥상정원에서 열린 하늘을 만나고 자연 경관을 조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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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1930년 10월에 준공된 미쓰코시백화점의 전경 옥상에 수목이 식재된 정원의 모습이 보인다.(소장: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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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 옥상정원의 온실과 휴게소 전경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옥상정원을 두고 자연과 건축 관계의 실례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담론과 무관하게 옥상정원은 근대 건축과 함께 점차 도시민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옥상정원이 주로 백화점이나 호텔에 처음 설치됐는데,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 건물 최고층 높이에서 일상 공간을 내려다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소한 개방감과 낯선 시선을 경험했다. 모더니스트 시인 이상(1910~1937)은 미쓰코시백화점(三越百和店) 경성점 옥상정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도시를 조망했고, 김기림(1908~?)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를 금붕어가 흐느적거리는 바닷속으로 표현했다. 세련된 장식과 시설, 최고급 서비스를 향유하는 서양식 사교 활동이 가능했기에, 자본과 권력을 가진 상류 계층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옥상정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과조경 417(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김영민, “르 코르뷔지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의 전개 양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7(6), 2021,

pp.117~126.

박진아, “르 꼬르뷔지에 유토피아적 자연관의 절대적 이데올로기화 과정 연구”, 『건축역사연구』 13(2), 2004, pp.7~19.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쓰코시 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p.169~176.

이길훈, “미츠코시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2(1), 2016, pp.81~89.

전상인·김미영, 『옥상의 공간사회학』,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2.

朝鮮建築会, 『朝鮮と建築』 11(9), 1930, pp.13~39.

“옥상정원을 개조하여 호텔 개방을 계획하고 동시에 아래층 정원에도 손을 대 여름용 납량원을 만들다”,

「朝鮮時報」 1921년 6월 9일.

“屋上庭園開放”, 「경성일보」 1924년 7월 12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사진 출처

그림 1. 『京城名所』

그림 2. 신세계백화점 자료 제공, “미스코시백화점 사진 자료”, 『이상리뷰』 3, 2004, p.174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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