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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LA 2022] 문화를 담은 조경
아드리안 회저 인터뷰
  • 최혜영
  • 환경과조경 2022년 10월

2022년 광주에서 개최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West 8의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가 제프리 젤리코 상(Sir Geoffrey Jellicoe Award)을 받았다. 제프리 젤리코 상은 IFLA가 우리 사회와 환경의 복지에 기여하고 조경학과 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대회 첫째 날인 8월 31일에는 시상식이, 9월 1일에는 아드리안 회저의 기조 강연이 진행됐다. 그는 그동안 West 8이 수행해온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발표가 끝난 뒤, 좀 더 심층적으로 그의 설계 철학과 조경에 대한 태도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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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조성되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 당신이 꼽는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가족 중에 누가 가장 좋은가’라는 물음과 비슷하다(웃음). 최고의 프로젝트를 하나만 꼽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더 가는 프로젝트는 있다. 용산공원도 그중 하나다. 오늘 강연에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20년 넘게 진행해온 에인트호번 필립스 캠퍼스(Strijp S in Eindhoven), 주빌리 공원(Jubilee Gardens)도 매우 아끼는 프로젝트다.

 

오래 지속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과정이 순탄치 못한 경우가 많아 설계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간다고 표현한 건 아닌가.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내가 낳은 아이와 같다. 부모로서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나를 기른다. 아이는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공원 프로젝트에도 자신만의 대사 과정(metabolism)이 있다. 프로젝트는 설계가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지만, 부모의 교육을 넘어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듯 프로젝트도 진화해 새로운 상황과 환경으로 나아간다. 조경가는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제어할 수는 없다.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 자꾸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나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프로젝트가 나의 마음과 감정에 강한 흔적을 남겼다.

 

용산공원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0년 넘게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했고, 그동안 한국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용산의 미래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

각하나.

정치적 지형 변화가 공원 조성 과정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지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공원은 아름다운 세라믹 화병이 아니다. 공원은 바뀌어 나가는 사회와 논쟁의 산물이다. 정치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비전, 생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잘 작동한다면 용산공원은 한국의 문화와 경관이 집약된 장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남산과 한강을 연결하는 능선의 회복과 이를 가능케 하는 호수, 지역 커뮤니티와 방문객을 위한 연중 이벤트, 여러 문화적 시설의 도입과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용산공원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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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마스터플랜 ⒸWest 8

 

 

최근 시민 참여가 설계 과정에서 필수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태도는 필요하지만, 때로는 설계가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시민 참여를 꼭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는지 궁금하다.

21세기에는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주민과 밀접한 환경에 놓인 프로젝트의 경우 더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시민 참여에 집중하다가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많다. 따라서 현명한 방식으로 시민 참여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용산공원을 예로 들면, 이용자 그룹을 다양하게 고안한 뒤 이들의 참여를 이끄는 방식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음식, 어린이 교육, 참전용사를 위한 메모리얼 공간, 문화/예술 이벤트 등 여러 주제를 도출하고, 각 주제에 맞는 이용자 그룹을 모아 그들의 의견과 기술, 노하우를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참여의 성과물을 공원 설계에 반영하기 용이할 것이다.

 

시민 참여 이야기를 하니, 막시마 공원(Maxima Park)의 일본식 목재 다리가 떠오른다. 네덜란드식 공원 한가운데 일본식 교량을 지은 이유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막시마 공원도 긴 시간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대부분의 공공 프로젝트가 그렇듯 예산 부족으로 설계안대로 공원을 만들지 못했다. 공원 내에 수로가 있는데, 그 위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다리가 필요했다. 이미 주민 단체에서 다리 설치를 요구한 상황이었지만 정치인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결국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지역 장애인 공방을 발견했다. 공방의 디렉터와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간단한 구조의 목재 다리라면 이들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일본식 목재 다리다. 장애인 공방이 공원의 다리를 만든다고 하니 정치인도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 다리의 수가 12개로 늘어났다. 매우 성공적인 시민 참여의 사례다. 

용산공원 프로젝트를 하며 한국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문화를 담는 것에 반감이 크더라. 네덜란드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지만, 우리는 실용적인 측면을 조금 더 염두에 둔다. 다리 조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을 택해야 가장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했다. 그 뒤 네덜란드식 공원에 일본식 다리를 도입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반 고흐가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이 있다. 그중 이 목재 다리를 그린 그림을 찾았다. 반 고흐의 그림에 담겨 있으니 일본식이지만 이 또한 네덜란드의 문화이자 자산일 수 있다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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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과 아드리안 회저

 

전 세계의 조경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디자인, 포용적 디자인의 중요성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러 가치 중 당신은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나.

나는 엔지니어로서 교육 받았고, 내 안에는 바다를 막아 땅을 개간한 네덜란드인의 DNA가 있다. 모든 프로젝트는 이러한 나의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흙과 물을 다루고 생태계의 성장과 진화를 만드는 일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측면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조경가가 만든 자연에는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강연에서 보여준 프로젝트들은 웃음, 따뜻한 마음, 의미,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공원에는 사람들의 인식, 욕망, 유머, 쇼 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조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조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바쁜 도시 생활을 하면서 도시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도시는 매우 설명적이다. 교통, 유틸리티, 심지어 공공 공간까지도 그렇다. 각각의 용도가 있고 그에 맞는 기능을 요구하며 적합한 활동을 하도록 설명이 곁들어져 있다. 조경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공간에 반하는 것, 즉 해독제가 되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유를 주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간, 사람들이 직접 활용법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스스로의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고, 먹고 마시는 원초적 행위를 영위하며, 포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간의 진정성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더 나은 조경은 정해진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탐구하고 활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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